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95
◈ 95화. 동(動)
마도림이 숙식을 책임져주며 이결제자들의 수련 시간이 부쩍 늘었다.
세 시진째 제자들을 가르치던 적모개는 문득 동초개의 빈자리를 느끼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함을 느꼈다.
“동초개 이 새끼는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어린 거지가 콧물을 옷에 슥슥 닦으며 말했다.
“방에 있을 건데요?”
갑자기 울화가 치솟는다.
“넌 새끼야.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코를 흘리고 다니는 거야?”
“엄마 얼굴도 모르는데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어떻게 알아요? 그걸 알면 거지 안 하지.”
“…….”
표정이며 말투가 동초개를 쏙 빼닮았다.
적모개는 잔뜩 인상을 구겼다.
“너 당분간 동초개랑 어울리지 마라.”
연무장을 빠져나온 적모개는 성난 걸음으로 동초개를 찾아갔다.
전각의 복도에 들어서니 술 냄새가 훅 느껴진다.
성큼성큼 걸어간 적모개는 동초개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안 나오…….”
용추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는 순간 내뱉던 말과 함께 치밀던 화가 쑥 내려갔다.
“뭐냐?”
다가오는 용추의 그림자가 적모개의 얼굴을 덮어갔다.
“그게 아니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으나 방 안 어디에도 동초개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뭐냐고.”
“아차. 내가 방을 잘못 찾았구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뼉을 친 적모개는 슬며시 방문을 닫았다.
잠시 후, 구석의 침상 뒤에서 동초개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갔어요?”
“응.”
히죽 웃은 동초개가 침상을 뛰어넘었다.
“역시 형님이 최고라니까.”
인상을 구긴 적모개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 새끼는 대체 어딜……. 응?”
침상 위에 놓인 못 보던 종이에 진무립과 약속한 표식이 있었다.
“소공자인가.”
침상에 걸터앉은 적모개는 종이를 활짝 펼쳤다.
“음.”
차분히 글을 읽어가던 적모개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이윽고 마지막 장까지 모두 읽은 적모개가 진무립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미친 인간인가?”
적모개는 종이를 손에 쥐고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얘들아. 일 좀 해야겠다.”
“무슨 일이요?”
수련을 멈춘 이결제자들이 거지다운 걸음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일단 이것부터 외워라.”
종이를 받아들고 구석으로 간 거지들은 머리를 맞대더니 뭔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데 뭘 저렇게 숨어서 보는 거야?’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적모개는 한참 뒤에 하품을 하며 물었다.
“다 외웠냐?”
“아니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달달 외울 필요는 없다. 대충 외워도 상관없는 내용이니까.”
“그게 아니고요.”
어린 거지는 콧물을 옷에 문지르며 말했다.
“아는 글자가 다섯 개밖에 없는데요.”
“…….”
적모개는 그제야 저들이 이제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한 이결제자라는 것을 상기했다.
‘이 망할 놈들이 그럼 지금까지 대체 뭘 의논한 거냐.’
꺼질 듯 한숨을 내쉰 적모개는 종이를 뺏어 들고 친절하게 읽어주기 시작했다.
* * *
새벽 서리 대신 맑은 이슬이 처마 끝에 맺힌 아침.
중목회가 열리는 날이다.
어색한 침묵이 사천맹을 잠식한 가운데 당문경은 암영대를 소집했다.
“너희들은 지금 즉시 변복을 하고 성도로 간다. 가서 마도림과 혈교는 오래전 한 뿌리에서 갈라졌다는 것과 진무립이 혈교와 내통했다는 소문을 내라.”
궁야궐이 절도 있게 포권을 취했다.
“알겠습니다.”
사십 인의 암영대가 떠나자 당문경은 조용히 비각을 나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가 향한 곳은 맹의 규율을 수호하고 법을 집행하는 집법원이었다.
당문경이 뒷문에 도착하기 무섭게 작은 문이 열렸다.
고개를 슬며시 내민 복면인은 예조차 생략하고 은밀히 말했다.
“원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가지.”
전각에 들어선 당문경은 집법원주 묵차광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원주님.”
새하얀 눈썹이 가슴까지 내려온 신선풍의 노인, 묵차광이 허허롭게 웃으며 당문경을 맞이했다.
