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49
◈ 49화. 챙길 건 제대로 챙겨야지
사천맹에 와달라.
두 사람의 눈에는 간절함까지 엿보였다.
진무립은 차를 한 모금 삼켰다.
“무슨 일이 있었나?”
주변을 재차 살핀 이환이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장 무림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백채륜에게 들었던 말이다.
진무립은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서장 무림?”
“예. 서장 무림을 양분한 혈교와 포달랍궁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소문입니다. 극비 정보라 아직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누구에게 들은 얘기지?”
답변은 신평에게서 나왔다.
“비각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들은 소식입니다.”
“비각에서 정보를 얻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진무립의 말처럼 사천맹의 비각은 전원이 당가, 청성, 아미, 점창 등의 사대거파 출신으로만 구성돼 있었다.
“사대거파가 중소방파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곤 하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윗선에선 이미 전쟁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어서 이환이 말을 덧붙였다.
“서장과 사천은 대설산맥으로 막혀 있어 왕래가 잦은 편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들이 중원을 노린다면 사천을 지나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아 전쟁이 일어나면 저들은 우릴 소모품으로 사용할 게 분명합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죽어 나가는 건 이들 중소방파겠지.’
만일 자신이 사천맹주고 거파의 피해를 줄여야하는 입장이라면 무조건 중소방파부터 희생시킬 것이다.
비록 마도림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지는 못했으나 대검문을 흡수한 지금, 사대거파를 제외하면 가장 힘 있는 곳이다.
이들은 마도림이 사천맹에 가담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지금 이 시점에 자신을 찾아온 이유도 짐작했다.
‘사대거파로 구성된 비각에서 그리 쉽게 정보를 흘릴 거라곤 생각할 수 없다. 이건 앞으로 있을 전쟁에 마도림을 끌어들이려는 술책이다.’
사천의 패권을 쥔 사대거파 중 마도림에 우호적인 세력은 없다.
금정무문과 북천도문을 끌어들인 시점에서 중소방파들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는 것을 알았을 터.
마도림이 이들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이들을 보낸 것이다.
‘제법 머리 돌아가는 놈이 있군.’
백채륜에게 서장의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사천맹에서 마도림을 원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동초개를 시켜 중경에 서신을 보낸 것도 저쪽에서 조만간 접촉할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 올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와주니 도리어 반갑기까지 하다.
‘이렇게까지 우릴 원한다면 몸값을 올린다.’
진무립은 빙그레 웃었다.
“돌아가라.”
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소공자. 분명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이건 마도림에게도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각자의 힘은 사대거파에 미치지 못하나 중소방파가 뭉치면 그들도 쉽게 볼 수 없는 전력입니다. 이 일을 허락하신다면 저희는 마도림이 과거의 위상을 회복할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지하겠습니다.”
“마도림이 중소방파의 구심점이라, 그건 모두의 의견인가? 아니면 두 사람의 의견인가?”
짧은 정적 끝에 이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저희 둘의 의견입니다. 하지만 다른 방파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면 도리어 뭉쳐야 할 중소방파 사이에 분쟁이 생길 거다.”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국에 의견이 엇갈린다면 역효과만 생길 것이다.
찻잔을 내려둔 진무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방파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다른 방파도 모두 한 마음이다로 바꿔서 와라. 그럼 다시 생각해보지.”
진무립이 다점을 나서자 이환과 신평은 낭패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가 너무 성급했던 모양일세.”
“잘 생각해보면 소공자의 말씀이 틀리지 않네. 일의 선후가 잘못되었던 것 같군.”
“일단 돌아가서 모두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어.”
“그게 좋겠군. 가세.”
먼저 나온 진무립은 멀리서 떠나는 두 사람의 등을 응시했다.
사천맹의 입장에선 생각지 못한 서장 무림의 전쟁.
그들과의 전쟁을 기정사실처럼 여기고 있다면 든든한 화살받이 하나쯤은 더 만들어두고 싶을 거다.
사대거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그게 전부가 아니다.
사천 무림이 전쟁에 휘말렸는데 마도림만 힘을 온존한다면 훗날 다른 문제가 생긴다.
그렇기에 한 번쯤 거절해도 사천맹은 절대 마도림을 포기하지 못한다.
