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62
◈ 62화. 복귀
광무대는 죽은 혈의인들을 땅에 묻었다.
흙으로 핏자국을 덮고 전투 흔적까지 지웠을 무렵엔 어느덧 밝은 달이 기울어가고 있었다.
전투의 흥분이 가라앉자 비로소 추위가 몰려온다.
진무립은 열 개의 모닥불을 피웠다.
“내일은 마을에서 푹 쉬게 해줄 테니 오늘은 이 정도에 만족해라.”
조영성이 콧잔등을 슥 문질렀다.
“무인이 어찌 누울 곳을 가리겠습니까?”
출발할 때만 해도 노숙을 그렇게 싫어하던 조영성이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가장 먼저 불 가에 앉았다.
비단 그만의 변화가 아니었다.
이동 중에 쉬거나 잠을 청할 때 끼리끼리 어울리던 이들이 조를 구분 짓지 않고 어울려 앉는다.
서로를 향한 눈빛과 말투에서 전에 없던 끈끈함도 엿보인다.
그들은 서로의 부상을 봐주기도 하고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는 등 진짜 동료가 되어가고 있었다.
부하들을 둘러본 진무립은 강유월의 맥을 짚는 당소소에게 다가갔다.
“어때?”
“중독의 영향은 없어요. 다만 무리해서 움직인 탓에 많이 지치신 모양이에요.”
“내가 곁에 있을 테니 너도 가서 쉬어라.”
“하지만 대주는······.”
“괜찮으니 가서 쉬어.”
잠시 고민하던 당소소는 강유월의 옆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았다.
“여기에서 쉴게요.”
무공의 특성상 후방에서 싸워온 당소소는 누구보다 많이 움직이고 숨 가쁘게 싸워온 이가 진무립이라는 걸 안다.
진무립의 시야는 언제 어디에서든 항상 전체를 향해 열려 있었다.
눈앞의 적과 싸우면서도 부하들이 위기에 빠지면 귀신같이 움직여 빈틈을 메운다.
때론 과연 저렇게 움직여도 될까 싶을 정도였다.
‘대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같은 임무를 맡았더라도 오늘 같은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
일단 자신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누구를 떠올려봐도 진무립보다 완벽하게 임무를 해낼 이는 없을 것 같았다.
일렁이는 모닥불의 열기가 전신에 노곤함을 선물한다.
하지만 그녀는 잠들지 않았다.
무거운 정적 속에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이는 없었지만 잠들지 않은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진무립이 눈감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잠을 청했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진무립이 있었기에 오늘의 승리가 가능했다는 것을.
* * *
광무대가 사천맹으로 복귀했다.
마도림의 합류로 새롭게 탄생한 운룡각.
첫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광무대에게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전투가 있었던 건가?”
“첫 임무에서? 단순한 조사 임무가 아니었단 말인가?”
헤지고 피 묻은 의복에 전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니 광무대가 전투를 벌이고 돌아왔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짐작할 수 있었다.
밝고 당당한 표정을 미루어보아 이들이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다는 사실도.
중목원 앞에 도착하자 강유월이 말했다.
“보고는 내가 먼저 가서 하겠네. 자네는 부하들과 운룡각에 돌아가 사람을 보낼 때까지 쉬고 계시게.”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일세.”
그의 안색은 전보다 한결 나아진 상태였다.
강유월이 혈야광인의 관을 들고 사라지자 광무대는 쏟아지는 시선 속에 운룡각으로 복귀했다.
소식을 듣고 나온 흑영대와 금호대의 일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진무립이 우가산에게 말했다.
“대주 진무립 외 일흔여섯 명. 임무를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모두의 표정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나 눈빛만큼은 전과 비할 수 없이 형형했다.
‘소공자가 또 뭔갈 했구나.’
우가산은 빙그레 웃으며 광무대의 면면을 살폈다.
“모두 수고 많았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오늘은 들어가서 푹 쉬게.”
“예.”
진무립이 우가산을 따라 중앙 전각으로 들어가는 가운데 멀리서 지켜보던 진설란이 당소소에게 다가왔다.
“고생했구나. 힘들지 않았니?”
“저는 별로 한 일이 없어요.”
“응?”
한 일이 없는 것치곤 옷에 묻은 핏자국이 심상치 않다.
당소소는 빙그레 웃었다.
“마도림의 소공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 조금 쉬어야겠으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멀어지는 당소소를 응시하던 진설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토록 금호대를 떠나기 싫어했던 아이가 단 한 번의 임무로 다른 사람처럼 변했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들어간 이환이 좁은 복도에 접어들었다.
