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96
◈ 96화. 이것이 사천맹의 실체다
며칠간 무겁게 가라앉았던 사천맹의 공기가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중목원의 최상층.
집무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한천월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시작된 모양이군.”
곁에 선 당문경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맹주님.”
암영대의 공작은 성도에서만 진행된 게 아니다.
맹 내의 분위기가 갑자기 어수선해지기 시작한 걸 보면 소문이 번지기 시작한 게 분명했다.
“정무원의 강노사와 하노사가 조금 전 운룡각으로 들어갔다 하더군요. 진무립을 지키려 하는 모양입니다.”
“부질없는 짓을.”
한천월이 혀를 끌끌 찰 때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맹주님! 맹 내에 괴상한 소문들이 퍼지고 있습니다!”
한천월은 느긋하게 대꾸했다.
“알고 있으니 돌아가게.”
“아, 예. 알겠습니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당문경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집법원주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그리하게. 나는 중목회 준비를 마무리하겠네.”
“예.”
당문경이 나가자 진무립의 오만한 미소를 떠올린 한천월은 좀처럼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진무립. 이번에는 네놈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야.’
당문경의 명을 받고 온 사내가 집법원주 묵차광 앞에 부복했다.
“원주님. 맹 내에 광무대주가 혈교와 내통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비각주께서 조사를 요청하셨습니다.”
묵차광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흉흉한 소문이라더니 혈교를 끌어들일 줄이야.’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자신은 그와의 약속대로 움직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는 모른 척 물었다.
“밖이 소란하다 했더니 그런 소문이 퍼지고 있었단 말인가?”
“예.”
“알겠네. 돌아가 보시게.”
흥미롭다는 듯 웃은 묵차광은 즉시 집행단을 소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법원의 후원에 붉은 무복을 입은 십여 명의 무인이 집결했다.
느긋하게 나타난 묵차광이 단상에 오르며 말했다.
“모두 모였는가?”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착용한 사내, 집행단주 도금영이 예를 갖췄다.
“집행단 전원, 원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집결했습니다.”
“맹 내에 도는 소문을 자네들도 들었을 것일세. 광무대주와 운룡각주를 추포해 조사를 해줘야곘어.”
집행단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 역시 맹 내에 번지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문제로 삼기엔 신빙성이 없다.
도금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주님. 설마……. 광무대주가 마교의 세작이란 소문을 믿으신단 말입니까?”
“음? 혈교가 아니고?”
자신의 귀를 의심한 묵차광이 고개를 갸웃할 때, 다른 단원이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단주님. 잘못 들으신 것 아닙니까? 저는 광무대주가 몇 해 전 사라진 파종색마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광무대주의 정체가…….”
모두의 당혹스러운 눈빛을 받은 사내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원주님의 숨겨진 아들이라고 들었습니다.”
“…….”
묵차광은 할 말을 잃었다.
진무립의 나이는 이십 대 후반.
고개 숙인 세월이 족히 삼십 년은 지난 자신이 그의 부친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도금영이 복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원주님. 무슨 혐의로 추포하면 좋겠습니까?”
“…….”
* * *
운룡각에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중앙 전각으로 통하는 계단이 후기지수들에게 점거당했다.
모두가 진무립을 걱정해 그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조영성이 물었다.
“당중호는?”
국철영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그놈이 올 리가 없잖아.”
그들 곁에 앉아있던 하종보의 귀로 한 줄기 전음이 파고들었다.
[사숙. 집행단에 소집령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곧 이곳으로 올 모양입니다.]하종보의 시선이 담장 너머를 훑고 돌아왔다.
강유월이 맹주를 만나고 오는 동안, 하종보는 자신을 따르는 점창의 제자를 동원해 내부 동태를 알려달라 부탁했던 것이다.
[고맙네.] [아닙니다. 그리고 맹 내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소문?]그는 자신이 들은 해괴한 소문들을 모두 하종보에게 말해주었다.
마지막 전음을 끝으로 제자가 사라지자 하종보는 헛웃음을 지었다.
“허, 허허.”
무거운 정적 속에 새어 나오는 웃음은 모두의 이목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강유월이 물었다.
“왜 그러시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말이오.”
“재미있게 돌아간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그때 입구를 지키던 당우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지, 집행단이 오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입구가 소란스러워지더니 붉은 무복의 무인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뒤로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는 무인들이 보인다.
