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nster Duke Mistook Me for His Wife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생각보다 빨리 했네?”
“이 몸이 누구냐, 위대하고 완벽한 마탑주님이지.”
“입만 다물면 정말 멋질 텐데.”
왼손에 팔찌를 끼며 피식 웃자 슈만이 어깨를 으쓱였다.
“멋지다고? 알아. 이 오빠가 좀 멋지냐.”
어휴, 대화가 안 통한다니까.
‘정말 그 성격 그대로일 줄이야.’
슈만은 제 잘난 맛에 사는 캐릭터였다. 누구보다 꾸미는 것을 좋아했고, 늘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는 자존감이 엄청 높은 사람이었다.
나는 오늘도 화려한 슈만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허리춤을 무겁게 만든 주머니를 통째로 슈만에게 넘기자, 그가 놀란 듯 눈을 깜박였다.
“뭐가 이렇게 무거워?”
“전에 부탁한 결계석이랑 방어석 값까지 넣었어.”
딜리언이 폭주하고, 메이가 없는 위급 상황에서 나를 도와준 사람이 바로 슈만이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쓰는 거야?”
팔찌를 흔들며 묻자 슈만이 내 손목을 잡고 팔찌 한 곳을 가리켰다.
“여기 가운데 큰 보석 보이지? 거기 꾹 눌러봐.”
그가 시키는 대로 엄지를 가져다 대자, 은은한 빛이 돌았다.
“이제 완전히 네 거야. 지문 인식 끝났으니까 너 아니면 다른 사람은 못 써.”
“너, 진짜 천재는 천재구나.”
여기서 지문 인식 시스템을 볼 줄이야. 순수하게 감탄을 터트리자 슈만이 내 머리에 손을 툭 얹었다.
“칭찬 고맙다.”
무심한 듯 보이나, 쓰다듬는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이 손을 쳐낼까 말까, 고민하던 그때 먼저 그 손을 치워낸 이가 있었으니.
“야, 다 끝났으면 꺼져.”
메이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어디서 개수작을 부려. 손가락 부서지고 싶냐?”
“이게 오빠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오빠는 무슨, 좀 꺼져! 오늘 리아랑 둘이서 오붓하게 보내기로 했다고!”
바락바락 대드는 메이에 인내심의 한계가 왔는지 슈만이 그녀의 머리를 쿵, 쥐어박았다.
“철 좀 들어라. 철 좀.”
“누가 할 소린데!”
메이는 지지 않고 슈만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쟤들처럼 현실 남매처럼 살기도 힘들 거야.’
나는 뒤에서 들리는 타격음을 무시한 채 나단을 안고 거리를 벌렸다.
바보 남매랑 같이 있다간 나까지 바보가 될 것 같았다.
* * *
“어유, 저 진상. 끝까지 따라오는 것 좀 봐.”
“밥 먹을 땐 싸우지 마.”
“그래, 먹을 땐 조용히…… 냠냠.”
“나단, 너도 다 먹고 말해.”
나는 정신없이 솜사탕을 흡입하는 나단을 뒤로하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슈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슈만! 너도 빨리 이리 와서 먹어! 밥 안 먹고 왔다며!”
소리 높여 그를 부르자, 슈만이 특유의 유들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역시 이 오빠를 챙겨주는 건 리아뿐이라니까.”
나는 헛소리를 하는 슈만의 입에 감자를 욱여넣었다.
“읍!”
“슈만. 나는 오늘 길거리 음식을 전부 다 먹어볼 거야. 근데 그걸 방해한다? 엉덩이를 발로 차서 쫓아낼 줄 알아.”
내가 이날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협박성 짙은 경고에 슈만은 얌전히 입을 다물고 감자를 오물거렸다.
설탕이 솔솔 뿌려진 감자를 한 입 베어 문 나는 메이에게 물었다.
“메이. 마탑 일은 잘 해결됐어?”
“글쎄. 호적이랑 마탑에서 제적된 건 다시 살려주긴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
“왜? 좋은 일이잖아.”
“나보고 마탑에서 다시 일하라잖아. 귀찮게. 매일 연구, 연구. 지겨워 죽겠어. 너랑 조용히 살 때가 좋았는데.”
이게 다 슈만 탓이라며 메이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슈만을 노려보았다.
“평생 쫓기면서 사는 것보단 낫잖냐.”
슈만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래 보여도 슈만은 제 동생을 끔찍이 여겼다.
‘빌헬름까지 찾아와서 쫓겨난 동생을 보살핀 걸 보면 말 다 했지.’
따지자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지만, 둘은 세상에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본인들이 그 사실을 부정할 뿐이지.’
싫다, 싫다 하면서도 슈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메이는 쑥스러운지 괜히 툴툴거리며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리아. 나 확 그냥 시나이즈 공작가에 취직해버려?”
“와서 딜리언 씨랑 싸우려고?”
아서라. 딜리언은 물론이고 루도랑 부딪칠 걸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했다.
‘내 집을 터트린 것처럼 저택을 터트려 버리면 어떡해.’
나는 괜히 메이가 헛된 꿈을 꿀까 봐 그녀의 주위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메이, 복귀한 김에 열심히 일해서 마탑주 자리까지 노려보자. 너라면 분명 할 수 있어.”
“흠, 흠. 그래? 그럼 뭐, 한번 해봐야겠네.”
옆에서 픽, 웃는 소리가 들렸다.
슈만이 입을 가리고 연신 피식거렸다.
“마탑주 앞에서 반란을 도모하다니 배짱 좋네.”
