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52
◈ 52화. 범의 새끼
마도림의 지부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리 좁은 곳이 아니었음에도 미쳐 들어오지 못 한 이들은 문밖 거리에 자리를 깔고 앉을 정도였다.
담장 위에 올라서서 거지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적모개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 많은 인원을 모아놓고 사천맹주를 들러리로 만들다니.’
한 가지 걱정스러운 점도 있었다.
‘사람들은 아직 당문경에 대해 잘 모르고 있지만 그는 매우 냉혹하고 교활한 인물이다. 당한 것은 절대 잊지 않는 인물이지. 이렇게 대놓고 척을 져도 괜찮은 걸까?’
그때 담장 밑에서 이결제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타주님! 손이 모자랍니다. 놀지만 말고 와서 좀 거들어요!”
적모개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거지를 새것처럼 빨아서 음식을 나르게 하는 진무립도 보통 인간은 아니었다.
밖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달리 지부 안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초평천의 아들이라.’
초무강과 마주 앉은 한천월은 미소 띤 얼굴로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등의 상처가 아리다.
그는 목을 타고 넘어가는 찻물과 함께 과거의 치욕을 억지로 밀어 넘겼다.
“태상께서는 아직 정정하신지 모르겠구려.”
부친에게 한천월과의 악연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굳이 내색할 필요는 없다.
초무강은 차분히 말했다.
“전과 다름이 없으십니다.”
초무강의 곁에 앉아있던 진무립이 물었다.
“맹주께서 이 자리에 오셨다는 것은 서신으로 보낸 조건을 모두 수락한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대답은 당문경의 입에서 나왔다.
“거절한다면 어찌하겠는가?”
진무립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럼 입맹은 없던 일이 되겠지요.”
“자네는 이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당당히 마도림의 부활을 선포했네. 그래놓고 여기서 입맹이 틀어진다면 망신스럽지 않겠는가?”
다소 감정이 상할 수 있는 자극적인 질문이지만 당문경은 상관없다고 봤다.
당문경은 마도림이 중소방파를 등에 업고 과거의 위상을 되찾으려 한다는 걸 안다.
진무립은 사천맹이 혈교와의 싸움에서 마도림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을 안다.
양측이 서로의 속내를 확신하고 이뤄진 입맹.
그의 대담한 질문은 굳이 머릿속에 담긴 것을 꽁꽁 숨겨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진무립도 마찬가지.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쓴 진무립은 도리어 한술 더 떴다.
“그게 아니지요. 각주. 망신 한 번 당했다고 갚아줄 생각부터 할 게 아니라, 마도림을 이용해 사대거파의 피해를 줄이고 전쟁을 끝낼 방법부터 궁리해야 합니다. 그게 맹주님의 지낭이 해야 할 일이란 말입니다.”
진무립의 타박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던 당문경이 뒤늦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역시 자네는 재밌는 인재야.”
한참을 웃던 당문경이 한천월에게 말했다.
“맹주님. 아무래도 오늘은 제가 진 것 같습니다.”
진무립을 너무 가볍게 봤다.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여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범의 새끼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한천월은 속내를 감추고 빙그레 웃었다.
“이제 같은 편이 될 사이인데 지고 이기고가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오기 전에 결정을 내린 사안이니 슬슬 협상을 마무리하지.”
“알겠습니다.”
당문경은 초무강에게 말했다.
“마도림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맹에 새로이 운룡각(雲龍閣)을 신설하고 초대 각주에 우가산 대협을 임명하지요. 철검대와 마도림의 흑영대를 운룡각에 배속할 것이며 내부 인사권은 각주에게 일임하겠습니다.”
모두 진무립이 요구한 조건이었다.
아직 후기지수에 속하는 연배인 진무립이 각주 자리를 요구할 수는 없다.
꼬장꼬장한 우가산이라면 사천맹의 연로한 무인들 사이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주장을 내세울 수 있을 터.
인사권까지 확보한 이상 후방은 우가산에게 맡기고 진무립은 일선에서 움직일 생각이었다.
당문경의 말에 초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한천월이 말했다.
“림주.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되겠소이까? 물론 거절해도 상관은 없소이다.”
“말씀하십시오.”
“금호대를 운룡각에 맡기고 싶군. 그간 마도림이 사천의 중심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었던 만큼 이 기회에 맹의 후기지수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오.”
