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78
◈ 78화. 나는 상천의 천주 진무립이다
진무립 일행은 열흘 만에 은신처로 복귀했다.
곧이어 공동에 모인 운룡각 무인들은 부상자들을 확인하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소소가 물었다.
“전투가 있었나요?”
진무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영성. 네가 설명해줘라.”
“예.”
설명을 넘긴 진무립은 용추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떻게 됐지?] [회혈대란 놈들이 왔었습니다만 은무대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했습니다. 정말 무섭던데요.]용추는 그때를 떠올리며 몸을 흠칫 떨었다.
진무립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졌다.
‘다행히 늦지 않게 왔군.’
은무대라면 앞으로의 계획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진무립이 용추와 전음을 나누고 있을 때, 조영성은 자신들이 적사곡에 도착한 순간부터 전투가 끝날 때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적사곡의 지형을 이야기할 때에는 모두의 눈에 기대감이 번졌고.
진무립과 당천이 절벽 위의 적을 처리할 때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유월의 유인책과 두 여인이 기습한 대목에선 탄성을 흘렸고, 이어진 혈위사신과의 전투는 모두의 손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대주가 나타나더니 단박에 창 든 놈을 날려버리셨지. 그리곤 놈의 창을 들어 입구로 던지셨는데 궁황 투월초가 활을 쏴도 그보단 빠르지 못할 거다. 일수에 죽은 적만 서른이고 쓰러진 놈들도 수십 명에 달했지.”
조영성은 손짓 발짓까지 섞어가며 이야기를 실감 나게 이어갔다.
“혈위사신과의 전투가 끝난 뒤 우리는 입구를 틀어막고 온 힘을 다해 버티기 시작했다. 상대는 죽을 맛이었을 거야. 앞에는 우리가 있고 뒤에선 괴물들이 날뛰고 있으니 말이야.”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긴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무렵엔 장내에 무거운 정적이 감돌았다.
이야기를 들을 때는 재미있었는데 듣고 보니 워낙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국철영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저잣거리 매담자가 따로 없군. 이백이 넘는 적과 싸워 승리하고 혈위사신이라는 위험한 놈들까지 물리쳤다고? 지금 그걸 믿으라는 거냐?”
조영성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사숙조님 앞에서 들통날 거짓말을 하겠냐?”
국철영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사숙조님. 저놈의 말이 모두 사실이란 말입니까?”
강유월은 국철영을 나무라지 않았다.
조영성의 말에 거짓은 없었으나 듣고 보니 이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믿기 어렵겠으나 모두 사실일세.”
“허.”
조영성의 말과 강유월의 말은 그 무게가 다르다.
좌중의 입이 그제야 쩍 벌어졌다.
하종보가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참으로 대단한 일을 하고 오셨구려.”
강유월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적의 고수와 싸워 승리를 거둔 두 명의 대주,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번 대하와 입구를 철통같이 틀어막은 세 아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계획한 총대주에게 공이 있을 뿐이오. 저 아이들에 비하면 나는 워낙 한 일이 없어 부끄러울 뿐이라오.”
진설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노사님께서 계셨기에 우리 모두 안심하고 맡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단려화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진소저의 말이 맞아요. 노사님께서 안 계셨더라면 정말 힘든 전투였을 거예요.”
진무립이 강유월의 팔을 잡으며 싱긋 웃었다.
“애당초 노사님께서 안 계셨더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임무입니다.”
“허허.”
강유월이 멋쩍게 웃었다.
조영성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본 국철영은 내심 입맛이 썼다.
‘내가 따라갔어야 했는데.’
당중호의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전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겠지. 그러나 나는 내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는 조영성의 말이 다소 과장된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생각에 잠겨있던 당소소가 말했다.
“적사곡에 혈야광인의 실험장이 있었다면 천무대가 함정으로 들어간 게 확실해요.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진무립 일행이 가져온 승전보로 밝았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잠자코 듣고 있던 당천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겠지?”
모두가 살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진무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가주가 타인의 생각을 듣고자 한다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언제나 자신밖에 모르던 당천이 진무립에게 묻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강유월이 말했다.
“이젠 듣고 싶군. 자네는 분명 오는 길에 방법이 있다고 했었네.”
모두의 이목이 진무립에게 집중됐다.
이젠 이 자리에서 진무립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인정하기 싫은 이는 있을지라도.
진무립은 지도를 펼쳤다.
