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54
◈ 54화. 제발 나대지 마세요
진무립이 물었다.
“왜지?”
“금정무문을 떠나기 전에 제게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아니.”
당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그럴 수가…….”
진무립은 짓궂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어른이 될 준비는 끝났나?”
그제야 진무립의 농담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당우는 안도한 얼굴로 말했다.
“평창현에서 돌아온 뒤로 어떻게 해야 소공자께서 말씀하신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봤습니다. 어떻게든 달라지고 싶어서 금호대에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그곳에선 제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처럼 두들겨 맞고 싶어서 날 찾아온 거냐?”
당우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예전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그게 더 낫습니다.”
“좋다. 하지만 혼자 얻어터지는 건 좀 외롭겠지.”
“예?”
당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진무립은 활짝 웃었다.
“각주의 집무실에 육군명이 있을 거다. 그를 찾아가서 너와 함께 얻어터질 스물네 명을 선발해라.”
영문 모를 얼굴로 쳐다보던 당우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보면 알겠지.’
* * *
사천맹의 모든 건물 지하에는 여러 개의 연무장이 숨겨져 있었다.
다양한 방파에서 모인 만큼 남의 시선을 피해 수련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금호대의 숙소 역시 마찬가지.
사방으로 각기 삼 장 너비의 작은 연무장에 땀에 흠뻑 젖은 두 남녀가 서 있다.
냉막한 표정을 한 사내의 두 손에는 한 뼘 남짓한 은침이 가득 들려 있었고.
인상이 부드러운 여인, 아미파의 속가제자 진설란의 손에선 날카로운 검이 섬뜩한 예기를 발하고 있었다.
“마도림의 사람들이 도착했다고 해요. 가보지 않아도 되겠어요? 일단은 상관이잖아요?”
“관심 없다.”
그의 말에 진설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은 대주가 되지 말았어야 했어요.’
당가의 소가주이면서도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엄격한 사내.
그는 사천 제일의 후기지수이자 천하가 주목하는 신기팔신무(伸技八新武)의 일인, 백파비도(百波飛刀) 당천이었다.
소매로 땀을 훔친 당천이 물었다.
“지쳤나?”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를 보니 조금 더 하자는 말이다.
그의 무정함에 지친 진설란은 그만 몸을 돌렸다.
“지칠 것 같군요. 그만 올라가 보겠어요.”
그녀가 나가자 홀로 남은 당천은 아쉬움을 삼키며 가부좌를 틀었다.
‘벽이 손에 닿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하면 넘어갈 수 있다.’
그의 주변을 맴도는 은은한 기운이 점차 강렬해지며 비무의 열기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연무장에서 올라온 그녀는 대원들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감지하곤 한숨을 집어삼켰다.
‘상관이 부임했는데 대주와 부대주가 이 모양이니…….’
각주가 온 것을 뒤늦게 알았다곤 하나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벽을 앞둔 대주를 상대해주느라 부대관리에 소홀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녀는 즉시 숙소 뒤편의 연무장으로 조장들을 소집했다.
“일조장은 어디에 있죠?”
모두 아홉 명이 모인 가운데 당중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구에서 당중호가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모두가 모이자 진설란이 말했다.
“소식을 늦게 접해 미안해요. 늦게라도 모였으니 새로 부임하신 각주께 인사를 드리러 갈 생각입니다.”
육조장 위창이 탐탁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부대주. 굳이 인사를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당중호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걸리는 가운데 사조장 인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부르지도 않는데 굳이 갈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진설란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녀는 어째서 자신이 소식을 늦게 접했는지, 어째서 이들이 각주에게 인사를 가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당중호.’
둘은 누구보다 당중호와 친한 조장들.
그의 입김이 닿았음을 모를 리 없는 진설란이다.
“가지 않겠다면 나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그녀가 냉랭하게 돌아서자 조장 중 절반이 뒤를 따라나섰다.
당중호의 곁을 스쳐 지나가던 날카로운 인상의 미인, 당소소가 불쾌한 어투로 한마디 툭 던졌다.
“적당히 해.”
두 사람은 사촌지간이었으나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당중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미련하긴.”
조장들을 이끌고 중앙의 전각에 도착한 그녀는 문을 틀어막고 앉은 진무립과 마주쳤다.
‘이자가 광룡(狂龍).’
워낙 유명한 인물이니 모를 수가 없다.
멈춰선 그녀와 조장들의 시선에 진무립이 물었다.
“뭘 봐?”
