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58
◈ 58화. 혈야광인(血夜狂人)
공터의 싸움은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삼십 대 일의 싸움.
심상치 않은 흑의인들의 움직임.
그러나 정작 광무대원들이 놀란 것은 포위당한 괴인이 그런 흑의인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무립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움직임에 규칙도, 형식도 없다.’
닥치는 대로 베고 찌르는 괴인의 방식을 보아 산내촌의 혈사는 저놈이 벌인 게 분명하다.
‘적모개가 보낸 서신에 적힌 무혼광인과는 특징이 다르다. 다른 실혼인인가?’
적모개가 알려준 무혼광인은 피부가 검지도, 눈에서 혈광이 흐르지도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눈앞의 실혼인이 실패작이라는 것.
그게 아니라면 혈교의 무인이 자신들이 만든 실혼인과 여기서 싸울 이유가 없다.
혈교의 실험은 아직 진행 중인 게 확실했다.
광무대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괴인을 직접 상대하는 혈령대주 염홍은 미칠 지경이었다.
‘제기랄. 역시 혈주령(血主鈴)은 통하지 않는군.’
방울을 아무리 흔들어봐도 꿈쩍하지 않는다.
혈야광인을 통제하는 유일한 수단이 먹히지 않는 이상, 확실히 눈앞의 이놈은 실패작이 맞다.
‘쇳소리가 터진 이상 강유월이 올지도 모른다. 서둘러 끝내야 한다.’
혈야광인은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을뿐더러 재료를 구하는데 엄청난 자금이 소모된다.
입맛이 썼지만 적지에서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염홍은 결단을 내렸다.
“수거는 포기다. 폐기한다.”
“예.”
나직한 복명이 공터에 번지며 일사불란 움직인 흑의인 일부가 여덟 방위를 점했다.
급히 물러나며 혈야광인을 쳐다본 염홍은 왠지 놈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웃었…… 다고?’
그럴 리가 없다.
혼이 없는 괴물에게 감정이란 게 있을 리 없으니까.
염홍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버렸다.
“시작해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덟 명의 무인은 왼손에 요대 끝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검파를 움켜쥐었다.
광인의 신형이 우측으로 미끄러지자 어둠 속에서 불길한 혈광이 길쭉하게 늘어진다.
잔뜩 녹이 슨 검신이 정면의 적을 찔러가니 팔각의 진도 동시에 움직이며 간격을 유지했고.
이어서 일제히 요대를 푼 흑의인들은 그것을 좌측 동료의 허리에 던져 밧줄처럼 휘감았다.
여덟 명의 흑의인들이 하나로 이어진 팔각의 선.
그들은 검을 내지르며 왼손에 고정된 요대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혈야광인을 중심에 둔 팔각진이 순식간에 좁혀지며 여덟 자루 검극이 맹렬한 기세로 짓쳐 들었다.
지켜보던 진무립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요대는 단순한 천이 아니라 천잠사다. 어떻게 할 거냐?’
피할 곳이 없는 팔각진.
동시에 여덟 명을 한 번에 베지 못하는 이상 반드시 공격을 허용하고 마는 무서운 진법이었다.
혈야광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일선의 여덟 명 뒤로 또 하나의 팔각진이 빈틈을 메우며 이어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혈야광인은 검을 회수하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하지만 그것마저 예상한 듯 동료를 밟고 뛰어오른 네 명의 흑의인이 공간을 차단했다.
네 자루 도신이 육중한 기세로 떨어지며 혈야광인을 진 안으로 때려 박았다.
콰앙!
이어서 여덟 명의 무인이 검을 찔러넣으며 어깨가 닿을 만큼 간격을 좁혔고.
뒷줄의 팔각진도 순식간에 간격을 압축하며 일선의 사이사이로 검을 찔러넣었다.
두 줄의 진이 공격을 마치는 순간, 부하들의 등을 밟고 뛰어오른 대주 염홍이 진의 중심으로 뚝 떨어지며 검을 내리꽂았다.
콰아앙!
벼락 치듯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지축이 들썩였고 눈 섞인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당소소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진법이 있었다니.’
자신이 저 한 가운데에 있었다면 분명 생로를 찾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여겨진 순간,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 속에서 염홍의 찢어질 듯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멸진(滅陣)!”
최후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은 목표가 살아있다는 것.
염홍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때, 뒷줄에서 대기하던 흑의인들은 망설임 없이 달려들며 동료의 등에 검극을 쑤셔 박았다.
“컥!”
그 잔혹한 수법에 광무대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가 강하다곤 하나 지금의 방법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나 진무립은 저들이 서두르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강노사 때문이로군.’
여유가 있다면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있었겠지만 마을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했기 때문에 다급해진 것이다.
