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7
◈ 7화. 내게 무림은 생존이다
진무립이 보낸 봇짐에 든 것은 이불에 넣는 목화솜이었다.
육무봉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걸 왜 나한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에게 이런 걸 보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
유대하는 진무립의 지시로 하루가 멀다 하게 철사방의 장원을 들락거렸다.
의미 없는 선물을 들고.
심지어 진무립이 직접 철사방의 기루를 찾아가 거나하게 술을 마시는 일도 있었다.
며칠간 그 의도를 파악하고자 애쓰던 육무봉은 거리에서 무화방주 추광도와 마주쳤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야.”
추광도의 뱁새눈이 호선을 그리며 휘어지자 육무봉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냐?”
“서북로에 소문이 파다하게 깔렸는데 모른 척할 셈이냐?”
“소문?”
“철사방이 마도림과 손을 잡았다는 소문 말이다. 나야 네놈이 그렇게 나와주면 기쁘지.”
눈을 멀뚱히 뜨고 추광도를 쳐다보던 육무봉은 그제서야 진무립의 의도를 깨달았다.
“무, 무슨 개소리냐? 난 마도림에 손을 내민 적이 없다!”
“그래? 뭐 상관없겠지.”
몸을 돌린 추광도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사실로 만들면 되니까.’
소문을 낸 장본인은 바로 추광도 자신이었다.
***
객잔 구석에 앉아 눈을 감은 진무립의 앞에 유대하가 앉았다.
며칠간 의미 없는 물건을 들고 철사방을 찾았던 유대하는 슬슬 지겨워진 참이었다.
“오늘도 철사방에 가야 합니까?”
“아니. 오늘은 안 가도 돼. 그보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왔습니다.”
“그래?”
눈을 뜬 진무립의 시선이 닿은 곳엔 씩씩거리며 들어온 철사방주 육무봉이 있었다.
진무립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쟤 기다린 거 아닌데.”
육무봉이 버럭 소리쳤다.
“진무립!”
“뭐 저놈이 올 때가 되기도 했지.”
진무립은 개의치 않고 부엌을 향해 소리쳤다.
“부교야! 손님 왔다. 술 좀 내와라!”
안에서 부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진무립의 태연한 태도는 육무봉의 화를 돋우었다.
“누가 손님이냐!”
“우리 육방주 얼굴이 아주 시뻘건 게 자칫하면 쓰러지시겠어. 어서 이리 앉아.”
싱긋 웃은 진무립은 손수 육무봉의 의자를 빼주었다.
탁자를 쾅 소리 나게 걷어찬 육무봉이 말했다.
“내가 네놈을 왜 찾아왔는지 아느냐?”
“나와 술 한잔하려고 온 거 아니었나?”
눈을 시퍼렇게 부릅뜬 육무봉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네놈이 아주 나를 졸로 보는구나. 감히 그따위 모략으로 나를 음해해? 이 육무봉이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지 보여주마.”
명분이 없던 며칠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진무립의 계략을 알게 된 이상 대검문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게 육무봉의 생각이었다.
“대화의 여지는 없는 거야?”
“없다.”
“술도 안 마시고?”
“술병으로 네놈 대가리 깨러 왔다.”
육무봉의 단호한 태도에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이 말했다.
“그럼 할 수 없지. 대하.”
“예.”
자신이 나설 차례임을 직감한 유대하는 검을 들고 일어났으나 이어진 진무립의 말은 그의 생각을 빗나갔다.
“문 닫아.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안에서 못 나가게 지켜라.”
“소공자?”
진무립은 이어서 아단을 불렀다.
“오늘 영업은 여기서 끝이다. 창문 걸어 잠그고 부엌에서 나오지 마라.”
침을 꿀꺽 삼킨 아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쁘게 창문을 닫았다.
진무립이 마치 싸우려는 사람처럼 주먹을 매만지며 나서자 육무봉은 코웃음을 쳤다.
“고작 내 부하 열한 놈도 못 당해낸 주제에 나와 해보시겠다?”
“대검문 똥이나 닦는 주제에 해보긴 뭘 해봐. 멍청한 새끼야.”
