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80
◈ 80화. 나오십시오!
십여 명의 무인이 노을 진 평원에 접어들었다.
전신이 크고 작은 상처로 가득한 그들은 구양무와 함께 전장을 빠져나온 천무대원들이었다.
선두에 선 구양무의 표정이 처참했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냐?’
사천맹 최강의 타격대.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고 실패를 모르던 천무대가 적을 등지고 도망친다.
그러나 상처 난 자존심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며칠 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부하들의 죽음이었다.
‘내 실수다.’
그간 이뤄온 결과만 믿고 충분히 경각심을 갖지 못한 게 실책이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적을 돌파했으나 살아서 이곳까지 온 부하는 고작 열하나뿐이다.
약해진 마음을 다잡은 구양무는 비장한 결의를 다졌다.
‘죽어도 이들에게 사천 땅을 밟게 해줄 것이다.’
* * *
나곡을 통과한 진무립 일행은 지친 말을 갈아타며 행보를 재촉했다.
닷새 거리를 사흘로 압축한 그들의 눈앞에 울창한 숲이 나타났다.
어둑해진 숲을 응시하던 육군명이 나직이 읊조렸다.
“이곳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숲을 관찰한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다.”
침엽수로 가득한 숲의 형태가 거쳐온 마을에서 들었던 것과 일치한다.
곁에 서 있던 단려화가 나직이 말했다.
“여기선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네요. 천무대는 아직일까요?”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머리 좋은 놈이 있다면 이곳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매복이 있을 수도 있다.’
아직은 적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깊은 곳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진무립은 서진환을 불렀다.
“숲을 확인해라. 천무대가 도착해 있는지 확인하고 만일 적이 있더라도 싸우지 말고 돌아와야 한다.”
“명을 받듭니다.”
말에서 내린 은무대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린 말을 숨기고 온다.”
진무립과 남은 동료들은 숲에서 가려진 절벽 뒤로 말을 데려가기 시작했다.
은무대가 숲에 진입한 지 일각이 지날 무렵, 서진환의 곁으로 은수련이 따라붙었다.
[대주. 수풀이 밟힌 흔적이 있습니다.]서진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나아간 두 사람이 숲의 중앙에 도착했을 때, 마치 만들어진 것처럼 어색한 정적 속에 약간의 혈향이 느껴졌다.
서진환은 앞서 나가려는 은수련에게 전음을 보냈다.
[멈춰.]그와 동시에 그녀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바람의 방향을 고려할 때 혈향이 풍기는 근원지는 이곳의 전방.
지그시 눈 감은 서진환은 기감을 퍼트려 사방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보일 리 만무한 숲 전체의 풍광이 뇌리에 빨려들 듯 그려지기 시작한다.
나무 뒤의 풍경, 바람 너머의 소리, 부대끼는 수풀 사이의 그림자.
‘오 장 앞의 수풀에 아홉 명이 몸을 숨기고 있다.’
숨결이 불규칙한 것이 다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의 주변으로 몸을 숨길 수 있는 거의 모든 장소에 살수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그 숫자가 무려 백여 명.
불어오는 바람에 숨결과 향까지 감출 줄도 안다.
부상자들은 천무대가 확실할 터.
그들에게 들키지 않고 접근할 정도라면 창도 인근에서 처리한 회혈대와는 차원이 다른 고수들이다.
‘복마전인가.’
서진환은 즉시 은수련에게 명령을 내렸다.
[매복이 있다. 숫자는 대략 백 명. 저들이 움직이는 순간 부상자들은 전부 죽는다. 난 이곳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 부하들을 데리고 돌아가 천주님께 보고해라.] [알겠어요.]은수련이 사라지고 잠시 후, 운작(雲雀)의 맑은 지저귐이 고요한 숲에 울려 퍼졌다.
그것을 신호로 흩어졌던 은무대원들이 일제히 퇴각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지나간 순간, 사내는 참았던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마치 명상을 하듯 눈을 감은 사내, 언지상의 귀로 새소리가 파고든다.
‘운작?’
운작은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새였지만 맹금으로 가득한 지림에는 살지 않는다.
언지상은 즉시 지척의 부하에게 전음을 보냈다.
[인원을 파악하라.] [예.]숲에 매복한 살수들은 약속된 방식으로 서로에게 전음을 보내기 시작했다.
명이 떨어지고 촌각에 달하는 짧은 시간에 마지막 전음이 언지상에게 도착했다.
