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50
◈ 50화. 점 안 봅니다
곧이어 문이 살짝 열리더니 용추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요?”
범상치 않은 용모에 잠시 놀란 하종보는 내심을 다스리고 말했다.
“빈도는 점창파의······.”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본 용추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도사요?”
둘의 옷차림은 거리에 좌판을 깔고 앉은 도사들과 비슷한 복식이었다.
하종보는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그렇네.”
“점 안 봅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정문이 도로 닫혔다.
한동안 멍하니 문 앞에 서 있던 노도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쳐다봤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들은 것이오?”
“허허허.”
강유월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차라리 잘 됐다.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느니 이대로 돌아가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인연이 아닌 듯하니 그만 돌아가십시다.”
그의 의도를 눈치챈 하종보는 빙그레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렇구려. 돌아갑시다.”
***
두 노도사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왔다는 소문이 맹 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소식을 접한 철검대의 조장들이 숙소 뒤편 연무장에 모였다.
“정무원의 노사님들이 만나 보지도 못하고 돌아오셨다는군.”
“정말 마도림은 입맹의 의지가 없는 건가?”
“조원들의 의사는 모두 확인했네. 이제 대주만 돌아오면 되는데······.”
대원들의 의사를 취합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길어진 것은 대주 육군명이 단독 임무로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대주가 돌아오면 함께 논의하려던 이들은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어제저녁 대원들의 의견 합일을 이끌어낸 참이었다.
그런데 정무원의 노사들이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고 하니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환의 눈앞에 진무립의 당당한 얼굴이 떠올랐다.
‘이대로 전쟁이 벌어지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우리에겐 마도림이 필요해.’
그때 연무장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다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모두의 시선이 돌아간 곳엔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진 청년이 서 있었다.
“대주!”
“복귀하신 겁니까?”
철검대주 육군명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힘들게 일하고 왔더니 마중 나오는 놈이 하나 없네.”
이환이 반갑게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모인 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주께서 돌아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면서 청우에게 전부 들었어. 마도림을 끌어들이고 힘을 실어주자고?”
그때 입구의 기둥 너머에서 송충이 눈썹을 한 청년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시기에······.”
조장들이 멋쩍은 얼굴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는 사이 곁으로 다가온 육군명이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못난 대주 탓에 니들이 고생이 많어.”
육군명의 무공은 사천맹 후기지수 중에서도 최강을 다툴 정도로 고강하다.
지금까지 철검대가 숱한 위기를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육군평이란 인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인전승의 무공을 익힌 육군명에겐 사문이란 배경이 없었다.
신평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앞에 앉았다.
“누가 대주를 못났다고 했습니까?”
“알아. 인마. 그냥 해본 소리야.”
“우린 모두 뜻을 모았습니다. 대주의 의견만 남았습니다.”
“전쟁이 나면 우리만으로 버티는 게 어렵다는 건 나도 인정해. 나야 누가 와도 살아남겠지만 니들은 너무 약하거든.”
신평이 다그치듯 말했다.
“시간 없습니다. 요점만 말하십쇼. 요점.”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하던 육군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어떤 녀석인지 만나 보고 결정하자.”
이환이 말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개방 분타 있던 자리라며? 혼자 다녀오지 뭐.”
손을 휘저은 육군명은 홀로 터덜터덜 연무장을 나섰다.
***
마도림의 지부.
지하 연무장에서 단려화를 상대로 경화사검을 수련하던 진무립은 갑작스러운 손님의 방문에 위로 올라왔다.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전각의 대전, 진무립의 뒤로 단려화가 시립한 가운데 용추가 손님을 데려왔다.
‘이자는······.’
면사 속 단려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성큼성큼 다가온 육군명은 거창한 포권 대신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내가 철검대주 육군명이야.”
“진무립이다.”
손을 잡는 순간.
‘이 녀석, 뭔가 있다.’
진무립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감돌 때 육군명이 탄성을 흘렸다.