소문을 듣고 무슨 일인가 구경하러 온 것이다.
“본인은 집법원 집행단주 도금영이오! 운룡각주 우가산! 광무대주 진무립은 당장 집법원의 명을 받으시오!”
계단 앞에 모여있던 무인들이 거칠게 반발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집행단이 어찌 각주님과 대주를 겁박하려는 거요!”
“이것이 맹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무인에 대한 대접이란 말입니까?”
쩌렁쩌렁한 외침이 문밖까지 울려 퍼지자 안팎의 술렁임은 극도로 커져갔다.
집행단주 도금영은 쏟아지는 시선에 적지 않은 부담감이 느껴졌다.
‘젠장. 대체 누가 소문을 낸 것이냐?’
은밀하게 집법원을 나섰으나 어느 시점부터 따라붙기 시작한 무인들이 이곳까지 따라오고 말았다.
그는 작게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그대들은 집법원의 명에 거역하지 말라.”
그때 중앙각의 문이 열리며 우가산과 진무립, 단려화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비켜봐.”
진무립의 말에 따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진무립을 집법원에 끌려가게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진무립은 혀를 찼다.
“쯧쯧. 날 믿으라니까 그러네.”
지면을 박찬 진무립이 훌쩍 뛰어올라 집행단의 앞에 멈춰섰다.
“대주!”
조영성을 필두로 모두가 우르르 달려 나오려는 찰나, 어느새 나타난 단려화가 그들의 앞을 막았다.
“기다리세요.”
“대주를 이대로 잡혀가게 둘 수는 없소.”
“차라리 우리 모두를 잡아가시오!”
진무립은 손을 들어 그들의 입을 막았다.
계단 아래의 동료들과 문밖으로 모여든 무인들까지.
모두의 이목이 모여든 가운데 진무립은 허리춤에 손을 척 올렸다.
“무슨 혐의로 날 잡으러 온 건가? 내가 마교의 세작이라서? 아니면 혈교의 세작? 그것도 아니면 집법원주의 숨겨진 아들이란 말을 믿고 왔나? 집법원의 행사는 소문의 실체조차 파악하지 않고 움직일 만큼 가벼운 것이었나?”
밖에서 듣고 있던 중소방파의 무인들은 짙은 조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설마 소공자가 원주님의 사생아라는 소문을 확인하고자 왔단 말이오?”
“그게 아니면 파종색마? 설마 사천맹은 색마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입맹을 허용할 만큼 허술한 곳이었단 말인가?”
쏟아지는 조롱에 도금영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닥치시오! 집법원의 행사를 방해하는 자들은 용서치 않겠소!”
“난 끝까지 비웃을 테니 나부터 잡아가시지!”
“잡아갈 테면 잡아가시오. 사대거파가 다른 방파를 얼마나 무시하는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될 거요.”
“나도 잡아가시오!”
그때 진무립이 목청을 키웠다.
“갈!”
그 한 마디에 군중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도금영을 응시하는 진무립은 오연하게 턱 끝을 들어 올렸다.
“집행단주.”
“…….”
진무립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내게 혈교의 정보를 건네준 것은 당신이 아닌가? 함께 손잡고 잘 해보자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러면 곤란하지.”
모두의 시선이 쏟아지자 도금영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그게 무슨 망발인가! 내가 언제 그랬단 말이냐!”
“안 그랬나?”
“감히 집법원의 명을 받고 온 나를 능멸하고자 하는가!”
진무립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더니 쩌렁쩌렁한 호통이 터져 나왔다.
“네놈은 근거 없는 헛소리에 발끈하면서 대체 무슨 근거로 나를 잡아가겠다는 것이냐!”
진무립은 모두에게 보란 듯이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집법원이 날 잡아가고자 했다면 그 전에 소문을 퍼트린 자부터 붙잡아 실체를 확인했어야 한다. 집법원은 사천에 개소리가 퍼질 때마다 모조리 붙잡아 확인할 생각인가! 어리석다!”
크게 호통을 친 진무립은 모여든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보아라! 이것이 집법원의, 사천맹의 실체다! 앞으로 그대들은 근거 없는 헛소문 하나에도 벌벌 떨며 저들의 처분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진무립은 싸늘한 눈빛으로 도금영을 쏘아봤다.
