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76
◈ 76화. 육군명의 무공
흥분한 그들이 낮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동굴 입구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진무립은 내면을 관조하고 있었다.
‘기신봉진대법.’
육신이 성장함에 따라 음양의 균형이 흔들리자 그것을 막기 위해 스승이 새겨둔 대법이다.
진무립은 낮의 상황을 떠올렸다.
생각지 못한 두 기운의 융화는 이전에 겪었던 것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스승님은 두 기운이 완벽히 하나가 될 때 대법이 해제될 것이라 하셨다. 그렇다면…….’
대법의 해제가 다가오고 있는 게 확실하다.
묘한 흥분과 함께 약간의 걱정도 뒤따른다.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면 그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터, 어떤 상황에서 대법이 풀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 스승님께서는 대법이 풀리는 날이 천음지체의 맹점을 완벽하게 지우는 날이 될 거라 하셨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도 궁금하군.’
피식 웃은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굴 밖의 넓은 모래밭엔 정리하지 못한 수백 구의 시신이 있었다.
서장에 들어와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계획을 세운 건 자신이지만 동료들의 분전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완벽하게 성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나 강유월과 당천, 유대하와 육군명이 혈위사신을 막아내지 못했더라면 분명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 싸워줬다.
“창도로 돌아가기 전에……. 확실히 해둬야 할 게 있지.”
혈야광인의 실험장을 폐쇄했지만 사천으로 돌아갈 때까지 임무가 끝난 게 아니다.
다음 행보에 앞서 먼저 확인할 것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모닥불 앞에 앉아있던 동료들이 반가운 시선을 던졌다.
단려화가 말했다.
“번은 우리도 번갈아 설 테니 좀 쉬어요.”
“아니야. 할 일이 아직 덜 끝났거든.”
“할 일이요?”
진무립은 육군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몸은 좀 어떠냐?”
육군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쁘지 않아.”
“나와라. 시신을 좀 치워야겠다.”
“그래.”
육군명이 일어나자 두 여인도 따라서 일어났다.
“우리도 돕겠어요.”
“됐어. 금방 끝나니까 쉬고 있어.”
눈치 빠른 단려화는 그가 육군명과 단둘이 이야기하고자 한다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도 짐작이 간다.
“진소저. 두 사람에게 맡기고 기다리는 게 낫겠어요. 안에는 환자들도 있으니까요.”
단려화의 말에 진설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누군가는 곁에 있어야겠지요.”
육군명을 데리고 나온 진무립은 모래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땅을 파며 시신을 둘러본 육군명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 많군. 말도 안 되는 대승이야.”
“혈야광인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도 간과할 순 없겠지.”
비록 포위된 상태라곤 하나 단 두 구의 혈야광인에게 쉰이 넘는 적이 죽었다.
불완전한 상태에 자신들끼리 싸우느라 힘이 빠진 놈들조차 그만한 성과를 냈다는 것은 완성체가 나온다면 더욱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군명이 물었다.
“정말 이런 곳이 한 곳 더 있을까?”
“있다고 생각한다.”
“완성체가 사천으로 들어온다면 정말 처절한 싸움이 되겠군.”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야.”
육군명이 히죽 웃었다.
“네 말은 왠지 믿음이 간단 말이지.”
진무립이 기대를 거는 것은 실험장에서 가져온 비급이었다.
‘마도림이라면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오래 전 한 뿌리에서 갈라진 만큼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비급을 연구한다면 이들이 무엇에 약한지 알아낼지도 모른다.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한 진무립은 시신들을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커다란 구덩이가 다섯 개 정도 메워졌을 때, 진무립이 입을 열었다.
“육군명.”
“응?”
묘한 미소로 육군명을 바라본 진무립이 작게 입을 열었다.
[네게 팔황문의 무공을 전수해준 자가 누구냐?]그 순간 육군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걸 어떻게?’
자신은 남들이 보는 앞에서 그 무공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흑무진천도는 딱히 흔적을 남기는 무공도 아니다.
육군명은 굳은 표정을 풀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진무립은 바닥을 나뒹구는 환염대원의 도를 집어 들었다.
“시치미 떼도 소용없다.”
천천히 움직이는 도신이 허공에 그림을 그려간다.
육군명의 눈이 부릅떠졌다.
‘대체 이놈 정체가 뭐야?’