“크으! 기가 막히게 잘생겼네. 맹에 들어오면 여인네들이 껌뻑 죽겠어.”
재밌는 녀석이란 생각에 진무립은 실소를 머금었다.
“앉아라.”
육군명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물었다.
“사천맹의 제안을 거절했다며?”
금시초문이었던 진무립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정무원(正武院)의 노인네들을 문전박대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정무원은 각파의 노고수들이 모인 곳.
그들을 보낼 정도라면 사천맹의 입장에선 최대한의 예우를 갖춘 셈이다.
그런 제안을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했으니 소문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
진무립의 시선이 용추에게 닿았다.
“누가 왔었냐?”
“안 왔습니다.”
“잘 생각해봐라.”
최근 정문을 지킨 것은 주로 용추였다.
동초개가 진무립의 심부름으로 중경에 간 까닭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용추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엊그제 늙은 도사 두 명이 문을 두드리긴 했습니다.”
“도사? 어떻게 했지?”
“점 볼 생각이 없어서 돌려보냈는데요?”
“······.”
진무립도, 육군명도.
장내에 자리한 모두가 입을 열지 못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놈이다.
진무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서 오늘부터 정문은 개방에게 지키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용추가 나가자 육군명이 감탄하듯 말했다.
“정말 굉장한 녀석이네.”
“보다시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군.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는?”
“들었다면 알고 있겠지? 서장에서 전쟁이 있을 모양이야.”
“그래.”
“그 전쟁이 끝나면 승자의 칼끝은 이곳 사천으로 향할 게 분명해. 네가 그들에게서 중소방파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
“질문이 잘못됐군.”
“응?”
“그들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걷지 못할 어린아이가 아니다. 지켜줄 수 있냐고 물을 게 아니라 피하지 않고 함께 싸울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진무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육군명은 이내 씩 웃었다.
“그렇군. 네 말이 맞아. 그들은 사대거파로 인해 전쟁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지. 함께 싸워줄 수 있겠어?”
“대답에 앞서 한 가지 묻지. 밑바닥에서 가까스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마도림이다. 전쟁의 결과가 좋지 않게 끝난다면 우린 또다시 많은 것을 잃어야겠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그대들과 함께 싸운다면 우리 마도림은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진무립의 말처럼 마도림이 전쟁에 참전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각오해야 가능한 일이다.
육군명이 물었다.
“무엇을 바라지?”
“중소방파들의 절대적인 지지. 무엇을 하든 의심하지 말 것이며 조건 없이 지지해라. 이게 내가 바라는 바다.”
육군명의 입장에선 그다지 까다로운 조건이 아니다.
이미 철검대원들이 같은 내용을 합의했기 때문이다.
마도림을 구심점으로 삼고자 한다면 확실하게 밀어줘야 한다는 게 그들의 약속이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육군명의 답변은 만족스러웠지만 확인해야 할 게 하나 더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환과 신평 같은 사문의 후계자라면 모를까 그게 아닌 후기지수들에게도 그럴 권한이 있을까?”
“물론 철검대원 중 사문에서 특별한 직위가 없는 이들도 있는 게 사실이야. 하지만 그들 모두가 사문의 기대를 받고 이곳에 온 만큼 나름의 영향력은 갖고 있지.”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단번에 모든 중소방파의 마음을 얻으리란 기대는 없었다.
다만 이토록 확실히 지지해줄 이가 서너 명만 있다면 나머진 안에 들어가서 결과로 보여주면 될 일이다.
“좋다. 그럼 지금부터 사천맹에 내 요구를 전해라.”
“요구?”
“우린 마도림이다. 남들처럼 굽신거리고 들어갈 순 없지.”
진무립은 미리 준비한 사람처럼 품에서 밀봉된 서신을 꺼냈다.
“돌아가서 맹주에게 전해라.”
“좋아. 조만간 다시 찾아올게.”
자리에서 일어난 육군명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밖으로 나갔다.
진무립과 단둘이 남게 되자 단려화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방금 그 사내 말이에요.”