진설란은 불쾌한 내심을 감췄다.
“각주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작정하고 무시하려는 거 아니었나?”
“소식을 늦게 접했을 뿐입니다. 각주님을 직접 뵙고 용서를 구할 생각입니다.”
“바빠. 내일 구해.”
뒤에 서서 지켜보던 당소소가 앞으로 나섰다.
“무례하군요. 이분은 금호대의 부대주입니다.”
“너 이름이 뭐지?”
“당소소에요.”
품에서 손바닥만 한 목판을 꺼낸 진무립은 거기에 그녀의 이름을 새겼다.
“일단 당소소…… 추가.”
진무립이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당소소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뭘 하는 거죠?”
“내일이면 알게 될 거다.”
목판을 품에 넣은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식을 빨리 접하든, 늦게 접하든 너희들이 저지른 무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각주께서 내일 부르실 테니 돌아가서 얌전히 기다려라.”
축객령을 내리고 들어간 진무립이 전각 문을 쿵 닫았다.
멍하니 서 있던 진설란과 조장들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숙소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아침.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운룡각 대연무장에 흑영대와 철검대에서 차출된 쉰 명의 무인이 집결했다.
모두 지월인과 육군명이 신경 써서 선발한 이들이었다.
동료들과 떨어지게 되어 아쉬움도 있었지만 기대감도 컸다.
흑영대야 전부터 진무립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고 철검대도 이환과 신평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단상 위에서 그들의 면면을 살피던 우가산이 말했다.
“눈빛들이 좋군. 오늘부터 그대들은 광무대(狂武隊)의 일원이 되어 진무립 대주의 명령을 받게 될 것일세.”
진무립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전음을 보냈다.
[광무대? 이게 무슨 소리지?]사전에 논의했던 부대 이름은 단혼대(斷魂隊)였다.
신경 써서 만든 이름을 놔두고 미칠 광을 붙였으니 황당한 것이다.
우가산은 진무립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고 말했다.
“대주가 광룡(狂龍)으로 불리고 있으니 그에 걸맞은 이름으로 정했네.”
처음 듣는 소리에 진무립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광룡이라고?’
무림에선 무면산왕이라는 괴상한 별호로 불리는 것도 모자라 사천에선 미친 용이 되었다.
진무립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허, 허허허.”
광무대의 일원이 된 이환이 진무립의 속도 모르고 빙그레 웃었다.
“무(武)에 미친 부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련의 정리가 끝난 순간, 연무장 입구로 운룡각의 모든 무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제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금호대까지 우르르 들어와 한쪽에 도열하자 장내는 제법 묵직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당천이 내키지 않는 걸음을 내디뎠다.
“금호대주 당천이오.”
상관과의 첫 대면에서 올리는 인사치곤 너무 짧고 간결하다.
아니나 다를까 우가산을 존경하는 흑영대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마도림 외림원 소속으로 존경하는 상관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난 것이다.
그들의 날카로운 눈빛에 진설란이 미간을 좁혔다.
악의가 있는 게 아니라 원래 이런 인물이었지만 그것도 사대거파의 선배들이나 봐주는 것이지 모르는 이가 보기엔 오해를 사기 딱 좋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가산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앞으로 그대들과 함께하게 될 우가산이다. 나는 맹주님께 운룡각의 인사권을 위임받은바, 지금부터 부대 개편을 발표하겠다. 당소소.”
“예.”
당소소가 불안한 눈빛으로 한 걸음 나섰다.
“오늘부로 금호대에서 광무대로 소속을 변경한다.”
운룡각이 세워지며 각주에게 인사권을 맡겼다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빠르게 이뤄질 줄은 누구도 몰랐다.
“잠깐…….”
적잖이 당황한 그녀가 곧장 항변하려 했으나 우가산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불만이 있거든 내게 인사권을 부여한 중목원에 따져라.”
맹주에게 따지라는 말에 무슨 반박을 하겠는가?
당소소의 떨리는 눈동자가 싱긋 웃는 진무립에게 닿았다.
‘그런 의미였어?’
어제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뭘 적나 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그녀가 당황한 내심을 달래기도 전에 우가산의 발표가 이어졌다.
“지금부터 호명된 이는 진무립 대주의 뒤로 자리를 옮겨라. 금유진, 정연후, 조영성…….”
순식간에 스물이 넘는 이름이 호명되자 그들은 당천의 눈치만 보며 어쩔 바를 몰랐다.
