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nster Duke Mistook Me for His Wife RAW novel - Chapter (14)
14화.
“리아, 가자. 저 녀석은 혼자 싸우는 게 더 유리하다.”
곁에 있어봤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돌려 말한 나단이 리아의 등을 밀었다.
“……다치면 저녁밥 없을 줄 알아요.”
“그건 안 되죠. 토끼 뒷다리가 전부 제 건데.”
“알면 다치지 마세요.”
“깔끔하게 해결하고 가겠습니다.”
“늦기만 해봐. 나단한테 다 줘버릴 거예요.”
걱정 반, 얄미움 반이 담긴 눈길로 딜리언을 쏘아본 리아는 등을 돌렸다.
등 뒤에서 끊임없이 화살 소리가 들리고, 이내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컥!”
동시에 짧은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그건 죽음의 소리였다.
“리아, 돌아보지 말거라.”
쾅, 문이 닫혔다.
리아가 무사히 집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딜리언은 얼굴에 띤 미소를 지웠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미소 위에 드러난 것은 싸늘하게 가라앉은 그의 본 얼굴이었다.
딜리언은 차가운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엔 멋모르고 제게 달려들었다 단칼에 숨이 끊긴 암살자의 육신이 엉망으로 늘어져 있었다.
“자, 이제 열여섯.”
허물어진 몸에서 딜리언이 가져간 것은 검.
손쉽게 검을 강탈한 딜리언은 익숙하게 감겨드는 감촉에 입꼬리를 당겼다.
비릿한 그 미소는 리아가 흔히 알고 있는 악당의 미소였다.
“빨리 와라. 저녁 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다른 건 몰라도 나단에게 빼앗기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안 오면, 내가 간다.”
낮게 가라앉은 눈이 형형히 빛났다.
* * *
리아는 초조함에 거실을 빙글빙글 돌았다.
“어떡하지? 괜찮을까?”
“어련히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거라.”
나단이 상황을 알려주며 리아를 안심시켰지만, 그녀는 좀처럼 진정할 수가 없었다.
“결계가 어떻게 뚫린 거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잖아.”
마물은 물론이고, 도적도 전부 다 막아줬는데…….
“작정하고 달려들면 못 할 것도 없지. 특히나 저놈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자들이니까.”
그러니까 저 침입자들은 그만큼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것이었다. 반드시 딜리언을 제거하기 위해.
“그럼 더 위험하잖아!”
리아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이래서 정이 무서웠다. 예전이었으면 신경도 안 썼을 텐데.
리아는 물러나라는 나단의 말에도 창문에 달라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 대 다수의 싸움이지만 딜리언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암살자들이 그에게 생명을 빼앗겼다.
그러나 암살자들이 후퇴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그들은 열세에 몰렸음에도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꼭 뭐에 쓰인 사람처럼.
그렇게 부나방처럼 달려들더니 기어코 딜리언의 팔에 화살을 맞혔다.
“안 돼!”
무식하게 화살을 뽑는 모습에 리아가 비명을 질렀다.
“가봐야겠어!”
“리아.”
“다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리아! 무기라도 챙기든가!”
나단의 만류에 문을 향해 달리던 리아가 몸을 돌려 주방으로 돌진했다.
‘나단 말처럼 무기 하나쯤은 들고 있어야 하니까.’
식칼이든, 프라이팬이든, 쇠지레든 뭐든 좋다 이거야.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딜리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주방으로 향하던 리아가 그것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딜리언의 방, 반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꽃.
‘백소화가…….’
처음 보는 형태로, 새카맣게 말라 비틀어 죽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딜리언이…….
와장창-!
리아의 뒤에서 창문이 깨졌다. 부서진 유리가 뺨을 스쳤는지 화끈거렸다.
“윽.”
창문으로 기어들어 온 암살자가 바닥을 굴렀다.
“리아. 내 뒤로 오거라.”
재빨리 날아온 나단이 리아의 앞을 막아섰다.
암살자가 리아를 건드린다면, 즉시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리아 또한 손에 잡힌 식칼을 들고 그를 주시했다.
그런데 상태가 이상했다.
당장이라도 저를 공격할 줄 알았던 암살자는 패닉에 빠진 사람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괴물, 괴물이야…….”
공포에 질린 그는 리아를 공격할 정신조차 없어 보였다.
꼭,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넋이 나간 상태였다.
“상황이 좋지 않구나.”
나단이 끄응, 침음을 삼켰다. 그의 시선이 문밖으로 향했다.
“특수 상황이야.”
흉흉한 기운이 전신을 짓눌렀다.
아주 잘 아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감각이었다.
소름 끼치는 비명이 문밖에서 들렸다.
“히, 히익!”
새된 비명을 지른 사내가 엉덩이를 밀며 도망쳤다.
이 사내는 본 것이다. 딜리언의 속에 잠들어 있는 그것을.
리아는 문 밑으로 보이는 기다란 검은 그림자에 주춤, 걸음을 물렸다.
