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57
◈ 57화. 혈교의 등장
질풍같이 내달리는 광무대에게 겨울의 찬 바람이 부딪혀온다.
선두에서 멈출 줄 모르고 달리던 진무립은 몇 차례 뒤를 돌아보더니 길가의 큰 바위 아래 멈춰섰다.
“휴식이다. 홀수 조는 내력을 회복하고 짝수 조는 식사를 준비해라.”
“예!”
성도를 떠난 지 벌써 이레가 지났다.
이제는 명령에 익숙해진 대원들이 분주하게 제 할 일을 찾아 움직였다.
강유월은 진무립이 대원들을 조련하는 방식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확히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휴식을 주는군. 그러면서도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고 있어. 굉장히 노련한 아이로다.’
금호대의 임무에도 따라가 보았던 강유월은 머릿속으로 진무립과 당천을 비교했다.
‘무공은 보지 못해 알 수 없지만 대주의 자질로 따지면 이 아이가 더 나을지도.’
그때 단려화가 다가오며 따뜻하게 데운 물을 건넸다.
“날이 많이 춥습니다. 몸을 녹이시지요.”
“고맙네.”
물을 한 모금 마신 강유월은 바위에 올라선 진무립을 바라보았다.
“자네의 대주도 여간내기가 아니로군.”
다른 후기지수들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데 진무립에게선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단려화는 빙그레 웃었다.
‘십대고수가 괜히 십대고수가 아니지요.’
강유월의 시선이 이번엔 그녀에게 닿았다.
“저이도 그렇지만 자네 또한 보통이 아닐세. 허허허.”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겸양한 단려화는 훌쩍 뛰어올라 진무립의 곁에 섰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최악의 상황, 최상의 상황을 그리는 중이야.”
“최악의 상황은?”
“적모개의 서신처럼 혈교가 연루되었을 경우지. 아직은 너무 일러.”
정보가 적다.
개방의 제자들이 돌아오려면 적어도 달포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정보가 없는 상대와의 전쟁.
만일 이것이 사천맹을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라면 단순히 혈사를 조사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 터, 어떤 위험과 직면할지 모른다.
단려화가 다시 물었다.
“그럼 최상의 상황은요?”
“아무 흔적도 발견하지 못하고 이대로 돌아가는 거지.”
진무립은 단려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쩌면 당신의 예리한 감각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그녀는 새초롬하게 말했다.
“날 너무 부려먹는 거 아니에요?”
“언젠가 꼭 보답하지.”
“어떻게요?”
진무립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어떻게든.”
식사를 준비하는 당소소의 곁으로 귀여운 인상의 여인, 아미파 속가제자 금유진이 다가왔다.
“언니. 괜찮아요?”
울상을 짓는 걸 보니 어지간히 힘든 모양이다.
“버틸 만해. 많이 힘들면 앉아서 조금 쉬어.”
“아직은 괜찮아요. 조금 더 가면 주저앉을 것 같지만.”
입술을 삐쭉인 금유진이 마른 가지를 내려두었다.
“소문만 무성하던 마도림의 소공자가 저런 괴물이었을 줄은 몰랐어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두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으나 선두에서 바람을 맞으며 달려온 진무립은 지친 기색 한 번 보이질 않았다.
어쩌면 그날의 비무에서 보여준 것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당소소의 시선이 진무립과 함께 서 있는 단려화에게 닿았다.
“대주의 호위로 온 여인도 만만치 않은 고수 같아.”
“그렇죠? 에휴. 우리가 어쩌다 저런 괴물들과 함께하게 됐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금유진이 진무립을 쳐다보며 속닥거렸다.
“광룡(狂龍). 누가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참 잘 어울리는 별호예요. 그쵸?”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된 광룡이라는 별호는 옥룡이라 불리는 진무립을 비꼴 생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겪어보니 그 별호가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때마침 곁을 지나가던 당우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들키면 난 죽을 거야.’
이틀 뒤 저녁, 광무대는 산내촌을 관장하는 송반현에 들어섰다.
그곳에서 포두의 안내로 다시 두 시진을 이동한 그들은 산내촌과 가까운 산 밑 마을에 도착했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백여 가구의 마을.
겨울이라 오가는 사람이 적다곤 하나 해가 떨어지기 전임에도 텅 빈 거리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주변을 돌아본 당소소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래 마을이 이렇게 조용한가요?”
