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45
◈ 45화. 뻔뻔함의 승부
단려화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문서를 확인하고도 비워주지 못하겠단 말씀인가요?”
“그렇소.”
적모개는 얼굴에 철판을 둘렀다.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전각의 지붕엔 구멍이 숭숭 뚫렸고 담장은 성한 곳이 없었으며 동네 불량배들이 숨어들어 나쁜 짓을 일삼고 있었지. 그런 곳을 우리 개방이 새것처럼 단장해 십 년 넘게 관리해왔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면 납득할 수 있겠소?”
단려화는 기가 막혔다.
‘이게 새것이면 대체 어떤 게 낡은 거야?’
그녀와 달리 진무립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
‘어중간하게 대가리 굴리는 것보단 이렇게 대놓고 뻔뻔한 게 상대하기 낫지.’
어지간하면 적당히 돈 좀 쥐여줄 생각이었으나 이렇게 나온다면 땡전 한 푼 주지 않아도 된다.
진무립은 낯빛조차 바꾸지 않고 정중히 물었다.
“저희가 어떻게 하면 장원을 내어주시겠습니까?”
적모개의 미소가 왠지 음흉했다.
“성도에 이곳과 똑같은 곳을 구해주시오. 그럼 나가드리지.”
정말 그걸 바라는 것은 아니고 상대가 해줄 거란 기대도 없다.
그러나 협상을 하려면 크게 불러놓고 단계를 낮춰가야 한다는 것을 적모개는 알고 있었다.
‘이제 협상을 시작해보자고. 마도림의 소공자.’
적모개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으나 진무립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뭐요? 알겠다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적모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무립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과 같은 곳이면 되겠지요?”
“그, 그, 그렇소.”
“개방의 대협께서 한 입으로 두말하시면 안 됩니다.”
적모개는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물론이오. 내 비록 거지라지만 내가 내뱉은 말은 지키지 않은 적이 없소.”
“그렇다면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진무립 일행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자 적모개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동초개를 쳐다봤다.
“이게 아닌데.”
“뭐가요?”
이제 곧 겨울이다.
외진 곳이라도 좋으니 협상을 해서 방도들이 누울 자리라도 얻어내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진무립에게 말려들어 그대로 보내고 만 것이다.
“쟤들 뭐냐?”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근데 정말 장원을 안 내어주실 겁니까?”
“당분간 쟤들 뭐 하고 다니나 감시 좀 해라.”
동초개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제가요?”
“응.”
“개새끼도 냄새난다고 우릴 피해 다니는데 미행이 안 들킬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죠?”
“씻고 가.”
동초개는 고개를 치켜들고 통탄했다.
“허허, 개방의 자부심이 땅에 떨어지겠도다.”
“더러운 것도 자부심이냐? 빨리 안 가?”
적모개가 눈알을 부라리자 마지못해 일어난 동초개의 볼이 잔뜩 부풀었다.
“시벌. 조금 늦게 들어온 게 죄지.”
“들린다. 거지새끼야.”
장원을 나선 진무립은 뒤를 힐끔 돌아보곤 씩 웃었다.
단려화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알던 개방도들과는 다르군요. 설마 저렇게 뻔뻔할 줄은 몰랐어요.”
“내기는 내가 이겼군.”
단려화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참 좋겠네요. 그래서 이젠 어떡할 거죠? 설마 정말 장원을 구해줄 생각은 아니겠죠?”
“그럴 리가. 전부 두들겨 패면 나가지 않을까?”
그러지 않을 거란 걸 단려화는 안다.
상대는 개방.
비록 사천에서의 영향력은 미미하다지만 상단을 운영하는 마도림이 그들과 척을 져서 좋을 건 없었다.
길게 생각해보면 명분이 이쪽에 있더라도 섣불리 힘을 사용할 순 없다는 말이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말고요. 생각해둔 방법은 있어요?”
“저쪽이 얼굴에 철판을 깔았으니 이쪽도 똑같이 해준다.”
때마침 이환을 따라갔던 유대하가 지부 앞에 나타났다.
“어떻게 됐습니까?”
진무립은 빼앗긴 지부를 힐끔 쳐다봤다.
“일단 객잔부터 잡고 이야기하자.”
단려화는 이들을 위해 객잔의 별채를 한 달이나 빌리는 통 큰 배포를 보였다.