‘함정에 빠지더라도 챙길 건 제대로 챙겨야지.’
의미 없는 소모품으로 죽어 나가고 싶지 않다면 그들은 반드시 뜻을 모아 다시 찾아올 터.
이참에 중소방파를 완전히 장악한다.
‘지금쯤 동초개가 중경에 도착했을 거다. 저쪽이 이렇게 나온다면 계획을 살짝 수정해야겠군.’
진무립의 머릿속으로 사천맹에 들어가는 모든 과정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
“이곳이 마도림인가?”
성도를 떠난 지 스무날.
쉴 새 없이 달린 끝에 중경 북림에 도착한 동초개는 마도림의 총단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오는 길에 목욕도 했고, 옷도 이 정도면 깔끔하고.’
옷매무새를 살피고 품 안의 서신을 매만진 동초개는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흑의를 입은 위사가 예를 갖추며 물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흠흠. 저는 성도의 개방······. 아니지. 마도림 성도지부에서 온 동초개라고 합니다. 소공자의 서신을 가져왔습니다.”
동초개를 위아래로 살핀 위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봐도 광룡대는 아닐뿐더러 소공자의 곁에 머물던 인물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동초개는 당당히 말했다.
“나도 당신은 처음 봅니다.”
“······.”
위사가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자 정신이 든 동초개는 광룡대주의 직인이 찍힌 진무립의 서신을 꺼냈다.
“소공자께선 이걸 보여주면 림주님과 만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직인을 몇 차례나 확인한 위사가 정문을 열었다.
“따라오십시오.”
동초개와 대면한 초무강은 진무립의 서신을 읽고 웃음을 터트렸다.
“성도에 가서도 여전히 엉뚱한 녀석이로구나.”
동초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인도 동의합니다.”
“하하하. 어지간히 당한 모양이군. 잠시 기다려주게.”
양해를 구한 초무강은 즉시 비선당주 문강유를 소환했다.
“찾으셨습니까?”
“중경에 들어온 사천맹의 세작은 파악하고 있나?”
“물론입니다.”
“오늘부터 그들이 띄우는 전서구는 전부 차단한다.”
“예.”
즉시 예를 갖춘 문강유가 밖으로 나갔다.
“소형제는 개방의 삼결제자라고?”
“예.”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네. 먼저 갈 테니 푹 쉬다 오시게.”
동초개의 눈이 동그래졌다.
“가다니요?”
초무강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도로 갈 것이네. 지금.”
***
겨울의 찬 바람에도 훈훈한 온기가 감도는 실내.
화로의 불빛이 은은히 퍼지는 가운데 마주 앉은 중년인과 백발의 노인이 찻잔을 들었다.
“마도림의 소공자라는 아이가 성도에 지부를 세웠다고 합니다.”
말을 꺼낸 부드러운 인상의 중년인은 사천맹의 비각주이자 무림에선 천독비사(天毒飛士)라는 무명으로 유명한 당문경이었고.
“혈천수라를 잡았다는 뜬소문이 있는 아이라지.”
마주 앉은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은 사천맹의 수장이자 청성 제일의 고수 파천검(破天劍) 한천월이었다.
당문경이 말했다.
“뜬소문이 아닙니다.”
한천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정말 혈천수라를 잡았다는 말인가?”
“물론 그 아이 혼자 해낸 일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제법 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그럼 소문은?”
한천월은 말없이 웃는 당문경의 모습에서 전말을 짐작했다.
“허허. 자네도 참.”
“굳이 마도림의 위상을 높여줄 필요는 없지요.”
“그건 그렇군.”
뜻이 통한 두 사람은 빙그레 웃었다.
청성 제일의 무공을 갖고도 장문인의 후계에서 밀려난 한천월,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방계라는 이유로 당가의 중심에 들어갈 수 없었던 당문경.
비슷한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여기서 만난 것은 서로에게 행운이었다.
이곳 사천맹에서라면 사문에서 얻지 못한 것과 갖지 못한 것들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마도림이라.”
나직이 중얼거린 한천월은 옷에 가려진 등의 상처가 쑤셔오는 것을 느꼈다.
무림에 출도해 파천검이라는 무명을 얻을 때까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그였으나 실상은 달랐다.
