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60
◈ 60화. 추격
야음이 내려앉은 산기슭의 장원.
희뿌연 운무가 피어오른 방 안에 뜨겁고 차가운 공기가 번갈아 요동친다.
호법을 서던 단려화는 신기한 눈으로 진무립을 응시했다.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열기와 한기가 지독하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몸이 버티는 걸까?’
생각하던 그녀의 고개가 천장으로 올라갔다.
‘왔구나.’
임무를 떠난 뒤로 보이지 않던 진무립의 수신호위 서진환이 온 것이다.
[오랜만이네요.] [예.]짧고 묵직한 목소리를 끝으로 답이 들려오지 않는 걸 보니 아직 자신을 경계하는 모양이다.
‘소정이 같네.’
모시는 이가 친해진 상대일수록 더욱 경계하는 모습이 왠지 닮았다.
잠시 후 뿌연 운무가 진무립의 전신으로 빨려들 듯 사라지며 실내에 정광이 번쩍이고 사라졌다.
단려화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거창한 심법은 처음 보네요.”
“거창한 심법은 아닌데 내 몸이 좀 거창하긴 하지.”
마주 웃으며 일어난 진무립이 고개를 들자 서진환이 뚝 하고 떨어져 부복했다.
“산맥 너머 하루 거리에 혈의를 입은 무인 일백이 대기 중입니다.”
“수준은?”
“풍기는 기운으로 보면 전원 광무대 조장들보다는 강한 자들입니다.”
“그런 놈이 일백이란 말이지.”
“예.”
단려화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위기 아니에요?”
“맞아.”
“왜 그렇게 태평해요?”
“떨면 뭐가 달라지나? 대책부터 강구해야지.”
안에서 진무립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출발 준비를 마친 광무대원들은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진무립을 기다리고 있었다.
곽도진이 조영성의 곁에 앉았다.
“귀신이라도 보고 온 거냐?”
평소 남들 눈치 보지 않던 조영성이 유독 조용했다.
“넌 몰라.”
“뭘?”
“우리가 괴물을 보고 왔다는 걸.”
“광인이 그 정도로 무시무시했단 말이냐?”
조영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 괴물 말고.”
“뭔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그때 반대편에 앉아있던 이환이 입을 열었다.
“진짜 괴물은 광인을 때려잡은 대주였습니다.”
목소리의 떨림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싸움을 목격한 이들은 모두 그와 같은 마음이었다.
조영성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엄청난 사람을 따르게 된 걸지도 몰라.”
그답지 않게 긴장한 목소리에 곽도진은 피식 웃었다.
“그래. 부하들에게 위험하면 도망치라고 하는 대주는 흔하지 않지.”
임무 성공 여부보다 부하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진무립은 이전에 따랐던 대주와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진무립과 단려화가 나왔다.
함께 산내촌에 다녀왔던 무인들은 동료들이 놀랄 정도로 벌떡 일어나 그의 앞에 도열했다.
“출발 준비가 끝났습니다.”
“강노사께서는?”
좌측 마지막 방문이 열리며 당우가 나왔다.
“여깁니다.”
그의 등에는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강유월이 천잠사로 칭칭 묶여 있었다.
당소소가 말했다.
“독은 거의 다 몰아냈지만 육신이 독기와 싸우느라 매우 지친 상태에요. 조금 지나면 깨어나실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깨어나면 무공은 사용하실 수 있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그 말은 전투에 참전할 수 없다는 의미.
‘하루 거리라.’
잠시 고민하던 진무립이 싸늘한 눈빛으로 담장을 응시했다.
“안 나오면 죽인다.”
표정을 굳힌 부하들이 진무립의 시선을 좇았다.
“후후후. 혈령대를 따라와 보길 잘했군요.”
담장 너머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적면탈을 쓴 인물이 담장 위에 올라섰다.
진무립이 물었다.
“혈교놈이냐?”
“그렇습니다만 그리 긴장하실 것은 없습니다. 싸우러 온 게 아니니까요.”
진무립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건방을 떠는군. 그걸 왜 네놈이 정하나?”
말이 끝나는 순간 진무립의 신형이 벼락같이 튀어 나가더니 순식간에 담장으로 치달았다.
“나는 싸울 생각인데?”
부릅떠진 적면탈의 두 눈에 진무립의 광기 어린 미소가 빨려들 듯 확장됐다.
“잠…….”
당황한 적면탈의 다리가 도약을 위해 살짝 굽혀질 때 그가 딛고 서 있던 담장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전음을 받고 은밀히 움직인 단려화가 담장을 부순 것이다.
“헉!”
그 순간 진무립의 운광검이 번뜩이며 추락하는 놈의 목을 깔끔하게 잘라냈다.
서걱!
