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77
◈ 77화. 은무대의 힘
용추가 혼절한 당중호를 데려오자 무인들이 술렁이며 모여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오?”
“설마 적이라도 왔단 말이오?”
용추는 고개를 저었다.
“피곤한 모양이야.”
언제 다가왔는지 동초개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당중호의 부어오른 한쪽 볼을 보니 왠지 그리운 감정이 밀려온다.
“이 상황, 왠지 익숙한데?”
찔끔한 용추가 당중호를 떠넘겼다.
“네가 좀 맡아라.”
도망치듯 벗어난 용추는 즉시 당소소를 찾았다.
“오셨군요. 밖의 상황은요?”
눈알을 한 바퀴 굴린 용추가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
그녀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로군요. 그런데 정말 천무대에 알리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진무립이 남긴 서신은 무슨 일이 생기면 용추를 창도로 보내고 외부 출입을 삼가라는 내용이 전부였다.
지금 사람을 보내도 늦는다는 걸 그녀도 모르지 않았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걱정해도 달라질 게 없다면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 없어. 곧 그분께서 돌아오실 테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용추의 말에 한결 마음이 놓인 당소소는 빙그레 웃었다.
“고마워요.”
“번은 내가 설 테니 다들 쉬라고 해.”
웃는 그녀를 뒤로한 용추는 즉시 입구로 나왔다.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에 달이 떠올랐다.
‘오늘은 내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하겠지.’
지금 숲속에 매복한 이들은 원래대로라면 진무립을 지키고 있어야 할 열 명의 고수들.
그들 중 몇 명은 자신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고수다.
은무대가 감당하지 못하는 적이라면 자신이 나서도 달라질 게 없다.
입구를 가린 바위에 훌쩍 뛰어오른 용추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어디 실력 좀 봅시다.’
은무대의 전투는 자신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만큼 묘한 기대감까지 들었다.
조용히 눈 감은 용추는 기감을 활짝 개방했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숲속.
노을이 사라진 자리에 어둠이 깃들 때 숲 외곽에 백여 명의 회의인이 나타났다.
“이곳이 확실합니다.”
염소수염을 한 사내, 회혈대주 조방이 수염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동굴이라.”
나직한 구릉 몇 개가 전부인 작은 숲에 그런 곳이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숲을 포위하고 간격을 좁혀 간다. 적이 나타나면 즉각 신호해라.”
“예.”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느긋하게 숲에 진입한 조방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겁도 없이 내 부하 셋을 죽인 사천의 애송이들. 어디 실력 한번 보자꾸나.”
나무에 기대앉은 서진환의 귀로 한 줄기 전음이 파고들었다.
눈을 뜬 서진환이 나무 꼭대기로 번개같이 치솟았다.
앙상한 나무 사이로 저 멀리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불나방들이 몰려드는군.’
고개를 돌린 서진환이 명을 내렸다.
[이각 주마. 조용히 처리해라.] [명을 받듭니다.]부하의 기척이 꺼지듯 사라지자 서진환은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혈교. 어디 실력 한번 보자.”
느긋하게 뒷짐 진 서진환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발을 멈추면 육신이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무거운 정적.
북서쪽으로 이동한 십이호는 매우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어디냐?’
사흘 길을 쉴 새 없이 달려왔다.
머리엔 어서 임무를 끝내고 돌아가고픈 마음이 가득했다.
‘혈야광인을 확인하자마자 이곳까지 왔다는 건…….’
어디선가 불어온 미풍에 십이호의 생각이 멈췄다.
숲에 깃든 고요함보다 더욱 은밀한 암습이 그의 이마를 꿰뚫었기 때문이다.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는 완벽한 암살.
쓰러지는 십이호의 상체가 허공에 우뚝 멈추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섯 놈 째.’
번뜩이는 두 개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어둠에 몸을 숨긴 은수련의 눈에 은밀히 나아가는 회의인이 담겼다.