‘옷부터 갈아입고 씻어야겠군.’
모퉁이를 돌아가던 이환이 반대편의 인기척에 비켜서는 순간, 누군가 나타나더니 어깨를 부딪쳐왔다.
“엇.”
한발 물러선 이환의 앞에는 잔뜩 찡그린 금호대 조장 국철영이 있었다.
“어딜 보고 다니는 거냐?”
청성의 제자인 그는 평소 당중호와 어울리며 중소방파 후기지수들을 고깝게 여겨온 것으로 유명했다.
이환은 습관처럼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이환의 어깨에 올라갔다.
“좁은 복도에서 빨리 걸어온 놈이 잘못이지 뭐가 미안해?”
반항적인 말투의 주인은 바로 조영성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시기 청성파에 입산한 동문으로 평소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국철영이 조영성을 쏘아보며 말했다.
“근본 없는 놈을 따라다니더니 간이 부은 게냐?”
말싸움에 쉽게 밀릴 조영성이 아니다.
“마도림주의 조카가 근본이 없다? 그럼 고아 출신으로 구걸하다 청성에 거둬진 네놈의 근본은 어디에 있나?”
조영성이 치부를 건들자 국철영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뭐야?”
그때 그들의 뒤로 누군가 나타났다.
“비켜라.”
싸늘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금호대주 당천이었다.
주먹을 부르르 떤 국철영은 화를 억누르고 비켜섰다.
길이 열리자 조영성은 이환을 데리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국철영이 이를 갈며 말했다.
“대주. 광무대란 놈들의 건방이 하늘을 찌릅니다. 언제 한 번 손을 쓰는 게 좋을 겁니다.”
“국철영.”
당천의 날카로운 눈빛에 국철영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공손해졌다.
“예.”
“엉뚱한 곳에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둘러라.”
“······.”
당천이 사라지자 국철영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저 인간은 대체 누구 편이야?’
방으로 들어온 이환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소.”
“고맙긴, 그놈이 잘못한 건데. 피곤할 텐데 쉬어라.”
밖으로 나가던 조영성은 문을 열다 말고 슬쩍 돌아보았다.
“너도 나와 같은 조장인데 앞으로는 편하게 말해.”
조영성이 나가자 침상에 걸터앉은 이환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같은 조장이라.”
북천도문의 후계자라곤 하나 자신은 힘없는 중소방파 출신, 상대는 사대거파의 후기지수.
진무립이 오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침상에 드러누운 이환은 변화를 체감하며 빙그레 웃었다.
* * *
모처럼 진무립과 마주 앉은 우가산이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광무대의 표정이 많이 바뀌었습니다그려.”
진무립이 짓궂게 웃었다.
“내 밑에서 몇 번 구르다 보면 다들 그렇게 변하지.”
“허허. 하여간 소공자는.”
헛웃음을 흘린 우가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무립이 물었다.
“용추와 유대하는?”
“소공자가 떠난 뒤로 폐관하듯 지하 연무장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더이다.”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혹시 혈교의 실혼인에 대해 아는 게 있나?”
마도림과 혈교는 기질이 판이하게 다르지만 아주 오래전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만큼 정보가 없진 않을 것 같았다.
“설마 이번 임무에서 실혼인을 만났소이까?”
“혈야광인이라고 하더군.”
장원에서 적의 이야기를 듣고 서진환이 기록해 보낸 전서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다.
진무립은 임무의 모든 과정을 차분히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잠시 기억을 더듬던 우가산의 뇌리에 불현듯 스치는 것이 있었다.
“분명 본 적이 있는 이름이외다.”
마도림의 역사를 기록한 서고에서 분명 같은 이름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엔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실혼인이었기에 많은 기록이 남은 것은 아니라오. 다만 혈야광인을 기록한 부분의 마지막 줄엔 이렇게 쓰여 있었지.”
마른 입술을 핥은 우가산이 나직이 목소리를 깔았다.
“불가능을 뚫고 완성에 도달한다면 능히 천하를 피로 적실 괴물.”
“괴물이라······.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로군.”
자신이 만난 혈야광인이 실패작이라면 완성작은 그보다 더한 놈일 가능성이 크다.
“백오십여 년간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연구를 거듭했다는 건가?”
“그것을 연구하기 위해 천산을 떠나 혈교를 세운 자들이라오.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을 게요.”
진무립은 혈야광인과의 싸움을 복기했다.