“이 정도로 조용한 마을은 아니었는데……. 그 사건이 있고 난 뒤로 바깥출입을 자제하는 모양이오. 밤마다 산에서 귀곡성이 들린다는 말도 있는데 그저 겁이 나는 게지.”
포두를 따라 마을 북쪽 산기슭을 올라가니 낡은 장원이 나왔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이 인원이 머물 만한 곳은 여기밖에 없구려. 과거 관에서 사용했던 곳이오.”
최근 관병들이 사용한 터라 나름대로 치워진 상태였지만 낡고 구멍 난 건물은 개방의 분타를 연상케 했다.
진무립은 개의치 않고 감사를 표했다.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
해가 기울어가는 가운데 포두의 손가락이 반대편 봉우리 사이를 가리켰다.
“산내촌은 봉우리 너머에 있소. 해가 짧은 데다가 추위까지 혹독한 곳이라 시신은 그대로 놔두었다오. 부패가 진행되지 않았을 테니 확인하고 알려주시오. 처리는 이쪽에서 하겠소.”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이 예를 갖췄다.
“감사합니다.”
“나는 일이 있어 현으로 돌아가 봐야 하니 다녀오시구려. 가급적 조사는 낮에 하고 해가 떨어지면 이곳으로 돌아오는 게 좋을 거요.”
포두가 돌아가자 진무립은 조장들을 불러모았다.
“하던 대로 반씩 나누어 식사 준비와 잘 준비를 한다. 나는 마을에 다녀오마.”
장원을 나서는 진무립과 단려화의 뒤로 강유월이 따라붙었다.
“함께 가도 되겠는가?”
이제 본격적으로 임무에 돌입한 만큼 진무립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던 거다.
진무립은 흔쾌히 수락했다.
“가시죠.”
오솔길을 십 장 정도 내려가자 시종일관 말이 없던 단려화가 작게 입을 열었다.
“느껴져요?”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에게서 서북쪽으로 삼십 장 밖의 지붕에서 은밀한 시선이 따라붙고 있었다.
감시자가 있다는 건 산내촌에 분명 뭔가 있다는 것.
‘최상의 상황은 아니로군.’
진무립의 차가운 시선이 굴뚝을 빠르게 훑고 돌아왔다.
뒤따르던 강유월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보통 아이들은 아니로구나.’
삼십 장의 거리는 내력을 감추지 않은 무인이 숨어 있더라도 쉽게 알아보기 힘든 거리.
적어도 감각이 남다르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단려화가 조용히 물었다.
“뒤를 밟아볼까요?”
잠시 생각하던 진무립은 고개를 저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곳에 그녀를 보낼 순 없었다.
“조용히 돌아보고 돌아가지. 움직이는 건 그다음이야.”
“네.”
굴뚝 옆에 숨어 있던 흑의인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제기랄. 너무 이르다.’
진무립 일행이 담장 너머로 사라지자 그는 즉시 몸을 날렸다.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산을 오르는 모습은 마치 날랜 표범을 연상케 할 정도로 표홀했다.
순식간에 건너편 봉우리 정상에 오른 흑의인은 주변을 살피곤 빠르게 은신처로 향했다.
눈 덮인 산속의 동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입구조차 발견하기 어려운 동굴 속엔 무려 서른 명의 흑의인이 숨어 있었다.
“사천맹의 무인들이 도착했습니다. 탈혼일섬까지 온 것을 보면 뭔가 냄새를 맡은 게 아닐까 합니다.”
희끗한 머리의 흑의인, 혈령대주 염홍이 복면을 내렸다.
“강유월이 왔단 말이냐?”
탈혼일섬 강유월은 사천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로 서장까지 알려진 유명한 인물이었다.
“예. 숫자는 대략 여든. 강유월 외에는 대부분 젊은 무인들로 천무대는 아닌 듯합니다.”
사천 무림의 최정예 고수들이 모인 천무대는 결코 쉽게 볼 수 없었다.
“젊은 놈들이라, 그렇다면 아직 저쪽에서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놈들이 움직이기 전에 혈야광인(血夜狂人)을 회수해야 한다. 채비해라.”
교에서 비밀리에 실험 중인 혈야광인은 무혼광인과 달리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
실험 중 탈출한 한 구를 쫓아 이곳까지 왔는데 사천맹이 도착했다고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대주. 지금은 밤입니다. 혈주령(血主鈴)의 속박이 통하지 않는 이상 너무 위험합니다.”
혈야광인은 음기가 짙어지는 밤에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실혼인.