[전원 이상 없습니다.]혈교의 최정예 살수 집단, 혈살추혼대(血殺追魂隊)를 이끄는 언지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작이 다시 나타났더라도 이상할 건 없다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군.’
만일 누군가 자신이 모르게 이곳까지 살피고 돌아갔다면 그땐 혈살추혼대의 운명을 걸어야 할 일전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
후기지수들을 처리하러 간 회혈대로부터 연락이 끊긴 것도 마음에 걸렸다.
‘사천맹에 내 눈을 속일 만큼 뛰어난 살수는 없을 테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는 즉시 부하에게 전음을 보냈다.
[각자의 장소에서 반경 삼십 장까지 수색해라.] [예.]혈살추혼대의 움직임은 곧장 서진환의 기감에 걸려들었다.
‘은무대가 돌아간 직후 움직인다?’
더욱 은밀히 기척을 숨긴 서진환은 원인을 고민하며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운작을 흉내 낸 신호 때문이로구나.’
이따금 들려오는 새 소리는 거의 다 맹금류의 것으로 이곳은 운작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으로 인해 벌어진 실수였다.
다행스럽게도 상대는 주변을 수색하고는 원위치로 돌아간다.
‘제법 생각할 줄 아는 놈이 있군.’
미간을 좁힌 서진환은 더욱 은밀히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혈살추혼대와 은무대가 은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때, 수풀 속에 몸을 숨긴 당자경은 구조장 나백륜에게 전음을 보냈다.
[백륜. 몸은 좀 어떤가?] [견딜 만하네.] [견딜 만한 수준으로는 안 돼.] [그렇겠지. 어차피 내 다리는 하루 이틀로 회복될 상처가 아니야. 싸움이 벌어지면 내가 뒤를 막을 테니 자네가 나머지를 이끌고 움직이게.] [모든 책임은 알량한 자존심에 광무대주의 의견을 묵살하려 한 내게 있네. 다음에 죽는 건 무조건 나야.]나백륜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고집하고는.]이어진 나백륜의 전음에는 왠지 허탈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하필 저런 놈들이 쫓아오다니 재수도 없지.]두 사람은 모른 척할 뿐 숲을 가득 채운 적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만큼 우릴 신경 쓴다는 것이겠지.] [다른 이들도 무사히 탈출했을까?] [탈출했다면 분명 이리로 오고 있을 것이다.]이곳 지림에서 천무대가 확인하러 간 세 지역은 모두 같은 거리다.
그럼에도 이들이 먼저 도착한 것은 강달의 전투가 가장 빨랐기 때문이었다.
‘놈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흩어진 대원들이 이곳에 모일 때를 기다리는 것이겠지. 참으로 변태 같은 놈들이로군.’
당자경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아마도 송폭에 간 동료들이 다음으로 도착할 거다. 그들이 숲에 들어오려 할 때 움직일 테니 준비하게.]당자경은 그렇게 해서 숲에 적이 있음을 알릴 생각이었다.
말을 숨기고 돌아온 진무립은 은수련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부상당한 천무대 일부가 숲의 중앙에 숨어 있습니다. 그 주변으로 적의 살수가 대략 백 명. 무위는 회혈대보다 서너 단계 위에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보고가 사실이라면 쉽지 않은 적임이 분명하다.
“은무대는 지금부터 외곽을 경계한다. 천무대를 제외한 누구도 안으로 들이지 마라.”
“명을 받듭니다.”
은무대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가운데, 진무립은 서진환에게 명을 전하러 가는 은수련을 불렀다.
“려화를 데려가라.”
단려화는 진무립의 생각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천무대를 지키면 되는 건가요?”
“천무대를 곤경에 빠뜨릴 정도의 적이라면 쉽지 않을 거야. 내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천무대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전하고, 공격이 시작되면 이기려 들 것 없이 시간을 끌어.”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단려화가 소완공을 전개하자 은수련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치 대주 서진환의 은잠술을 보는 것처럼 은밀했기 때문이다.
몸을 숨긴 단려화의 귀로 진무립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행여 위험하면 혼자라도 좋으니 빠져나와.]왠지 마음이 따뜻해진 단려화는 빙그레 웃었다.
“어서 가라.”
진무립의 손짓에 두 사람이 숲으로 들어갔다.
육군명이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진무립은 어둑한 하늘을 슬쩍 쳐다봤다.
“해가 떨어지기까지 반 시진 정도 걸리겠군.”
“그 정도겠지.”
진무립은 용추와 육군명을 번갈아 보곤 숲으로 걸어갔다.