강철보다 단단한 뼈에 심장을 갈라도 죽지 않는 괴물.
마지막에 목을 잘라내긴 했으나 그것이 약점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과연 맹주는 어떻게 나올까?’
그때 복도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문 앞에서 멈췄다.
“각주님과 대주 두 분을 중목원으로 모시라는 맹주님의 전언이 계셨습니다.”
“알겠네.”
진무립과 우가산이 운룡각을 나설 무렵, 중목원의 분위기는 제법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천맹의 수뇌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강유월은 혈야광인의 시신에 검을 내리쳤다.
캉!
뼈에 부딪힌 검신에서 불꽃이 튄다.
어디선가 헛웃음이 들려온다.
“허허, 고놈 참 단단하군.”
대수롭지 않은 그 목소리에 강유월이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놈들은 서장의 험지에서 괴물을 만들고 있었소이다. 광무대주의 활약으로 시신을 가져올 수 있었으나 절대 간과해선 안 될 일이외다.”
“진인께서 잡으신 게 아니란 말이오?”
“그 아이가 잡았다는 것은······.”
작은 술렁임에 강유월은 자신의 실수를 후회했다.
‘차라리 내가 잡았다고 말해야 했거늘.’
자신이 어렵게 잡았다고 했다면 이들도 경각심을 가질 테지만 사대거파도 아닌 마도림의 후기지수에게 잡혔다고 한다면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맹주 한천월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모두 물러나 보시오.”
다른 이도 아니고 자신의 사제가 하는 말이다.
한천월은 강유월이 절대 빈말을 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검을 들고 내력을 끌어올린 한천월은 혈야광인의 다리를 강하게 내려쳤다.
콰앙!
거친 폭음과 함께 시신이 들썩이더니 날카로운 검신이 뼈를 살짝 파고들고 튕겨 나왔다.
“음.”
나직이 침음한 한천월은 미간을 좁혔다.
비각주 당문경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맹주님. 어떻습니까?”
비록 진무립이 잡았다곤 하나 이번 일은 사천 무림의 안위와도 직결된 일, 그는 이번 일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한천월이 답했다.
“내 직접 본 것은 아니나 심장이 갈려도 죽지 않고 뼈마저 이토록 단단하다면 일반 무인들이 상대하기엔 매우 껄끄러울 걸세. 사제의 말을 간과해선 안 될 것 같군.”
그때 문밖에서 위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룡각주와 광무대주가 도착했습니다.”
“문을 여시게.”
이윽고 중목원의 대전에 도착한 두 사람이 정중히 예를 갖췄다.
우가산이 말했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서 오시오.”
주변을 둘러본 우가산은 쓴웃음을 삼켰다.
자신을 제외한 사천맹의 수뇌들이 모두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소공자에게 듣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이지.’
그게 아니라면 끝내 운룡각을 외면했을 것이다.
한천월은 진무립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자네가 이번에 큰 공을 세웠다지. 고생이 많았어.”
혈야광인을 잡고 일백의 혈의인들을 손실 없이 잡아낸 것은 감출 수 없는 큰 공이다.
제아무리 껄끄러운 진무립일지라도 치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한천월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광무대주가 이 광인을 잡았다고 들었네.”
“혈야광인이라고 합니다.”
“혈야광인이라.”
수염을 매만지던 한천월이 다시 물었다.
“직접 상대한 소감을 듣고 싶군.”
“솔직한 소감을 원하십니까?”
“자네가 느낀 그대로를 말해보게.”
주변을 돌아보니 다수의 표정엔 긴장감이 보이질 않았다.
강유월이 이곳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짐작이 간다.
‘목이 떨어져도 정신을 못 차릴 인사들이 태반이로군.’
웃음을 삼킨 진무립이 가슴을 펴고 말했다.
“이런 놈이 오십 구만 있으면 사천 무림은 피바다가 될 겁니다.”
당문경이 미간을 좁히고 물었다.
“진심인가?”
“예.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게 있습니다.”
“그게 뭐지?”
진무립의 목소리가 대전 바닥에 무겁게 깔렸다.
“노사께서 상대하시고 제가 마무리한 이놈이 실패작이란 겁니다.”
그 말엔 여러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당문경은 곧장 알아챘다.
‘완성된 광인이라면 이보다 더욱 까다로운 상대가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패작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아직 혈교의 실험이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거겠지.’
짧은 정적 끝에 강유월이 입을 열었다.
“광무대주의 말대로입니다. 하여 이 자리에서 한 가지 청을 드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