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84
◈ 84화. 다시 사천으로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린 단려화는 멀어지는 적의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적들이 돌아가는군요.”
다섯 명의 정찰자를 죽였더라면 적은 분명 숲을 공격했을 것이다.
진무립이 일부러 그들을 살려 보냈기에 상대는 이쪽의 힘을 눈치채고 순순히 물러난 것이다.
뒤따라 진무립이 그녀의 곁으로 뛰어내렸다.
“노인네가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알아.”
만일 적이 숲에 들어왔더라면 싸움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질 거란 생각은 없었으나 이백이 넘는 적 중 몇 명이라도 도망친다면 은무대가 노출될 수도 있었다.
상대의 퇴각은 생각했던 가장 완벽한 전개였다.
단려화는 빙그레 웃었다.
“싸우지 않고 적을 물리친 셈이 되었네요.”
그동안 워낙 많이 놀란 탓에 감탄도 나오지 않는다.
진무립이라면 그게 무슨 일이든 당연하다는 듯 성공할 것만 같았다.
“포달랍궁의 잔당들을 찾는다면 동쪽에 많은 숫자를 보내지는 못했을 거다. 이대로 창도에 합류해 사천으로 돌아간다.”
“그래요. 어서 가요. 더 늦으면 천무대를 놓치겠어요.”
육군명과 용추, 그리고 천무대는 지금도 북서쪽으로 말을 달리는 중이었다.
진무립은 은무대를 소집했다.
“너희들이라면 천무대를 앞지를 수 있을 거다. 우린 저들과 합류할 테니 먼저 창도에 가서 기다려라.”
“명을 받듭니다.”
즉시 예를 갖춘 은무대가 꺼지듯 사라졌다.
* * *
회군하는 사사대의 선두, 소유붕의 곁으로 다가온 장백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공. 저들을 이대로 보내실 겁니까?”
숲에서 퇴각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혈교에 큰 피해를 입힌 상대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저들을 확실히 잡으려면 최소한 겁화천살대(劫火天殺隊)는 보내야 한다.”
겁화천살대는 혈교에서 두 번째로 강한 부대.
수라대가 교주의 명령에만 움직이는 것을 고려하면 겁화천살대는 일선에 나서는 가장 강한 무인들이었다.
장백관은 살짝 놀라며 물었다.
“천무대는 싸울 상태가 아닙니다.”
“천무대만 잡을 것 같았으면 아까 도망치지 않고 싸웠을 것이다. 그들이 문제가 아니라 진무립이라는 아이가 문제야.”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심계와 혈위사신에게 승리할 정도로 고강한 무위.
소유붕은 장차 있을 사천과의 전쟁에서 진무립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자네는 가까운 지부에 도착하는 즉시 총단에 서신을 보내 겁화천살대를 요청하게. 랍살을 함락시켰으니 그들을 뒤로 돌릴 여유가 있을 게야. 서두르면 대설산맥을 넘기 전에 따라잡을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소유붕의 눈이 서늘한 빛을 머금었다.
‘흘흘흘. 쉽게 보내지는 않을 것이네.’
* * *
육군명의 바로 뒤를 따르던 구양무는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연신 뒤를 쳐다보던 그에게 당자경이 다가왔다.
“걱정되십니까?”
“두 사람은 우릴 보내겠다고 미끼를 자처해 뒤에 남았네.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나?”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그 둘이라면 설령 교주와 수라대가 나타났더라도 무사히 빠져나올 겁니다.”
수라대는 혈교 최강의 타격대로 온전한 상태의 천무대조차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생각 이상의 고평가에 구양무가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천무대에서 누구보다 진무립을 탐탁지 않게 보던 당자경이었기 때문이다.
“자네…….”
당자경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광무대주의 실력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때 큰 바위 앞을 지나던 육군명이 말을 세웠다.
“다들 피곤해 보이는데 여기서 한숨 자다 갑시다.”
진무립이 남은 이상 후방에서 적이 나타날 리는 없다.
만에 하나 진무립과 은무대를 뚫고 이곳까지 오는 적이라면 저항은 무의미하다.