‘생각보다 수준이 낮네.’
상천의 산채에서 수많은 고수를 봐온 그녀에게 눈앞의 무인은 너무 쉬운 상대였다.
은수련은 품에서 굵은 비침을 꺼냈다.
‘악감정은 없으니 너무 원망하지는 마.’
은밀히 뒤따르던 그녀는 나무에 달빛이 가려지자 즉시 몸을 날렸다.
탓.
지면에 내려앉는 작은 발소리에 반응한 회의인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가…….’
그때 턱밑에서 시꺼먼 그림자가 솟구치더니 입을 턱 막아버렸다.
‘적!’
그는 즉시 손을 뻗으려 했으나 은수련의 움직임이 빨랐다.
콰직!
뾰족한 비침이 이마의 정중앙을 관통했다.
‘일곱 명째.’
축 늘어진 회의인을 챙긴 은수련은 다시 어둠에 녹아들었다.
고작 일다경 만에 사라진 무인의 숫자가 무려 서른.
밤의 싸움이라면 세상 누가 와도 자신 있는 은무대였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암살은 누구 하나 알아채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은밀했다.
‘장난이 아니네.’
은밀히 이동해 기척을 살피던 용추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고작 이 장 밖에서 살행이 벌어지는데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부르르 몸을 떠는 용추의 귀로 은수련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거기서 계속 얼쩡거리면 그냥 죽이는 수가 있어요.]움찔한 용추가 재빨리 몸을 돌렸다.
회혈대주 조방은 부하들이 죽어 나가는 것도 모르고 마치 산책하듯 숲을 거닐었다.
“기분 나쁜 숲이로군.”
숲의 중앙에 접어들자 왠지 모를 음산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나무에 기대 팔짱을 낀 조방은 부하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제법 오래 걸리는군.’
그러나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천무대가 떠난 이곳에 후기지수들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차분히 주변을 살피는 조방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반경 삼 장 안에 무려 아홉 명의 무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가까운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휙 돌린 조방이 인상을 썼다.
“손바닥만 한 숲을 뒤지는데 뭐 이리 오래 걸린 것이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조방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둠을 뚫고 달빛 아래로 걸어온 이는 자신의 부하가 아니었다.
“네놈은…… 누구냐?”
서진환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일단은 사천맹의 수호자라고 해두지.”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허공에서 뚝 떨어진 은무대원들이 그의 주변을 포위했다.
‘이, 이건 대체?’
조방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척에 접근할 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체 이놈들은 누구란 말이냐?’
사천맹에 이런 자들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서진환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편히 쉬게 해주마.”
* * *
빠른 속도로 남하한 진무립 일행은 어느새 창도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동안 유대하가 정신을 차렸고 조영성도 순조롭게 회복하고 있었다.
조영성은 깨어난 유대하에게 그가 정신을 잃은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두 설명해주었다.
“하마터면 내 뒤통수가 뚫릴 뻔했단 말이지. 화살도 그보다 빠르지는 못할 거요. 뭔가가 쉭 날아간다 싶더니 그놈들이 마른 짚단처럼 쓰러지더라니까? 벌벌 떠는 놈들 앞에서 내가 외쳤지. 이분이 사천의 광룡 진무립 공자이시다! 하고 말이야.”
매사에 까칠하던 조영성은 어느새 진무립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어 있었다.
“하, 하하하.”
겉으론 웃고 있는 유대하였으나 속내는 그렇지 못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독한 패배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졌다.’
새로운 무공을 배우고 용추를 상대하며 누구와 싸우더라도 쉽게 지지 않을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껍데기를 까보니 자신은 아직도 마도림의 식충이에 머물러 있었다.
‘자만했는가.’
무림은 고작 몇 달 배운 무공으로 세상을 오시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유대하. 너는 아직 멀었다.’
이대로는 진무립의 곁에 머물 자격이 없다.
‘죽을 각오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상천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어.’
