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64
◈ 64화. 죽여줄까?
입구에서 기다리던 적모개는 단려화와 용추를 대동한 진무립이 나타나자 히죽 웃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이오. 소공자.”
적모개를 위아래로 훑어본 진무립은 그의 말끔한 차림에 웃음을 터트렸다.
“신수가 훤해졌네?”
평소 즐겨 입던 누더기는 어디로 갔는지 때깔 고운 비단옷에 장포까지 두르고 있었다.
적모개가 인상을 구겼다.
“지부장이 공짜로 주길래 입은 것뿐이오.”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지.”
“예.”
사천맹을 나선 그들이 성도로 향하는 숲길에 접어들었다.
“혈교에서 새로운 실혼인을 실험하는 모양이더군.”
“설마 무혼광인이 아니었소?”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이 임무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혈야광인?”
적모개의 표정이 왠지 심상치 않았다.
“뭐 아는 게 있나?”
“왠지 내가 소공자를 찾아온 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성도의 북문을 지난 그들은 화제를 돌려 그간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객잔에 들어섰다.
점심 손님이 빠져나간 객잔은 텅 빈 상태.
점소이가 주문을 받고 돌아가자 적모개의 눈빛이 달라졌다.
“소공자.”
나직한 목소리가 왠지 심상치 않다.
“무슨 일이야?”
“서장에 보냈던 제자들에게서 소식이 끊겼소.”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될 듯 보이자 단려화는 즉시 점주를 찾았다.
“대화가 끝날 때까지 객잔을 빌려야겠어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은자 열 개가 손안에 쥐어지자 점주는 넙죽 고개를 숙였다.
“문을 걸어 잠그겠습니다.”
문에 빗장을 채운 점주는 즉시 부엌으로 사라졌다.
용추가 문 안쪽을 지키고 선 가운데 진무립이 물었다.
“연락이 끊겼다는 건?”
적모개가 나직이 말했다.
“파견된 제자들은 그동안 일정 주기로 연락을 취해왔었지. 그런데 이번에 연락이 와야 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소식이 없소.”
진무립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말은······.”
적모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장의 전쟁이 시작된 모양이오.”
제자들로부터 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그만큼 경계가 삼엄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모개는 전쟁이 일어났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진무립이 나직이 물었다.
“제자들의 퇴로는?”
“사전에 동선을 확보해두긴 했으나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으니 확신하기 어렵소.”
적모개는 사뭇 비장한 얼굴로 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서장의 정세를 적어두었소. 당분간 만나지 못할 거요.”
“서장으로 가려는 모양이군.”
“이 모자란 분타주만 믿고 사천까지 따라온 놈들이오. 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지.”
부하들의 걱정에 그 위험한 서장까지 가려고 한다.
진무립은 이런 사내가 싫지 않았다.
“기다려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소.”
진무립은 적모개의 어깨를 눌러 억지로 앉혔다.
“지금 가면 할 수 있는 건 있고?”
“······.”
지금으로선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진무립은 목소리를 낮췄다.
“곧 천무대가 서장으로 넘어갈 거다. 혈야광인의 실험을 막기 위해서 말이지.”
“천무대가 간단 말이오?”
“그래. 그리고 우리 운룡각에선 후방지원을 맡기로 했지. 널 데려가 주마.”
“후방지원이면 어디까지 들어가는 거요?”
“일단은 창도 인근까지는 갈 거다.”
창도는 대설산맥을 넘어가면 나오는 가장 큰 마을로 서장과 사천을 잇는 요충지였다.
잠시 고민하던 적모개가 말했다.
“괜찮군. 창도에는 우리 개방의 안가가 있소.”
“거지 주제에 안가도 있냐?”
진무립이 고개를 갸웃하자 적모개는 씩 웃었다.
“마을에 오십 장 정도 진입해서 우측으로 꺾으면 개울 위로 돌다리가 있지. 다리 밑이 우리 안가요.”
“······보통 그런 걸 안가라고 부르진 않아.”
“그런데 일단은 이라는 말이 걸리는군. 창도에서 더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인가?”
진무립의 미소가 왠지 의미심장했다.
“뭐 상황에 따라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진무립이 적모개와 객잔에서 대화를 나눌 무렵, 비각으로 한 통의 전서가 도착했다.
비각주 당문경은 전서를 확인하기 무섭게 최상층으로 달려갔다.
“맹주님. 서장의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한천월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패였다.
“이 겨울에 말인가?”
서장의 추위는 사천보다 혹독하다.
