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48
◈ 48화. 마도림 성도지부
적모개는 결국 진무립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제 와서 다리 밑에 움막을 짓고 살자니 제자들의 고생길이 빤히 보인다.
그렇다고 거지들밖에 없는 총단에 사치스럽게 집을 사달라 말할 수도 없다.
그는 결국 하루 한 번 씻는 조건을 사흘로 늘려 협상을 마쳤다.
왕대인의 장원이 하루아침에 거지소굴이 됐다.
당초 한 달간 빌리기로 했던 장원이다.
집을 빌려준 집사는 울상을 지었지만 한 달이라는 계약 기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개방의 정보력을 이용한 진무립은 지부를 재건해줄 장인과 일꾼을 수배,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으니 한 달 안에 전각 두 채를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급한 일을 마무리한 진무립은 적모개에게 내준 방을 찾아갔다.
“씻기로 하지 않았나?”
방에 들어선 순간 특유의 냄새가 느껴져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직 이틀이오. 내일 씻겠소이다.”
적모개의 말투가 퉁명스럽다.
진무립에게 당한 것이 아직도 억울한 모양이었다.
환기를 하고자 창을 연 진무립은 그대로 창틀에 걸터앉았다.
“좋게 생각하자고. 그대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잖아? 천하의 누가 개방의 거지들에게 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하려 하겠나? 그대는 제자들 굶길 걱정 없어서 좋고 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으니 상부상조가 이런 것 아니겠나?”
적모개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인간이야. 우릴 쫓아내자고 남의 집을 불······ 아니, 자기 집을 불태우다니.’
예측을 불허하는 능력을 봤을 때 파중현에서 혈천수라를 죽였다는 소문도 아마 거짓이 아닐 것이다.
적모개가 여전히 다문 입을 열지 않자 진무립은 품에서 오량주를 꺼냈다.
“선물이다.”
“고작 이런 뇌물로 내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소?”
“부엌에 두 병 더 있다.”
적모개가 돌아앉으며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말해보시구려.”
“듣자 하니 중원 밖의 지부로 발령된 분타주는 대부분 내부에서 밀려난 자들이라고 들었다. 왜 사천까지 오게 된 거지?”
잠시 머뭇거리던 적모개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벽에 등을 기댔다.
“내 스승은 개방의 장로였소.”
“장로의 제자라면 얼마든지 중원의 분타로 갈 수 있었을 텐데?”
“보통이라면 그렇지. 문제는 내 스승이 천하대전 당시 팔황문과 손을 잡고 반역을 도모했던 이들 중 하나라는 거요. 반역에 실패한 스승님은 다른 장로들과 함께 당시 방주의 손에 목숨을 잃었지. 다행히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서 살아남았지만······. 그 이상의 사정은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여기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있다.
팔황문이 일으킨 천하대전은 이토록 천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은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중원으로 돌아가고 싶나?”
“글쎄. 그럴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군.”
“네 꿈은 무엇인가?”
술을 한 모금 더 마신 적모개는 실소를 흘렸다.
“거지에게 꿈은 무슨. 그저 여기서 제자들과 몸 성히 잘 먹고 잘 지내는 게 꿈이라면 꿈이겠지.”
처음부터 장원을 비울 수 없다고 버틴 것도 모두 제자들 때문이다.
비록 남에게는 뻔뻔한 인물일지언정 자신과 함께하는 이들에게는 책임감이 있는 사내였다.
어찌 보면 그런 면에선 진무립과 통하는 게 있는 남자다.
“나는 나를 도운 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창틀에서 일어난 진무립이 문을 열었다.
“앞으로 나를 도와라. 나와 함께 한다면 언젠가 중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마지막 말을 남긴 진무립이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적모개는 침상에 드러누워 허공을 응시했다.
그가 남긴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중원으로 돌아갈 길은 누가 봐도 무시하지 못할 공을 세우는 길밖에 없다.
진무립은 자신에게 그런 기회를 주겠다는 거다.
“자신감 하나는 정말 대단하군.”
살면서 숱한 무인을 봐온 자신이다.
진무립과 같은 인간의 말로는 두 가지뿐이다.
무림을 뒤흔들 거물이 되거나.
아니면 제 명에 못 살고 죽거나.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전자의 경우는 한 명도 없었다.