사대거파의 후기지수들로 구성된 금호대.
맹주가 그들을 이용해 운룡각 내부의 사정을 파악하고자 한다는 걸 초무강이 모를 리 없었다.
어차피 사천맹 내에서 저들의 눈을 속이고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정보가 새어나갈 구멍을 눈앞에 두고 관리하는 게 낫다.
그리고 진무립이라면 그 구멍에 검을 찔러넣어 저들의 허점을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초무강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다만 인사권은 운룡각주에게 있는 만큼 부대의 재배치가 있더라도 관여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한천월은 빙그레 웃었다.
“물론이오.”
협상은 초무강과 한천월이 문서에 직인을 찍으며 마무리됐다.
떠나는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초무강이 진무립에게 물었다.
“서장 무림의 혼란 덕분에 일이 한결 수월해졌구나.”
“혈교가 도움이 될 때도 있군요.”
운룡각을 신설해 독자적인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은 실로 엄청난 수확이었다.
“그건 그렇고 당문경은 지모가 뛰어난 인물이라고 들었다. 굳이 저들을 자극할 필요가 있었느냐?”
“서로의 속내를 다 아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쪽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려줘야 어설픈 함정을 파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진무립의 미소가 짙어졌다.
“상대가 쉽지 않으면 생각이 깊어지는 법이지요. 실수는 반드시 거기에서 나올 겁니다.”
사천맹으로 복귀하는 마차 안.
한천월의 입가에서 시종일관 유지하던 미소가 사라졌다.
“살다 보니 이런 모욕도 받아보는군.”
사천맹주가 된 순간부터 언제 어디서나 만인의 선망 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던 자신이다.
그런 자신이 수많은 군중 앞에서 치욕을 당했다.
그것도 필생의 적으로 여겨온 초평천의 아들 앞에서.
다시금 떠올리니 속이 쓰린 것을 넘어 살기까지 치밀 정도였다.
당문경이 차분히 말했다.
“쓴맛이 강하면 강할수록 훗날 느낄 단맛은 더욱 짙어지는 법이지요.”
오늘 일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비각을 운용하면서 초무강이 중경을 벗어난 것을 파악하지 못했고 성도에 들어온 사실조차 몰랐다.
당문경은 미소 속에 분노를 감췄다.
“오늘 일은 반드시 배로 갚아 보이겠습니다.”
한천월의 두 눈이 살심으로 번들거렸다.
“반드시 그래야 할 걸세.”
* * *
지부를 가득 채웠던 사람들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갔다.
녹초가 된 거지들이 사방에 널브러지는 가운데 주요 인원들이 전각의 이 층에 모였다.
“분타주. 오늘 정말 고생이 많으셨소. 덕분에 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구려.”
초무강의 인사에 적모개는 멋쩍게 웃었다.
“밥값은 해야지요.”
한쪽에 앉아있던 관초걸이 적모개에게 포권을 취했다.
“새롭게 지부장으로 임명된 관초걸이오. 앞으로 많이 도와주시오.”
관초걸은 진무립의 강력한 요청으로 중경관주의 자리에서 성도 지부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비록 한 단계 직위가 낮아졌지만 자신이 인정하는 진무립의 요청이다 보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적모개는 어색하게 예를 갖췄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개방의 분타주인 자신이 마도림의 수뇌들과 한자리에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졸지에 사천맹의 각주가 된 우가산이 진무립에게 물었다.
“소공자. 왜 하필 나요? 내림원주도 있는데.”
“이 동네 애들도 겪어봐야지.”
“무엇을 말이오?”
“마도림의 무인들이 얼마나 꼬장꼬장한 영감 밑에서 시달리며 살아왔는지 말이야.”
“…….”
생각지도 못한 농담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이 지난 뒤에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초무강의 시선이 단려화에게 닿았다.
“면사 속 모습이 어떤가 했더니 참으로 고운 소저였군.”
단려화가 얼굴을 붉혔다.
“과찬이십니다.”
초무강은 진무립에게 넌지시 물었다.
“혼례는 언제 올릴 것이냐?”
“…….”
* * *
사흘 뒤 아침.
림주의 귀환을 앞두고 지부의 마당에 무인들이 집결했다.
초무강이 진무립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네 일이니 안심하고 돌아가겠지만 늘 몸조심해야 한다. 우리에게 이곳은 적진이라는 것을 잊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로 진무립의 어깨를 두드린 초무강이 우가산을 바라보았다.
