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83
◈ 83화. 자신 있으면 들어와라
흩어졌던 천무대 전원이 합류했다.
사천을 떠날 때만 해도 일백 명이던 그들의 숫자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뿐, 그들은 전신이 상처로 가득한 동료들의 모습에 처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입술을 질끈 깨문 구양무가 고개를 떨궜다.
“모두 내 실책이네.”
당자경이 나서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날 알량한 자존심으로 광무대주의 의견을 무시한 제 잘못이 큽니다. 사천으로 돌아가면 맹주께 죄를 고하고 벌을 받겠습니다.”
진무립은 자책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지금은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언제 적의 추격이 올지 모릅니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떠나야 합니다.”
구양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덕분에 이들과 무사히 만날 수 있었네. 내 마음 같아선 절이라도 올리고 싶네만 그건 잠시 미뤄두도록 하겠네.”
그는 즉시 부하들에게 말했다.
“다들 서둘러 상처를 수습하고 내력을 회복하라. 준비가 끝나면 바로 떠날 것이다.”
“예.”
천무대원들은 일제히 자리에 앉아 회복에 전념했다.
진무립과 단려화, 용추와 육군명은 즉시 숲 외곽을 순찰했다.
‘추격이 없었다는 건 어제 죽은 놈들을 믿기 때문일 거다. 그놈들이 보여준 힘이라면 지치고 다친 이들 정도는 도륙할 수 있다고 확신할 테니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생각이 있는 놈들이라면 반드시 추격을 보낼 거다.’
외곽을 꼼꼼히 확인한 진무립은 다시 천무대 곁으로 돌아왔다.
상처를 수습하고 운기행공을 마친 그들은 진무립을 따라 즉시 말에 올랐다.
“출발하겠습니다.”
구양무가 말했다.
“자네에게 선두를 맡기겠네.”
자신들은 도망치기에 바빠 다른 계획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천무대를 구하러 온 진무립이라면 분명 다음 계획도 있을 것이라 믿었다.
진무립은 기대에 부응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서겠습니다.”
* * *
진무립 일행이 떠나고 반 시진이 지날 무렵, 지림의 남쪽에 핏빛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나타났다.
선두에 선 백발의 노인, 소유붕이 숲을 눈에 담고 말했다.
“고요하구나.”
그의 곁으로 다부진 체구의 중년인이 다가왔다.
“천무대에겐 싸울 여력이 없을 겁니다. 벌써 끝낸 게 아니겠습니까?”
무혼광인과 함께 천무대를 궤멸 직전까지 몰아붙인 건 바로 자신들이다.
사사대(死士隊)의 수장 장백관은 혈살추혼대가 싸움을 끝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소유붕의 표정은 그와 달랐다.
“으음.”
바람에 실린 옅은 혈향은 분명 숲에서 뭔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느낌이 꺼림칙하다.
“일단 가보자꾸나.”
“예.”
신법을 전개한 두 사람 뒤로 이백의 사사대가 따라붙었다.
숲에 접어들자 탄 냄새와 함께 혈향이 점점 짙어진다.
냄새의 근원지로 달려간 소유붕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가지런히 쌓여있는 시신들은 천무대가 아닌 혈살추혼대였다.
장백관의 표정에도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즉시 고개를 돌려 명을 내렸다.
“너희들은 당장 숲을 수색해라!”
“예!”
이백 명의 무인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눈을 가늘게 뜬 소유붕은 시신의 상흔을 살폈다.
‘상처가 깊구나.’
다치고 지친 천무대에겐 이토록 깊은 상처를 낼 여력이 없었을 터, 그는 조력자가 있음을 확신했다.
그때 북쪽을 살피고 온 사사대원이 부복했다.
“말발굽이 숲의 북쪽 밖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흔적을 보아 떠난 지 오래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잠시 생각하던 소유붕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모두 모아라. 따라가자꾸나.”
그 모습에 장백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소유붕의 미소가 짙어졌다는 것은 그가 어느 때보다 화가 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혈풍이 불겠구나.’
* * *
드문드문 눈이 옅게 깔린 고원.
오십 필의 말이 찬 바람 몰아치는 구릉을 힘겹게 올라간다.
선두에서 뒤를 힐끔 쳐다본 진무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생각보다 행보가 더디다.’