주인 잃은 머리가 둥실 떠오르며 잘린 단면에서 피가 솟구친다.
피를 피해 훌쩍 물러난 단려화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왔는지도 안 물어봐요?”
“우리가 할 일이 정해진 이상 저놈들이 하는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적이 하는 말은 아군에게 득이 될 리가 없다.
괜한 말로 부하들의 마음이 흔들릴 바엔 차라리 듣지 않는 편이 낫다.
“출발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몸을 부르르 떤 광무대가 진무립을 따라 신법을 전개했다.
산내촌에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았던 곽도진과 대원들은 떨리는 눈으로 진무립을 응시했다.
‘어떤 놈이 옥룡이라고 한 거냐? 광룡. 광룡이 맞다.’
정말 예측할 수 없는 대주였다.
* * *
하루 뒤, 광무대가 떠난 장원에 적면탈을 쓴 한 무리의 무인이 나타났다.
“전엽이…… 죽었군.”
그들의 눈앞엔 목과 몸통이 분리된 동료의 싸늘한 주검이 놓여 있었다.
그들 중 유일하게 검은 가면을 쓴 인물이 죽은 동료 앞에 쭈그려 앉으며 중얼거렸다.
“마을 사람들의 안전 따윈 어찌 돼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전엽이 이동 경로에 남긴 밀문에는 혈령대의 실패와 혈야광인의 죽음, 적의 정보와 마을 사람들을 미끼로 이들을 묶어두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뒤에 선 왜소한 체구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미 탈주한 혈야광인이 마을 하나를 지워버린 상황입니다. 더 이상 민가에 피해를 입혔다간 훗날 사천에 들어왔을 때 군부에서 나설지도 모릅니다.”
“안다. 그저 놈들을 묶어두기 위한 방책이었을 테지. 마을에 손을 댈 생각은 없다.”
흑면탈은 품에서 화골산을 꺼내 동료의 시신에 흘렸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동료의 시신이 빠르게 녹아내리자 흑면탈은 다음 명을 내렸다.
“혈야광인의 시신을 이대로 사천맹에 넘겨줄 순 없다. 추격한다.”
“예.”
잠시 후,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복면을 쓴 시꺼먼 인영이 나타났다.
‘인질이라. 그런 짓을 했다면 네놈들은 시신도 남기지 못했을 거다.’
진무립이 가장 싫어하는 게 인질극이라는 걸 서진환은 잘 안다.
그리고 그런 것이 통할 인물도 아니었다.
품에서 작은 붓 통을 꺼낸 서진환이 종이에 뭔가를 적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하늘을 선회하던 흑조가 빠르게 하강하더니 서진환의 손목에 내려앉았다.
그는 흑조의 발목에 종이를 단단히 묶었다.
“주군께 전해다오.”
끼익.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 울음을 토해낸 흑조가 퍼드득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마을을 떠난 광무대는 성도를 향해 빠르게 남하하고 있었다.
인적이 없는 외진 산속.
선두에서 달리던 진무립은 하늘에서 번지는 흑조의 울음소리를 감지하고 발을 멈췄다.
“여기서 잠시 쉰다.”
휴식을 지시한 진무립이 무리에서 이탈해 백 장 밖의 커다란 나무 위로 솟구쳤다.
그러자 진무립을 알아본 흑조가 빠르게 하강하더니 천천히 어깨에 내려앉았다.
“오랜만이구나.”
진무립의 인사에 화답하듯 흑조가 뺨에 부리를 문질러왔다.
품에서 육포 조각을 꺼내 흑조에게 먹인 진무립은 발목에 매달린 종이를 풀었다.
‘역시 오는군.’
종이에는 그들이 장원에 나타났던 사실과 추격에 나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흑조를 보내고 주변을 돌아본 진무립은 가장 높은 봉우리의 정상까지 단숨에 내달렸다.
뒤로는 저 멀리 산내촌이 있는 대설산맥이 보이고 앞으로는 수십 개의 작은 산봉우리가 보인다.
‘분명 왔던 길에 강이 하나 있었다.’
한 번 지나온 길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눈앞의 작은 산들을 넘어가면 분명 커다란 강줄기가 나온다.
산속의 시냇물에 살얼음이 낀 것을 보면 강물은 얼어붙지 않았을 터.
머릿속으로 인근 지형을 그린 진무립은 다시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때마침 의식을 회복한 강유월이 자리에 앉아 진무립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무립이 물었다.
“좀 어떠십니까?”
당소소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은 강유월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 덕분에 많이 나아졌네. 도와주러 왔음에도 짐만 되는 것 같아 미안하이.”
암습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모든 것을 진무립에게만 떠맡긴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해졌다.
