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8
◈ 8화. 서북회(西北會)
연회가 끝나자 악공과 기녀를 돌려보낸 진무립은 조용한 객실에 육무봉을 불러 앉혔다.
거나하게 술을 들이켠 육무봉이었으나 그것은 육신의 고통을 잊게 해줄 뿐, 약간의 취기는 진무립과 독대한 순간 날아가 버렸다.
“알아보니 서북회(西北會)라는 게 있더군.”
“예. 서북로를 관리하는 여섯 방파가 달포에 한 번씩 모여 한잔하곤 합니다.”
“다음 모임은 언제야?”
“열흘 전이었으니 아직 시간이 제법 남았습니다.”
“며칠 안으로 서북회가 다시 열릴 거다. 그때 나를 불러라.”
육무봉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정 주기로 만나는지라 다음 회의까지는 아직 멀었습니다.”
진무립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특별한 일이 생길 거다.”
***
사흘 뒤.
새벽공기가 차분히 내려앉은 중경의 거리는 평소와 다른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시벌. 귀신 나오것네. 전부 뒈진 거야?”
바지춤에 두 손을 찔러넣은 사내, 무화방의 용보는 황량한 거리를 보며 인상을 썼다.
바닥에 가래침을 탁 뱉고 서북로로 향하던 용보는 뭔가를 발견하고 다급하게 골목에 몸을 숨겼다.
‘뭐, 뭐야?’
쪼그려 앉아 모퉁이 너머로 고개를 내민 용보의 눈에 거리를 가득 채운 대검문도들이 담겼다.
‘설마 마도림과 전쟁이라도 하려는 건가?’
제법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그들의 긴장감이 여실히 느껴졌다.
용보는 어색한 거리의 분위기는 그들로 인한 것임을 깨달았다.
대검문도들이 잠시 멈춰 이야기를 나누자 용보의 큰 귀가 쫑긋거렸다.
“상대는······ 지부장을······ 고수······ 조심······.”
그들은 대화를 끝냄과 동시에 무리를 나눠 사라졌다.
워낙 작은 목소리라 제대로 들을 순 없었으나 용보는 띄엄띄엄 알아들은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상대는, 지부장을, 고수, 조심하라고? 뭔 일이래?”
확실한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대검문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은 분명하다.
잔뜩 웅크린 채 생각하던 용보는 일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등골이 축축이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설마?’
고개를 휙 돌린 용보는 잠에 취한 채 자신의 등에 오줌 누는 꼬마를 발견했다.
“이 씨벌 놈이.”
***
진무립이 머무는 청하객잔의 별채에 낯선 사내가 들어섰다.
물을 한 모금 들이켠 진무립은 떨떠름한 얼굴로 사내를 쳐다봤다.
“왜 하필 네가?”
산적을 방불케 하는 험상궂은 얼굴의 사내, 용추는 외모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산적이었다.
“채주가 저더러 가라고 하던데요.”
며칠 전, 진무립의 밀명을 받은 은무대주 서진환은 가장 가까운 검산채를 찾았다.
산적 몇 놈을 낭인으로 위장해 보내라는 명령에 채주 대중경은 사천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부하를 찾다가 얼마 전 산서에서 넘어온 용추를 보낸 것이다.
명령을 내린 진무립이 떨떠름 해하는 것은 다른 이유였다.
‘이 새끼는 너무 무식한데.’
신공을 수련한 용추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육신에 힘이 엄청난 장사였다.
그러나 힘과 지식을 맞바꿨는지 상식이 매우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다시 갈까요?”
“아니. 됐다. 지금부터 네 신분은 낭인이다. 당분간 나를 천주 대신 소공자라고 불러라.”
용추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소공자님. 이제 어느 놈부터 족치면 됩니까?”
“지금은 없다. 내 명령 없인 함부로 아무나 족치지 마라.”
용추의 표정이 시큰둥하게 변했다.
“족칠 놈도 없는데 저를 왜 불렀습니까?”
진무립은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널 부른 게 아니잖아. 이 새끼야. 아무나 보내라고 했는데 니가 온 거야.”