지림으로 갈 때는 사람보다 말이 많았기에 지친 말을 갈아타며 속도를 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래선 말보다 사람이 빠를 것만 같다.
후미를 따르던 단려화가 전음을 보내왔다.
[말도 사람도 지쳤어요. 조금 쉬어가는 게 좋겠어요.]당자경을 비롯해 최초로 도착한 이들은 하룻밤 잠이라도 잤다.
그러나 다음 날 도착한 이들은 며칠째 한숨도 못 잔 최악의 상태였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군말 없이 따른다.
후배에게 이 이상 짐이 될 순 없다는 선배로서의 의지였다.
“구릉만 넘어가서 쉬겠습니다.”
가깝게만 보이던 정상은 무려 일각을 더 달린 뒤에야 발에 닿았다.
정상을 살짝 넘어가서 멈춘 이들은 말에서 내렸다.
지친 말들조차 자리에 주저앉았으나 천무대는 누구도 앉는 이가 없었다.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잠에 빠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가다가 쓰러지겠군.’
진무립이 천무대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반 시진 쉬겠습니다. 눈 좀 붙이십시오.”
구양무가 푹 꺼진 눈으로 다가와 물었다.
“시간이 없질 않은가?”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조금이라도 쉬어서 가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알겠네.”
복귀 계획은 모두 진무립에게 일임한바, 구양무와 천무대원들은 그대로 자리에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육군명이 다가와 나직이 물었다.
“괜찮을까?”
“말 위에서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두 사람을 데려와라.”
“알았어.”
천무대가 잠든 사이 진무립과 단려화, 육군명과 용추가 조금 떨어진 장소에 모여 앉았다.
진무립은 지도를 펼쳤다.
“오면서 지나친 기억이 있을 거다. 여기서 반 시진 거리에 강을 낀 작은 숲이 있다.”
단려화가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기억나요. 강폭이 일 장 정도 되는 것 같았어요.”
“그곳에 은무대가 매복해있다. 적에게 잡히지 않고 그곳까지 가야 한다.”
단려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과연 추격대가 있을까요?”
“없어도 있다고 생각해야 적과 마주쳤을 때 당황하지 않을 거다.”
육군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거기에서 결착을 내는 건가?”
진무립은 이 와중에도 빙그레 웃었다.
“놈들이 머리가 나쁘다면 그렇게 되겠지.”
* * *
소유붕과 사사대는 조금 전까지 사천맹 무인들이 머물던 구릉 위에 도착했다.
사사대주 장백관이 주변을 살피고 돌아왔다.
“발자국을 지운 흔적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쉬어간 모양입니다.”
소유붕은 말없이 먼 곳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잠시 후, 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다 온 모양이야.”
저 멀리 나직이 솟아난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인마를 발견한 것이다.
“서두르자꾸나.”
“예.”
지루한 추격전의 끝이 보이자 사사대는 전력으로 신법을 전개했다.
두 개의 언덕을 넘어 반 시진가량 추격을 이어간 그들 앞에 작은 숲이 나타났다.
“말발굽이 숲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눈을 가늘게 뜬 소유붕은 주변 지형을 확인했다.
“그 뒤엔 강이 흐르는군. 흔적을 감추고 도주하기 적절한 장소야.”
장백관이 말했다.
“강을 넘었겠습니까?”
“분명 그랬을 것이다. 이대로 강을…….”
소유붕은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아무도 없을 것만 같던 숲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수가 제법 많군.”
눈앞에 나타난 청년은 사내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생긴 인물이었다.
소유붕이 허허롭게 웃으며 한 발 나섰다.
“흘흘흘. 적사곡에 나타난 아이 중에 넋이 나갈 만큼 훤칠한 인물이 하나 있다고 들었지. 아이야. 네 이름이 진무립이 맞느냐?”
진무립은 대적을 앞에 두고 여유롭게 웃었다.
“듣도 보도 못한 촌구석 영감까지 아는 걸 보면 내 이름이 제법 유명한 모양이야.”
자극적인 도발에도 소유붕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비록 어리다지만 진무립은 열 명도 안 되는 숫자로 혈위사신을 뚫고 적사곡을 무너뜨렸고.
그것도 모자라 지림에선 다 죽어가는 천무대를 데리고 일백의 혈사추혼대를 몰살시킨 괴물이다.
상대는 격장지계에 쉽게 넘어가선 안 될 대적이었다.