육군명이 이토록 여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진무립이 곧 후미를 쫓아올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백륜이 가장 먼저 말에서 내렸다.
“피곤할 텐데 다들 내려서 쉽시다.”
이어서 구양무와 천무대원들이 차례로 땅을 밟았다.
육군명은 인근을 돌아다니며 나뭇가지까지 주워와 대범하게 불을 피웠다.
쫓기는 상황에서 불을 피우는 것은 금기와 같았으나 천무대원 중 누구 하나 말리는 이가 없었다.
진무립을 비롯한 이 자리의 후기지수를 믿기 시작한 것이다.
바람을 막아주는 바위, 따스한 모닥불의 온기에 천무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진무립과 단려화가 천무대와 합류할 무렵엔 어둠이 짙게 내린 밤이었다.
천무대는 얼마나 피곤했는지 두 사람이 도착했음에도 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사천까지는 아직 먼 길이다.
진무립은 그들이 알아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며 쪽잠을 청했다.
새벽 서리에 모닥불이 꺼질 무렵, 잠에서 깨어난 그들은 진무립과 단려화의 무사에 안도하며 몸을 일으켰다.
출발 준비를 마친 구양무가 다가왔다.
“추격은 어떻게 되었는가?”
“지금쯤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을 겁니다. 창도에 도착할 때까지 안심해도 될 겁니다.”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빙그레 웃은 진무립은 말에 올랐다.
“서두르시죠. 놈들이 이대로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알겠네. 다들 말에 오른다.”
말에 오르는 천무대의 눈에 한결 생기가 돌았다.
진무립의 예상대로 추격은 없었다.
빠르게 북상한 그들은 이레가 지난날의 아침, 펑펑 쏟아지는 흰 눈을 맞으며 창도가 보이는 들판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폐가의 지붕에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
자그마한 마당, 새하얀 눈 위에 선명한 족적이 새겨진다.
쐐애액!
날카롭게 내지르는 검극이 떨어지는 눈송이를 사정없이 꿰뚫었다.
‘아직 부족하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패하고 난 뒤에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강함에 대한 갈망이 샘솟듯 솟구친다.
검의 회수가 물 흐르듯 이어지더니 이내 사방의 눈송이를 생사 대적처럼 찌르고 베어내기 시작했다.
무아지경에 빠져든 유대하의 발자국은 금세 마당 곳곳에 흔적을 새겨갔다.
거칠 것 없이 이어지던 눈밭의 검무는 인기척이 느껴진 뒤에야 마무리됐다.
“벌써 그렇게 움직여도 괜찮겠어요?”
반쯤 무너진 담장을 넘어오는 이는 바로 당소소였다.
유대하는 멋쩍게 웃으며 착검했다.
“움직일 만합니다.”
적사곡에 다녀온 뒤, 유대하는 물론이고 당천과 진설란의 분위기까지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그들은 마치 전쟁을 앞둔 장수처럼 하루하루 치열하게 수련에 매진했다.
그 분위기에 휩쓸린 다른 후기지수들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이들은 안가에 머물면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유대하의 어깨 위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유소협.”
“예.”
“피가 나는데요?”
상처가 벌어졌는지 검은 무복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눈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유대하는 씩 웃었다.
“그래도 움직일 만합니다.”
당소소는 손바닥만 한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건조한 곳이라 살갗의 상처가 쉽게 덧날 거예요. 이걸 바르세요.”
유대하는 빙그레 웃었다.
“잘 쓰겠습니다.”
그때 마을 입구에서 시끄러운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천무대다!”
“천무대가 돌아왔다!”
누군가의 외침이 폐가로 가득한 마을에 울려 퍼졌다.
강유월과 하종보, 그리고 운룡각 무인들은 한달음에 마을 입구로 몸을 날렸다.
그들은 천무대의 처참한 몰골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단정한 무복은 본래의 형태를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드러난 피부에는 아물어가는 상처로 가득했다.
백 명에 달하던 무인 중 살아 돌아온 이는 고작 서른이 조금 넘는다.
사천맹 최강으로 이름 높던 천무대의 참패.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게 대체…….”