“아차! 그랬지.”
용추는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쳤으나 진무립은 그의 머리를 치고 싶어졌다.
진무립은 주먹을 매만지며 화를 억눌렀다.
“족칠 놈은 곧 생길 거고, 당분간 그곳의 무공은 쓰면 안 된다.”
“그 정돈 알고 있습니다.”
그때 밖에서 유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공자님. 철사방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눈을 빛낸 진무립이 씩 웃으며 일어났다.
“반응이 빠르군.”
***
서북로의 청경루(靑鏡壘).
고관들이 즐겨 찾을 정도로 화려한 기루에 서북로의 수장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입구를 지키던 사내는 하나같이 굳은 얼굴로 들어가는 각파의 수장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대체 무슨 일이지?’
주기가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서북회가 열린다는 것은 뭔가 큰일이 생겼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청경루의 최상층 별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철사방주를 끝으로 원형 탁자에 여섯 방파의 수장이 모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육무봉의 가슴은 심하게 뛰고 있었다.
‘정말 서북회가 열리다니.’
특별한 일이 생길 거라는 진무립의 말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그때 무화방주 추광도가 육무봉을 흘겨보며 말했다.
“네놈이 왜 여기 있는 거냐?”
“내가 못 올 자리에 왔나?”
추광도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네놈이 마도림에 붙었다는 소문이 중경에 파다한데 낯짝 한번 두껍구나.”
“그 소문은 네놈이 낸 거잖아! 정말 뒈지고 싶은 거냐?”
“네놈 따위가 나를?”
두 사람의 기세가 흉험해지자 가장 연배가 높은 석가장주 석금종이 손을 들었다.
“싸우고 싶거든 나가서 싸우게. 내 기루가 부서지는 꼴은 볼 수 없으니까.”
서북회를 이끄는 석금종의 말에 두 사람은 불만을 억눌렀다.
석금종은 육무봉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한가지 확인해야겠군. 자네가 청하객잔에서 마도림의 소공자와 술판을 벌이는 것을 본 사람이 많네. 정말 추방주의 말처럼 마도림과 손을 잡았는가?”
육무봉은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애써 시큰둥하게 답했다.
“객잔을 넘겨준 대가로 술 한잔 사고 싶다고 해서 갔을 뿐이오. 어쨌든 내 부하가 사고를 쳤으니 방주 된 입장에서 수습할 수밖에 없지 않소?”
눈을 가늘게 뜬 석금종은 육무봉의 말을 온전히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끝까지 캐묻기보다는 급히 논의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당분간 지켜보도록 하겠네. 그럼 서북회를 시작하지.”
눈과 눈 사이가 심하게 좁은 중년인, 소천문주 조삼방이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급히 서북회를 소집했단 말입니까?”
석금종이 말했다.
“오늘 아침, 무화방도가 거리에서 대검문의 무인들이 어딘가로 급히 가는 것을 목격했다네. 추방주를 통해 소식을 접한 나는 즉시 대검문에 가서 무슨 일인지 확인했지.”
모두의 눈과 귀가 모인 가운데 잠시 뜸을 들인 석금종은 나직이 말했다.
“대검문의 지부장 다섯 명이 실종됐네.”
“헙!”
입을 틀어막으며 헛바람을 들이켠 것은 육무봉이었다.
좌중의 시선이 쏠리자 육무봉은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내리며 말했다.
“워, 워낙 놀라운 소식이라······.”
모였던 눈들이 다시 석금종의 입으로 돌아가자 육무봉은 저도 모르게 진무립을 떠올렸다.
‘특별한 일이 생길 거다.’
그 말을 떠올리자 거칠게 요동치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대체 뭐 하는 놈이냐?’
만일 이것이 정말 진무립의 소행이라면, 철사방을 지워버리겠다는 그의 말도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을 것이다.
육무봉이 슬쩍 식은땀을 닦을 때, 매부리코가 인상적인 칠도문주 도영상이 물었다.
“마도림입니까?”
석금종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더군. 최근에 등장한 소공자로 인해 대검문은 마도림을 철저하게 주시하고 있었네. 그들에겐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더군.”