진무립의 도가 그리는 궤적은 완벽한 흑무진천도 흑단벽의 초식이었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과 스승만이 알고 있어야 할 무공.
‘아니다. 한 명이 더 있을 수도 있다.’
미간을 좁힌 육군명이 나직이 물었다.
[죽은 팔황문주와 무슨 관계냐?]팔황문주가 익힌 팔천영신공은 팔성의 무공을 집대성한 신공.
그것을 익힌 자라면 분명 흑무진천도의 초식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멍청한 놈과 엮지 마라.”
도극으로 육군명을 겨눈 진무립이 차갑게 눈을 빛냈다.
“누구에게 배웠는지는 묻지 않겠다. 사천맹에 들어간 목적이 뭐냐?”
진무립이 우려하는 것은 과거 혈겁을 일으켰던 팔황문의 행보 때문이다.
천하의 각파에 사람을 심어둔 그들은 세작이 요직에 오를 때까지 오랜 세월을 인내해왔다.
심지어 정체를 감추고 거파의 수장까지 오른 자도 있었다.
그들을 이용해 무림에 자중지란을 일으킨 다음 전쟁을 벌인 것이 팔황문의 방식이었으니 육군명의 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육군명은 생각을 정리했다.
‘흑무진천도를 펼칠 수 있다면 적어도 적은 아닐 거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이내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내 스승님은 도성의 제자였다. 천하대전에 반대한 그분께선 전쟁 직전 이곳 사천에 자리를 잡으셨지. 그게 전부야.”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스승에게 거둬져 무공을 익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이 무림에 혈겁을 일으킨 자들의 무공이었다.
왜 이런 무공을 내게 가르쳤냐고 따질 수도 없었다.
스승은 고아인 자신에게 온정을 베푼 유일한 어른이었으니까.
사천맹에 들어가게 된 것도 큰 이유는 없었다.
낭인으로 활동하다 사천맹의 눈에 들었고 권유를 받아 들어오게 된 게 전부였으니까.
진무립이 물었다.
“사천맹에 들어간 목적이 없단 말이냐?”
육군명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이 무공을 익힌 자는 그냥 평범하게 살면 안 되는 거냐?”
우울한 표정에서 생각이 읽힌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진무립은 이내 등을 돌렸다.
“안 될 건 없지.”
상천 또한 육군명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살길 소망하는 이들.
세상에서 자신보다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검문주 종비웅과 같이 위험한 야망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굳이 죽일 이유는 없었다.
진무립이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시신을 옮기자 육군명은 다시 말했다.
“그게 끝인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데 뭘 더 물어봐야 하나?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 오늘 얘기는 없던 것으로 하자.”
어색한 침묵 속에 여러 개의 구덩이에 시신이 가득 채워졌다.
묵묵히 작업을 마친 진무립이 동굴 입구로 뛰어올랐다.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육군명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흑무진천도를 알고 있는 것도 수상하지만 그 외에도 지금까지 보여준 능력을 생각하면 절대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지?”
팔황문주와 연이 있는 자는 아닌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고개 돌린 진무립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너보다 훨씬 위험한 놈이지.”
진무립은 그 말을 끝으로 모습을 감췄다.
홀로 남은 육군명은 허탈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이렇게 내 정체를 밝히게 될 줄이야.”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비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이토록 가벼울 수 없었다.
밤하늘의 별 무리가 쏟아질 듯 눈부시게 빛난다.
별빛을 눈에 담은 육군명의 입가에 홀가분한 미소가 번졌다.
두 사람이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진설란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앉은 단려화에게 물었다.
“유소저.”
이따금 자신이 가명을 쓰고 있다는 걸 잊고 있던 단려화는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네?”
진설란은 고마운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낮에는 정말 고마웠어요.”
단려화와 함께 싸우며 위기 때마다 몇 번이나 도움을 받았는지 모른다.
“유소저가 없었다면 입구를 막지 못했을 거예요.”
단려화는 빙그레 웃으며 겸양했다.
“아니에요. 저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누구 보다 앞장서서 싸우고 마지막엔 적장의 목까지 베었음에도 단려화는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
진설란은 여느 후기지수와는 다른 그녀의 겸손함에 내심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도림에는 소저와 같은 여류고수들이 많은가요?”
“마, 마도림에요?”
“네.”
단려화의 눈동자가 슬며시 돌아갔다.