조금 전 도착한 이들이 이곳에 숨어 낮을 기다리던 이유였다.
“이대로 혈야광인의 존재가 드러나면 교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것 같으냐?”
염홍의 눈이 비장하게 빛났다.
“아직 혈야광인이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된다. 우리가 전부 죽더라도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 * *
진무립과 두 사람이 짙은 어둠을 뚫고 장원으로 복귀했다.
식사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던 이들이 진무립들을 반갑게 맞았다.
“어서 이리 앉으십쇼. 대주.”
진무립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어서 먹어라. 먹으면서 듣는다.”
금유진이 내민 그릇을 받아 든 진무립은 육포를 찢어 넣은 고깃국을 후루룩 마시며 말했다.
“식사가 끝나면 조장들은 신법에 자신 있는 조원을 한 명씩 추려서 나를 따른다.”
포두는 낮에 움직이라 했지만 자신들 외에 다른 이가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느긋하게 기다릴 순 없었다.
진무립은 곽도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의 책임자는 삼조장이다. 나와 다른 조장들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이곳을 지켜라.”
“예.”
“이곳에 별일은 없겠지만 행여 감당할 수 없는 놈들이 온다면 대적하지 말고 반드시 도망쳐라. 이건 비단 지금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의 임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말에 후기지수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진무립을 향했다.
곽도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물었다.
“도망을 치란 말입니까?”
“감당하지 못할 자를 이겨보겠다고 달려드는 건 만용이다.”
생각해보니 대꾸할 말이 없다.
흑영대 출신의 대원들은 저들의 당혹감을 이해한다는 듯 씩 웃었다.
자신들도 진무립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저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무립이 다시 말했다.
“그대들의 부모와 자식이 임무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훌륭하게 싸우다 죽었다고 기뻐할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임무고 뭐고 뒈지면 다 소용없다. 어서 먹어라.”
보통의 무인과 다른 사고방식에 가만히 듣고 있던 강유월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아이로다. 따라오길 잘 한 것 같구나.’
식사가 끝난 뒤 여섯 명의 조장들이 조원을 한 명씩 데리고 집결했다.
남은 곽도진을 제외하면 사대거파 출신이 둘, 마도림이 셋, 중소방파 출신은 이환이 유일했다.
이동 간의 위치를 조정해준 진무립이 강유월에게 말했다.
“노사님께 후방을 맡기겠습니다.”
“알겠네.”
단려화를 앞세운 일행은 조용히 마을을 지나쳐 산비탈에 접어들었다.
일각 정도 움직이다 잠시 발을 멈춘 단려화는 나무 위를 쳐다봤다.
같은 곳을 확인한 진무립은 즉시 손을 들어 이동을 멈추고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눈이 없다.’
나뭇가지마다 눈이 쌓여 있었지만 자신이 올라탄 곳은 앙상한 가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누군가 여길 밟고 지나간 바람에 눈이 떨어진 거다.
잠시 생각하던 진무립은 제자리로 돌아와 단려화에게 전음을 보냈다.
[산내촌부터 확인하자. 흔적이 남아도 상관없으니 곧장 포두가 알려준 방향으로 가.]어차피 자신들이 이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저들도 알고 있다.
지면을 강하게 박찬 단려화는 속도를 올렸다.
다시 일각의 시간이 흐르고 정상을 목전에 두었을 무렵, 단려화의 예리한 감각에 낯선 기운이 걸려들었다.
‘사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분 나쁜 느낌은 이야기로만 들었던 사기(死氣)와 매우 흡사했다.
속도를 늦춘 단려화는 오감을 활짝 개방하며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이들이 정상에 도착한 순간, 능선 너머에서 캉! 하는 쇳소리가 날카롭게 솟구쳤다.
즉시 자세를 낮춘 진무립 일행은 지면에 바짝 엎드려 고개를 내밀었다.
흰 눈에 반사된 달빛이 세상을 환하게 물들인 가운데.
백 장 정도 떨어진 산내촌의 공터에선 수십 명의 흑의인들이 단 한 명의 사내를 공격하고 있었다.
진무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황을 주시했다.
‘시꺼먼 얼굴에 짙은 혈광. 저게 실혼인인가.’
베일듯한 살기와 지독하게 뻗어 나오는 사기가 이곳까지 느껴질 만큼 흉험한 전장.
당소소는 요동치는 가슴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저들은 대체…….”
전장을 향한 강유월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혈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