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b is one of the world's top ten master RAW novel - Chapter 97
◈ 97화. 중목회(中木會)
그들이 당황한 것은 맹의 공식 발표가 거리에 떠도는 소문과 다른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천선각주 장유기만이 사실을 짐작하고 있을 뿐, 다른 이들은 소문과 진실이 다를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그렇다면…… 이번 임무는 정말로 광무대주가 전부 해낸 것이 아닌가?”
온전히 믿기엔 너무도 놀라운 사실이다.
사대거파의 수뇌들은 표정을 굳혔고.
소천당주 장환과 중소방파 무인들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다.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천무대주 구양무를 찾았다.
보고서를 작성한 당사자를 찾아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구양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천무대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천선각주 장유기는 쓴웃음을 감추며 태연하게 말했다.
“아직 치료 중이라 데려올 수 없었소이다.”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나 거동에 불편함은 없었다.
그럼에도 데려오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진무립의 공을 깎아내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정직하게 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좌중의 술렁임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은은한 내력이 담긴 당문경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천무대주가 작성한 보고서는 아마도 사실일 것입니다.”
술렁임이 잦아들자 북천각주 진하성이 말했다.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말씀에서 묘한 괴리감이 느껴지는구려.”
진무립과 함께 우가산의 뒤에 서 있던 육군명은 맹주와 비각주가 들어온 뒷문을 응시했다.
‘시작이군.’
비록 진무립에 의해 첫 번째 계략이 수포로 돌아갔으나 당문경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
‘진무립.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그는 수뇌들을 하나씩 눈에 담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보고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문경의 상체가 진무립을 향해 틀어졌다.
“광무대주. 몇 가지 묻고자 하오.”
“그러시오.”
진무립의 시큰둥한 대답에 수뇌들은 얼굴을 붉혔다.
“마치 아랫사람 대하듯 말하는군.”
“광무대주. 비각주께 예를 갖추시게.”
비릿한 미소를 지은 진무립이 다시 입을 열 때.
‘안 된다.’
진무립이 뭔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당문경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모두 진정하십시오! 지금은 말투를 문제 삼을 때가 아닙니다!”
별안간의 외침에 진무립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아직은 냉정하군.’
자신의 말투를 꼬투리 잡으면 이어서 다음 계획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문경은 제법 예리하게 그것을 감지한 것이다.
‘빠르든 늦든 달라질 건 없으니 일단은 들어주마.’
진무립을 힐끔 쳐다본 당문경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광무대주. 그대는 개방의 혈서를 손에 넣었을 때, 어째서 천무대를 구하지 않고 적사곡부터 간 것이오?”
모두가 쳐다보는 가운데 진무립은 차분하게 말했다.
“개방의 혈서는 적사곡을, 비각이 가져온 정보는 다른 곳을 지목하고 있었지. 과연 천무대가 무엇을 신뢰하겠소?”
“천무대를 뒤쫓아 사실을 전달했다면 한 번 더 생각할 여유가 있었을 것이오.”
“난 분명히 비각의 정보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천무대는 다른 선택을 내렸소. 그래서 내 눈으로 적사곡에 뭐가 있는지 직접 확인한 뒤 천무대를 구하려 했던 거요.”
진무립은 당문경에게 반론할 틈도 주지 않고 일침을 가했다.
“자꾸 논점을 흐리는데, 천무대가 함정에 빠진 것은 비각의 정보가 잘못됐기 때문이오.”
살짝 치켜든 턱 끝, 오연한 눈빛이 당문경의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든다.
진무립의 검지가 당문경을 가리켰다.
“사천맹 최강의 부대가 무너진 책임은 누구도 아닌 각주께서 지셔야 한단 말이오.”
당문경을 탓하는 진무립의 대담한 언사에 중소방파 무인들은 눈을 부릅떴다.
지금까지 사대거파 출신이 아닌 무인 중 누구도 중목회에서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다.
과거를 생각하면 견고한 사대거파의 아성에 정면으로 부딪쳐가는 진무립은 참으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도림은 중소방파를 대변하는 방파.
진무립의 행동에 감정을 이입하던 그들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곳곳에서 불편한 헛기침이 새어 나온다.
