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nster Duke Mistook Me for His Wife RAW novel - Chapter (48)
48화.
옆 테라스에서 딜리언이 손을 흔들었다.
“안 자고 뭐 해요?”
“리아 씨랑 떨어지니 도무지 잠이 안 오네요.”
“그게 뭐예요.”
이제는 익숙해진 헛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오히려 그 말이 달가웠다.
낮에 있었던 끔찍한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평소와 같아서.
“리아 씨, 결정은 하셨습니까.”
“제게 선택권은 있어요?”
나단도 딜리언과 함께 가길 바라던데.
“당연히 있죠. 제가 설마 리아 씨께 강제하겠어요?”
“그건 그렇죠.”
살살 녹여 제 편으로 만들면 모를까.
“리아 씨, 공작저에 가기 싫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싫은 게 아니라 걱정돼서 그러죠.”
“걱정?”
“나중에 딜리언 씨가 기억을 되찾으면 저를 미워할까 봐?”
정확히는 죽일까 봐 그런 거지만.
생사가 달린 진지한 고민이었건만, 딜리언은 왜인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확신해요?”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하죠.”
“……정말요?”
제국에서 제 이름을 건다는 건 보통 의미가 아니다.
그건 언약이며, 맹세였다. 죽음까지 각오한.
그런데 시나이즈의 가주가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고?
생각지도 못한 약속에 어버버거리던 그때, 딜리언이 테라스를 뛰어넘어 내 앞에 섰다.
“미쳤어요?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떨어져서 어디 부러지면 리아 씨가 치료해주겠죠.”
허어, 이 뻔뻔한 것 좀 봐. 황당함에 벌어지는 내 입을 가볍게 눌러 닫아준 딜리언이 웃음을 터트렸다.
“어차피 리아 씨랑 저는 속박 때문에 헤어지지도 못하잖아요.”
“……그렇죠.”
그러게, 어차피 헤어질 수도 없잖아?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향해 불쑥 손이 다가왔다.
나는 앙증맞게 튀어나온 새끼손가락을 보고 눈을 깜박였다.
“정말? 진짜로? 기억 찾고 난 뒤에 화 안 낼 거예요?”
“절대, 안 그럽니다.”
아니, 이렇게 쉽게 약속해도 되는 거야? 얼떨떨함에 머뭇거리는 내 손을 가져간 딜리언이 멋대로 손가락을 엮었다.
“그럼 저랑 가는 겁니다?”
올곧은 눈동자가 나를 주시했다. 나는 그 뜨거운 시선에 마른 입술을 적셨다.
수도에 어둠이 들끓는다고는 하나, 여기까지 쫓아온 걸 보면 어딜 가나 마찬가지일 테다.
그렇다면, 가장 안전한 곳은 딜리언의 곁일지도 몰랐다.
기억을 찾은 후엔 모르겠지만, 그전까진 내 편일 테니까.
오늘처럼 나를 구해주겠지.
솔직히 말하면 신전보다 더 믿음직했다.
‘그래.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정면으로 부딪쳐 보자.’
천하의 딜리언 시나이즈라도, 제 이름을 걸고 맹세했는데 나를 죽이겠어?
아예 나를 죽이지 못하게 진득하게 얽혀보자고. 딜리언.
“그래요. 가요. 갑시다.”
“같이?”
“같이.”
꾸욱, 도장을 찍듯 부딪친 엄지에 딜리언이 눈을 휘었다.
밤하늘의 초승달처럼, 활짝.
* * *
이튿날. 샤텐 기사단은 이른 아침부터 바삐 움직였다.
특히, 마법사인 카나에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포털을 이용해야 하니까 짐은 전부 다 나한테 들고 와. 포켓에 넣을 거니까.”
“카나에, 이건 어떡할까?”
“쓸데없는 건 다 버려. 움직이기 불편하니까.”
아침도 먹지 못하고 바삐 움직였지만,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흐흐, 흐흐흐흐.”
루도는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입가를 씰룩거리기까지 했다.
미친 사람처럼 보였으나 그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어린 루도를 제외한 네 사람도 체면 때문에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으니까.
‘드디어 전하와 함께 공작가로 돌아간다!’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가.
“집으로 돌아가기 딱 좋은 날씨네.”
“얼마나 시원해, 속이 다 뻥 뚫리네.”
“캬, 저 번개 치는 것 좀 봐. 우리 전하가 등장할 때 후광을 비추려고 그러나 봐.”
천둥 번개에 비바람까지 몰아치는데 좋은 날씨라니. 다들 미쳐버린 게 분명하다.
“웅덩이처럼 고인 저 물은 곧 렉스터가 흘리게 될 눈물이다.”
믿고 있던 제리마저 동조하자 카나에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쨌든 무사히 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야.”
“거기다 전하의 기억까지 돌아……윽!”
벌컥, 문을 열고 나오는 리아에 깜짝 놀란 제리가 엘드먼의 등을 후려쳤다.
“기억이 왜요?”
“……돌아오지 않으셔서 걱정입니다.”