“지금쯤 나곡을 지난 천무대는 셋으로 갈라져 강달, 송폭, 칙객으로 향했을 겁니다. 지금 당장 출발해도 이들을 따라잡을 방법은 없습니다.”
미간을 좁힌 하종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그렇다면 이들이 패했을 경우를 염두에 두고 생존자 구출에 나서야 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당중호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사천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잘 모르나 보군. 천무대는 고작 혈교놈들 따위에게 당할 부대가 아니오.”
“그럼 구하러 갈 필요가 없겠군. 그냥 여기서 기다리면 되나?”
할 말을 잃은 당중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피식 웃은 진무립은 설명을 이어갔다.
“강달, 송폭, 칙객으로 갈라진 천무대가 다시 합류할 지점, 그들이 패했다면 분명 세 지역의 중간지점인 지림(支林)으로 모일 겁니다.”
지도를 주시하던 이들은 이해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립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우선 발 빠른 무인을 사천맹으로 보내 소식을 전하고 부상자는 다른 은신처로 몸을 숨겨야 합니다. 오늘 안에 그 일을 마친 뒤 저는 천무대를 구하러 가겠습니다.”
마음 같아선 전부 사천으로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혈위사신의 수장 현유립이 돌아간 만큼 서장과 사천의 경계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많은 숫자가 움직이면 반드시 적의 눈에 띌 터, 부상자까지 함께 움직인다면 추격을 뿌리칠 수 없기에 남기기로 한 것이다.
그때 한쪽 구석에 서 있던 적모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적사곡에서 우리 제자들을 보지 못했소?”
진무립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개방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군.”
적모개는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미 혈서를 남긴 개방도가 적에게 당한 상황.
기다리는 동안 마음을 비운 상태였으나 막상 듣고 보니 실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동초개가 그의 어깨를 가만히 붙잡았다.
“어딘가에 분명 살아있을 거예요. 그리 쉽게 당할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적모개가 진무립에게 말했다.
“사천에 소식을 전해야 한다면 내게 맡겨주시오. 신법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소.”
혈교에서 그런 괴물을 만들고 있었다면 멀리 떨어진 중원일지라도 안심할 순 없는 일, 게다가 개방도가 이곳에서 당했다면 총단에도 소식을 전해야 했다.
적모개의 신법이라면 이곳까지 오는 동안 지켜봤기에 믿을 만했다.
‘적모개 혼자 움직인다면 쉽게 꼬리를 잡히지 않을 거다.’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곧 서신을 써주지. 오늘 밤 이곳을 떠날 것이니 모두 짐을 챙겨라. 해산.”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진무립은 용추에게 전음을 보냈다.
[은무대가 사용하는 안가에 이들이 다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으냐?]은무대가 구한 안가라면 쉽게 노출될 만큼 허술한 곳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이라 차고 넘칠 겁니다.] [좋아. 가서 진환에게 전해라. 오늘 저녁 은무대가 사용하던 안가로 이들을 옮길 것이다.] [예.]용추를 내보낸 진무립은 지필묵을 꺼냈다.
그리곤 바닥에 앉아 서장에 들어와서 지금까지의 일을 서신에 적어 내려갔다.
새하얀 백지에 검은 글자가 빼곡히 채워질 무렵, 강유월과 하종보가 찾아왔다.
“총대주는 서신 하단에 우리 이름을 적어주시게.”
조금 전 후기지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진무립의 이름만 써서 보내면 사천맹에선 안일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그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진무립은 사양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하종보가 물었다.
“자네와 함께 천무대를 구출하러 갈 무인은 선별했는가?”
“예. 제 호위 둘을 데려갈 생각입니다.”
현실적으로 적의 고수를 감당할 수 있는 무인은 이곳에 많지 않다.
은무대가 있는 이상 자신이 편하게 쓸 수 있는 이를 데려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모르는 하종보가 말했다.
“빈도도 함께 가겠네.”
강유월의 부상이 완쾌되려면 아직 시일이 필요하다.
함께 가고자 하는 이유는 공을 세우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이와 같은 인재를 이런 곳에서 잃을 순 없지.’
하종보가 함께 가고자 하는 것은 그만의 의견이 아니라 강유월과의 대화를 통해 결정한 것이었다.
진무립은 서신을 비단 주머니에 넣고 일어났다.
“안 됩니다. 남는 이들을 지켜줄 고수가 필요합니다.”
