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70
◈ 70화. 대주의 생각이 옳았어!
당소소가 무인들을 소집하러 간 사이, 진무립은 가능성을 두 가지로 좁혔다.
하나는 적모개의 말처럼 개방의 제자들이 그곳에 숨어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혈서를 남긴 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뭔가를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혈야광인의 실험장이 있을지도 모른다.
적모개가 혈서에 남은 독분으로 중독될 정도라면 개방도가 당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적사곡은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닷새 정도 거리. 서두르면 뭔가 발견할 수도 있을 거다.’
생각을 정리한 진무립은 품에서 종이를 꺼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멈출 무렵, 진무립의 앞으로 남은 무인 전원이 집결했다.
“대주. 모두 모였습니다.”
당소소의 조심스러운 말에 진무립은 종이를 전낭에 넣고 일어났다.
강유월이 물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는가? 이곳에서 대기하며 사천과의 가교역할을 하는 게 우리 임무 아니었는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게 있습니다.”
진무립은 모두를 눈에 담았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이는 우측으로 나서라. 당천, 육군명, 유대하, 조영성, 진설란. 유화. 너희들은 나와 갈 곳이 있다.”
단려화를 포함해 호명된 이들이 우측으로 나서자 진무립은 하종보에게 말했다.
“노사님께 이곳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건 어렵지 않으나 무슨 일인지 알려줄 순 없겠는가?”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말씀드리면 혼란만 가중될 듯합니다. 다녀와서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빙그레 웃은 강유월이 하종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게 부탁하지 않은 걸 보니 나는 함께 가게 될 모양이오. 다녀오리다.”
하종보가 아쉬운 얼굴로 웃었다.
“이번에는 내가 양보해야겠구려.”
그때 잠자코 있던 당중호가 나섰다.
“나도 가겠소.”
자신에겐 진무립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진무립은 고개를 저었다.
“인원이 너무 많아도 좋지 않다.”
“조영성보다는 내가 더 쓸모가 있을 것 같소만.”
발끈한 조영성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뭐야?”
조영성의 어깨에 손을 올린 진무립이 당중호를 바라보며 웃었다.
“오면서 지켜보니 너보다 이놈이 수발을 더 잘 들더라.”
조영성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겨우 그런 이유요?”
그의 어깨를 툭 친 진무립이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하노사님께 부탁드렸지만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이곳의 책임자는 당소소다.”
당소소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빙그레 웃은 진무립이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당소소를 잘 따라주길 바란다. 호명된 자들은 반시진 안에 준비를 마치고 집합해라.”
무인들이 해산하자 진무립은 당소소를 불렀다.
모두의 앞에선 말할 수 없었으나 적어도 책임자에겐 말을 해둬야 한다.
진무립은 지금까지의 일과 머릿속으로 정리해둔 생각을 모두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끝나자 당소소가 물었다.
“적사곡에 혈야광인이 있을 수도 있단 말이에요?”
“지금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잠깐만요.”
당소소의 고운 미간에 주름이 패였다.
“만일 적사곡에 혈야광인이 있다면 천무대가 가는 곳엔 무엇이 있는 거죠?”
“비각의 정보가 사실이라면 혈야광인의 실험장이 여러 곳일 수도 있겠지.”
“사실이 아니라면요?”
진무립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세작이 놈들의 술수에 놀아난 것일 테니 허탕을 칠 거다. 우리의 존재를 혈교가 알고 있다면 함정을 파둘 수도 있겠지.”
“정말 세작이 거짓 정보를 입수한 것일까요?”
“개방 제자들은 행방이 묘연한데 사천맹의 세작만 온전히 활동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
전날 구양무에게는 돌려서 말했으나 진무립은 사천맹의 세작이 혈교의 시야에 들어가 있을 것으로 봤다.
진무립은 말을 이어갔다.
“적사곡을 확인한 개방도를 놓쳤다. 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우려한 혈교는 사천맹 세작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진실을 덮으려 한다. 가능성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비록 가설이지만 일리가 있다.
당소소는 초조한 듯 말했다.
“그렇다면 당장 사람을 보내서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만일 내 가설이 틀렸다면?”
