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46
◈ 46화. 이제 돌려줘
전각의 계단에 옹기종기 모인 이결제자들은 목이 빠지게 정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 고기 언제 오냐?”
매일같이 받아먹는 술과 고기가 익숙해졌다.
“그러게. 오늘은 좀 늦네.”
당연히 와야 할 게 안 오고 있으니 조바심이 난 것이다.
“그냥 구걸하러 나갈까?”
“기다려봐. 곧 오겠지.”
“오늘 좀 춥네.”
어느덧 성큼 다가온 겨울.
추위와 허기가 겹치자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전각 문이 벌컥 열리며 적모개가 나왔다.
“니들 구걸 안 나가고 뭐 하냐?”
움찔한 거지들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이제 나가려고 했습니다.”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이것들이 진짜.’
적모개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거기 서 봐.”
여기서 한바탕 다그치지 않으면 안 된다.
적모개는 거지들을 계단 밑에 줄지어 세웠다.
“요즘 술이랑 고기 맛 좀 봤다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지? 니들 누구냐?”
서슬 퍼런 눈빛에 이결제자들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개방도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가만 앉아서 남이 주는 떡이나 처먹고 자빠졌냐? 새끼들이 본분도 망각하고 떨어지는 콩고물만 기다리면 그게 백수지 거지야? 엉?”
움찔한 거지들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자기도 우리랑 같이 먹었으면서.’
하지만 입 밖으로 낼 용기는 없다.
적모개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굶어 죽고 싶은 놈은 계속 뻗대고 서 있어라.”
거지들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르르 분타를 나섰다.
“오늘 저녁······.”
때마침 돌아오던 동초개는 적모개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자연스럽게 거지들 틈에 섞여들었다.
“자, 어서들 가자구.”
“정지.”
적모개의 신형이 번개같이 튀어 나갔다.
“억!”
목덜미를 붙잡힌 동초개는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자, 잠깐.”
“다녀왔으면 보고부터 해야지. 가긴 어딜 가?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오늘은 객잔에 틀어박혀서 코빼기도 안 보이던데요. 나올 기미가 없어서 그냥 왔습니다.”
“네 놈 다?”
“예. 거긴 뒷문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멀쩡히 앞문으로 나오던 사람들이 담을 넘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객잔에 들어간 사람 중에 신경 쓰이는 인물은?”
“왕대인 댁의 집사가 다녀가긴 했습니다.”
“왕대인?”
동초개가 말한 왕대인은 북경에서 관직 생활을 하다 십 년 전 은퇴하고 돌아온 인물이다.
그는 성도에 수십 채의 장원을 보유한 거부로 이곳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었다.
동초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도 줄곧 의심은 했습니다. 근데 지금까지 지켜본 걸 생각하면 정말 장원을 구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추운데 고생했다. 그만 들어가서 쉬어라.”
돌아서는 적모개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 절대 안 믿을 거다.’
***
사흘 뒤 저녁.
땅거미가 내려앉은 개방의 분타에 진무립이 찾아왔다.
“여러분께서 옮겨갈 곳을 구했습니다.”
모닥불을 쬐고 있던 거지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동초개가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정말 장원을 구했단 말입니까?”
진무립은 싱긋 웃었다.
“개방의 형제들을 위해 조촐한 연회도 준비해뒀습니다. 사양치 말고 함께 가시지요.”
연회라는 말에 거지들의 눈이 희번덕였다.
앉아있던 적모개가 벌떡 일어났다.
“연회는 됐고······. 어디 가봅시다.”
그렇지 않아도 무슨 꿍꿍인가 궁금했던 차다.
“다녀올 테니 집 잘 지키고 있어라.”
돌아서는 적모개에게 거지들의 간절한 눈빛이 쏟아졌다.
무려 열흘이나 술과 고기를 먹어온 그들이다.
그러다 사흘째 먹다 남은 것들만 얻어먹고 있으니 단려화가 가져오던 술과 고기가 그리웠던 거다.
‘그놈의 고기 맛을······.’
적모개는 그들의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다.
“따라와라.”
진무립은 싱긋 웃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거지들을 분타에서 끌어내고자 그간 술과 고기를 갖다 바친 거니까.