진무립은 쓴웃음을 지었다.
‘썩은 건 가지가 아니라 나무 그 자체였는가.’
안으로 굽은 팔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문경은 옅은 미소 속에 살심을 감췄다.
“물론 그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 것이오. 하지만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군. 서장에 도착하자마자 혈교의 정찰대를 발견한 것은 그대였지.”
“그랬소.”
“그 뒤에 놈들의 안가를 발견한 것도 그대였고.”
“그렇소.”
“적사곡에서 혈야광인의 실험장을 찾은 것도 바로 그대였고 그곳을 불태운 것도 그대였소.”
“틀리지 않소.”
“천무대의 도착 지점을 정확하게 알고 찾아가 구출한 것도 그대요.”
진무립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오늘 공교롭게도 성도와 맹 내에 이상한 소문들이 떠돌았지. 내가 고자라느니, 마교의 세작이라느니 하는 소문들 말이오. 그중에는 혈교와 내통을 했다는 소문도 있던데 그게 사실이라고 말할 셈인가?”
팽팽한 긴장감 속에 당문경은 마주 웃었다.
“아니오?”
“증거는?”
당문경은 뒷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며 들어온 이는 온종일 보이지 않던 당중호였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한천월은 손을 들어 보였다.
“그대는 묻는 말에 가감 없이 답해주게. 어떤 대답이 나오건, 누구도 그대를 해하지 못할 것을 약속하지.”
“물론입니다.”
맹주에게서 등을 돌린 순간, 사천맹을 움직여가는 수뇌들의 시선이 따갑게 전신을 두드린다.
‘이건 내 인생의 기로다.’
여기서 맹주와 비각주가 원하는 대답만 해준다면 자신의 앞날은 탄탄대로일 것이다.
반대로 조금의 실수라도 발생한다면 앞날은 보장하기 어렵다.
당중호는 무거운 부담감을 느끼며 마른 침을 삼켰다.
당문경이 물었다.
“소속과 이름을 밝히게.”
“운룡각 금호대 소속 일조장 당중호입니다.”
“그대는 이번에 지원부대의 일원으로 서장에 다녀왔었지.”
“그렇습니다.”
“그 과정에 광무대주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 적은 없었나?”
한쪽에선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이, 다른 쪽에선 잡아먹을 듯 사나운 눈빛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다.
당중호의 선택은 당연히 자신의 대답을 갈망하는 자들의 것이었다.
“있었습니다.”
우가산의 입에서 불같은 호통이 튀어나왔다.
“네놈이 지금 광무대주를 음해하려 하는 것이냐!”
이어서 중소방파 무인들의 비난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가!”
“진실만을 고하거라!”
사대거파의 수뇌들이 그에 대응하려 할 때, 맹주 한천월의 주먹이 팔걸이를 강타했다.
쾅!
“갈!”
쩌렁쩌렁한 외침이 대전의 기둥마저 뒤흔들었다.
순식간에 장내에 정적이 감돌았고 당문경은 질문을 이어갔다.
“누구도 자네를 해칠 수 없으니 편하게 말해보게. 어떤 부분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는가?”
“서장과 사천의 경계는 수천 리가 넘습니다. 우리는 비각에서 알려준 비로(秘路)를 따라 서장으로 넘어갔는데 그들이 어떻게 정확히 우릴 찾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포달랍궁과의 전쟁 중에 말입니다.”
“그리고?”
“개방의 분타주는 분명 천무대의 부대주와 같은 날 창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혈서를 들고 돌아온 것은 천무대가 떠난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가 진실이 적힌 혈서를, 굳이 천무대가 떠난 뒤에 가져와 광무대주에게 전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리고…….”
따가운 시선이 장대비처럼 쏟아진다.
‘여기서 해야 한다.’
당중호는 그들의 눈빛과 마주하는 대신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광무대주가 적사곡으로 떠나기 전, 창도의 은신처 인근에서누군가와 은밀히 만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순간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럴 수가!”
술렁임이 극에 달하는 가운데 천선각주 장유기가 물었다.
“상대가 대체 누구였는가?”
“붉은 무복을 입은 자로 천무대와 운룡각의 무인은 아니었습니다.”
“아아!”