그녀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어제 출발한 그들을 따라잡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확실하지도 않은 가설만 듣고 돌아올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적사곡을 확인해야 하는 거다.”
그녀의 어깨를 두드린 진무립은 서신을 접어 넣은 전낭을 꺼냈다.
“만일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이걸 열어봐라.”
당소소와 대화를 마친 진무립은 다음으로 용추에게 다가갔다.
혈교가 자신들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다면 이곳도 안심할 수 없다.
용추를 남겨두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이곳은 맡겨주십시오.]우직한 용추라면 믿을 수 있다.
빙그레 웃은 진무립은 마지막으로 적모개를 찾았다.
“적모개. 지금 다녀올 생각이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적모개는 해약의 힘으로 독을 몰아내는 데 여념이 없었으니까.
혈서를 남긴 이가 죽었을 거란 말은 적모개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무립은 그의 희망을 부수고 싶지 않았다.
곁에 쪼그려 앉은 진무립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일 그곳에 개방도가 있다면 반드시 구해오마.”
적모개는 할 수만 있다면 입을 열어 말하고 싶었다.
‘고맙소.’
그는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입꼬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진무립은 알아들은 듯 웃으며 일어났다.
* * *
몰아치는 바람이 좁은 협곡을 휩쓸고 지나간다.
양쪽 절벽 위는 흰 눈으로 가득했지만 아래의 협곡엔 발이 푹푹 빠질 것만 같은 모래로 가득하다.
적사곡(積沙谷)은 말 그대로 모래가 수북이 쌓인 협곡이었다.
풀뿌리 하나 보이지 않는 모래밭, 사람이 살 수 없는 협곡의 좁은 입구를 세 명의 무인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바람이 정말 사납군.”
“어서 교대하고 좀 쉬고 싶네.”
그들의 뒤로 팔 척 장신에 환도를 찬 잘생긴 청년이 걸어왔다.
“죽으면 영원히 쉴 수 있을 텐데, 그냥 죽는 게 낫지 않겠어?”
세 명의 환염대원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은 즉시 몸을 돌려 바닥에 부복했다.
“혈위사신(血衛四臣)을 뵙습니다.”
혈위사신은 혈교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들.
눈앞의 사내는 가장 늦게 혈위사신에 합류한 인물로 서장에선 광사패도(狂死敗刀)라 불리는 천태무였다.
“혈위사신?”
고개를 모로 튼 청년의 눈에 광기가 번뜩인다 싶더니 육중한 환도가 벼락같이 뽑혀 나왔다.
서걱!
순식간에 세 명의 목이 둥실 떠올랐다.
환도에 묻은 피를 털어낸 청년이 짜증섞인 얼굴로 말했다.
“묶어서 부르지 말라고. 버러지들아.”
그때 좁은 협곡의 입구로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중년인, 환염대주 사환이 나타났다.
부하들의 주검을 본 사환의 독안이 부릅떠졌다.
“천공!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런 벽지에 처박혀 있는 것도 짜증 나 죽겠는데 이 새끼들이 혈위사신이래. 사신. 기분이 나쁘잖아.”
“고작 그런 이유로 부하들을 죽인단 말입니까?”
천태무는 환도를 어깨에 척 걸치며 히죽 웃었다.
“불만이면 너도 죽을래?”
사환의 얼굴이 딱딱히 굳을 때, 협곡 안에서 중저음의 나직한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태무.”
은은히 깔리는 목소리엔 육중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천태무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몸을 돌렸다.
“왜!”
협곡 안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싶더니 베일 듯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이 나타났다.
“교의 모든 것은 주군의 재산이다. 한 번 더 부하에게 손을 대면 죽이겠다.”
그는 혈위사신의 수장 혈무검귀(血霧劍鬼) 현유립이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고에도 천태무는 히죽 웃었다.
“그러다 네놈이 죽으면 혈위사신의 수장은 내가 되는 거야?”
“자신 있나?”
“나야 언제든 자신 있지.”
천태무의 보폭이 살짝 벌어지는 순간.
콰앙!
허공에서 뚝 떨어진 벼락이 정확히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고.