겨울이 지난 뒤에야 전쟁이 벌어질 줄만 알았던 두 사람이었기에 지금의 소식은 다소 의외였다.
“혹시 우리가 혈야광인의 시신을 입수한 것과 관련이 있겠는가?”
당문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보기엔 너무 빠릅니다. 서장과의 거리가 있는 만큼 이제 막 소식을 입수했을 겁니다.”
한천월은 이마를 매만졌다.
“이거 골치가 아프게 됐군. 하필 출정을 앞두고 전쟁이라.”
당문경이 눈을 빛냈다.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건 무슨 말인가?”
“혈교의 시선이 포달랍궁에 집중된다면 그만큼 천무대의 운신이 편해질 겁니다. 지금이 움직일 적기입니다.”
한천월은 이해했다는 듯 미소지었다.
“그렇군. 비록 혈교가 우위에 있다곤 하나 포달랍궁도 만만치 않은 상대인 만큼 외부에 눈을 돌릴 여유는 없겠지. 천선각과 운룡각에 즉시 소식을 전하고 이틀 안에 준비를 끝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 * *
적모개와 헤어진 진무립이 운룡각에 복귀했다.
때마침 한천월의 명이 전해진 운룡각은 물자 정비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중앙 전각 앞마당은 마치 이삿짐을 쌓아둔 것처럼 수레와 나무궤짝으로 가득했다.
진무립이 짐을 정리하는 신평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게 다 뭐냐?”
“조원각(助援閣)에서 천무대가 사용할 물자를 보내왔습니다. 운룡각이 사용할 물자도 곧 보내준답니다.”
궤짝을 슬쩍 열어보니 질긴 천막과 장대, 간이 침상에 두꺼운 이불까지 들어 있었다.
진무립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 새끼들 우리가 뒷산으로 놀러 가는 줄 아는 거야?”
신평이 어색하게 웃었다.
“천무대는 원래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이렇게 가져갑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진무립은 곧장 우가산의 집무실을 찾았다.
“아주 가관이야.”
무슨 말인지 곧장 이해한 우가산이 실소를 머금었다.
“원래 그리 다닌다는데 어쩌겠소?”
“그건 그렇다 치고 함께 갈 이들은?”
“조금 전에 통보했소이다. 곧 연무장에 집결할 것이오.”
광무대를 비롯해 흑영대와 철검대, 금호대는 각기 일흔다섯 명의 무인을 보유 중이다.
진무립과 우가산은 각 대에서 대주와 부대주, 그리고 조장을 일곱 명씩 차출하기로 결정했다.
우가산이 물었다.
“그런데 말이외다. 과연 금호대가 소공자의 말을 순순히 들을 것 같소이까? 차라리 다른 곳에서 인원을 더 차출하는 게 어떻겠소?”
“그건 안 돼.”
“이유가 뭐요?”
“당천이 있어야 고기라도 먹고 다닐 거 아냐.”
“······.”
확실히 일행에 당천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지원에 신경을 써줄 것이다.
우가산은 당가의 소가주이자 사천 무림에서 가장 유망한 후기지수를 단순히 그런 이유로 데려간다는 발상에 웃음이 나왔다.
“중목원에서 이틀 안에 준비를 마치라고 연락을 취해왔소이다.”
“비각의 정보가 생각보다 빠른 모양이군.”
“서장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걸 알고 계시었소?”
“조금 전에 적모개를 만나서 들었지. 적모개와 동초개를 데려갈 생각이다.”
“다른 이들이 알면 뒷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오.”
진무립은 피식 웃었다.
“그거 아니어도 뒤에서 내 얘길 하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우가산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건 그렇군.”
그때 문밖의 인기척이 가까워졌다.
“각주님. 선별 인원이 연무장에 집결했습니다.”
“곧 가겠네.”
우가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십시다.”
연무장에 도착하니 각 대의 인원들이 모두 집결해 있었다.
단상에 올라선 우가산이 금호대주 당천을 보며 말했다.
“자네는 좀처럼 얼굴 보기가 힘들군.”
“······.”
“혹시 임무에 참여하기 싫은 겐가?”
“아닙니다.”
무표정한 얼굴, 짧고 간결한 대답에 곁에 선 부대주 진설란은 가슴이 콩닥거렸다.
“각주님. 죄송합니다. 대주가 사교성이 좀 떨어지는 편이라서 그렇지 악의가 있는 건 아닙니다.”
우가산도 당천과 몇 차례 면담을 하며 그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알고 있네. 다들 주목하게.”