유대하는 굳은 결의를 다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의자에 기대앉아 창밖을 응시하는 당천은 조금 전 조영성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혈위사신을 그렇게 쉽게 무너뜨렸다고?’
자신이 상대한 천태무는 당장 사천 무림에 데려다 놓아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강자였다.
물론 혈위사신도 개인의 차이가 있겠지만 수준 차가 극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놈을 쉽게 쓰러뜨렸다고 하니 관심이 생기지 않을 리 없었다.
‘그게 다가 아니지.’
이곽을 쓰러뜨린 것도 모자라 혈야광인의 실험장을 불태우고 이백이 넘는 적과 싸워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승리를 거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대승이군.’
지난 일을 돌이켜보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거의 모든 것이 진무립의 계획대로 진행됐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려 한다.
‘진무립.’
천태무를 죽인 것은 그가 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소천무군 단자룡외에 누구에게도 흥미를 갖지 않던 당천은 조금씩 진무립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마부석에 앉은 진무립은 머릿속으로 다음 계획을 정리하고 있었다.
혈야광인의 실험장은 모두 두 곳.
하나는 자신들이 확인했으니 남은 곳은 하나다.
그렇다면 비각의 요원이 가져온 정보는 적이 흘린 거짓 정보가 확실하다.
‘은무대가 도착했을 테니 창도에는 별일이 없겠지만, 만일 창도가 습격당했다면 놈들은 우리의 움직임을 훤히 알고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반드시 천무대를 노릴 거다.’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없으니 조금 갑갑한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불평해도 소용없는 일, 진무립은 머릿속으로 지도를 떠올렸다.
‘나곡까지 가서 흩어지기로 했으니 지금쯤 셋으로 나뉘어 움직이고 있겠지. 생각이 있는 놈들이라면 뭉쳐있을 때보다 흩어졌을 때를 노릴 거다. 아직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을 확률이 높아.’
천무대가 출발한 지 이제 막 열흘이 지난 상태, 나곡까지 함께 가서 흩어졌으니 다른 세 곳을 확인하기까지는 시일이 더 걸릴 것이다.
‘구할 수 있나?’
산술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지원을 가더라도 자신들이 도착한 뒤엔 모든 싸움이 끝난 상태일 테니까.
그때 곁을 달리던 단려화가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천무대를 어떻게 구할지 고민 중이야.”
우측에서 달리던 진설란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적사곡에서 혈야광인의 실험장을 발견한 이상 그들이 간 곳에는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해요. 방도가 있을까요?”
지금부터 전력으로 달려가도 늦을 거란 걸 그녀도 안다.
그러나 왠지 진무립이라면 방책이 있을 것만 같았다.
천무대의 시험을 받을 때도, 적사곡에서 대승을 거둘 때도 진무립은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을 쉽게 해냈기 때문이다.
강유월도 진무립의 생각이 궁금했는지 고개를 돌린 채 귀를 기울였다.
쏟아지는 시선 속에 진무립이 말했다.
“적어도 사나흘 안에 전투가 벌어질 거다. 날아가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그들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지.”
진설란은 어두운 표정으로 작게 끄덕였다.
“역시 어려운 일이군요.”
강유월이 물었다.
“정말 방도가 없겠는가? 천무대를 잃는다면 사천맹의 입장에선 타격이 매우 클 걸세.”
언제부터인가 강유월도, 진설란도 진무립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본 진무립은 계획을 책임지기에 부족한 점이 없는 사내였다.
진무립이 답했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천무대가 며칠이라도 버텨준다면 가능성은 있습니다.”
진설란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들이라면 설령 함정일지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강유월도 거들었다.
“내 생각도 같네. 구양무는 우리 정무원의 고수들에 견줘도 부족함 없는 무인일세. 그들이라면 며칠은 버텨줄 게야.”
잠시 생각하던 진무립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예.”
고개를 끄덕이는 진무립의 눈에 저 멀리 창도가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