“리아, 온다.”
슈욱-!
창처럼 뻗어진 그림자가 순식간에 암살자의 발목을 휘감았다.
“안 돼! 싫어-!”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림자를 뿌리칠 수는 없었다.
잠시 뒤, 식사를 마친 저주가 스르르 몸을 물렸다. 그러자 한때 사람이었던 것은 먼지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단.”
“기어이 터지고 말았구나.”
나단이 쯧쯧 혀를 찼다.
그림자는 아직도 배가 고픈지 이번엔 저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으나 닿지 못했다.
“어딜, 감히.”
파스스-
저주는 나단이 펼친 장막에 막혀 부서졌다.
리아는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주변을 바라보다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밖에서 들리던 비명은 어느새 들리지 않았다.
소름 끼치는 적막만이 감돌 뿐이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 * *
나는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에 신음을 흘렸다.
‘무시무시하네.’
한때 우리를 공격했던 침입자들은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가루가 되었다.
그들이 남긴 건, 옷가지와 무기뿐.
나는 바람에 날리는 가루를 바라보다 유일하게 서 있는 존재에게 시선을 던졌다.
딜리언. 그는 이 땅에 살아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저게 원인인 것 같지?”
“그래.”
나는 딜리언의 팔로 시선을 옮겼다.
“뭐에 당한 걸까.”
아까 맞은 화살이 잘못된 게 분명하다.
검푸른 얼룩은 얼핏 봐서는 독처럼 보였으나, 독은 아니었다.
“독이라기엔 지나치게 멀쩡하고, 전처럼 죽을 만한 상처도 아닌데 갑자기 폭주하는 게 가능해?”
“본디 저주란 숙주의 건강 상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법이지.”
그래서 누군가는 딜리언에게 저주는 양날의 검이라 말하기도 했다.
평생을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히지만, 늘 죽음으로부터 구해준다며.
‘개소리지. 결국 저주가 그를 잡아먹을 텐데.’
나는 꿈틀거리는 그의 뺨을 바라보았다.
딜리언의 저주는 열일곱의 생명을 게걸스럽게 삼켰음에도 크기를 줄이지 않았다.
줄이긴커녕 몸집을 불리며 더더욱 날뛰었다.
“저 정도 먹었으면 멈출 때가 됐는데…….”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나단의 눈이 예리하게 좁혀졌다.
“우선 말려야겠다. 이대로면 이 일대를 다 삼키겠어.”
나단의 말대로다. 저주는 이제 대문을 넘어 밖으로 뻗쳐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해야 해. 지금 딜리언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괜찮아. 나단이 쳐준 보호막이 나를 지켜줄 거야.
나는 힘껏 달려가 딜리언의 손을 붙잡았다.
“딜리언 씨!”
무감정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던 딜리언이 내 목소리에 반응했다.
시선이 마주쳤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텅 빈 눈이 오싹하다.
내가 아는 딜리언이 아닌 것 같았다.
“딜리언 씨, 이제 끝났어요. 다 끝났으니까 그만 멈춰요!”
“…….”
팔을 흔들고 당겨보기도 했지만, 딜리언은 묵묵부답이다.
틀렸어. 폭주한 딜리언에게 내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목이 터져라 외쳐도 그에게 닿을 일은 없을 거다.
‘한 번 보기도 힘들다는 폭주를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보다니. 마가 꼈나…….’
나는 속으로 신세를 한탄하며 딜리언에게 신성력을 흘려보냈다.
닫아뒀던 신성력을 개방한 순간, 늘어져 있던 딜리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윽.”
꽈악. 힘껏 내 손을 붙잡은 악력에 신음이 터졌다.
살이 뜯길 것처럼, 뼈가 으스러질 것처럼 아팠다.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진짜, 나중에 나 죽이겠다고 달려들기만 해봐. 가만 안 둘 거야.”
이 고생을 했는데 원수라고 죽이면 그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엄청난 양의 신성력을 주입한 만큼 딜리언은 빠르게 진정했다.
저주가 크기를 줄이며 뺨을 타고 내려갔고, 몸 곳곳에 난 얕은 상처들이 아물었다.
마침내 저주가 몸을 숨긴 순간, 딜리언이 끈이 끊긴 인형처럼 무너져내렸다.
무너지는 딜리언을 간신히 붙잡은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의 체온이, 델 듯 뜨거웠다.
* * *
“나단! 의자 좀 치워줘!”
나는 쓰러진 딜리언을 간신히 방으로 끌고 와 침대에 눕혔다.
땀을 훔칠 정신도 없었다.
딜리언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호흡이 가쁘고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리아, 옷부터 벗겨라. 당장.”
나는 크게 들썩이는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여유롭게 단추를 하나씩 끌 시간이 없다. 나는 셔츠를 찢을 듯이 잡아당겼다.
“……!”
딜리언의 가슴을 본 나는 놀란 숨을 삼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