진무립이 쳐다보자 잠시 망설이던 단려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상천의 무인은 아니겠죠?”
“뭐라고?”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건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건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육군명을 다시 떠올린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왠지 당신들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져요.”
단려화의 예리한 감각은 내력을 이용한 기감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진무립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생각보다 재밌는 놈이었군.’
***
“문전박대라. 후후후.”
나직한 웃음소리가 짙게 깔리는 곳은 비각주 당문경의 집무실이다.
정말 모처럼 예상이 빗나갔다.
“과연 소문대로 평범한 인물은 아니야.”
대검문을 무너뜨린 심계, 혈천수라를 척살하고 묵혈방을 지워버린 만큼 능력은 인정하고 있었다.
실망스럽기는커녕 도리어 이 상황이 기껍기까지 하다.
‘밟아주는 맛이 있겠어.’
그때 밖에서 부하가 문을 두드렸다.
“각주님. 맹주께서 찾으십니다.”
“알겠네.”
한천월의 집무실에 들어선 당문경은 정중히 예를 갖췄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어서 오게. 그리 앉게나.”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한천월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네의 예상이 빗나갈 때도 있구만.”
당문경은 도리어 기쁜 듯 웃었다.
“제가 그 아이를 조금 쉽게 본 모양입니다.”
문전박대가 용추의 본의 아닌 행동이라는 걸 알 턱이 없는 당문경이었다.
한천월은 탁자에 서신을 올려두었다.
“철검대주가 그 아이의 서신을 가져왔네. 삼고초려를 바라더군.”
당문경은 진무립이 보낸 서신을 확인했다.
상단엔 몇 가지 요구조건이 적혀 있었고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다.
「마도림의 입맹을 바란다면 내달 초하루, 맹주께서 초대장을 들고 지부로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서신을 두 번이나 꼼꼼히 읽은 당문경이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한천월이 혀를 차며 말했다.
“참으로 맹랑한 아이일세. 우리가 마도림을 필요로 한다는 걸 확실히 알고 있어.”
철검대를 통해 서장 무림의 동태를 들었다면 이쪽의 속내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좋군요.”
“무엇이 좋단 말인가?”
당문경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필체나 내용에서 자신감이 엿보입니다. 자신이 잘난 걸 아는 아이란 말이지요. 밑에 두고 부릴 거라면 눈치가 영 없는 것보다는 이런 아이가 더 낫습니다. 맹주님.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원하는 대로 해주시지요.”
“아쉬운 것은 이쪽이란 말인가?”
당문경은 묘한 미소를 보였다.
“지금이야 그렇습니다만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쪽은 그들이 되겠지요.”
한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경까지 오라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돈 어렵지 않지. 좋네. 내 직접 가지.”
마도림의 림주가 움직였다는 보고는 없다.
수장이 있다면 모를까 일개 후기지수가 정무원의 노고수를 문전박대하고 맹주더러 오라고 한다.
이참에 자신이 직접 찾아가 마도림의 소공자를 버릇없는 놈으로 만들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약속한 날의 아침.
사천맹의 거대한 정문이 열리며 화려한 팔두마차가 나타났다.
‘오는구나.’
사천맹을 지켜보던 단려화는 즉시 지부로 향했다.
신법을 극성으로 운용한 그녀는 지름길을 이용해 순식간에 지부에 도착했다.
지부의 마당에는 진무립과 용추를 비롯해 개방의 식구들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맹주의 팔두마차가 정문을 나섰어요. 따르는 호위는 스물. 이각 안에 도착할 거예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대하가 헐레벌떡 정문으로 뛰어들었다.
“이쪽도 준비가 끝났습니다. 언제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좋아.”
손뼉을 친 진무립에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마도림이 사천 무림의 중심에 복귀하는 날이다. 오늘 같은 날에는 그럴듯한 연출이 필요한 법이지.”
진무립이 모두를 돌아보며 눈을 빛냈다.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