거지들이 들뜬 내심을 감추고 무덤덤하게 일어나는 가운데 적모개는 동초개를 쳐다봤다.
“다 따라가면 분타는 누가 지켜?”
눈앞에 서 있는 이는 진무립 한 명.
행여 지부를 텅 비울 경우 남은 셋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기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둘 필요가 있었다.
동초개가 울상을 지었다.
“설마 저만 빼놓고 연회를 즐기겠다는 겁니까?”
“올 때 좀 싸 올 테니까 기다려라.”
“배 터지게 안 싸 오면 삐뚤어질 겁니다.”
“알았다니까.”
진무립과 개방의 거지들이 분타를 나섰다.
일각 정도 걸어간 그들이 작은 다리를 건너자 적모개가 물었다.
“어디까지 가는 거요?”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진무립의 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적한 길가에 고풍스러운 장원이 나타났다.
‘여긴 왕대인의 지인들이 방문할 때 빌려주는 장원이다.’
성도 전역에서 구걸을 하는 만큼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정도는 잘 안다.
거지들의 웅성거림이 조금씩 커지자 문이 벌컥 열리며 단려화가 나타났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이 빠르게 거지들을 훑었다.
‘한 명이 비는구나.’
하지만 그에 대한 대책도 마련된 상태.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중앙의 전각에 연회를 준비해두었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거지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문턱을 넘던 적모개가 물었다.
“설마 이곳이오?”
정말 이곳이 자신들을 위해 준비한 장원이라면 차고 넘치는 행운이다.
진무립은 적모개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며 말했다.
“음식이 식습니다. 우선 식사부터 하시고 천천히 둘러보시지요.”
“······.”
여전히 의구심이 가시질 않았으나 뒤따라온 방도들의 눈살에 계속 서 있기도 불편했다.
단려화를 따라 전각에 들어간 개방도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저. 이, 이게 정말 우리를 위해 준비한 연회란 말입니까?”
사천의 별미는 물론이고 성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요리까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져 있었다.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예. 부족한 것이 있거든 저분들께 말씀하십시오. 바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단려화가 가리킨 곳에는 공손히 인사하는 두 명의 하인이 있었다.
“어서 앉으십시다. 분타주께선 이쪽으로 오시지요.”
진무립의 안내에 적모개는 떨떠름한 얼굴로 상석에 앉았다.
“성도에 연고가 없어 숙수를 모시는데 애 좀 먹었습니다. 행여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시오.”
“아니오. 태어나서 이 같은 대접은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오.”
어딜 가나 눈총받는 개방의 방도가 어디서 이런 대접을 받아보았겠는가?
주변을 둘러본 적모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일행 두 분이 보이지 않는구려. 함께하면 좋을 텐데 말이오.”
“술이 부족할 듯하여 잠시 나갔습니다. 개의치 마시고 어서 드시지요.”
진무립이 부드럽게 웃으며 술병을 열자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청아한 주향이 풍겨 나왔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 술은?”
“의빈현(宜賓県)의 오량주(五粮酒)를 어렵게 구해왔습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적모개의 눈빛이 처음으로 변했다.
“이게 저, 정말 의빈의 오량주란 말이오?”
의빈현의 술은 목숨을 걸고도 마신다고 할 만큼 명주로 유명하다.
그중 오량주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귀한 술이었다.
“그렇습니다. 그것도 시전에서 파는 술이 아니라 장인이 직접 만든 술이지요. 의빈에서 납품을 하러 온 상인에게 뒷돈까지 찔러주고 구한 것입니다.”
술잔을 담은 적모개의 눈동자가 옅은 떨림을 보였다.
‘진짜 오량주라니.’
적모개가 개방의 분타주라곤 하나 폐쇄적인 사천 무림에선 크게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
죽엽청 한 번 얻어 마신 적이 없었는데 대뜸 눈앞에 오량주가 나타나니 입안에 침이 절로 고였다.
그의 낯빛을 살핀 진무립은 슬쩍 웃었다.
그가 술을 좋아한다는 것도, 열흘간 분타에 바친 술 중 절반 이상을 적모개가 마셨다는 것도 동초개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진무립은 점잖게 잔을 권했다.
“한번 드셔보시지요.”
떨리는 손으로 잔을 든 적모개가 동초개를 떠올렸다.