‘그 자신감이 언제까지 이어지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긴 하겠어.’
당한 건 당한 거지만 왠지 흥미가 생기는 사내였다.
“이상한데.”
부엌의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은 동초개가 중얼거렸다.
술을 가지러 들어온 용추가 물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아, 용형. 그날 말이오. 분명 어디서 용형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입니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분명 용추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내 품이 뭔가 묵직했던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분타가 불타던 날 나를 보지 못했습니까?”
“······.”
눈알을 한 바퀴 굴린 용추가 동초개의 정수리를 쳐다봤다.
‘때리면 기억을 잃는 거 같은데 한 대 더 때리면 완전히 잊지 않을까?’
눈을 동그랗게 뜬 동초개가 고개를 갸웃했다.
“용형?”
“움직이지 말고 일단 가만있어 봐. 고개는 좀 더 들고.”
“이렇게요?”
동초개가 고개를 들자 술병을 쥔 용추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간다.”
“어딜?”
퍽!
동초개의 눈앞에 그날의 어둠이 다시 찾아왔다.
***
겨울철엔 목수들의 일감이 다소 적은 편이다.
성도의 놀고 있는 목수들을 거의 다 불러 모았더니 지부의 재건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자 진무립은 적모개와 동초개를 불렀다.
“머리는 왜 그러냐?”
동초개의 정수리가 육안으로 보일 만큼 튀어나와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요즘 몸이 허한가. 자꾸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쯧쯧. 어린놈이.”
혀를 찬 적모개가 진무립을 쳐다봤다.
“근데 왜 부른거요?”
“중경에 소식을 전하려면 얼마나 걸리지?”
동초개가 혹이 난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제가 좀 빠릅니다. 지름길로 가면 스무날 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스무날이라. 그거 좋군.”
머릿속으로 시일을 계산한 진무립은 감싼 서신을 꺼냈다.
“이걸 마도림의 총단에 전해다오.”
서신과 함께 노잣돈을 받아든 동초개는 묵직한 그 느낌에 헤벌쭉 웃었다.
“지금 출발할까요?”
적모개가 눈살을 찌푸렸다.
“넌 누구 부하냐?”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밥값은 해야 할 거 아닙니까?”
빙그레 웃은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탁한다. 최대한 서둘러 다오.”
동초개를 보낸 진무립은 그날부터 상호군에게 배운 경화사검의 수련을 재개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면 최소한 사천의 후기지수들은 경화사검만으로 때려눕힐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후원에 틀어박힌 유대하 역시 은명진하검의 수련을 재개했다.
용추와 단려화가 수련을 겸해 두 사람의 비무 상대가 되어주었다.
개방의 거지들도 미뤄둔 수련을 시작했다.
진무립이 숙식을 제공하는 탓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구걸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개방이 얻는 다수의 정보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거지들은 적모개의 지시로 하루 두 시진씩 정보를 수집하고 남은 시간을 무공에 투자했다.
그렇게 한 달이 되어갈 무렵, 일 장 높이로 담장을 두른 지부에 마침내 두 채의 전각이 완성됐다.
『마도림 성도 지부』
승천하는 용을 그린 듯 웅혼한 필체의 현판이 금빛으로 반짝인다.
정문 앞에 선 진무립은 흡족한 얼굴로 현판을 응시했다.
“거처는 내일쯤 옮기면 되겠군.”
장원의 계약은 이틀 뒤에 끝난다.
아직 공사가 완벽히 끝난 건 아니지만 들어가서 대충 몸을 누일 정도는 되었다.
곁에 선 단려화가 말했다.
“결국 당신이 해냈군요.”
지부를 되찾았을뿐더러 분타의 거지들까지 손에 넣었다.
그녀의 시선이 진무립에게 닿았다.
“과정이야 어떻든 그 능력은 정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진무립은 옅은 미소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가 해낸 게 아니다. 이건 우리가 함께 이룩한 성과야.”
지척에서 눈이 마주친 단려화는 이 상황이 멋쩍었는지 일부러 짓궂게 말했다.
“나야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그렇지만 모르는 사람이 과정을 지켜봤으면 당신을 악귀라고 했을 거예요.”
“거지를 돕는 악귀도 있나?”