마도림에 머문 것은 고작 며칠에 불과했기에 어떤 여고수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난처한 상황에 빠진 그녀에게 지원군이 도착했다.
“물론 많지.”
통로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진무립이 나타났다.
진설란의 눈이 기대에 빛났다.
“그게 정말인가요?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보고 싶어요.”
“그래. 돌아가면 꼭 초대하지.”
웃으며 지나가던 진무립은 단려화의 어깨를 슬쩍 잡았다.
[오늘 정말 고생 많았다.]입구를 막으며 누구보다 고생이 많았을 그녀라는 걸 진무립은 잘 알고 있었다.
뒤를 힐끔 돌아본 단려화는 싱긋 웃었다.
[수고했어요.]서로 인사를 나눈 지금에서야 비로소 오늘 하루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어스름한 적사곡의 하늘에 시꺼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진무립과 동료들이 모든 동굴에 불을 지른 것이었다.
협곡의 입구엔 부상자를 태울 사두마차와 세 필의 말이 대기 중이었다.
혈야광인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혈교에서 준비해둔 것을 가져온 것이다.
관을 옮기고자 했던 마차였기에 내부는 제법 널찍했다.
진무립은 이불을 여러 겹으로 쌓은 바닥에 유대하와 조영성을 눕혔다.
“당천. 너도 누워라.”
당천은 핏기 가신 어제의 얼굴보다 한결 나은 상태였지만 아직 거동이 수월한 상태는 아니었다.
“난 됐다.”
진설란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다가왔다.
“이곳의 책임자는 당신이 아니에요. 말 들어요.”
그녀는 억지로 당천을 들어 마차에 구겨 넣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안에서 얌전히 있어요.”
문을 쾅 닫은 진설란이 훌쩍 말 등에 올라탔다.
“가요.”
실소를 흘린 진무립이 마부석에 올랐다.
“노사님. 말을 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강유월은 빙그레 웃었다.
“걱정 마시게. 힘들면 마차로 들어가겠네.”
다리의 상처가 아직도 쓰라렸으나 다행스럽게도 근맥이 상한 것은 아니었다.
진무립은 웃으며 고삐를 흔들었다.
“그럼 조금 서두르겠습니다.”
천천히 바퀴가 굴러간다.
검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등진 진무립 일행은 남하를 서둘렀다.
* * *
창도 인근의 숲속.
동굴 밖에 숨어 외곽을 경계하던 당중호는 창도에 다녀오는 용추를 발견했다.
당소소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떠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둘밖에 모르고 있었다.
나무에서 뛰어내린 당중호가 용추의 앞을 막아섰다.
“창도엔 무슨 일로 다녀온 거냐?”
“쉬 마려워서.”
“…….”
황당한 변명에 할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동굴에서 쌀 수는 없잖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용추는 눈살을 찌푸리는 당중호에게 물었다.
“너 내가 마음에 안 들지?”
“잘 알고 있군.”
“좋아. 그럼 날 한 대 쳐라.”
당중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
용추가 때리기 좋게 얼굴까지 들이밀자 당중호는 황당하다는 듯 쳐다봤다.
“지금 뭐 하는 거냐?”
“귀가 어두운 놈인가? 한 대 치라고 겁쟁이 새끼야. 무공은 만수무강하려고 익혔냐?”
당중호는 용추의 입에서 욕이 나오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보니 미친놈이었군. 좋다. 원대로 해주지.”
당중호는 내력까지 끌어올려 주먹을 날렸다.
퍼억!
움찔한 용추가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어이쿠.”
당중호는 주먹과 용추를 번갈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어이쿠?’
죽일 생각으로 친 것은 아니었지만 적잖은 힘이 들어간 주먹이었다.
그런데 상대의 반응이 생각과 너무 다르다.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난 용추가 히죽 웃었다.
“이젠 내 차례다.”
“무슨 소리…….”
입을 열던 당중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주 선 용추의 옷깃이 흔들린다 싶더니.
콰직!
끔찍한 소리와 함께 당중호의 신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퍽!
바위에 처박힌 당중호가 축 늘어지자 용추는 히죽 웃으며 걸어갔다.
[그렇게 놀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곧 적이 도착할 거예요.]귓속을 파고드는 목소리는 은무대 부대주 은수련의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용추는 당중호를 옆구리에 끼고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