점창파의 도인이기도 한 그는 사천맹주 한천월보다도 한 배분 높은 인물이었다.
“오랜만이구려. 앉으시오.”
당문경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원주님. 오늘입니다.”
며칠 전 대략적인 언질을 들었던 묵차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벌써 중목회가 열리는 날이 됐군. 그래, 이 늙은이가 무엇을 해주면 되겠소이까?”
“곧 성도와 맹 내에 광무대주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퍼질 것입니다. 그때 집법원에서 광무대주와 운룡각주를 붙잡아 가두고 사실관계를 조사해주십시오.”
묵차광의 주름진 눈이 살짝 커졌다.
“그게 끝이오?”
며칠 전 찾아와 매우 간곡하게 부탁하길래 무슨 거창한 부탁을 하나 싶었는데 참으로 별것 아닌 얘기다.
당문경은 빙그레 웃었다.
“본 맹의 규율을 담당하는 집법원에 어찌 그 이상의 불경한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때가 되면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알겠소. 준비하고 기다리리다.”
나직이 읊조리던 묵차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중목회가 끝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정중하게 예를 갖추고 나온 당문경은 집법원의 뒷문으로 다시 나왔다.
‘집법원까지 움직이는 거야? 대단하네.’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단려화가 은밀히 자취를 감췄다.
* * *
사천맹의 남쪽 숲.
사방으로 흩어져 맹을 나선 암영대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변복한 부하들을 확인한 궁야궐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수행은 이인 일조다. 부대 전체를 넷으로 나눠 사대문 인근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예.”
“크게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가자.”
궁야궐과 암영대가 사라진 자리에 시꺼먼 인영이 뚝 떨어졌다.
“드디어 납시셨군.”
서진환의 곁으로 은수련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작할까요?”
“그래. 너는 적모개에게 명을 전하고 합류해라. 나는 대원들을 데리고 저들을 쫓겠다.”
“알겠어요.”
시선을 교환한 두 사람이 꺼지듯 사라졌다.
* * *
지부의 마당.
뒷간에서 나온 적모개의 눈앞을 한 줄기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헉!”
대경한 적모개는 벽에 박혀 부르르 떨리는 비수를 발견했다.
자루에 달린 종이에는 진무립의 표식이 보인다.
“시벌. 그냥 곱게 주고 가면 어디 덧나나.”
투덜거리며 펼친 종이에는 단 한 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동(動).
움직이란 얘기다.
즉시 몸을 날린 적모개가 전각 입구에서 외쳤다.
“얘들아. 모여봐라!”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적모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외쳤다.
“고기 사 왔다! 어서 나오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쪽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가장 먼저 동초개가 뛰쳐나왔다.
“고기는?”
적모개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탄식했다.
“와, 진짜 이 새끼들 봐라.”
순식간에 집결한 제자들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적모개를 쳐다봤다.
“고기는요?”
주먹을 부르르 떤 적모개는 동초개의 머리에 화풀이를 했다.
딱!
“아얏!”
동초개가 울상을 짓는 가운데 적모개는 버럭 소리쳤다.
“때가 왔다. 새끼들아. 당장 다녀와!”
성도에 묘한 괴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둘 이상이 모이면 반드시 그 이야기부터 꺼낼 정도였다.
점심나절 사람들이 모여든 객잔도 마찬가지였다.
“자네. 혹시 그 소문 들었는가?”
푸른 장포를 걸친 사내가 잔뜩 움츠리며 묻자 작달막한 사내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마도림의 소공자가 남색가라는 얘기 말이지?”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소, 소공자가 남색가라고?”
“자네가 하려는 얘기가 이게 아니었나?”
“나는 마도림의 소공자가 사실 신룡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얘길 하려고 했네.”
이번엔 작은 사내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소, 소공자가 천하제일인의 숨겨진 아들이라고?”
제법 큰 목소리가 퍼져 나가자 뒤에 앉아있던 사내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소리요? 마도림의 소공자가 천하제일인의 숨겨진 아들이라니?”
“아, 조금 전에 거리에서 들었소이다.”
“그게 정말이오? 이상하군. 분명 나는 소공자가 마교주의 숨겨진 아들이라고 들었소. 마교에서 사천에 심어둔 세작이라고 하던데?”