눈앞의 실혼인은 그렇게 해서라도 정체를 감추고 싶은 비밀병기가 분명하다.
숨죽이고 지켜보던 조영성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혈교의 무인들은 저런 명령을 아무렇지 않게 따를 수 있는 괴물들이란 말인가?’
마른 침이 울대를 타고 넘어갈 때, 단려화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끝나지 않았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줄기 혈광이 혜성처럼 늘어지더니 순식간에 십여 명의 허리가 두 동강 났다.
“크아악!”
시뻘건 피와 함께 솟구치는 비명.
무너진 진의 일각 너머로 혈야광인의 모습이 보인다 싶더니 늘어진 혈광은 반대편을 갈라버렸다.
동료들의 등까지 찔러가며 전개한 진법이 완벽히 무너지고 말았다.
“크르륵.”
쏟아진 피와 내장 조각이 새하얀 대지를 검붉게 물들여간다.
십여 자루의 검을 몸에 꽂은 채 우뚝 선 혈야광인은 전신의 솜털이 쭈뼛 설 만큼 무시무시한 사기를 발산했다.
냉정을 유지하던 강유월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혈교는…… 괴물을 만들어냈구나.’
괴인이 보여준 무위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사대거파의 장로를 능가한다.
강유월의 눈이 문득 진무립에게 닿았다.
‘저 아이는 이 상황이 두렵지 않단 말인가?’
다른 후기지수들은 피부로 느껴질 만큼 동요하고 있었으나 차갑게 가라앉은 진무립의 눈엔 그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진무립이 물었다.
[가능하시겠습니까?]고저 없는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다.
부하들에게 서슴없이 도망치라고 말하는 대주에게 공명심 따위가 있을 리 없다.
강유월은 진무립이 진심으로 괴인을 잡고자 하는 것을 알았다.
[불가능한 것은 아닐세.]적을 알지 못하고 벌이는 전쟁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가능하면 여기서 놈을 분석해야 한다.
“움직이시죠.”
전방을 향한 진무립의 미소가 짙어졌다.
“저 망할 괴물이 이쪽으로 오기 전에 말입니다.”
번뜩이는 두 개의 혈광은 어느새 이쪽으로 향해 있었다.
조영성이 검파를 움켜쥐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제기랄.”
광무대원들의 눈빛에 긴장감이 번지는 순간, 벌떡 일어난 진무립의 신형이 한줄기 섬광을 남기며 공터로 치달았다.
단려화가 다급하게 일어나며 말했다.
“변수가 많은 비탈에서 싸우면 이쪽이 불리해요. 놈이 오기 전에 저곳에 묶어두려는 거예요.”
그녀의 말처럼 진무립은 놈이 움직일 기미를 보이자 명령을 내릴 틈도 없이 달려간 것이었다.
“먼저 가겠네.”
강유월은 지체 없이 몸을 날려 진무립의 뒤를 쫓았다.
진무립을 대신해 단려화가 모두에게 말했다.
“십 장의 간격을 두고 포위할게요. 행여 괴인이 노사님을 뿌리치고 접근하면 대응하지 말고 물러나세요.”
이런 상황에서 대주의 명이 아니라고 거부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들은 단려화를 따라 산내촌의 공터로 몸을 날렸다.
아니나 다를까 진무립이 튀어나온 순간 혈광을 번뜩인 혈야광인이 지면을 박찼다.
서로 간의 간격이 이 장까지 좁혀졌을 무렵, 눈밭을 강하게 박찬 진무립이 우측으로 이동하며 간발의 차이로 일검을 피해냈다.
바닥에 깊은 골을 패며 미끄러진 진무립은 왼손을 땅에 틀어박고 돌아섰다.
“이리 와라. 새끼야.”
손에 걸린 작은 돌멩이가 혈야광인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팅!
가볍게 검을 휘두른 혈야광인은 진무립을 쫓아 공터까지 이동했다.
“크르르!”
쇳소리처럼 섬뜩한 울림이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내게 맡기고 물러나게!”
이런 괴물을 후기지수에게 맡길 순 없다.
순식간에 뒤따라온 강유월이 혈야광인의 후방으로 맹렬한 검초를 흩뿌렸다.
번개같이 돌아선 혈야광인은 강유월의 가슴으로 일검을 내질렀다.
치잉!
검신과 검신이 교차하며 청명한 소리가 울린다.
손목을 틀어 검의 궤도를 바꾼 강유월은 즉시 혈야광인의 목을 노렸다.
혈야광인은 본능적으로 목을 꺾었다.
스걱!
상처가 얕다.
피륙이 살짝 갈라졌으나 피는 흘러나오지 않는다.
내리쬐는 월광(月光), 피로 물든 전장.
