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94
◈ 94화. 동료들의 의지
강유월이 떠나고 반 시진 뒤, 한천월의 집무실에 당문경이 찾아왔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어서 오게. 각주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양이더군.”
“이쪽의 계획을 알려주지 않았으니 조바심이 난 게지요. 뭐라도 하고자 하는 모양입니다.”
“중목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가급적 말이 새어나가선 안 될 것이네.”
중요한 계획일수록 아는 사람은 적은 게 좋다.
“물론입니다.”
“후기지수들을 만난다고 하던데 뭘 준비하고 있다던가?”
“각주들의 회동이 있기 전에 재상각주가 찾아왔었습니다. 뭔가를 하고자 한다면, 이쪽의 계획과 상충하지 않게 후기지수들을 포섭해두기만 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한천월이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자신들의 회동에 비각이 개입한다면 유기 그 아이의 성격에 달가워하지는 않을 것인데.”
“물론 제 지시인 것은 모르고 있습니다.”
한천월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잘했네. 내 사질이지만 괴팍한 면이 없잖아 있는 아이거든.”
당문경도 화답하듯 빙그레 웃었다.
한천월이 말했다.
“이런, 내 자네를 너무 오래 세워두었군. 일단 앉게나.”
“예.”
자리를 권한 한천월은 시비를 불러 차를 내오도록 지시했다.
지시가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대기하던 또 다른 시비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과상을 내왔다.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다향이 이내 집무실을 짙게 채워갔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당문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금 전에 강노사께서 다녀갔다고 들었습니다.”
“광무대주를 핍박하지 말라며 협박하더군.”
당문경이 다소 의외라는 듯 말했다.
“협박이란 말입니까?”
항시 몸가짐이 단정하고 예법에 밝은 강유월이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한천월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어차피 중목회에 정무원은 참여하지 않네. 그 일은 내 알아서 할 터이니 신경 쓰지 말게.”
“예.”
대화가 일단락되자 당문경은 검토한 보고서를 내밀었다.
한천월이 물었다.
“벌써 확인이 끝났는가?”
“예. 광무대주가 올린 보고서와 천무대주가 올린 보고서의 내용이 거의 일치합니다. 세간에 퍼진 소문의 대부분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한천월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놈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관두기로 했네. 자칫하면 우릴 집어삼킬지도 모르는 대적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짓밟아야 할 것일세.”
한천월과 달리 당문경은 진무립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은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검토했다.
다만, 놈이 생각 이상으로 출중했던 것뿐이다.
당문경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저 역시 맹주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중목회까지 이제 사흘이 남았군. 소문은 언제 터트릴 생각인가?”
한 뿌리에서 갈라진 마도림과 혈교의 관계.
두 사람이 계획한 것은 그것을 바탕으로 진무립이 혈교와 내통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을 퍼트리고 명예에 흠집을 내는 것이었다.
진실은 중요한 게 아니다.
적과 내통했다는 의혹만 제시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목회 당일 아침, 맹과 성도에 소문을 낼 생각입니다. 그 직후, 집법원을 움직여 놈과 운룡각주를 옥사에 가둘 것입니다. 그리되면 중목회에 놈이 참여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이번 일로 마도림이 맹에서 이탈해서는 안 될 것이네. 혈교의 실혼인은 생각 이상으로 강력하지. 전쟁이 벌어지면 일선에서 피를 흘리는 것은 마도림이 되어야 할 것이야.”
당문경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뜬소문을 사실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맹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번 일로 탈맹을 한다면, 세인은 진무립과 혈교의 내통을 진실처럼 생각할 테니 말입니다.”
한천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중경과의 거리도 있으니 녀석은 적당히 이레 정도 잡아두었다가 풀어주면 되겠지. 그대로 진행하게.”
“예. 맹주님.”
“혈교와의 전쟁만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오랜 세월 기다려온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네. 조금만 더 고생해주게.”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마주 본 두 사람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중목원을 나선 당문경은 곧장 비각으로 돌아왔다.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일을 마무리하려면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집무실에 도착한 그가 문을 닫는 순간, 암영대주 궁야궐이 나타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각주님.”