손뼉으로 시선을 끌어모은 우가산이 임무 내용을 설명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자네들이 할 일은 후방에서 천무대를 지원하고 그들과 사천맹의 소통을 돕는 일이라네.”
우가산은 진무립을 바라보았다.
“이번 임무의 총 지휘는 광무대주에게 맡길 것이네.”
그 말에 금호대 쪽이 술렁이더니 조장 국철영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어째서 우리가 저자의 명령을 따라야 하오?”
그 거만한 태도에 진설란이 다그치듯 외쳤다.
“철영!”
우가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어째서냐고 물었는가?”
우가산의 싸늘한 목소리가 무겁게 깔리자 국철영은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
단상에서 내려온 우가산이 국철영의 앞에 멈춰섰다.
똑같이 예의가 부족하더라도 악의가 없는 당천과 이놈은 다르다.
우가산의 우악스러운 손이 국철영의 턱을 움켜쥐는 순간, 그의 전신에서 천중수보다 무거운 기운이 쏟아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장내를 잠식했다.
“큭······.”
육중한 기운이 전신을 옥죄어오자 국철영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이 정도라니······.’
우가산이 발산하는 기세는 청성의 장로 이상으로 강렬했다.
매섭게 부릅뜬 우가산의 두 눈이 국철영의 떨리는 눈동자를 담았다.
“어리광을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네. 나는 정했고 자네는 따르면 돼. 그게 싫다면 이곳에서 나가면 되는 게야.”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강경한 태도와 섬뜩한 목소리는 모두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황한 진설란이 다급하게 달려가 용서를 빌었다.
“죄송합니다. 각주님. 제가 단단히 타이를 테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국철영을 노려보던 우가산은 잠시 후 손을 풀고 냉정히 돌아섰다.
“출발은 이틀 뒤 저녁. 오늘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내일 하루는 쉴 것이다. 해산.”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던 국철영은 우가산이 사라진 뒤에야 가쁜 숨을 토해냈다.
“허억!”
곁을 스쳐 지나가던 진무립이 비웃듯 말했다.
“주제 파악이 서투른 놈이로군. 오래 살긴 글렀어.”
어느새 다가온 조영성이 히죽 웃었다.
“저도 동의합니다.”
“감히!”
모두의 앞에서 당한 굴욕에 울화가 치민 국철영이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진무립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퍽!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국철영의 복부에 진무립의 주먹이 꽂혔다.
“컥!”
반응할 틈도 없이 쏟아진 일격에 국철영의 허리가 낫처럼 휘었고 이어서 진무립의 팔꿈치가 그의 등판을 내리찍었다.
콰직!
단 두 번의 공격에 국철영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크윽!”
그 순간 금호대의 조장들이 일제히 병기를 뽑아 들고 진무립을 포위했다.
“멈춰라!”
그러자 조영성을 비롯한 광무대의 조장들이 순식간에 진무립을 보호하듯 주변을 지키고 섰다.
조영성이 씩 웃으며 말했다.
“맞을 짓을 한 놈이 맞은 건데 한번 해보자는 거지?”
진설란이 다급히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다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당장 무기를 집어넣으세요.”
그녀와 마주 선 당소소가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부대주. 미안해요. 하지만 잘못은 철영에게 있어요.”
“그건 알지만 그래도 같은 동료끼리 이러면 안 돼.”
진무립이 말했다.
“동료에게 이러는 건 안 되고 일개 조장이 각주에게 까부는 건 상관없나?”
진설란은 그제야 진무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천맹에서 마도림을 대표하는 우가산이 수하들 앞에서 대놓고 무시를 당했으니 화가 난 것이다.
날카로운 일침에 할 말을 잃은 진설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한편 진무립을 지키고 선 유대하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진무립이 세상에서 가장 자비 없고 무서운 인간인 줄만 알았던, 중경 서북로를 접수할 때의 기억이었다.
‘절대 찍혀선 안 될 사람한테 찍히다니.’
쭈그려 앉아 국철영의 목을 잡은 진무립이 내력을 끌어올렸다.
“크으으······.”
목을 타고 난생처음 경험하는 얼음장 같은 한기가 밀려들었고.
더불어 쏟아지는 지독한 살기에 국철영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까부는 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이어서 소름 돋을 만큼 오싹한 목소리가 모두의 귓속을 서늘하게 파고들었다.
“그런 눈치로는 오래 못 가 뒈질 것 같은데 그냥 여기서 죽여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