“그럼 천무대는…….”
사방에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부담감을 이겨낸 당중호의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었다.
당문경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수고했네. 잠시 돌아가 쉬고 있게.”
“예.”
예를 갖춘 당중호가 몸을 돌릴 때, 진무립이 입을 열었다.
“잠깐. 가기 전에 이쪽에도 반론의 기회는 줘야지.”
한천월은 가늘어진 눈매로 진무립을 응시했다.
“반론이라? 저 아이의 증언이 거짓이란 말인가?”
“당중호의 두루뭉술한 증언보다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드리지요.”
“무슨 증거를 말인가?”
진무립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나를 음해한다는 증거.”
말이 끝난 순간 육군명이 대전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곳에는 강유월과 하종보, 단려화와 유대하를 비롯한 운룡각 후기지수들이 늘어서 있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정무원의 무인은 중목회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것으로 아네만 자네가 여긴 무슨 일인가?”
“증거를 가져왔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유월이 뒤를 돌아보자 후기지수들이 일제히 좌우로 갈라졌다.
그들 뒤로 얼굴을 가리고 포박된 채 꿇어앉은 사내들이 보인다.
그 순간 당문경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어, 어떻게!’
다른 이는 몰라도 자신은 안다.
저들은 명을 받고 성도로 떠났던 암영대였다.
암영대의 뒤로 돌아간 단려화가 처음 보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다.
“낮에 보고 들은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해주세요.”
쏟아지는 시선에 침을 꿀꺽 삼킨 그들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문 앞에서 당과를 파는 추봉이라고 합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저자가 개, 객잔에서 마도림의 소공자는 혈교와 내통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저는 성도 사옥(司獄) 유승의 딸 유정이에요. 노점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기 구석에 앉은 사내들에게요.”
반박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사옥은 관의 감옥을 지키는 종구품 관리.
비록 말단관직이라곤 하나 관리의 딸이 하는 증언은 그 무게가 달랐다.
모두의 표정이 다양하게 변해가는 가운데 증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장소만 다를 뿐 모두가 같은 내용이다.
무인들은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진무립이 혈교와 내통한다는 소문을 조직적으로 퍼트린 정황이 확실해진 까닭이다.
한천월의 미간에 내 천(川)자로 깊은 골이 패였다.
‘진무립!’
할 수만 있다면 이 자리에서 당장에라도 때려죽이고 싶다.
하지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배후가 자신이라 실토하는 것과 같다.
‘참아라. 한천월. 이곳은 가까스로 찾은 너만의 철옹성이다. 참아야 한다!’
한천월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애써 태연하려 노력했다.
반면 당문경은 초탈한 얼굴이었다.
‘아아, 넘지 못할 산이었는가.’
진무립이라는 산은 자신이 감히 넘지 못할 만큼 높고 거대했다.
진무립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내 생각에는 말이오. 아무래도 이 안에 이들을 동원해 나를 모함하라 사주한 인물이 있을 것 같은데…….”
무거운 침묵이 깃든 대전.
천천히 걸어간 진무립이 은광검을 뽑아 들었다.
쿠르르르!
그의 전신에서 시퍼런 기운이 줄기줄기 솟구치며 대전의 기둥이 무너질 듯 흔들렸고 사방에 짙은 살얼음이 끼기 시작한다.
몰아치는 냉풍이 옷깃을 서늘하게 파고들었고.
번져가던 살얼음이 대전의 기둥을 타고 올라가자 모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광무대주의 힘이 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서장행에서 돌아온 진무립은 전과 달리 내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려도 이상 없는 몸이었다.
진무립의 전신에선 한천월의 표정까지 딱딱하게 굳을 만큼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이놈!’
타고난 머리에 고강한 내력까지, 진무립의 무서운 재능에 질투마저 느껴질 정도다.
진무립이 암영대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들의 주인이 꼬리를 자를 생각인 모양이구나. 그러므로 내가 직접 네놈들에게 벌을 내려야겠다.”
차가운 음성이 모두의 귀를 섬뜩하게 파고든다.
청광으로 빛나는 은광검이 높게 치솟는 순간.
체념한 당문경은 지그시 두 눈을 감고 말했다.
“그만두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