지독한 혈향이 코끝을 자극하는 가운데 폭발적인 기세를 발산하는 두 사람이 맹렬한 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설픈 합공은 독이다.
상대가 강하다지만 강유월이라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터.
멀찍이 물러난 진무립은 괴인을 분석하며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검파를 쥐었다.
쿠콰콰콰콰!
수십 가닥으로 갈라진 혈야광인의 검 끝에서 마치 화살 비 같은 엄청난 공격이 쏟아졌다.
점창의 검법 묵사비검(黙士飛劍)은 완벽한 방어 속에 적의 허점을 노리는 검술.
묵사비검 만천검방(萬天劍防)의 초식을 전개한 강유월은 혈야광인의 맹공을 완벽히 차단하며 놈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움직임이 둔해졌구나. 불사의 괴물은 아니로다.’
그 생각처럼 혈야광인의 아물지 않은 상처에선 연신 검붉은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멀찍이서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광무대는 강유월의 완벽한 방어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탈혼일섬의 싸움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강유월은 사천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
전장을 넓게 쓰는 강유월의 엄청난 보법과 날카로운 쾌검에 혈야광인의 공격이 조금씩 중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러진 혈령대주 염홍이 힘겹게 창백해진 얼굴을 들었다.
‘크으윽…….’
흐려지는 눈앞에 자신의 하반신이 보였고.
그 너머로 강유월의 완벽한 방어에 틀어막힌 혈야광인이 보인다.
저 늙은이 때문에 서두르다 모든 일을 그르쳤는데 결국 들키고 말았다.
허탈한 감정에 묶여 있을 시간은 없다.
이대로는 머지않아 혈야광인이 잡힌다.
그것만큼은 절대 막아야 했다.
‘강유월만 없으면 애송이들은 절대 혈야광인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죽어가는 염홍은 남은 힘을 쥐어짜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진무립과 단려화의 시선이 동시에 염홍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진무립에게서 염홍까지의 거리는 십 장, 단려화에게서는 그 절반에 해당하는 오 장의 거리.
둘은 즉시 몸을 날렸지만 하필 그 시점에 강유월과 혈야광인이 염홍의 방향으로 움직여갔다.
진무립의 미간이 좁아졌다.
‘늦는다!’
전장을 넓게 쓰는 강유월의 움직임에 맞춰 너무 멀리 물러나 있었다.
진무립은 즉시 은광검을 던졌다.
쐐애액!
벼락처럼 날아간 은광검이 머리통을 꿰뚫었으나 간발의 차이로 염홍의 손을 떠난 비수는 강유월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쌔애액- 서걱!
“큭!”
후방의 공격을 감지하고 몸을 틀었으나 비수는 허벅지를 갈랐다.
‘독?’
허벅지에서 시작된 시큰한 통증은 단순한 검상과 느낌이 달랐다.
다리부터 힘이 풀린다.
휘청거리는 강유월의 빈틈으로 혈야광인의 검이 섬뜩하게 찔러 왔다.
“노사님!”
즉시 방향을 튼 단려화는 두 사람 사이로 몸을 날리며 검을 출수했다.
사기(死氣)로 가득한 검극이 강유월을 목전에 두고 단려화의 검면에 가로막혔다.
카앙!
정면도 아니고 측면에서 공격을 막아냈으니 팔이 부러질 것만 같다.
그러나 밀려나면 검극은 강유월의 목으로 날아간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버텼다.
“윽!”
혈야광인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크르르.”
강유월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사대거파의 장로조차도 일대일로 상대하기 어려운 괴물을 일개 후기지수에게 맡길 순 없었다.
죽더라도 자신이 막아내야 한다.
“날 두고 물러나게!”
쐐애액!
강유월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휘청이는 그녀에게 두 번째 공격이 쏟아질 때였다.
그들의 우측에서 엄청난 한기가 몰아치더니.
쿠아앙!
육중한 굉음과 함께 혈야광인의 신형이 포탄에 적중한 바위 파편처럼 튕겨 나갔다.
콰지직!
기둥과 함께 지붕이 폭삭 무너지며 민가에 처박힌 혈야광인을 덮쳤다.
진무립의 강맹한 일장에 놀랄 틈은 없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솟구치는 살기가 그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모두의 생각처럼 이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혈야광인이 지붕을 뚫고 솟구쳤다.
광무대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강유월이 당한 이상 자신들이 하는 수밖에 없다.
당소소의 손이 품 안으로 들어가고 조영성은 검파를 쥐었으며.
이환의 도신이 뽑혀 나오고 마도림의 조장들이 자세를 낮출 때.
“움직일 것 없다.”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염홍에게 틀어박힌 은광검이 진무립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혈야광인의 정면에 선 진무립이 차갑게 눈을 빛냈다.
“내게 맡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