강유월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천무대를 함정에 빠뜨릴 정도의 적이라면 자네들 세 사람으로 가능하겠는가?”
“적사곡의 싸움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저라면 가능합니다.”
진무립의 말투에서 자신감이 엿보인다.
잠시 망설이던 강유월은 하종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미안하오. 괜한 걸음을 하게 했구려. 여기선 총대주의 뜻에 따르도록 하십시다.”
하종보가 내심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이곳의 책임자는 총대주이니 따라야겠지요.”
진무립은 두 사람에게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부상자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아쉬움을 삼킨 두 노고수는 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황량한 들판이 어둠에 물들어갈 무렵, 진무립의 서신을 챙긴 적모개가 길을 떠났다.
그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 순간 동굴을 나선 운룡각 무인들도 은밀히 움직였다.
은무대가 세작이 없는 길을 확보해 용추에게 알려준 덕분에 이들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안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창도에서 반 시진 거리의 산 밑 마을.
여러 채의 가옥이 있었으나 거의 모든 집이 폐가에 가까웠고 어디에서도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강유월이 컴컴한 마을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런 곳은 대체 언제 봐두었는가?”
“적사곡으로 가기 전에 용추에게 알아보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적당히 둘러댄 진무립은 당천에게 말했다.
“천무대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이곳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없는 동안 이곳의 책임자는 당천, 네가 맡는다.”
당천은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하종보도 거절한 진무립이 부상자를 데려갈 리 없었다.
그는 미련을 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럼 다녀오마.”
등을 돌린 진무립이 발을 내디딜 때, 그의 귓속으로 한 줄기 전음이 파고들었다.
[따르지 못해 죄송합니다.]고개를 슬쩍 돌리니 괴로운 얼굴로 입술을 깨문 유대하가 보인다.
표정을 보니 적사곡에서의 패배를 아직까지 자책하는 모양이다.
진무립은 빙그레 웃으며 전음을 보냈다.
[조급해할 것 없다. 네가 활약할 기회는 반드시 온다. 지금은 푹 쉬어라.] [예.]유대하의 공손한 예를 받은 진무립은 두 사람과 함께 마을을 나섰다.
진무립 일행이 떠난 뒤, 마을 안쪽의 빈 건물에 짐을 푼 무인들이 당천의 소집으로 집결했다.
“번을 설 순서를 정하겠다.”
모두의 얼굴을 차례로 둘러본 당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육군명은 어디에 있지?”
철검대 부대주 장호가 머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총대주를 몰래 따라갔습니다.”
“…….”
동료들과 헤어진 진무립 일행이 이각가량 내달렸을 무렵, 단려화가 뒤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누가 오는데요?”
보지 않아도 누구일지 대강 짐작이 간다.
진무립은 쓴웃음을 지으며 서서히 멈춰섰다.
이윽고 그들의 발이 완전히 멈추고 등을 돌렸을 때, 멀리서 어둠을 뚫고 빠르게 달려오는 육군명을 볼 수 있었다.
한달음에 달려온 육군명이 넉살 좋게 웃었다.
“하하하! 나를 기다려준 거야?”
“따라온 목적이 뭐냐?”
“내 정체만 밝히고 정작 네가 누군지 모르는 게 너무 억울하잖아. 그걸 알 때까지 당분간 따라다닐 생각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진무립은 그날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했으나 육군명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무림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비밀을 공유한 사내다.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과 초조함, 거짓된 얼굴로 살아온 자신을 진무립이라면 이해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육군명의 눈빛을 보아하니 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인다.
진무립이 물었다.
“정말 내 정체가 궁금한가?”
“알려줄 거냐?”
단려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무립의 소매를 잡았다.
그녀를 안심시키듯 고개를 끄덕인 진무립은 육군명을 직시했다.
“내 정체를 알게 되면 너는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게 뭐지?”
“하나는 앞으로 나와 함께 하는 것이고…….”
말을 하던 진무립의 눈동자에 은은한 살기가 떠올랐다.
“다른 하나는 시신이 되는 거지.”
육군명의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시신이 될지, 너와 함께할지는 들어보고 결정하지.”
“듣고 나서 후회하면 늦는다.”
“그럴 일은 없어.”
“좋다. 말해주지.”
이어진 나직한 목소리는 육군명에게 강렬한 충격을 선사했다.
“나는 상천의 천주. 진무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