“대검문의 지부장이라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오. 지금의 마도림에서 그런 위험을 부담했을 것 같지는 않소.”
입을 연 학사 풍의 점잖은 노인은 중경무관주 정욱이었다.
소천문주 조삼방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눈앞의 칼보다 숨은 칼이 더욱 무서운 법. 마도림이 아니라면 더 큰 문제 아닙니까?”
석금종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렇게 자네들을 보자고 한 걸세. 우리도 실종자 수색에 힘을 보태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대검문의 일이니······.”
잠시 대화가 끊긴 사이 아래에서 작은 실랑이가 일더니 총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 장주님!”
“무슨 일인가?”
“정체 모를 괴한이 난입해서 기루의 무인들을 때려눕히고 있습니다!”
“뭐야? 몇 놈이냐!”
대답은 비명으로 들려왔다.
“아악!”
이어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뚫고 들어온 총관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래서 대가리 나쁜 새끼는 싫다니까. 사람이 말을 하면 곱게 들을 것이지. 왜 매를 벌어?”
활짝 열린 문 앞에 당당히 선 사내는 바로 용추였다.
입구 쪽에 앉았던 중경무관주 정욱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대는 누군가?”
“뭘 그렇게 재수 없게 쳐다봐. 눈깔을 확 파버릴라.”
서북로에서 감히 누가 중경무관주에게 이런 모욕을 선사할 수 있겠는가.
순간 정욱의 얼굴이 붉어지며 실내에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감히······.”
분노한 정욱이 일어날 때 누군가가 용추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안 보이니까 나와. 새끼야.”
“예. 소공자.”
용추가 길을 비키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수려한 외모의 청년이 나타났다.
“이거 섭섭한데. 주인공이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작했나?”
진무립의 무복에 달린 표식과 곁에 선 유대하를 알아본 추광도가 벌떡 일어났다.
“마도림의 소공자?”
그와 거의 동시에 모두의 눈이 육무봉에게 향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말이오. 일단은 소공자도 서북로에서 객잔을 운영하니까······.”
추광도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역시 이 새끼 마도림이랑 손잡은 게 맞았어.”
진무립이 별실에 발을 들이며 말했다.
“거, 새끼 눈매 한 번 사납네.”
추광도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내게 말한 것이냐?”
진무립은 대꾸하지 않고 유대하를 쳐다봤다.
“계단 지켜. 허락 없이 올라오는 놈은 전부 대가리를 깨버려라.”
유대하의 허리춤엔 진검 대신 단단한 목검이 매달려 있었다.
“알겠습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으나 여기까지 온 이상 이견을 내뱉을 생각은 없다.
진무립이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젠 알기 때문이다.
유대하가 곧장 몸을 돌리자 성큼성큼 걸어간 진무립은 하나뿐인 창문에 걸터앉았다.
“내 의자가 없으니 여기 앉아야겠군.”
수장들은 상석의 구분 없는 원형 탁자에 앉아있었으나 진무립이 창틀에 앉자 묘하게 상석처럼 보였다.
결국 모욕을 참지 못한 수장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칠도문주 도영광이 도병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조부의 후광을 이용해 청하객잔을 빼앗았다지? 여기에서도 그게 통할 것 같은가?”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 하나에 마도림의 식충이, 거기에 철사방도에게 피떡이 되도록 얻어맞은 진무립은 가소로울 수밖에 없었다.
흉흉한 살기가 순식간에 별실을 잠식했지만 피식 웃은 진무립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용추야.”
“예. 소공자.”
“두 발 딛고 서 있는 놈은 일단 패라. 얼굴은 치면 안 된다. 대신 한 놈 정도는 죽어도 상관없다.”
“저 영감의 낯짝을 보니 어린 시절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저한테 참 잘해주셨는데.”
석가장주를 담은 용추의 눈이 아련해지자 진무립은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그럼 영감은 살려······.”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주먹을 불끈 움켜쥔 용추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그러니 일단 영감부터 쳐 죽이겠습니다.”
“미친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