“무슨 일이냐?”
“진무립을 미행하던 중우와 비관이 시신으로 돌아왔습니다.”
당문경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시신으로…… 돌아왔다?”
“비각의 정문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바로 지척에 있던 위사조차 교대시간이 될 때까지 발견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비각의 수문위사는 다른 부처의 위사들과 다르다.
정보를 다루는 곳인 만큼 고강한 무공과 예리한 감각을 가진 자들이다.
“시신의 상태는?”
“두 명 다 송곳 같은 것에 미간이 꿰뚫린 채 발견되었습니다.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보통 살수가 아닙니다.”
당문경의 미간이 좁아졌다.
“야궐. 너라면 가능하겠느냐?”
궁야궐은 사천맹 제일의 살수로 마음만 먹으면 중목원의 최상층까지도 잠입할 수 있는 고수다.
그는 잠시 머뭇거린 끝에 입을 열었다.
“솔직한 말씀으로는 이 일을 벌인 자는 저와 비슷하거나 저보다 반수 이상의 고수입니다.”
자리에 앉은 당문경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유화라는 그 여인인가? 아니면 그녀 외에 마도림에 이와 같은 살수들이 있었나?’
마도림의 살수로 보기엔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들이 궁야궐을 능가하는 살수들을 가졌다면 대검문과 전쟁을 하기에 앞서 수장부터 암살했을 것이다.
고민에 빠진 당문경의 입술 사이로 짙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후후후.”
흉수가 누구든 결국 그 주체는 진무립이다.
이건 자신을 향한 경고다.
네 목 따위는 언제든 딸 수 있으니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는 경고.
당문경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재미있구나. 진무립.”
* * *
야심한 시각.
우가산의 집무실에 한 무리의 무인들이 찾아왔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인, 소천당(小川黨)을 이끄는 장환을 시작으로 일제히 예를 갖췄다.
“운룡각주께 인사 올립니다.”
함께 온 이들은 전원 중소방파에서 파견된 책임자들로 맹에서 작은 직책을 역임하는 자들.
서장행이 이어지는 동안 우가산이 각별히 친분을 쌓아둔 이들이기도 했다.
우가산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시구려. 일단 앉아서 이야기 나눕시다.”
“예.”
둥근 탁자에 둘러앉은 십여 명의 무인들.
그들에게 차를 대접한 우가산이 나직이 물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무슨 일이시오?”
소천당주 장환이 말했다.
“요 며칠 맹 내에 감도는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각주께서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다른 각주들이 후기지수들을 만나는 것 말이오?”
“그렇습니다.”
왼쪽 뺨에 길쭉한 검상을 새긴 중년인, 금화당주 곽담이 입을 열었다.
“서장행의 논공행상이 있을 중목회가 사흘 뒤로 다가왔습니다. 저들의 행보를 보면 광무대주의 전공을 깎아내리려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장환이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각주님. 우리 중소방파는 광무대주와 마도림이 부당한 처우를 받는다면 결단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림이 사천맹에 들어온 것은 고작 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광무대주 진무립이 보인 그간의 행보는 이들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었다.
사대거파와 중소방파 후기지수들 사이에 보이지 않은 벽을 허물고 임무를 통해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동안 겸상조차 하지 않던 이들이 어울려 술을 마시고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대단한 변화였다.
마도림을 중소방파의 구심점으로 삼고자 했던 결정은 이들에겐 신의 한 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우가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스치듯 사라졌다.
‘중소방파를 중심으로 마도림의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소공자의 계획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딱히 진무립이 이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이들은 진무립의 행동과 눈으로 보이는 결과에 마도림을 믿고 따르기로 한 것이다.
우가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예를 갖췄다.
“참으로 고맙소이다. 오늘 여러분이 보여준 의지를, 우리 마도림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 * *
씻고 처소로 돌아온 진무립의 앞에 은무대주 서진환과 은수련이 부복했다.