진무립의 대담한 도발에 육무봉은 황당하다는 듯 쳐다봤다.
“뭐라고?”
“도망갈 생각은 버려라.”
진무립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얼굴은 안 때릴게.”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문 안쪽에 선 유대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꺼지듯 사라진 진무립의 신형이 육무봉의 코앞에 나타난 것이다.
‘내가 움직임을 놓쳤다고?’
비록 예전처럼 적과 싸울 수는 없었으나 수련해온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안력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던 유대하에게 진무립의 움직임은 경악 그 자체였다.
그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반응조차 못 한 육무봉의 상체가 낫처럼 꺾였다.
“컥!”
진무립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현실이 느껴지나?”
육무봉은 고통도 고통이지만 놀라움이 더욱 컸다. 얕잡아보던 상대에게 일격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육무봉은 이를 악물고 반격을 하려 했으나 진무립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급히 고개를 돌리는 육무봉의 귓가에 얼음장보다 차가운 목소리가 틀어박혔다.
“소리는 지르지 마라. 네놈 비명이 객잔 밖으로 나가면 철사방에 살아있는 것은 전부 죽인다.”
섬뜩한 경고가 끝나기 무섭게 육무봉의 허리가 꺾어졌다.
“끅.”
일방적인 구타가 시작되자 유대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육무봉은 본 림과 대검문을 제외하면 중경에서 한 손에 꼽힐 만큼 강한 자다. 저런 자가 반격의 엄두조차 못 내다니.’
간단한 호신술에 십 년에 불과한 내력을 가졌다고 알려진 진무립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보여주는 진무립의 움직임은 마도림에서 보아온 어떤 고수보다 날렵하고 예리했다.
‘저게 호신술이라면 천하제일의 호신술일 거다.’
유대하는 모두가 진무립에게 속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든 반격하고자 몸부림치던 육무봉은 일다경이 지나자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냐!’
공격에 내력이 깃든 것 같지도 않았다.
머리가 아닌 다른 곳을 맞았는데 순간순간 정신이 날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진무립의 공격이 매섭다는 증거였다.
일각이 지나자 육무봉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크으으!”
제법 큰 신음이 새어 나오자 진무립은 마침내 구타를 멈췄다.
“유대하.”
“······예.”
“이 새끼 잘 감시하고 있어라.”
“어디 가십니까?”
“내 말을 어겼으니 철사방을 지워야겠다.”
유대하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이 사람은 진심이다.’
진무립의 목소리에 깃든 오싹한 살기는 이제껏 유대하가 경험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진무립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리자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육무봉은 다급하게 그의 바짓단을 잡았다.
“내, 내가 졌소. 제발 철사방은······.”
육무봉의 눈에 깃든 것은 형용할 수 없는 공포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웠는지 유대하도 조심스럽게 거들었다.
“소공자. 비명이 객잔 밖까지 들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잠시 턱을 매만지던 진무립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의자에 앉았다.
“그럼 철사방은 잠시 살려두지.”
육무봉은 마치 지옥 불에 떨어지기 직전 동아줄을 잡은 사람처럼 안도했다.
“고맙······ 소.”
가까스로 내뱉은 말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육무봉은 정신을 잃었다.
“아단아. 술 한 병 내와라.”
숙수 부교와 함께 살짝 열린 문틈으로 초조하게 지켜보던 아단이 움찔하며 외쳤다.
“예!”
곧이어 아단이 술을, 부교가 간단히 만든 안주를 들고 오자 진무립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희는 오늘 아무것도 못 본 거야.”
미소에 깃든 광기를 엿본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입을 다물겠습니다.”
“칼이 들어오면 다시 생각해봐.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거든.”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술상을 차리고 부엌으로 돌아가자 진무립은 유대하를 불렀다.
“송화루에 가서 관주에게 악공과 기녀를 빌려와라.”
“소공자.”
“뭐냐?”
유대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소공자는 악인입니까?”
아무렇지 않게 철사방을 지우겠다는 엄포와 더불어 이런 상황에서 기녀와 악공을 찾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진무립이 말했다.
“네가 부럽군.”
“그건 무슨 말입니까?”