재빨리 둘러댄 제리의 말에 리아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죠. 그게 걱정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인 리아에 그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젯밤, 리아에게 기억이 돌아온 사실을 알리지 말라 신신당부한 딜리언이 떠올랐다.
‘알아서 입단속 잘해라. 일을 그르치는 날엔 각오해야 할 거다.’
말실수를 하는 날엔 죽은 목숨이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엘드먼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리아는 지나가는 해리스를 불렀다.
“아, 해리스 씨,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요.”
두 사람은 여관 구석으로 이동했다.
“저를 따로 부르신 이유는 딜리언 때문인가요?”
리아의 얼굴에서 단번에 고민을 읽어낸 해리스가 부드러운 얼굴로 물었다.
“……딜리언 씨가 신성 저항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사실이에요? 정말 신성력이 통하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신성 저항력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죄를 지어 신에게 버림받은 자들이다.
저주를 안고 태어난 딜리언으로선, 당연한 결과였다.
“어린 시절, 제가 신성력을 제어하지 못하던 때에는 딜리언과 한 공간에 있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자신과 함께 있으면 딜리언이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저는 되죠?”
“저도 의문입니다. 확실한 건, 리아 씨가 남들보다 특별하다는 겁니다.”
그런 특별함 바란 적 없는데.
리아가 원한 건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리아 씨가 딜리언의 곁에서 쭉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저주를 진정시킬 수 있어서인가요?”
“그것도 있지만, 딜리언이 리아 씨의 곁에선 안정되어 보입니다. 편안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더군요.”
제 평생 딜리언이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
리아가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건 저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미소를 잃지 않길 바라는 형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확답할 수 없었던 리아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더 궁금한 게 있으세요?”
“대신관님은 어떤 분이세요?”
리아가 아는 정보라곤 이 소설에서 가장 선한 사람이라는 것뿐.
생각보다 알고 있는 정보가 없었다.
“선한 분이십니다. 다정하고 상냥하시죠.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분입니다.”
전형적인 대답에 김이 픽, 새던 참이었다.
“그리고 기분이 좋으시면 꽃을 피우십니다.”
“꽃이요? 무슨 꽃을-.”
“리아 씨, 아침식사 하러 가죠.”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기도 전에 그녀를 데리러 온 딜리언에 이야기가 끊겼다.
“어서요. 식으면 맛없습니다.”
리아가 자신과 말을 더 섞을까 봐 경계하는 모습에 해리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살다 살다, 딜리언 저놈이 질투하는 꼴을 다 보는군.’
속이 메슥거리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리아 씨, 보여드리겠습니다.”
해리스는 딜리언의 어깨에 손을 흘리고 신성력을 풀었다.
그러자, 전기가 튀듯 해리스의 손이 튕겨났다.
“보셨죠? 이게 신성 저항력입니다.”
“다짜고짜 뭐야.”
갑자기 신성력 공격을 받은 딜리언이 사납게 눈을 일그러트렸다.
그 얼굴을 보지 못한 리아는 목소리만 듣고, 딜리언이 아파한다고 착각하고 말았다.
딜리언에게 이 정도는 간지러운 수준이라는 것을 모르고.
“아파요?”
“살을 지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딜리언은 그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딜리언의 기행에 또다시 속이 메스꺼워진 해리스는 못 본 척, 자리를 떴다.
* * *
“세상 참 좋구나.”
나단이 신기하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좋긴 하지. 귀족들한테만.”
빌헬름의 낮고 낡은 건물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고, 번쩍번쩍한 건물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빌헬름에서 출발한 게 오늘 아침이다. 식사까지 마치고 출발했으니, 10시쯤 됐겠지.
그리고 정확히 10분 뒤. 우리는 수도의 포털 앞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수도까지 꼬박 한 달이 걸리는 거리를 10분 만에 오다니, 역시 돈이 좋긴 좋았다.
물론, 그 돈이 평민은 쳐다도 못 볼 천문학적인 돈이라는 게 문제지.
“리아 씨, 이리로.”
포털 밖으로 나오자,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시나이즈의 인장이 그려진 마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딜리언이 내민 손을 잡고 마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푹신한 소파에 깜짝 놀랐다.
‘대박, 우리 집 소파보다 더 좋잖아?’
이런 것만 타고 다니던 사람이 우리 집 소파 붙박이로 살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소파를 꾹꾹 누르고 쓸어보던 그때, 웃음기 가득한 붉은 눈과 눈이 마주쳤다.
“큼.”
나는 민망함에 손을 거둬들였다.
“나단 님, 리아 씨. 조만간 뵈러 가겠습니다.”
문이 닫히기 직전, 해리스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딜리언, 잘 모셔라.”
“잔소리 그만하고 가라.”
딜리언은 귀에 못이 박힐 듯, 자주 들은 이야기에 완전히 질려버렸는지 손을 휘휘 저었다.
“해리스 씨, 조심히 가세요.”
“리아 씨도 조심하세요.”
해리스는 나단과 나를 딜리언의 곁에 두고 가는 게 걱정인지 쉽사리 마차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들려온 절규가 귀를 찔렀다.
“리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