일진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한 자루 창이 거꾸로 꽂혀 있었다.
“쯧쯧. 언제까지 아이처럼 싸울 것이냐?”
나직이 혀를 차는 목소리에 고개 돌린 세 사람은 협곡 밖에서 걸어오는 사내를 볼 수 있었다.
마치 이웃집 어른처럼 푸근한 인상의 중년인.
서장 제일의 창술가 적류관창(的流貫槍) 이곽이었다.
“칫. 늙은이가.”
콧방귀를 뀐 천태무는 마지못해 환도를 집어넣었다.
현유립도 검파에서 손을 떼고 물었다.
“어떻게 됐지?”
이곽은 얼마 전 겁도 없이 이곳을 염탐하고 간 개방의 거지를 쫓아간 것이었다.
“신법이 기가 막힌 놈이더군. 창도까지 쫓아갔네만 아쉽게도 놓쳤네. 하지만 적광독에 당했으니 금세 죽었을 거야.”
“놓쳤다면 뭔가를 남기고 죽었을 가능성도 있겠군. 이동 준비를 서둘러야겠어.”
적사곡은 극비리에 혈야광인의 연구가 진행 중인 곳.
이곳을 확인한 개방도가 죽었더라도 반드시 옮겨야 한다.
한 번 노출된 장소라면 다시 노출되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이곽이 말했다.
“어차피 살아남은 거지는 그놈이 마지막이었으니 크게 상관없을 게야.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네.”
“중요한 일?”
“창도에서 사천맹의 세작에게 취의관조술(取意觀造術)을 써보았네. 사천에서 무시무시한 놈들을 보냈더군.”
취의관조술은 상대의 심령을 지배해 시전자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환술이었다.
“세작을 살려두고 감시한 보람이 있군. 누굴 보냈지?”
“천무대와 탈혼일섬을 보냈더군. 그 외에 후기지수들도 몇 놈 따라온 모양일세.”
현유립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패였다.
“천무대에 그 노인네까지 보냈다는 건 역시 혈야광인의 실험을 막고자 하는 모양이군. 실패작이 사천으로 넘어가기 전에 막았어야 했다.”
혈위사신이 포달랍궁과의 전쟁터가 아닌 이곳에 와 있는 것도 혈야광인 한 구가 탈주했기 때문이었다.
천태무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깟 놈들이 뭐가 무섭다고.”
이곽이 말했다.
“네놈이야 무서울 게 없는 녀석이지만 다른 이들은 다르지.”
현유립이 이곽에게 물었다.
“천무대는 지금 어디에 있지?”
“사천맹의 세작에게 장난을 조금 쳐두었네. 시간이 없어 내 눈으로 보고 온 건 아니네만 세작과 접촉했다면 창도에서 남서쪽으로 가고 있겠지.”
“총단에 연락은 취했겠지?”
만일 총단에서 천무대의 위치를 알게 된다면 일망타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크크크.”
이곽은 두 눈을 희번덕이며 활짝 웃었다.
“물론일세.”
* * *
진무립 일행이 떠나고 사흘이 지났다.
동굴에 남은 운룡각 무인들은 수련에 매진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긴 당소소에게 경계를 서던 신평이 다가왔다.
“비각의 세작이 찾아왔습니다.”
슬며시 눈을 뜬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려와 줘요.”
“네.”
밖으로 나간 신평이 세작을 데려오자 당소소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세작이 온 게 아니라 며칠 전 성연을 따라간 자리에서 만났던 사내다.
혈교의 병력 동향을 파악한다던 이가 갑자기 찾아왔으니 의아한 것이다.
“또 보는군요. 무슨 일인가요?”
평범한 인상의 사내, 유붕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만난 적이 있습니까?”
당소소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네?”
상대는 전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유붕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천무대주께서 도착할 시간이 지난 것 같아 찾아왔습니다. 구대협은 어디 계십니까?”
당소소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주의 생각이 옳았어!’
눈앞의 세작은 혈교의 술수에 당한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천무대가 위험하다.
‘만일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이걸 열어봐라.’
거짓말처럼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녀는 다급하게 품속의 전낭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