사십 년 전, 무서울 것 없이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첫 패배를 안긴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마도림의 태상림주 초평천이었다.
무인에게 등의 상처란 치욕 그 자체.
그날을 떠올린 한천월은 옅은 미소 속에 살심을 감췄다.
‘뒷방 늙은이가 되었다고 하더니 제법 재밌는 아이를 데리고 있었구려.’
당문경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철검대의 아이 두 명이 최근 바쁘게 움직이더군요. 중소방파들이 마도림에 의지하려는 모양입니다.”
“혹시 혈교의 정보가 새어나간 겐가?”
당문경이 빙그레 웃자 속뜻을 파악한 한천월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가 흘렸구먼. 성격 나쁜 인사 같으니라구.”
“전쟁은 혈교의 승리로 귀결될 것입니다. 서장 평정이 끝나면 그들은 결코 그 황량한 땅에 만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분명 사천으로 오겠지.”
“예. 혈교의 전력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다가올 전쟁에서 우리의 피해도 줄일 겸 다시 일어나려 하는 마도림의 날개를 꺾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천제일세 마도림.
삼십 년 전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모를 리 없는 이름이다.
수백 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사대거파가 마도림의 위세에 눌려 지낸 세월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마도림이 가담하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난 뒤 자칫 사천의 패권이 다시 그들에게 넘어갈 수도 있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더불어 중소방파의 전력까지 소모시킨다면 사대거파의 패권은 더욱 공고해질 겁니다. 반드시 이번 전쟁에 마도림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작게 끄덕인 한천월이 물었다.
“만일 전쟁이 기우에 그친다면 어떤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평화로운 상태에서 중소방파가 마도림을 중심으로 목소리를 키운다면 굳건한 사대거파의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
사문보다 사천맹에 더 애착을 가진 두 사람이었지만 맹의 기반이 사대거파인 만큼 그건 곤란한 일이다.
“패를 쥔 쪽도, 움직일 수 있는 쪽도 우리입니다. 그때는······.”
빙그레 웃은 당문경은 나직이 목소리를 깔았다.
“전쟁을 일으키면 되는 일이지요. 사천의 주변에는 얼마든지 싸울 대상이 있지 않습니까?”
“자네는 정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한천월이 실소를 흘렸다.
“만일 마도림이 입맹 제안을 거절한다면 어찌하겠는가?”
“두 아이는 이미 거절당하고 돌아온 모양입니다.”
“그런가?”
당문경은 빙그레 웃었다.
“이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으니 몸값을 올리려는 모양입니다. 정식으로 사람을 보내 조건을 들어보시지요.”
한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적당한 사람을 보내 뜻을 전하도록 하세.”
***
진무립 일행은 공사 중인 지부로 이주했다.
완성된 두 채의 전각 중 한 채는 진무립 일행이 머물 곳이었고 다른 한 채는 개방의 차지였다.
새집에 점점 적응하기 시작한 진무립 등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던 날, 굳게 닫힌 정문 앞에 점잖은 외모의 두 노인이 찾아왔다.
“이곳이 마도림의 지부인가 보오.”
점창파의 도관을 갖춘 노도사, 점창신검(點蒼神劍) 하종보가 현판을 올려보며 말했다.
그와 함께 온 청성파의 도사는 사천에서 탈혼일섬(脫魂一閃)이라 불리는 강유월이었다.
강유월은 주변을 둘러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담장이 맹의 담장보다 높구려.”
일 장 높이로 치솟은 담장은 마치 절벽을 연상케 했다.
“마도림이라, 참으로 오랜만에 인연이 닿는군.”
잠시 옛 생각을 떠올린 하종보는 빙그레 웃었다.
강유월이 허연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사형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오기는 왔다만 솔직히 빈도는 이게 바람직한 일인지 잘 모르겠구려. 염치도 없이 이제 와서 이들을 다시 찾는다는 게······.”
당초 마도림이 원해도 받아줄 생각이 없던 사천맹이다.
그랬던 이들이 서장 무림의 동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마도림을 받으려 한다는 것은 왠지 속물처럼 느껴졌다.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이야기는 해 봅시다.”
쓴웃음을 삼킨 하종보가 정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