예를 갖춘 은수련이 입을 열었다.
“비각에 시신을 두고 왔습니다.”
“수고했다.”
그녀를 가볍게 치하한 진무립이 서진환에게 시선을 옮겼다.
“각주의 측근에게서 뭔가 알아낸 것은 없나?”
“송구합니다. 평소와 다름이 없습니다.”
뭔가를 준비하면서 은무대의 눈을 속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음.”
중목회까지 남은 날은 사흘.
‘설마 각주들도 계획에 대해 아는 것이 없나?’
가능성은 둘 중 하나다.
정말 아는 것이 전혀 없거나, 아니면 측근에게조차 알리지 않을 만큼 기밀을 요구하는 계획일 것이다.
자신을 음해하려는 의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밖의 정보가 전혀 없으니 독심술이라도 쓰지 않는 이상 어떤 방법을 들고나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판을 깔고 끌어들인다.’
진무립은 붓과 종이를 꺼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새하얀 종이를 무려 석 장이나 빼곡하게 채운 진무립은 그것을 서진환에게 건넸다.
“이걸 은무대 전원에게 숙지시키고 적모개에게 넘겨라.”
종이 속 내용을 읽어가던 서진환은 눈을 부릅떴다.
“이것은…….”
궁금함을 참지 못한 은수련이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길게 읽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미친 사람 보듯 진무립을 쳐다봤다.
“처, 천주님?”
진무립은 씩 웃었다.
“제정신이냐고 묻고 싶은 거냐?”
그녀는 다급하게 무릎을 꿇었다.
“아닙니다. 속하가 어, 어찌 그런 불손한 생각을…….”
세 장의 종이를 모두 확인한 서진환이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모두 숙지했습니다. 부대주와 대원들에겐 속하가 전파하겠습니다.”
“적모개에게 전하고 너희들은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대기하라.”
“명을 받듭니다.”
절도 있게 예를 갖춘 서진환은 은수련을 붙잡고 꺼지듯 사라졌다.
두 사람이 사라지기 무섭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대주.”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당소소였다.
“들어와라.”
문이 열리고 서장행에 동참했던 부하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당소소의 뒤로 조영성이, 이어서 곽도진과 보인에 국철영까지.
문밖에는 좁은 방에 들어오지 못한 광무대와 금호대의 조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하나같이 표정이 어두운 게 마치 벌을 청하러 온 죄인을 보는 듯하다.
당소소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주. 우리는 각주…….”
순간 보인의 얼굴이 핼쑥해지는 것을 본 진무립은 즉시 손을 들었다.
“잠깐. 먼저 하나만 묻지.”
“……말씀하세요.”
“나를 돕고 싶어 온 것이냐?”
“맞아요.”
그녀의 눈에, 다른 동료들의 눈에 비장한 각오가 떠올랐고 진무립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당소소가 각주를 언급했을 때 보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뭔가 결심한 듯 비장한 눈빛을 보면 나를 돕지 말라는 당부나 협박을 받았겠지.’
만일 저들이 각주들의 명을 거역할 경우 사문에서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저들은 그것을 각오하고 어렵게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진무립은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모두 눈에 담았다.
“너희들의 마음은 고맙게 받겠다. 나는 괜찮으니 돌아가라.”
조영성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대주. 지금 위에선…….”
“말하지 마라.”
“동료가 곤경에 처했을 땐 돕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닙니까? 나는 대주에게 그렇게 배웠습니다.”
“누가 감히 나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단 말이냐?”
진무립은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걱정은 고맙지만 나는 그렇게 약하지 않다.”
곽도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우리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말입니까?”
“그래.”
진무립은 그들을 지나쳐 문을 나섰다.
좁은 복도에 늘어선 동료들이 길을 내주며 눈으로 진무립을 좇는다.
뒤를 슬쩍 돌아본 진무립이 씩 웃었다.
”곧 재밌는 일이 벌어질 테니 돌아가서 잠자코 구경이나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