“무공은 살인 도구. 무인은 살인 병기. 그런 위험한 놈들이 득시글대는 무림에서 선악을 따지는 건 배부른 놈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유대하가 할 말을 찾는 사이 진무립은 말을 이어갔다.
“빌어먹을 새끼들과 같은 무공을 익혔다는 이유로 평생을 쫓기고 숨죽여 살아온 사람들도 있다. 빛 한점 들지 않는 동굴에 숨어 벌벌 떠는 어린아이의 눈을 본 적이 있나?”
영문 모를 말을 내뱉은 진무립은 가득 채운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선이고 악이고 뒈지면 다 소용없다. 내게 무림은 생존이다.”
묘한 씁쓸함이 깃든 목소리. 유대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보면 볼수록 더욱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진무립이 평범한 사냥꾼의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용히 몸을 돌린 그는 객잔 문에 손을 올리고 작게 말했다.
“송화루에 다녀오겠습니다.”
***
작은 것 하나까지 꼼꼼히 살피는 것으로 유명한 관초걸이 군말 없이 악공과 기녀를 내주자 유대하가 물었다.
“관주님.”
“왜 그러는가?”
“소공자는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관초걸의 미간이 좁아졌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일세. 곁에서 모시는 자네가 내게 묻는 건가?”
“오늘······. 아닙니다.”
조금 전의 일을 말하려던 유대하는 함구하라는 진무립의 말을 떠올리곤 입을 닫았다.
“싱겁긴. 요즘 철사방에 자주 드나든다지?”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습니까?”
“무화방도들이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더군. 아마 대검문의 귀에 들어가길 바라는 것이겠지.”
“이간계라는 것을 대검문도 알지 않겠습니까?”
관초걸이 피식 웃었다.
“자네가 아는 것을 소공자가 모르겠는가? 아마 소공자도 그들이 모를 거라 생각하진 않을 것이네.”
“눈치챌 것을 안다면 어째서 이간계를 쓴단 말입니까?”
“그것까지는 모르겠군.”
고개를 저은 관초걸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그런데 말일세. 내 느낌이다만 소공자는 조금 무서운 사람인 것 같네.”
“아닙니다.”
“자네 생각은 다른가?”
진무립의 살기를 떠올린 유대하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훨씬 무서운 사람입니다.”
***
객잔으로 돌아온 유대하는 진무립과 어색하게 마주 앉은 육무봉을 볼 수 있었다.
진무립은 객잔 문이 열림과 동시에 하던 얘길 끊고 말했다.
“웃어라.”
뇌리 깊숙한 곳에 각인된 공포는 육무봉에게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예, 예. 알겠습니다. 하하하!”
자리에서 일어난 진무립은 악공과 기녀들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어서 와라. 연회 시작이다.”
때마침 숙수 부교와 아단이 한 상 가득 요리를 내왔다.
“너희들도 앉아라. 오늘 영업은 끝이다.”
조금 전의 공포에서 벗어난 아단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진무립은 두 사람의 어깨를 눌러 앉혔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놀아보겠느냐?”
유대하는 진무립을 보며 생각했다.
‘이럴 땐 더 없는 호인 같은데.’
진무립은 살기등등했던 조금 전과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진무립이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악공. 시작해라!”
“예. 관주님.”
악공들이 연주를 시작하자 아름다운 여인들이 풍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문밖으로 흘러나간 풍악은 객잔 주변에 은신하고 있던 무인들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
이따금 들려오는 육무봉의 웃음소리에 그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말 철사방이 마도림의 손을 잡았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검문 대신 마도림을 선택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만큼 대검문의 힘은 두려웠다.
‘철사방도 그렇지만 마도림도 이상하군. 대놓고 서북로에 욕심을 부린다면 대검문이 가만있지 않을 것인데 대체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는 거지?’
전력의 차이는 명명백백. 거기에 인근 중소방파의 대다수가 대검문과 손을 잡은 상태다.
전력 손실을 우려해 전면전을 피하는 대검문이었지만 언제까지 관망만 하지는 않을 터, 사내는 마도림의 이번 수가 악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대검문에겐 당장 서북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