하루를 쉰 진무립 일행은 은밀히 개방의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곳엔 은잠술의 대가인 단려화와 진무립이 있다.
분타의 상주 인원과 상시 대기 인원, 그리고 지부의 구조까지 모두 파악하는 것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흘이 지난날, 마침내 진무립이 객잔의 정문을 나섰다.
***
객잔이 보이는 골목에 죽치고 앉아있던 동초개는 연신 욕지거릴 내뱉었다.
“시부럴. 오늘따라 바람은 왜 이렇게 차가운 거야?”
길바닥에서 며칠 밤을 꼬박 지새웠더니 입이 돌아갈 판이다.
무릎을 끌어안고 구시렁거리던 동초개의 앞에 철 전 두 개가 뚝 하고 떨어졌다.
“아이고, 고맙습니다요. 복 받으실······.”
반사적으로 인사부터 하던 동초개의 눈에 빙그레 웃는 진무립이 들어왔다.
“고생이 많으시오.”
화들짝 놀란 동초개는 그만 엉덩방아를 찧었다.
“여, 여길 어떻게?”
“많이 추운 모양이오.”
동초개는 그 말을 듣고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담장 밑 그늘에 숨어 있어야 할 몸뚱아리가 어느새 볕이 잘 드는 길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던 동초개는 슬그머니 그늘로 걸어가 몸을 숨겼다.
“못 본 척해주십쇼.”
자신을 감시하러 왔으면서 못 본 척해달란다.
그 뻔뻔한 작태에 어지간해선 당황하는 일이 없는 진무립조차 할 말을 잃었다.
‘용추보다 더 한 새끼네.’
진무립은 동초개에게 다가가 은자 두 개를 내밀었다.
“바쁘지 않으시면 잠시 시간 좀 내주시겠습니까?”
순식간에 은자 두 개가 손 위에서 사라졌다.
헤벌쭉 웃은 동초개는 벌떡 일어났다.
“헤헤. 거지가 바쁠 게 무어 있겠습니까? 말씀만 하십쇼.”
“개방에게 내어줄 장원을 찾고자 합니다. 제가 성도의 지리를 잘 몰라 그러는데 안내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동초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정말 장원을 구해준단 말입니까?”
진무립은 싱긋 웃었다.
“사내가 어찌 한 입으로 두말을 하겠습니까?”
“허.”
분타주의 억지스러운 조건을 정말로 들어줄 줄은 몰랐다.
침을 꿀꺽 삼킨 동초개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봅시다.”
진무립과 동초개가 사라진 자리에 단려화 등이 나타났다.
단려화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정말 알기 쉬운 사람이네요.”
유대하는 씩 웃었다.
“어쨌든 계획이 시작됐으니 저희도 움직이죠.”
“과연 이 생각이 통할까요?”
단려화는 의구심을 표했으나 유대하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소공자께서 된다고 하면 될 겁니다.”
우직한 유대하의 태도에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그렇군요. 용소협은 나와 함께 가요.”
“네.”
두 패로 나뉜 세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진무립이 장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곧장 분타에 전해졌다.
적모개의 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휘둥그레졌다.
“지, 진짜 장원을 알아본단 말이야?”
온종일 진무립과 돌아다니다 돌아온 동초개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라니까요. 오늘 세 곳이나 둘러봤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적모개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그럴 거면 그냥 다른 곳에 장원을 사서 들어가지 왜?”
“이곳이 아니면 안 된답니다. 마도림의 역사가 담긴 장소라나.”
“허.”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무립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대검문을 무너뜨린 놈이다. 무슨 계략을 꾸밀지 모르는 일이야. 행여 놈이 뭘 주더라도 넙죽넙죽 받아먹지 말고 신경 써서 감시해라.”
“······.”
“왜 대답이 없어?”
딸꾹.
눈알만 굴리던 동초개가 딸꾹질을 하자 적모개는 설마 싶은 얼굴로 쳐다봤다.
“벌써?”
딸꾹.
누가 거지 아니랄까 봐 받아먹는 건 정말 빠르다.
“······.”
적모개가 할 말을 잃었을 때 문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분타주님!”
“뭐야?”
“손님이 왔는데요?”
“또 손님? 개방 분타가 언제부터 저잣거리 노점이 됐냐?”