눈을 부릅뜬 국철영의 입을 진설란이 틀어막았다.
[내색하지 말아요. 누구보다 힘든 건 저분들이니까.]국철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대는 자신들을 향한 이들의 시선에서 복잡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나 선망의 시선만 받아오던 자신들이다.
저들의 당혹스러운 표정과 마주한 뒤에야 패배의 굴욕이 뼈아프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마음을 잘 아는 구양무는 운룡각 무인들에게 말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미안하군. 그대들의 짐작대로 우리는 패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이어가기보다는 패배를 인정하는 게 부하들의 마음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진무립이 앞으로 말을 몰아 나왔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다. 임무의 결과를 떠나 천무대는 사천맹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대들은 동료가 무사히 돌아왔음에 감사해야 한다.”
진무립의 말에 느낀 바가 있는지 후기지수들은 애써 표정을 고쳤다.
진무립을 향한 구양무의 눈길에 고마운 빛이 떠올랐다.
강유월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총대주의 말이 옳네. 천무대는 누구도 하지 못할 어려운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네.”
하종보가 이어서 말했다.
“고생이 많으셨네. 식사를 준비할 테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구양무는 착잡한 마음을 감추며 고개 저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일각 안에 준비를 마치고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당천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추격이 있는 모양이군.”
그 나직한 목소리에 후기지수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진무립이 말했다.
“추격을 달고 온 것은 아니다. 다만 사천으로 돌아갈 때까지 적의 추격이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 포달랍궁의 본궁을 함락시킨 놈들이 이곳으로 눈을 돌리기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
그 말에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포, 포달랍궁이 무너졌단 말이오?”
단려화가 입을 열었다.
“랍살의 본궁이 함락된 게 열흘 정도 되었을 거예요. 일선에서 활동하던 무인들을 이쪽으로 보낸다면 우린 쉽게 떠날 수 없을 겁니다. 대주의 말처럼 서두르는 게 좋을 거예요.”
“창도에 말을 사러 간 육군명과 용추가 곧 돌아올 거다. 그 전에 준비를 마치고 집합해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인들은 일사불란 흩어져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끝까지 자리에 남아있던 유대하는 빙그레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무립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그사이에 제법 눈빛이 달라졌군.”
“부족한 현실을 깨달았을 뿐입니다. 서둘러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유대하가 사라진 뒤, 창도에 갔던 두 사람이 돌아왔다.
말을 사러 간 이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단려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냥 와요?”
육군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마방에 말이 한 마리도 없더군. 아무래도 놈들이 손을 쓴 모양이야.”
육군명이 내뱉은 말의 의미는 모두가 눈치챌 수 있었다.
놈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구양무가 다가와 말했다.
“철수 계획은 자네에게 일임했었지.”
“예.”
“만일 이번에 누군가 뒤에 남아야 한다면 반드시 우리 천무대가 남을 것이네.”
좋을 때의 몸 상태를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면 운룡각을 보내고 자신들이 남는 게 옳다.
후배들을 남기고 자신들만 살아 돌아간다면 평생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비록 적의 함정에 빠져 패하고 온 자신들이었지만 무림 선배로서의 도리는 다하고 싶었다.
그들이 한마음으로 의지를 불태웠으나 진무립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진무립이 아니었더라면 자신들은 지림에서 모두 죽었을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진무립에게만 지게 할 수는 없었다.
구양무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만큼은 자네를 뒤에 남길 수 없네.”
진무립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구도 뒤에 남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번에는 모두가 함께 갑니다.”
“그게 가능하겠는가?”
잠시 누군가를 떠올린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일입니다.”
내뱉지 못한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적모개가 제때 도착했다면 말이지요.’
준비를 마친 운룡각 무인들이 집결했다.
진무립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이, 전원이 함께 대설산맥을 넘어 사천으로 돌아갈 겁니다.”
이제 마지막 한 걸음이다.
모두의 눈에 비장한 각오가 번졌다.
강유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총대주가 그렇다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겠지. 출발하세나.”
“출발하겠습니다.”
진무립을 필두로 사천맹 무인들이 복귀를 위한 마지막 여정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