“원주.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도 좋소.”
우가산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농담이 점점 소공자를 닮아가십니다.”
초무강은 빙그레 웃었다.
“무립이 나를 닮은 것이라 해야겠지. 그럼 이만 가겠소이다. 나오지 마시오.”
모두의 예를 받으며 지부를 나서던 초무강이 화려한 팔두마차에 올랐다.
“네 덕분에 이런 마차도 타보고 호강하는구나. 으하하하!”
초무강의 마차가 호방한 웃음소리를 남기고 멀어져 갔다.
배웅을 마치고 돌아온 진무립은 사천맹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방에서 봇짐을 꾸리는데 슬며시 문이 열리며 단려화가 들어왔다.
“나도 가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본 진무립이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따라올 준비는 제대로 마친 모양인데?”
이미 짐을 챙겨 온 단려화가 배시시 웃었다.
“맞아요. 무림의 평화를 지켜야 하니까.”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가자. 단호위.”
“사람들 앞에선 유화라고 부르라구요.”
“여긴 아무도 없…….”
말을 멈춘 진무립의 시선이 천장에 닿는 순간, 자세를 낮춘 단려화의 손이 검집에 닿았다.
‘내가 일 장 안까지 허용했어?’
자신의 감각을 속이고 접근할 수 있는 이는 무림에 그다지 많지 않았다.
놀란 그녀의 눈이 부릅떠질 때 진무립의 입이 열렸다.
“이 여인은 다 알고 있으니까 내려와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공에서 시꺼먼 인영이 뚝 하고 떨어졌다.
“천주님을 뵙습니다.”
진무립의 명을 받고 떠났던 은무대주 서진환이었다.
단려화를 슬쩍 살피는 서진환의 눈에 의구심이 번졌다.
‘그 거리에서 음혼귀영공을 간파당했다고? 대체 이 여인은 누구지?’
그도 그녀 못지않게 당혹스러운 상태였다.
진무립이 단려화에게 말했다.
“여긴 내 호위 서진환이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테니까 인사해.”
단려화는 복잡한 내심을 숨기며 말했다.
“단려화에요.”
“단려화? 설마 천중일화라고 불리는…….”
진무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신룡의 딸이다.”
서진환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신룡의 딸이 어째서 천주님의 곁에 있는 것인지 여쭙습니다.”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야.”
짓궂은 농담에 단려화가 빽 하고 소리쳤다.
“아니거든요!”
진무립이 능글맞게 웃는 사이 서진환은 그녀에게 포권을 취했다.
“은무대주…… 서진환입니다.”
인사를 마친 서진환은 품에서 작은 책자를 꺼냈다.
“명하신 부분의 조사를 마쳤습니다.”
그가 내민 것은 사천 무림의 동향과 무인들의 치부가 적힌 책자였다.
“수고했다.”
책을 받아드는 진무립의 귀에 서진환의 전음이 들어왔다.
[말씀하신 것은 아니오나 조사 도중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 맨 뒷장에 적어두었습니다.] [알았다.]작게 끄덕인 진무립이 물었다.
“다른 아이들은?”
“천주님께서 사천맹에 들어가신다는 말을 듣고 북문 안에 안가를 마련해뒀습니다. 허락하신다면 교대로 호위에 나설 것입니다.”
호위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들이라면 사천맹의 담장을 들키지 않고 넘나들 수 있을 것이다.
“한 명이면 충분하다.”
“수하들에게 명을 전하겠습니다.”
절도 있게 포권을 취한 서진환이 꺼지듯 사라졌다.
단려화는 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조심스럽게 물었다.
“간 거 맞죠?”
“많이 놀란 모양인데?”
“당연하죠. 스승님의 소완공조차 내 눈을 속이지는 못한단 말이에요. 대체 뭘 익힌 거죠?”
“음혼귀영공.”
단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생각이 나질 않았다.
빙그레 웃은 진무립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대와 적으로 만날 일은 없을 테니 신경 쓸 것 없어. 그만 나가자.”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을 우가산을 비롯한 무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준비됐나?”
“예!”
우렁찬 외침이 하늘로 솟구쳤다.
씩 웃은 진무립이 도열한 그들 사이로 발을 내디뎠다.
“그럼 적진으로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