“따라와라.”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육군명이 씩 웃었다.
“왠지 두근거리는군.”
진무립과 두 사람은 마치 산책하듯 숲길을 걸었다.
거목이 햇살을 가린 어둑한 숲은 바깥보다 시간이 앞서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걷기를 일각.
등 뒤의 두 사람이 날 선 눈빛으로 입을 꾹 다문 가운데, 진무립은 두 손을 입가에 붙였다.
“거기 있으면 나오십쇼! 진무립이 왔습니다!”
우렁찬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당자경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진무립이라고?’
자신들이 지림에 모이기로 정한 것은 부대를 나누기 직전이었다.
대체 여길 어떻게 알고 왔단 말인가?
놀란 그의 귓속으로 한 줄기 전음이 파고들었다.
[광무대주의 전언입니다. 대답하지 말고 그대로 계세요.]어디에서 들려오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은밀한 전음.
‘이 목소리는…… 광무대주의 호위다.’
묻고 싶은 게 많았으나 상대의 위치를 모르니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의문이 떠오른다.
‘가능한가?’
천무대조차 기척을 완벽히 감지하지 못하는 적이다.
제아무리 정무원 노사들이 인정하는 진무립이라지만 상대가 너무 나쁘다.
그 생각을 눈치챈 모양인지 재차 당부하듯 전음이 들려온다.
[절대 대답하지 마시고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입술을 지그시 깨문 당자경은 결단을 내렸다.
‘노사님들께서 함께 오셨을지도 모른다. 일단 시키는 대로 해보자.’
그가 동료들에게 단려화의 전언을 전파할 때 진무립의 외침이 재차 들려왔다.
“진무립이 왔습니다! 나오십쇼!”
근방에 몸을 숨긴 혈살추혼대주 언지상은 내심 당혹스러웠다.
‘광룡 진무립?’
진무립에 관한 소문은 이미 혈교의 전 지부에 전파된 상태.
이곽을 쓰러뜨리고 현유립과 손속을 교환했으며 적사곡을 무너뜨린 흉적이 이곳에 나타났다.
‘겁을 상실한 놈이로군. 꽁지 빠지게 도망쳐도 모자랄 판국에 천무대를 구하러 왔단 말이냐?’
본인은 아직 모르고 있었으나 진무립에겐 혈교의 추살령이 내려져 있었다.
이번 일이 끝나고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할 부대는 바로 혈살추혼대였다.
혈위사신보다 무위는 떨어지는 언지상이었으나 부대를 통솔하는 능력만큼은 그들보다 낫기에 맡겨진 임무였다.
‘이렇게 되면 계획을 변경해야겠군.’
언지상은 즉시 생각을 정리했다.
[세 개조는 나를 따라라. 진짜 광룡이 왔는지 확인하겠다. 만일 싸움이 시작되면 나머지는 천무대를 기습해라.] [호공께서 세 곳의 천무대가 전부 모이기 전까지 대기하라고 하셨는데 괜찮겠습니까?]이번 작전의 책임자는 잔꾀가 여우 같다 하여 호공(狐公)이라 불리는 노인, 소유붕이었다.
언지상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혈위사신을 뚫고 적사곡을 무너뜨린 진무립은 천무대보다 더 위험한 놈이다. 놈을 잡고자 하는 일이라면 호공께서도 책망하지 못하실 거다.] [알겠습니다.]차례로 전파되던 전음이 되돌아온 순간, 언지상의 신형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진무립이 왔습니다! 나오십쇼!”
무거운 정적 속에 진무립의 외침이 끝없이 퍼져 나간다.
두 걸음 더 나아간 진무립은 자신에게 와닿는 은밀한 시선을 감지했다.
진무립은 입에 붙였던 두 팔을 가지런히 내렸다.
그 행동에 뒤에서 시선을 교환한 두 사람이 작게 끄덕였다.
저벅.
내딛는 그들의 발소리가 고요함에 긴장감을 더해간다.
좌에서 우로.
주변을 훑어본 진무립이 다시 외쳤다.
“그만 나오십시오!”
내딛던 진무립의 발이 멈추는 순간 언지상의 눈이 부릅떠졌다.
‘말도 안 된다!’
시야에 있던 진무립이 마치 연기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고작 이 장에 불과한 간격에서 적을 놓쳤다.
‘어디냐?’
두리번거리는 언지상의 후방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오라고 네 번이나 말했으면 알아서 기어 나왔어야지.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