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nster Duke Mistook Me for His Wife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오랜만이야.”
그의 인사에 웃으며 답하자, 불어온 바람이 내 뺨을 어루만졌다.
-리아, 보고 싶었어.
“나도.”
두런두런 티피와 이야기를 나누자, 딜리언의 얼굴이 싸하게 가라앉았다.
“리아 씨…….”
허공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이 꼭 정신을 놓은 것처럼 보였는지, 딜리언이 내 어깨를 꽉 잡았다.
“혹시 헛것이라도 보는 거면…….”
“미친 사람처럼 쳐다보지 마시죠. 티피가 마중 나와서 인사하는 거란 말이에요.”
“보입니까?”
“형태를 갖춘 건 아니라서 확실하게 보이는 건 아니지만 여기에 있다는 건 느껴져요.”
-저주가 풀렸네?
깨끗한 목이 신기한지 딜리언의 주변을 맴돌던 티피가 그의 목을 휘감았다.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감촉에 딜리언이 미간을 찌푸리며 어깨를 털어냈다.
“혹시, 이것도 티피입니까?”
“네, 딜리언 씨 목을 감쌌다가 튕겨 나갔어요.”
허공에서 빙그르르 돌고 있는 티피를 가리키자, 딜리언이 뒷목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벌레인 줄 알았네.”
그 말에 시무룩하던 티피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기다려봐.
“어디 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티피의 기척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냐는 듯 바라보는 딜리언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기다려보라더니 사라졌어요.”
“그냥 갑시다.”
평소라면 기다렸겠지만, 시간이 촉박했던 우리는 산을 올랐다.
도착하면 다시 만나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옆에서 불쑥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라니까 없어져서 놀랐어.”
눈처럼 하얀 도마뱀이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날 못 보는 거 같아서 몸을 빌려서 왔어.”
바위에서 껑충 뛰어내린 티피가 딜리언의 다리에 몸을 들이받았다.
괜히 심술을 부리듯이.
“이제 내 목소리 들리지? 나 보이지?”
“그래.”
“정령을 벌레 취급하다니. 네가 제일 나빠.”
흥흥, 콧방귀를 뀐 티피가 내 몸을 타고 올라와 어깨에 자리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딜리언이 턱을 문질렀다.
“그런데 하필 도마뱀이군. 그건 위험하지 않나?”
“뭐가……?”
음산한 목소리에 지레 겁을 먹은 티피가 어깨를 움츠렸다.
“너는 도마뱀. 나단은 부엉이.”
딜리언이 티피와 나단을 번갈아 가리키며 씩 웃었다.
“포식자와 피식자라, 나단한테 잡아먹히기 딱 좋은 모습인 것 같군.”
“이놈! 나를 뭐로 보고! 난 도마뱀 안 먹는다! 고기만 먹는다고! 내 입은 아주 고급이야!”
“난 도마뱀이 아니라 정령이야!”
다른 이유로 발끈한 둘이 딜리언을 향해 식식거렸다.
그러다 둘이 눈이 마주치자 머쓱하게 웃으며 서로 인사를 나눴다.
“안녕.”
“제정신에 인사하는 건 처음이군.”
“응, 전에는 미안했어.”
저주에 걸려 우리를 공격한 일이 영 마음에 걸렸는지 티피가 고개를 숙였다.
“네 잘못이 아니니, 고개를 숙이지 말거라.”
나단이 날개를 펼쳐 티피의 몸을 토닥이자, 티피가 저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
“…….”
어색한 바람이 둘 사이를 지나쳤다. 아닌 척해도 딜리언의 말을 신경 쓰고 있었나 보다.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에 딜리언이 큭,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체면이 있지, 날것으로 먹진 않겠지? 구워서 먹어라.”
딜리언이 웃을 때마다 들썩거리는 어깨에 나단이 버럭 화를 냈다.
“그만 웃어! 그 입 다물어라!”
그사이 슬그머니 반대편 어깨로 자리를 옮긴 티피가 물었다.
“큼, 그, 그보다 안고 있는 건 뭐야?”
내가 소중히 품에 안고 있는 게 뭔지 궁금한 눈치였다.
담요를 걷어 아레스트를 보여주자, 티피가 침음을 흘렸다.
“저주에 잠식당했구나.”
“응.”
“예전의 나랑 똑같아.”
동질감이 드는지 아레스트를 바라보는 눈에 안타까운 빛이 스쳤다.
“그래서 여길 찾아왔구나? 치료하려고. 그렇지?”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티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얼른 가자.”
속도를 올린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압도당했다.
고개를 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이, 우거진 가지, 그 가지에 피어난 푸른 이파리.
떡갈나무의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장관에 우리는 말을 잃었다.
“원래는 이런 모습이군요.”
비쩍 마르고, 벌레가 들끓으며, 진물이 흐르던 예전의 몰골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여기서 가만히 서 있으면 되는 건 아닐 테고, 방법이 있습니까?”
딜리언의 말에 나는 나무 앞에 성큼 다가섰다.
“안으로 들어가야 해요.”
“들어가야 한다고요? 어떻게?”
“이렇게!”
티피가 어깨에서 뛰어내린 그 순간이었다.
“응?”
발밑이 꺼지고, 몸이 아래로 쑥 빠졌다.
“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건 미리 말해 달라고!
* * *
“인간의 몸이 이렇게 약할 줄은 몰랐는데…….”
안절부절못하는 티피의 중얼거림에 의식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리아, 죽은 건 아니지?”