당중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소소를 제외하면 거의 다 덜떨어진 놈들만 데려가는군.’
그의 기준에선 호명된 이름 중 쓸만한 놈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찾아온 마지막.
“당우.”
“예.”
누구보다 조마조마하게 우가산의 입만 쳐다보던 당우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기쁜 내심을 감추며 자리를 옮겼다.
당우가 자리를 옮기고 당천도 별말이 없자 호명된 이들은 마지못해 자리를 옮겨갔다.
좀처럼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실 줄 모르자 우가산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모두 입을 다물라.”
웅혼한 내력이 섞인 목소리가 무겁게 퍼져 나가자 술렁이던 무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가산의 눈매가 사납게 올라갔다.
“무례를 봐주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다. 네놈들의 출신이 어디인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이곳은 운룡각. 중소방파의 제자도, 사대거파의 제자도 내게는 똑같은 부하일 뿐이다. 내일부터 뒷배를 믿고 설치는 놈들은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 처신을 바르게 하라. 해산.”
그 말을 끝으로 우가산이 사라지자 흑영대가 그 뒤를 따랐다.
씩 웃은 육군명이 진무립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잘 해봐. 광무대주.”
철검대마저 떠나자 연무장에 남은 이들은 새롭게 창설된 광무대와 금호대.
당소소가 간절한 얼굴로 당천을 쳐다봤다.
“대주. 정말 이대로 끝인가요?”
돌아오는 대답은 차가웠다.
“각주가 결정한 일이다.”
지금의 당천에겐 눈앞의 벽을 넘어서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만을 생각하는 그 모습에 소속을 옮기게 된 이들은 허탈함이 밀려왔다.
금호대가 그의 뒤를 따라 떠나기 시작하자 진설란이 미안한 얼굴로 다가왔다.
“내가 각주님을 찾아가서 다시 이야기해볼게.”
진무립이 물었다.
“그러면 뭐가 달라질까?”
“적어도 의견은 제시할 수 있잖아요?”
“의견을 제시하고 싶었으면 그에 합당한 예부터 갖췄어야지. 그랬다면 부대 개편에 너희들의 의견도 반영했을 거다. 무시할 땐 언제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찾아가서 사정하겠다는 그 심보는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
진무립의 일침에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에 대꾸할 말조차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입술을 지그시 깨문 그녀가 방도를 생각하며 연무장을 떠나자 이곳에 남은 이들은 새롭게 편성된 광무대밖에 없었다.
단상에 올라선 진무립이 모두의 면면을 살피며 씩 웃었다.
“아무래도 개편에 불만 있는 놈이 있는 것 같군.”
뒷줄에 삐딱하게 서 있던 청성의 조영성이 말했다.
“듣자 하니 중경에선 왈패한테도 얻어맞고 다녔다던데 그 소문이 사실이오?”
그는 금호대에서도 반골 기질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진무립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사실이다.”
본인 입으로 사실을 확인해주자 무인들의 술렁임이 점점 커졌다.
조영성이 씩 웃으며 말했다.
“왈패한테도 얻어맞고 다니는 대주를 어떻게 믿고 따르겠소? 차라리 내가 대주가 되는 게 낫지. 다들 안 그래?”
“그건 그렇지.”
“도산검림의 무림에서 나보다 나약한 대주를 따르고 싶은 이가 몇이나 될까?”
사대거파 후기지수들이 이구동성으로 조영성의 말에 동조하자 진무립이 물었다.
“여기서 내 실력을 증명하면 군말 없이 따르겠나?”
“왈패 하나 당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비무라도 해보겠다는 거요? 하하하!”
진무립이 허리춤의 운광검을 툭 치며 말했다.
“좋다. 지금부터 나를 이기는 자에게 광무대의 대주 자릴 넘기겠다.”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지 무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소소가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내 목을 걸고 약조하지. 대신 너희들도 약조 하나 해라.”
“좋아요. 당신이 이기면 군말 없이 따르겠어요.”
“그건 당연한 거고.”
입가에 걸린 진무립의 미소가 짙어졌다.
“내가 이기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원망하지 마라.”
서늘한 그 목소리에 그날의 악몽이 떠오른 당우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안 돼!’
당소소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누구부터 나서겠나? 동시에 여러 명도 상관없는데.”
“그럼 내가…….”
당소소가 한 걸음 내디딜 때, 당우의 다급한 전음이 그녀의 귀에 틀어박혔다.
[누님. 그에게 까불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제발 나대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