“리아, 좋은 생각이 났어. 어려운 길 갈 필요 없이 지금 저 녀석을 제거하면 바로 내가 마탑주야.”
그러자 슈만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네가? 하고 업신여기는 표정이 재수 없었다.
“이 오빠는 못 뛰어넘는다.”
“하,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지.”
파직, 내 머리 위로 불꽃이 튀었다.
“나단, 다음엔 꼬치 먹으러 갈까?”
“그게 좋겠구나.”
싸우는 둘을 버리고 자리를 옮긴 지 얼마나 지났을까.
“넌 좀 떨어져.”
“너나 떨어져.”
둘은 싸움을 그만두고 내 뒤를 따라왔지만 여전히 투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시끄러운 남매를 등 뒤에 달고 맛집 탐방을 이어갔다.
* * *
그랬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나는 시야를 가리는 후드를 뒤로 넘겨,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있던 시장길이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낯선 건물 천지였다.
하필 그때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서.
나는 소 떼처럼 달려들던 사람들을 떠올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시끄러워도 둘 옆에 붙어있을걸.’
지겹도록 싸우길래 무시하고 갔더니 무슨 말도 안 되는 타이밍으로 인파에 휩쓸려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이었다.
즉, 현재 나는 미아라는 소리다.
나는 근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쥐었다.
“나단, 너도 같은 생각이지?”
“그래.”
“우리 길을 잃었나 봐.”
“솜사탕 하나 더 먹어야겠어.”
짧은 침묵이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커다란 눈을 깜박이던 나단이 입을 뻐끔거렸다.
“우리…… 미아야……?”
“응. 그런데 이 상황에 솜사탕이 먹고 싶어?”
“내가, 미아라니……!”
“어휴.”
나는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었다.
이거야 원, 덤 앤 더머, 패트와 매트잖아.
“……저기 있는 경비대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자.”
나는 벗었던 후드를 다시 뒤집어쓰며 구석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기사들을 가리켰다.
“메이는?”
“중간에 만나면 다행인데 아니면 알아서 들어가야지.”
이 나이 먹고 미아 방송하는 것도 웃기잖아?
어깨를 으쓱인 나는 벤치에 앉아 연신 부리를 움직이는 나단을 향해 물었다.
“……넌 그거 먹고 있을래? 금방 가서 불러올게.”
“으응, 아니다. 같이 가야지. 한 입만 더 먹고 가자.”
그렇게 말한 나단이 옥수수를 먹는 속도를 올렸다.
잠깐은 괜찮겠지. 한숨 돌리며 벤치에 등을 기댄 그때, 우리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동글동글한 세 쌍의 눈동자가 우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내가 아닌, 나단을.
“우와, 부엉이야! 귀엽다!”
“포동포동해!”
순식간에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나단이 눈을 깜박였다.
“무, 무슨!”
“우와! 부엉이가 말도 해!”
“신기하다!”
말하는 부엉이를 처음 본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손을 내밀었다.
“부엉아, 이것도 먹어봐.”
“이것도 맛있어!”
제 앞으로 불쑥 내민 솜사탕에 나단이 눈을 반짝였다. 그뿐이랴, 연신 입맛도 다시는 게 이미 먹을 거에 정신을 팔린 후였다.
“아이들이랑 놀아주면서 여기에 있어. 그게 낫겠어.”
“큼, 그럴까? 먹고 있을까? 아, 아니. 아이들을 봐주고 있을까?”
“응, 얘들아. 내가 올 때까지 이 부엉이랑 놀고 있어. 알았지?”
“네에!”
“다녀오거라!”
아이들과 똑같은 얼굴로, 눈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흘러나왔다.
‘누가 애인지 모르겠다니까.’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경비대를 향해 다가갔다.
복잡한 인파를 간신히 뚫으며 앞으로 나아가던 그때였다.
“도와줄까?”
낯선 목소리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뒤를 돌자,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가 경비대를 가리켰다.
“경비대에게 가도 소용없을 거야. 저들은 절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거든.”
낯선 이의 등장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는 떨떠름한 내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말을 이었다.
“어느 쪽으로 갈 건데? 시계탑? 공원? 아니면 호수?”
“……시계탑.”
메이와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처음 만났던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리 와봐. 가는 길을 알려줄게.”
“꼭 그리로 가야 돼?”
“해코지하려는 게 아니라, 지도가 저기에 있어.”
남자가 가리킨 곳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커다란 안내판이 보였다.
“맞지?”
“그러게. 정말이네.”
머쓱함에 뺨을 긁적거리며 안내판 앞으로 이동하자, 그가 현재 위치를 손으로 짚었다.
“시계탑까지 가는 길은 단순하니까 찾기 쉬울 거야.”
그의 말대로 길은 어렵지 않았다. 알아듣기 쉬운 설명 덕분에 귀에 쏙쏙 박히기도 했고.
설명을 마친 남자가 물었다.
“이름이 뭐야?”
“보통 이름을 물을 땐 본인 소개부터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여전히 경계심을 지우지 못한 내가 대답을 회피하자 로브 아래로 드러난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뭐일 것 같아? 맞혀봐.”
갑자기 맞혀보라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아는데. 그럼 너도 알아야지.”
뭔 미친 소리야. 도움을 받았음에도, 꺼림칙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맞혀볼게. 다음엔 네가 맞혀야 해.”
슬쩍 드러난 자색 눈동자가 햇빛에 반짝였다. 붉은 입술이 천천히 벌어지던 그때.
등 뒤로 삿된 기운이 느껴졌다.
목덜미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