‘한 놈 앉혀두고 나왔으니 별일이야 없겠지.’
제아무리 사천에서 영향력이 작은 개방이라지만 설마 힘으로 분타를 빼앗으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먹고 보자.’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 했으나 그 역시 거지.
차려진 밥상을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술잔이 그의 입에 붙는 순간, 진무립의 시선이 단려화를 스치고 돌아왔다.
‘시작해.’
문 앞에 서 있던 단려화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올게요.’
거지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그녀는 조용히 전각을 빠져나왔다.
장원을 나서자 맞은 편 민가의 담장 위로 유대하가 고개를 내밀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언제든 시행할 수 있습니다.]뒤를 힐끔 쳐다본 단려화가 전음을 보냈다.
[변수가 생겼어요. 한 명이 덜 왔어요.] [알겠습니다. 용형에게는 제가 알리겠습니다.]지체 없이 몸을 날린 유대하는 곧장 용추가 기다리는 분타 근처로 달렸다.
걸어서는 이각이 걸리는 거리지만 신법을 전개하면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자 담장 밑에서 고개 숙인 채 졸고 있는 용추를 볼 수 있었다.
“용······.”
다가가려던 유대하가 멈칫했다.
누군가 용추 앞에 멈춰섰기 때문이다.
“허우대는 멀쩡한 사람이······. 쯧쯧.”
혀를 찬 중년인은 용추 앞에 철전 한 닢을 툭 던지고 지나갔다.
“······.”
잠에서 깨어나 침을 닦은 용추는 눈앞의 철전을 게 눈 감추듯 소매에 넣었다.
‘개방도요?’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던 유대하가 성큼성큼 다가갔다.
“시작입니다. 용형.”
소매를 슬쩍 쳐다본 용추가 넌지시 물었다.
“혹시 봤어?”
“······못 봤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용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다.”
용추가 사라지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유대하도 어딘가로 몸을 날렸다.
***
홀로 남은 동초개가 전각 밖의 계단에 쪼그려 앉았다.
“대체 뭘 차려놨을까?”
그간 분타에 보낸 술과 고기를 생각하면 결코 부족한 대접은 아닐 거다.
머릿속으로 산해진미가 가득한 술상을 떠올리니 입안에 절로 침이 고였다.
지그시 눈을 감은 동초개의 후각에 맛있는 냄새가 감지됐다.
“냄새까지 떠오르는 걸 보니 나도 제대로 돌았구나.”
그런데 상상을 멈춰도 냄새는 계속해서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밖으로 나온 동초개의 앞에 은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앗!”
잽싸게 은자를 주워드는 동초개의 좌측에 철전 하나가 또 떨어져 있었다.
‘어떤 바보 같은 놈이 구멍 난 전낭을 들고 다니는 거야?’
철전은 일정 간격으로 하나씩 떨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안력을 끌어올린 동초개는 철전을 주섬주섬, 하나씩 열심히 주워갔다.
‘이게 웬 횡재냐.’
스멀스멀 올라가는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올 줄 모른다.
대략 스무 개의 철전을 주웠을 무렵부터는 간격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온 신경을 기울이던 동초개는 더 이상 철전이 보이지 않자 허리를 곧추세웠다.
“이제 안 보이네. 끝인가?”
빛이 새어 나올 민가조차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
주변을 둘러본 동초개는 어디까지 왔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아쉬움을 속으로 삼키고 돌아설 무렵.
“오른쪽이야.”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철전 하나가 또 떨어져 있었다.
“오.”
씩 웃은 동초개는 다시 철전을 주섬주섬 주워갔다.
그리고 동초개로부터 고작 일 장 떨어진 어둠 속에선 용추가 살포시 철전을 내려놓고 있었다.
“거기 왼쪽에 두었어.”
“하하. 고맙수.”
무심코 철전을 주워들던 동초개는 그제야 이상한 걸 눈치챘다.
“거기 누구요?”
“이제 없네.”
어둠 속에서 흐릿한 형상이 가까워지더니 용추가 나타났다.
“다 주웠지?”
“응?”
상대를 알아본 동초개의 눈이 동그랗게 커질 때, 용추가 대뜸 손을 내밀었다.
“이제 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