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61
◈ 61화. 또 하나의 용(龍)
강변에서 올라오는 무인들의 숫자가 점점 불어난다.
하종오는 그제야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강의 상류부터 이곳까지.
이놈들은 부대를 분산시켜서 자신들을 유인한 뒤 물길을 타고 흘러 내려와 이곳에 집결한 것이다.
‘제기랄!’
상대를 얕잡아본 탓에 이곳의 지리도 파악하지 못하고 추격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를 바드득 간 하종오가 강유월을 쏘아봤다.
“곧 죽을 노인네가 제법 간교한 수를 쓰는구나.”
“흘흘흘.”
강유월이 허허롭게 웃었다.
눈앞의 적은 고작 열둘이지만 아군은 계속해서 늘어난다.
불리한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된 상황.
‘정말 대단한 청년이로다.’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한 강유월이 진무립을 바라보았다.
“대주는 어쩌실 겐가? 자네 덕분에 이 노부는 졸지에 간교한 노인네가 되었네그려.”
은은한 불빛에 비친 진무립의 미소가 섬뜩하게 빛났다.
“돌아가면 술 한 상 거하게 대접하겠습니다.”
하종오의 눈에 훌쩍 뛰어내리는 진무립이 담기는 순간, 뒤에서 은밀한 바람이 불어온다 싶더니 다리에서 후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큭!”
진무립이 시선을 끄는 사이 소완공을 전개한 단려화가 벼락같은 기습을 전개한 것이다.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하종오의 머리 위로 진무립의 강력한 일검이 떨어져 내렸다.
쐐애액- 카앙!
가까스로 검을 들어 올린 하종오는 일검의 위력에 그만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당황했던 혈의인들이 정신을 차릴 무렵, 단려화의 사자검은 순식간에 하종오의 가슴을 꿰뚫어버렸다.
“컥!”
일백 혈천대를 이끄는 수장의 죽음으로는 너무도 허무했다.
단숨에 적장을 제거한 단려화가 외쳤다.
“이들의 동료가 오기 전에 제거해야 해요!”
그녀의 말대로 전력의 열세를 우위로 바꾸기 위한 계책이다.
다른 이들이 합류하면 공들인 보람이 없어진다.
검을 뽑아 든 조영성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갑니다!”
지휘관을 잃은 혈의인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물기를 털어낸 광무대원들은 순식간에 주변을 포위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당소소가 일어나려 하는 강유월의 소매를 슬쩍 잡았다.
“노사께서는 나서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닐세. 대주의 말대로 이번 작전은 속전속결이 우선이야. 서둘러 끝을 보세.”
혈의인들은 서진환이 진무립에게 보낸 전서처럼 광무대 조장들보다도 강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진무립과 단려화의 맹공, 거기에 속속 합류하는 광무대원들과 강유월까지 나서자 십여 명 남짓한 적은 버티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전투가 막 끝날 무렵, 가장 북쪽으로 적을 유인했던 곽도진의 조가 강변으로 올라왔다.
“벌써 끝났습니까?”
곽도진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묻자 진무립은 싱긋 웃었다.
“추격전은 이제 시작이다. 가자.”
진무립의 뒤로 강유월과 단려화, 광무대가 차례로 따라붙었다.
강변을 따라 북상하던 그들 앞에 한 무리의 혈의인들이 나타났다.
주변을 수색하던 그들은 느닷없는 광무대의 기습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지면을 박찬 진무립의 은광검이 한줄기 섬광이 되어 쏘아졌다.
치잉!
적진을 흔들고 지나간 진무립이 순식간이 그들의 후방을 점했고 단려화와 강유월이 좌우로 움직이며 도주로를 차단했다.
“함정이었구나!”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젠 늦었다.
사방을 포위한 여든 명의 무인들이 맹공세를 펼치자 그들은 일각도 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피로 물든 병기, 격하게 요동치는 심장.
물에 흠뻑 젖어 추위에 떨던 광무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마도림의 무인을 제외한 이들에겐 오늘의 전투가 제대로 된 첫 실전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뤄낸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떨리는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부하들의 머리가 뜨겁게 달아오른 것을 눈치챈 진무립이 나직이 말했다.
“집중해라.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고작 스물다섯을 베었을 뿐, 남은 적은 벤 숫자의 세 배나 된다.