“……불길한 소리 하지 마.”
멀쩡히 내 얼굴을 밟고 다니던 티피가 기뻐하며 땅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다행이다! 무사해서.”
나는 바닥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꽃잎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꽃 덕분에 추락으로 다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다.
“다음부턴 미리 알려줘. 깜짝 놀랐다고.”
몸을 일으키려던 나는 허리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움찔했다.
“딜리언 씨……?”
이만 손을 치워달라는 의미로 불렀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깨를 흔들어도, 뺨을 두드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 딜리언에 불안이 커졌다.
“아까부터 저랬어.”
“뭐? 그럼 날 깨울 게 아니라 딜리언 씨를 깨웠어야지! 딜리언 씨, 정신 차려……앗!”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 하자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이 들어갔다.
털썩, 그의 품으로 쓰러지자 귓가에 나른한 숨소리가 들렸다.
“리아 씨가 움직이니까 아픕니다. 한동안 이대로 있어야겠어요.”
“아까부터 자는 척했다고.”
그 태평한 모습에 티피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니까 일부러 이랬다는 거지? 나 속이려고? 나는 손을 들어 그의 팔을 찰싹 때렸다.
“내가 못 살아!”
“네네, 저도 리아 씨 없이는 못 삽니다.”
뭔 소리야,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딜리언은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하며 제 품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그 모습을 본 나단이 한숨을 쉬었다.
“리아, 딜리언. 때와 장소를 가려라.”
“그래……. 못, 봐주……겠군…….”
충격에 깨어난 아레스트가 나단의 말에 공감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일어나요. 당장.”
딜리언의 팔을 마구 때리며 품에서 벗어난 나는 아레스트를 향해 달려갔다.
푹신한 꽃이 그를 감싸고 지켜주었는지 다친 곳은 없었다.
“아레스트, 정신이 들어?”
“이제야, 숨을, 쉬겠군…….”
아레스트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역시 이곳이 정답이었나 보다. 전보다 기력을 찾은 모습을 보니 확신이 들었다.
“여기가 그 떡갈나무 안입니까?”
곁으로 다가온 딜리언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와 푸른 하늘, 그리고 저 멀리 우뚝 솟은 나무가 보였다.
“네, 저기로 가야 해요.”
우리는 천천히 나무를 향해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신성한 기운이 우리를 감쌌다.
검은 가시로 고통받던 그때와 확연히 다른 기운이었다.
“이게 진짜 너구나.”
“응. 네 덕분이야. 검은 가시도 사라지고 더는 아프지도 않아. 사람들도 이젠 나를 보러 와.”
티피가 내 뺨에 머리를 비비며 웃었다.
“고마워.”
“별말씀을. 인사는 내가 해야지. 오랜 시간 동안 어둠을 막아줘서 고마워.”
조용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단이 이제야 알겠다며 날개를 퍼덕였다.
“가시가 있었어? 그럼 네가 그 가시를 제거하는 순간 알아차렸겠구나.”
“그런 거야? 어떻게 바로 날 찾았나 했더니, 그거였구나.”
하긴, 그때 터진 빛이 수도까지 보일 리가 없지.
“운이 좋았어. 봉인이 풀린 순간 너를 찾아낸 게 아니라서. 그때 마주쳤다면 고생 좀 했을 거다.”
“그럼, 그땐 네가, 지켰어야지. 이 근방에 살면서, 어떻게 봉인이 풀린 지도, 몰랐냐.”
이제 꽤 기력을 찾았는지 아레스트가 신랄하게 나단을 공격했다.
“허, 참. 그러는 자네는 알아차릴 수 있냐? 우리가 그분처럼 전지전능한 게 아닌데 어찌 그걸 알겠어.”
물론 가만히 당하고 있을 나단이 아니었다.
“숲에 가기 전에 봉인이 풀렸다는 건 알고 있었다. 미카가 시험이 시작됐다고 알려줬거든.”
“하여튼, 너는 옛날부터 느려 터졌어.”
“그러는 자네는 빨라서 코마한테 당했냐?”
“그건…… 신도들이 일을 안 해서 그런 거다……!”
티격태격하는 둘을 본 딜리언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수가 현자라는 말은 거짓 같습니다. 유치해서 못 들어줄 지경이군요.”
“그러게요.”
이거야 원, 어린애들 말싸움이랑 다를 게 없었다.
“싸움은 그만. 아레스트, 너 이제 살 만하구나? 힘이 아주 장산데?”
“흥, 나는 원래 힘이 좋았, 쿨럭!”
말하기 무섭게 기침이 터져 나왔다.
“자, 그만하고. 다 왔어.”
맑은 호수 위에 홀로 솟아오른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물을 밟고 올라선 나는 뒤를 돌아 딜리언에게 말했다.
“아마, 딜리언 씨는 못 올 거예요.”
내 예상대로 딜리언의 발은 물속에 푹, 빠지고 말았다.
“금방 치료하고 올게요. 기다리고 있어요.”
“다녀오세요.”
“네, 다녀올게요.”
나는 아레스트를 껴안고 호수를 가로질렀다.
* * *
“너는 안 따라가는군.”
딜리언은 제 옆에 자리 잡은 티피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연히 따라갈 줄 알았던 녀석이 제 옆에 있는 게 수상쩍었다.
“나까지 가면 리아가 집중을 못 할 거야. 중요한 순간인데 방해하면 안 되지.”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티피는 저를 의심하는 딜리언을 보며 입꼬리를 씰룩 당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