마당에 나와보니 커다란 술독과 돼지를 들쳐메고 온 용추와 단려화가 있었다.
그녀의 동공이 좌우로 슬쩍 움직였다.
‘분타의 상주 인원은 여덟. 항시 네 명 이상은 내부를 지키고 있었어. 이들을 전부 끌어내야 해.’
우르르 몰려나와 침을 꿀꺽 삼키는 거지들의 모습이 아주 가관이다.
적모개가 혀를 차는 사이 단려화는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다시 뵙습니다.”
“무슨 일이오? 그건 뭐고?”
“저희 소공자께서 분타주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선물? 대체 왜?”
자기 집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뻗대는 인간에게 선물이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공자께서 그간 장원을 관리해준 개방의 노고에 작은 성의를 표하고자 보내셨습니다.”
“진심이오?”
진심일 리가 없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단려화는 빙그레 웃었다.
“물론입니다. 천하의 그 누가 개방과 척을 지고 싶겠습니까? 개방이 옮겨갈 장원은 백방으로 알아보는 중이니, 부디 성의가 부족하다 탓하지 마시고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가 눈짓하자 용추가 술독과 돼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거지들이 걸신들린 사람처럼 갈망하는 눈으로 적모개를 쳐다봤다.
이미 가져온 걸 돌려보내기도 그렇다.
적모개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준다는데 그냥 먹어. 자식들아.”
“예!”
방긋 웃은 단려화가 용추를 데리고 물러났다.
“그럼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날부터 매일같이 개방의 분타에 술과 고기가 전달됐다.
진무립을 경계하는 적모개가 거절 의사를 표하면 단려화와 용추는 가져온 음식을 문 앞에 두고 사라졌다.
버릴 수도 없으니 먹을 수밖에 없다.
다른 거지들은 입이 마르게 진무립을 칭찬했으나 분타주 적모개는 달랐다.
‘대체 무슨 꿍꿍이야?’
상념에 잠긴 적모개의 눈앞에 불쑥 고기가 나타났다.
“분타주님. 어여 들어요.”
분타의 앞마당. 모닥불에 올린 고기가 어느새 노릇노릇 익은 상태였다.
고기를 받아든 적모개가 동초개에게 물었다.
“오늘도 장원을 알아보러 다니더냐?”
“며칠 안내했더니 이제는 알아서 잘 다닙니다. 근데 역시 성도라 그런지 가격이 만만치 않은 모양입니다.”
“네 생각은 어때?”
평소 자신과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이따금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번뜩이기도 하는 동초개다.
“육즙이 진득하니 아주 맛있습니다.”
적모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거 말고 자식아. 소공자 말이야. 진심으로 장원을 구해줄 거 같아?”
“음.”
동초개는 차갑게 머리를 식혔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소공자란 놈은 매일 장원을 보러 다니고 여인과 흉신악살처럼 생긴 놈은 매일 고기를 가져온다 치면 남은 한 놈은 뭘 하고 다니지?”
“그 사람도 소공자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던데요?”
“어딜 가는지는 모르고?”
“제 몸이 한 갠데 어떻게 둘 다 감시합니까?”
분타의 총원은 스물에 달했으나 열둘은 서장과 남만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떠난 상태.
그 탓에 지금 지부에서 자신 다음으로 높은 매듭을 가진 거지는 삼결제자인 동초개였다.
이제 막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이결제자들에게 미행을 맡기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쓸만한 놈들은 죄다 내보냈으니······. 이거 참 답답하군.’
차라리 욕하고 개방을 성토하면 마음이 편하다.
계획대로 뻔뻔하게 나가면 되니까.
그러나 상대의 속내를 알 수 없으니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껄끄러웠다.
***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된 지 열흘째 되던 날.
진무립의 방에 모처럼 전원이 모여 앉았다.
“유대하. 알아보라고 한 건?”
유대하의 두 눈이 반짝였다.
“찾아뒀습니다.”
“적당한 장원도 물색해뒀고······ 오늘부터 술과 고기는 끊는다.”
단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자신이 이런 계획에 동참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즐겁고 기대가 된다.
‘이 사람에게 물들어 가는 건가?’
두근거리는 이 감정은 묘하게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를 확인한 진무립이 씩 웃었다.
“그럼 지금부터 놈들에게 누구 낯짝이 더 두꺼운지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