부하들의 경각심을 일깨운 진무립은 선두에서 강변을 따라 빠르게 북상했다.
뒤따르는 강유월의 눈빛이 반짝인다.
‘풀어줄 땐 풀어주고 고삐를 조일 땐 확실히 조이는군.’
진무립은 마치 오래전부터 무리를 이끌어온 대주처럼 능숙하게 이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어째서 맹주와 비각주가 진무립을 신경 쓰는지, 사천 무림이 왜 마도림을 주목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닥치는 대로 적을 베며 북상하던 진무립은 세 번의 전투를 더 거친 뒤에서야 발을 멈추고 숨을 돌렸다.
이상하게 여긴 강유월이 물었다.
“어째서 멈추는가?”
“물결 소리와 바람 소리에 싸우는 소릴 감추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제는 기다리면 알아서 옵니다.”
급한 것은 광무대가 아닌 적이다.
자신들을 죽여 흔적을 지우고 빼앗긴 광인을 회수하러 왔을 테니까.
적은 분명 자신들이 우세하다고 여기고 있을 터,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면 지원하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일조는 지금부터 옷을 갈아입는다.”
당소소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옷을요?”
“저놈들의 옷을 입으란 말이다.”
진무립이 가리킨 곳에는 조금 전 싸웠던 적의 주검이 있었다.
“아!”
당소소는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일조는 서둘러 혈의를 옷 위에 겹쳐 입고 적면탈로 얼굴을 가렸다.
거기에 혈의인들의 무기까지 주워드니 제법 그럴싸한 혈교인처럼 보였다.
적의 시신을 모두 숨기고 준비를 마치자 진무립이 말했다.
“적이 오면 놈들의 후방으로 빠져서 왼쪽 소매를 걷어라. 너희들이 익힌 내공은 놈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니 오래 속일 수는 없을 거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같은 옷을 입은 동료가 공격을 당하고 있다면 한순간은 속일 수 있을 터.
그것이면 충분하다.
고개를 끄덕이는 당소소의 눈에 옅은 흥분까지 떠올랐다.
이 작전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알겠어요. 놈들이 알아채기 전에 뒤를 덮칠게요.”
“시작하지.”
일조를 둥글게 포위한 광무대가 진무립을 따라 공격을 시작했다.
“허허.”
헛웃음을 흘린 강유월도 슬며시 끼어들었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강변에 울려 퍼지며 적절한 비명까지 쏟아내니 제법 그럴싸한 전투가 연출됐다.
잠시 후, 북쪽에서 망을 보던 단려화는 혈의인들을 발견하곤 즉시 전음을 보냈다.
[왔어요.]진무립은 검면으로 당우의 검면을 강하게 후려쳤다.
“크윽!”
신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십여 명의 혈의인들이 일조의 후방으로 합류했다.
뭔가를 생각하고 뛰어들기엔 적의 숫자가 너무 압도적이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병기를 빼 들었다.
“전부 죽여라!”
전장에 뛰어들며 일조의 곁을 스쳐 지나간 혈천대는 그들이 풍기는 기운에서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나 광무대는 그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고 공격을 퍼부었다.
혈의인들의 돌격에 자연스럽게 후방으로 빠진 일조원들은 즉시 소매를 걷었다.
이어서 서로 시선을 교환한 그들은 거침없이 적의 후방을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후방의 기습, 혈의인들은 동시에 비명을 터트렸다.
“크악!”
이변을 알아챘지만 늦었다.
숨어있던 단려화와 좌우의 진무립, 강유월까지 합세하니 적은 고작 일다경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혈천대 부대주 요광이 마지막 남은 스물다섯의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죽었어야 할 사천맹 무인들은 멀쩡히 서 있고 지금쯤 임무를 마쳤어야 할 부하들은 주검으로 식어간다.
혈의를 입고 저들과 어울려 서 있는 이들을 보니 함정에 제대로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광무대는 순식간에 그들의 주변을 에워쌌다.
대노한 요광이 시퍼런 살기를 쏟아냈다.
“네놈들 따위가 감히!”
“꽤 재밌는 싸움이었다.”
달빛 아래로 걸어 나온 진무립이 싱긋 웃었다.
“그만 끝내자.”