“잡아가라. 내가 마교의 세작인지 확인하고자 한다면 내 입에선 우선 네놈의 이름부터 나올 것이고 혈교의 세작인지 묻는다면 사천맹주의 밀명이었다고 증언할 것이다.”
“네놈이 정녕…….”
“그럼 네놈들은 내게 했던 것처럼, 정보의 진위를 가리기 전에 그들을 붙잡아 확인부터 해야 할 거다. 내규의 집행에 공정함이 따른다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은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야유와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집법원의 행사가 이토록 가볍다는 건 오늘에서야 알았소이다!”
“광무대주를 잡아간다면 천하의 모두가 그대들을 비웃을 것이오! 비난을 감수할 생각이 있다면 뜻대로 해보시구려. 우리도 개소리로 집법원의 찬밥 한 번 먹어보겠소이다.”
“천하가 비웃을 일이오! 부끄러운 줄 아시오!”
도금영의 귀로 부하들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단주님.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일단 돌아갔다가 잠잠해진 뒤에 다시 오던가 해야겠습니다. 지금 저들을 추포했다간 반란이라도 일어날 기세입니다.]입술을 질끈 깨문 도금영은 진무립을 한 차례 쏘아보곤 몸을 돌렸다.
“돌아간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은 그들이 물러간 뒤에도 한동안 끊이질 않았다.
“허허허.”
시선을 교환한 두 노사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자리에 모인 후기지수들과 문밖에 선 무인들의 얼굴에 환희가 떠올랐다.
힘에 굴복하는 대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따른 자신들이 자랑스러웠고, 그릇된 자들에게 무릎 꿇지 않은 진무립의 당당함에 가슴이 뿌듯했다.
진무립은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차갑게 응시했다.
‘당문경. 네놈은 빠져나갈 수 없을 거다.’
* * *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간 사천맹의 거리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횃불이 환히 빛나는 가운데 중목원의 대전으로 수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어두운 얼굴로 입장한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착석했다.
희비가 교차하는 대전.
원주와 각주, 당주를 비롯한 각대의 대주들까지.
누군가의 입가에선 웃음이 떠날 줄 몰랐고 다른 쪽은 화를 억누르고 애써 침착을 유지했다.
“맹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가운데 맹주 한천월과 비각주 당문경이 대전으로 입장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은은한 목소리가 대전의 천장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진다.
우가산의 뒤에 선 진무립은 두 사람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보며 싱긋 웃었다.
[제법 재미있었다.]조롱 섞인 전음에 당문경의 발이 잠시 멈칫했다.
그는 내색하지 않고 발을 옮기며 대꾸했다.
[광무대주. 설마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는가?] [끝을 정하는 건 네가 아니고 나다.]진무립의 전음이 끝날 무렵, 단상 위에 올라선 한천월이 호피가 깔린 태사의에 앉았다.
계단 아래에서 몸을 돌린 당문경은 애써 차분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중목회(中木會)를 시작하겠습니다.”
좌중을 둘러보던 한천월은 진무립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진무립.’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진무립은 자신의 예상을 비웃듯 보기 좋게 위기를 비껴갔다.
명예에 목숨까지 거는 게 무인이다.
‘스스로 자신의 평판을 깎아내릴 방법까지 사용할 줄이야.’
후회가 밀려들었다.
‘조금 더 깊게 생각했어야 했다.’
중경에서 보인 행보에서 놈은 자신의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서북로를 접수했다.
뼈아픈 실책은 진무립의 과거를 간과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놈을 판단한 것이었다.
한천월은 움켜쥔 주먹을 애써 차분히 팔걸이에 올렸다.
당문경이 쓰린 속을 달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천무대와 운룡각이 수행한 서장행의 검토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의 눈과 귀과 당문경에게 쏟아진다.
“이번 서장행의 목적은 적이 새롭게 개발한 실혼인의 실험장을 폐쇄하는 것이었습니다.”
차분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당문경은 서장행의 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설산맥을 넘어가 숲에서 회혈대와 만난 이야기.
진무립과 일부 무인이 적사곡을 폐쇄한 내용과 천무대가 함정에 빠진 이야기.
적사곡에서 돌아온 진무립이 그들을 구출한 부분까지, 당문경은 구양무와 진무립이 올린 보고서를 교차 검증해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을 마쳤다.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까지 상세하게 알려지자 장내가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