“순수한 마음으로 돕는 게 아니잖아요.”
진무립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순수함이 통할 무림이 아니라는 걸 묵혈방에서 봤잖아. 그들도 공짜로 눌러앉는 것보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건 받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할 거다.”
단려화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겠네요.”
또 하나를 배워간다.
어떻게 보면 진무립은 그에게 무림의 스승과도 같았다.
진무립은 씩 웃었다.
“빠른 수긍 좋아.”
그녀도 방긋 웃어 보였다.
“원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귀담아듣는 편이거든요.”
마주 보는 두 사람의 표정과 태도는 처음에 비하면 많이 부드러워진 상태.
그들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며 알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먼저 돌아가겠어요. 숙수를 도와 장을 봐야 하거든요.”
개방도들이 먹어치우는 음식은 보통 사람의 수준이 아니다.
그녀와 용추가 돕지 않으면 숙수 혼자선 식재료를 들고 오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곳에 있으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괜히 날 따라와서 고생하는군.”
“무림의 평화를 지키려고 당신을 따라온 나인데 이 정도도 못하겠어요?”
싱긋 웃으며 농담을 던진 단려화가 몸을 돌려 사라졌다.
‘무림의 평화라.’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제법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은공.”
고개를 돌려보니 북천도문의 소문주 이환이 낯선 청년과 함께 있었다.
“이환이 은공을 뵙습니다.”
“만날 때마다 이러지 마라. 부담스럽다.”
빙그레 웃은 이환이 불탄 건물을 눈에 담았다.
“지부를 다시 짓는다는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소문도 빠르군.”
“대체 무슨 수로 개방을 설득한 것입니까?”
잠시 생각한 진무립이 피식 웃었다.
“정중히 이야기했을 뿐이다.”
진무립의 시선이 함께 온 청년에게 닿았다.
“함께 온 친구는 왠지 낯이 익은데?”
그와 마찬가지로 철검대의 무복을 입은 청년이 진무립을 향해 정중히 예를 갖췄다.
“금정무문의 소문주 신평입니다. 아버지께 서신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본문을 도와주신 은혜에 늦게나마 감사의 예를 올립니다.”
선이 굵은 얼굴이 부친과 제법 닮아있었다.
부친뿐만 아니라 평소 친하게 지내온 이환에게도 진무립에 대한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들어온 신평이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직접 만나 보니 놀랄 만큼 수려한 외모를 가진 청년이다.
“진무립이다. 손님이 왔는데 보다시피 집이 이 모양이라 대접할 게 없군. 자리를 옮기지.”
이환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은공께 차 한 잔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근처의 다점(茶店)으로 자리를 옮긴 그들은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이 층 창가에 앉았다.
활짝 열린 창문에서 겨울바람이 들어왔으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닫는 이가 없었다.
신평이 말했다.
“얼마 전 당가의 삼공자가 찾아왔었습니다.”
“당우? 뭐라고 하던가?”
“그저 다른 말 없이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만 하고는 돌아갔습니다. 과거의 그에 비하면 풀이 많이 죽은 모습이었습니다.”
진무립이 피식 웃었다.
“이제야 좀 정신을 차렸군.”
“성도에선 평창현을 구한 대협으로 소문이 났는데 우쭐대지 않는 걸 보면 달라지긴 한 모양입니다.”
처음엔 소문을 믿는 이가 없었다.
당우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는 이가 없으니까.
그러나 돌아온 당우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고 전과 달라진 그의 모습에 소문은 사실처럼 굳어가는 모양새였다.
“당가에선 별말이 없었나?”
“아직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행여 누가 물으면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라.”
“예. 부친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신환의 이야기가 끝나자 밖을 한 차례 살펴본 이환은 창을 닫았다.
손님 한 명 없는 다점.
창까지 전부 닫으니 내부는 마치 밀실처럼 어두우며 서늘한 게 밀담을 나누기 딱 좋은 환경이 되었다.
진무립이 물었다.
“여길 빌린 모양이군.”
굳이 가까운 객잔을 놔두고 구석진 곳의 다점에 데려올 때부터 중요한 얘기를 꺼낼 것만 같았다.
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왜지?”
신평과 한차례 시선을 교환한 이환은 나직이 목소리를 깔았다.
“소공자. 사천맹에 들어와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