진무립의 돌진을 시작으로 광무대가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거친 쇳소리가 강변의 물결치는 소리를 뚫고 밤하늘로 솟구친다.
유인책이 먹힌 덕에 지금까지 마주친 적들은 열둘에서 열셋이었으나 눈앞의 적은 그 두 배다.
광무대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싸움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엇!”
앞서 나간 조영성이 등으로 혈의인 한 명이 달려든다.
전신의 내력을 끌어올린 이환이 지면을 박차고 나아가 도를 휘둘렀다.
카앙!
혈의인의 검신이 이환의 도에 가로막히며 육중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무 나가지 마시오!”
그제야 주변을 돌아본 조영성은 자신이 이환의 도움으로 살아남았음을 인지했다.
“고맙군.”
감사를 표한 조영성의 검이 이환과 싸우는 혈의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마도림의 무인들이 당가의 무인을 돕는가 하면 아미의 제자가 마도림을 도와 적을 공격했다.
중소방파 무인들이 사대거파의 무인들과 합공을 펼치기도 하고 그 반대의 상황도 수시로 벌어졌다.
목숨을 건 전투에서 사문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전장에서 점점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진짜 동료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늙은이도 밥값은 해야겠지.”
갈 지자로 보법을 전개한 강유월은 순식간에 적을 돌파해 부대주 요광의 앞까지 도착했다.
“강유월!”
“자네가 내 상대를 해주어야겠네.”
다른 혈의인들은 모두 광무대에게 발이 묶인 상태.
강유월의 맹공에 연신 밀려나는 요광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주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은 이미 당했다는 것이다. 차라리 후일을 도모할 것을!’
지독한 후회가 밀려왔으나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강유월. 적어도 네놈만큼은 끌고 가야겠다!”
오싹한 사기가 솟구치며 수비를 도외시한 요광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강유월은 그가 상대할 만한 무인이 아니었다.
혈야광인을 상대할 때 사용했던 만천검방의 초식을 전개한 강유월은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해냈다.
혼신을 쏟아부은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일순 요광의 두 눈에 허탈한 빛이 스쳐 갔다.
그 찰나의 공백을 놓치지 않은 강유월의 검은 순식간에 그의 목을 꿰뚫었다.
“컥!”
가면 사이로 반짝이던 눈동자가 빠르게 빛을 잃어간다.
“먼저 가시게.”
목에 박힌 검을 뽑아내자 요광의 몸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치열했던 전투의 끝.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전장을 달궜던 열기에 차분함을 입힌다.
먼저 입을 열어 이 기묘한 정적을 깨는 이는 없었지만 그들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혈교와의 실전에 나섰고 승리했다는 것을.
진무립이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부상자는?”
그제야 정신이 든 조장들은 조원들을 살폈다.
“일조, 경상자 다섯. 사망자는 없습니다.”
당소소를 시작으로 보고가 이어졌다.
무려 절반 가까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지만 중상을 입은 자나 사망자는 없었다.
진무립과 단려화, 강유월이 이들의 빈틈을 적절히 메우며 싸웠기 때문이다.
진무립은 흡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
“다들 수고했다. 모두가 함께 일궈낸 승리다.”
열세를 뒤집고 거둔 기적적인 대승.
대주의 승리 선언과 함께 가슴 속에서 들끓던 환희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우와아-!”
“이겼다!”
들뜬 함성이 밤하늘로 솟구치며 오싹한 전율이 이들을 사로잡았다.
산내촌에서의 전투와 달리 이번엔 모두가 함께 이룬 승리였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그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했다.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강유월은 흐뭇하게 웃으며 착검했다.
“기어코 이 아이들이 해냈구나.”
긴장이 풀리니 눈앞이 어지러워진다.
아직 완벽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까닭이다.
그러나 여기서 쓰러져 기쁨을 만끽하는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았다.
나무에 천천히 기대앉은 강유월은 진무립을 눈에 담았다.
산내촌의 전투에서 오늘의 사투까지.
무엇하나 진무립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다.
날카로운 판단력과 적기를 놓치지 않는 행동력, 적의 심리를 꿰뚫는 심계와 후기지수로서는 보기 드문 고강한 무위.
위에 설 무인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가진 아이다.
강유월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무림에 또 하나의 용이 등장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