단려화가 그의 곁에 앉으며 웃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노사께서 함께 계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답니다.”
진무립은 멋쩍게 웃는 강유월에게 물었다.
“거동하실 수 있겠습니까?”
“추격이 있는가?”
“예. 숫자는 일백. 지금쯤 반나절 거리까지 도착했을 겁니다.”
사실 하루 정도의 여유가 있었으나 부상자를 대동한 이쪽보다 저쪽이 더 빠른 것은 자명한 사실.
진무립은 만일을 대비해 상대와의 거리를 반나절로 상정하고 말했다.
광무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가운데 곽도진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조금 전 개방에서 사람을 보내 알려왔다. 확실한 정보다.”
“개방에서…….”
개방의 거지들이 마도림의 지부에 머문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강유월은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노부는 언제든 싸울 수 있네.”
당소소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아직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도산검림의 무림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이날까지 살아온 나일세. 이 정도에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
강유월은 자신의 검집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래, 무엇을 하면 되겠는가?”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조장들을 불러 모은 진무립은 바닥에 조금 전 확인한 근방의 지도를 그렸다.
“추격전이 벌어질 거다.”
조영성이 물었다.
“도망칩니까? 아니면 맞서 싸웁니까?”
“놈들이 쫓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하나씩 마주한 진무립이 씩 웃었다.
“추격은 우리가 한다.”
* * *
적면탈을 쓴 백여 명의 혈의인들이 가파른 산을 거침없이 뛰어올랐다.
흑면탈을 쓴 사내, 적혈대주 하종오는 수십 개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젊은 놈들이라더니 아직 애송이로군.”
장원을 떠난 순간부터 이곳에 올 때까지, 눈밭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은 자신들에게 확실한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었다.
‘혈야광인을 잡았다는 그놈과 강유월만 조심하면 두려울 것은 없다.’
속도를 높여 순식간에 산을 넘은 적혈대 앞에 살얼음이 낀 시냇물이 나타났다.
“대주. 여기서 발자국이 둘로 나뉩니다.”
하종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발자국을 살폈다.
“추격을 감지했군.”
남은 족적은 조금 전까지와는 달리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했다.
“나와 절반이 우측으로, 부대주는 나머지를 이끌고 좌측으로 향한다.”
하종오는 부대주 요광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전엽이 남긴 정보에 따르면 숫자도 무위도 우리가 우세하다. 남김없이 추살하고 혈야광인을 되찾는다.”
“알겠습니다.”
절반을 이끌고 한 시진을 달려간 하종오는 또다시 두 무리로 나뉜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애를 쓰는군. 이러면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으냐?’
하종오는 다시 부대를 둘로 나눴다.
“강유월을 만나거든 정면에서 상대하지 말고 후퇴해라.”
“예.”
또다시 한 시진을 나아가자 발자국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왠지 조금 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뭔가 이상한데.’
상대의 숫자는 명백히 이쪽보다 열세.
유인책을 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아직 이쪽의 전력을 모르는 모양이로군.’
생각을 정리한 하종오는 십여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우측 길로 움직였다.
이번에는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길이 갈리지 않고 제법 길게 이어졌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잡아야 한다.’
밤이 되면 추격이 어려워지는 것은 자명한 일. 마음이 조급해진 하종오는 속도를 높였다.
한참을 달려가던 그들은 바람에 섞인 물 냄새를 감지했다.
“설마?”
만일 놈들이 강을 끼고 도망쳤다면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서두른다.”
드문드문 보이는 발자국을 무시하고 전력으로 내달리던 하종오의 눈에 저 멀리 불빛이 보였다.
한달음에 달려간 하종오는 모닥불 앞에 앉아 불을 쬐는 노인과 두 남녀를 볼 수 있었다.
“이제 왔는가?”
“강유월.”
노인은 그의 짐작대로 강유월이었고 그 앞에 앉은 남녀는 당소소와 당우였다.
그 뒤로 천잠사에 칭칭 묶인 무언가가 보인다.
‘혈야광인.’
반드시 되찾아야 할 목표가 저곳에 있다.
검파에 손을 올리고 걸어가던 하종오가 멈칫했다.
강유월의 뒤로 보이는 강변에서 물에 흠뻑 젖은 무인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크으. 얼어 죽겠네.”
두 팔로 몸을 감싼 조영성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모닥불 앞에 앉았다.
수를 쪼개고 쪼갠 뒤, 적을 분산시켜 유인한 광무대는 그대로 물에 뛰어들어 이곳의 불빛까지 떠내려온 것이다.
그때 머리 위의 나무에서 나직한 웃음이 들려왔다.
“큭큭큭.”
재빨리 물러나며 고개를 치켜든 하종오는 활짝 웃는 진무립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죽을 자리는 마음에 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