“마교주의 아들이라고? 세상에 어느 미친놈이 자기 아들을 세작으로 보내겠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오.”
식사를 하던 이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우리는 마도림의 태상림주가 밖에서 낳아온 자식이라고 들었소이다.”
작은 사내가 물었다.
“그래서 남색을 하는 건 확실한 거요?”
그때 우측에서 또 다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조금 전 흑포점에서 소공자가 고자라고 들었소.”
“그래서 남색을 하는 건 확실하오?”
“소공자가 고자라고? 난 몇 해 전 사천 무림을 들썩인 파종색마(播種色魔)의 진짜 정체가 소공자라고 들었는데?”
물꼬가 트이자 사방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진다.
혈교와 내통을 한다느니, 사천맹주의 사생아라느니 하는 소문들이 연이어 언급된다.
시끌벅적한 객잔 속, 최초에 말을 꺼냈던 키 작은 사내가 다그치듯 외쳤다.
“아, 그래서 남색은 하냐니까!”
* * *
평범한 인상의 두 사내가 손님으로 가득한 노점에 발을 디뎠다.
“여기 소면 두 그릇 주시오.”
나이 든 노파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늘따라 객이 많아서 말이지. 조금만 기다리시우.”
큼직한 국자가 솥에 들어가자 마주 앉은 사내들이 주변을 힐끔 쳐다봤다.
[시작하지.]고개를 끄덕인 사내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 혹시 그거 들었는가?”
“무엇을 말인가?”
“이번 사천맹의 서장행 말일세. 마도림의 소공자가 엄청난 활약을 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소공자라는 말에 손님들의 귀가 쫑긋거린다.
두 사내는 미소를 속으로 감추며 대화를 이어갔다.
“나도 들었네.”
“근데 말일세. 사실 그 소공자가 혈교와 내통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네. 상대의 정보를 훤히 꿰뚫고 있었기에 그런 활약이 가능했다는 게야.”
마주 앉은 사내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정말인가?”
“성 내에 소문이 파다한데 정말 몰랐는가?”
그때 등 뒤에 앉은 뚱뚱한 여인이 사내를 툭 치며 말했다.
“이봐요.”
“왜 그러시오?”
“대체 무슨 소문이 맞는 거예요?”
사내의 미간에 주름이 스치고 사라졌다.
“무슨 소문이냐니?”
“조금 전에 당과를 팔던 영감님은 마도림의 소공자가 중원 무림맹에서 파견한 세작이라고 했단 말이에요.”
“뭐요?”
그때 반대편에서 또 다른 아낙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난 무당의 백미도인이 말년에 남긴 제자라고 들었어요.”
바로 옆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조금 전에 소공자의 진짜 정체가 무면산왕이라고 들었소만?”
“무, 무면산왕?”
부릅뜬 두 사내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힌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당혹감을 삼킨 사내는 사방을 눈으로 훑으며 전음을 보냈다.
[일단 일어나세.]때마침 일어나는 두 사람 앞에 뜨끈한 소면 두 그릇이 놓였다.
“맛있게 드시우.”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겠소.”
사내는 철전 두 개를 노파의 손에 쥐여주고 도망치듯 노점을 나왔다.
골목에 접어든 두 사내는 주변을 살피곤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해.”
당초 퍼트리기로 한 소문은 진무립이 혈교와 내통하고자 한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내지도 않은 이상한 소문들이 성도 전체를 들썩이고 있었다.
“우선 대주께 이 사실을 전해야겠네.”
“가지.”
돌아서던 두 사내의 몸이 갑자기 목석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이, 이게 뭐냐?’
‘대체 언제?’
마혈을 찍힐 때까지 상대의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두 사람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릴 때.
“어딜 가려고?”
등 뒤에서 맑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두 명의 복면인이 연기처럼 나타났다.
복면 위로 드러난 은수련의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궁금해서 잠시 세웠어. 방금 했던 이야기 다시 한번 해줄래?”
“네놈들은…… 누구냐?”
그때 골목의 앞뒤로 유대하와 육군명이 나타났다.
육군명이 도집을 어깨에 척 걸치며 웃었다.
“우리 누군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