“노부의 이름은 소유붕이라고 한다. 이곳 서장에서는 나를 호공이라고 부르지.”
“곧 죽을 노인네 이름까지 알고 싶진 않군.”
“하나 물으마. 혈살추혼대는 어떤 방법으로 처리했느냐?”
소유붕은 진심으로 궁금한 눈치였다.
히죽 웃는 진무립의 미소에 은은한 광기가 깃들었다.
“별거 아닌 놈들을 상대로 복잡하게 머리 굴릴 필요가 있을까?”
“혈살추혼대가 별거 아니었다?”
“네놈들도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이는데.”
당돌한 도발에 웃음이 나온다.
“흘흘흘.”
불어온 바람에 웃음소리가 사라질 무렵, 소유붕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한번 시험해보겠느냐?”
“자신 있으면 들어와라.”
미소를 흘린 진무립은 그대로 돌아서서 숲으로 사라졌다.
사사대주 장백관이 주먹을 움켜쥐고 말했다.
“참으로 건방진 놈입니다. 명을 내려주시면 즉시 시신을 가져오겠습니다.”
소유붕은 고개를 저었다.
“실력 좋은 아이로 다섯 명을 추려라. 나머지는 자리에 앉아 체력을 회복하거라.”
“호공. 그러다가 놈이 도망이라도 친다면…….”
“여기까지 쫓아온 우리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지금은 상대의 전력을 파악해야 할 때다.”
혈살추혼대를 진무립이 혼자 제거했을 리는 없다.
피해를 줄이고 완벽하게 임무를 해내려면 진무립이 가진 패를 알아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부하들에게 회복을 명한 장백관은 사사대의 최고수 다섯 명을 차출했다.
소유붕이 그들에게 나직이 말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숲을 수색하고 오너라. 보통 녀석이 아니니 조심해야 할 게다.”
“명을 받듭니다.”
즉시 예를 갖춘 그들은 빠르게 숲으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키던 서진환의 전음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왔습니다.]진무립은 차갑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움직이지 마라.] [명을 전하겠습니다.]진무립과 단려화, 그리고 열 명의 은무대는 은잠술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기척을 감췄다.
은밀한 시선이 따라붙는 가운데 숲에 들어온 사사대원들은 사방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오감에 집중하고 기감을 퍼트려도 숲으로 사라진 진무립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각에 걸친 수색 끝에 그들은 결국 빈손으로 숲을 나섰다.
“송구합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장백관이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소리냐? 분명 놈이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지 않았느냐?”
“예. 그런데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습니다.”
소유붕의 눈이 숲을 뚫어질 듯 응시했다.
‘혼자일 리는 없다. 그런데 이들이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는 것은…….’
곰곰이 생각하던 소유붕은 실소를 흘렸다.
“클클클.”
장백관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명하신다면 지금 당장 숲을 불태워서라도 전부 잡아내겠습니다.”
“그럴 것 없다.”
“예?”
“돌아가자꾸나.”
“호공!”
“너는 혈살추혼대를 몰살시키려면 상대측에 몇 명의 고수가 있어야 한다고 보느냐?”
상대의 무위에 따라 답이 나뉠 질문이었다.
“적어도 비슷한 숫자는 있어야…….”
장백관이 조심스럽게 말끝을 흐리자 소유붕은 쓴웃음을 지었다.
“상대의 무위에 따라 다르겠으나, 조금 전에 본 그 아이 혼자서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아라. 사사대에서 가장 강한 아이 다섯이 한 번에 들어갔음에도 적의 흔적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그 말은 사사대의 그 누구도 상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런 고수들을 상대로 십 할의 승리를 자신할 수 있겠느냐?”
장백관은 이해했다는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송구합니다. 속하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우린 이미 혈야광인 서른 구와 혈살추혼대, 회혈대, 환염대와 혈위사신의 한 명을 잃었다. 더 이상의 전력손실은 본교의 입장에서 큰 손해다. 오늘은 돌아가자꾸나.”
“명에 따르겠습니다.”
장백관이 부하들에게 돌아가자 소유붕은 숲을 향해 서너 걸음 더 나아갔다.
‘헛걸음이 됐으나, 의미 없는 헛걸음은 아닐 것이다.’
쓴웃음을 지은 소유붕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아이야! 오늘은 노부가 진 것으로 하마!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거라!”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대로 몸을 돌린 소유붕과 사사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