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nster Duke Mistook Me for His Wife RAW novel - Chapter (70)
70화.
“성녀님?”
설마 여기서 아이나와 마주칠 줄은 몰랐던 나는 내심 당황했다.
‘좀 불편한데.’
썩 좋게 헤어진 게 아니다 보니, 이 만남이 달갑지 않았다.
‘그나저나 황궁에서 지낸다더니, 이제 신전으로 돌아온 걸까?’
내게로 달려오던 아이나가 순간 멈칫했다.
우물쭈물, 뜸을 들이다 슬그머니 다가온 아이나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날은 미안했어요!”
아이나가 고개를 숙였다.
“공작님께 경솔한 발언을 한 점, 깊이 반성하고 있어요. 공작님께도 제대로 사과드릴게요.”
고개를 든 그녀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만 화 풀면 안 될까요?”
“저도 심하게 대해서 미안해요. 걱정해서 해준 말인데 울컥해버렸어요. 미안해요.”
덤덤한 내 사과에 아이나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용서해주는 거죠?”
“용서가 아니라 화해를 한 거죠.”
아이나가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고작 다툼인데 용서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았다.
“리아 님……!”
도대체 뭐에 감동한 건지, 아이나가 나를 덥석 껴안았다.
지나친 접촉에 세라와 카나에가 움찔했다.
단도를 반쯤 꺼내든 세라는 아이나를 공격할 기세였다. 그러지 말라는 내 눈짓에 슬그머니 숨기긴 했지만 경계를 늦추진 않았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그럼 우리 이제 친구예요?”
“친구?”
“리아 님이 절 구해줬고, 같이 카페도 가고, 이야기도 하고, 싸우고 화해도 했으니까 이제 친구인 거죠?”
아이나는 잔뜩 들떠있었다. 마치, 처음 친구를 사귀는 아이처럼.
‘아, 맞다. 아이나 친구 없지.’
아이나는 동성 친구가 없었다.
유일한 친구인 파비안은 그녀가 성녀가 되자 거리를 두고 깍듯이 모시기 시작했으니 지금쯤 사이가 멀어졌을지도 몰랐다.
‘외로웠구나.’
내 곁엔 나단이 있었지만, 아이나는?
아이나의 주변엔 그녀를 신성화하는 사람들뿐이었다.
만약, 내가 아이나의 상황이었다면? 다 때려치우고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조건이 있어요.”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얼굴에 긴장이 가득했다.
“존댓말 그만 쓰면 친구 할게요.”
“하지만.”
“물론, 저도 편하게 말할 거예요.”
아이나는 내가 수호천사라는 이유로 저자세를 고집했다.
수평적이지 않은 관계는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없다.
아이나의 저자세에 익숙해진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아래로 볼지도 몰랐고, 아이나는 내 눈치를 보며 평생 저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다분해 보였다.
이럴 바에야 서로 말을 트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저, 잘할 수 있어요. 아니, 잘할 수 있어!”
“좋아. 우린 오늘부터 친구야.”
“꺄!”
행복한 비명을 지른 아이나가 나를 껴안고 빙글 돌았다.
‘전부터 느끼는데 얘 왜 이렇게 힘이 좋지?’
만족할 때까지 나를 안고 돌리던 아이나는 타깃을 바꿔 나단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나단 님, 오늘도 늠름하시네요.”
아이나의 한마디에 자존심을 회복한 나단이 쪼그라들었던 가슴을 쭉 펼쳤다.
“이번 대의 성녀는 눈썰미가 아주 좋구나.”
“하하, 감사합니다. 리아 님, 아니. 리아는 에런 님을 만나러 왔어요, 아니. 왔어?”
말을 놓기가 어색한지 아이나가 몇 번이나 버벅거렸다. 그런 그녀와 반대로 나는 거침이 없었다.
“응.”
약속하고 온 건 아니지만, 에런이 오고 싶을 때 와도 된다고 했으니까 문전박대를 당하진 않겠지?
나는 안내를 자처한 아이나를 따라가며 물었다.
“넌 이제 완전히 신전으로 들어온 거야?”
“응. 이제 쭉 여기에 있을 거야……. 헉! 내가 황궁에 있었던 거 어떻게 알았어?”
“딜리언 씨가 얘기해줬어.”
“아……. 공작…….”
무의식중에 떨떠름히 중얼거리던 아이나가 재빨리 감정을 갈무리했다.
간신히 부정적인 감정을 틀어막은 아이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공작의 저주가 날뛰거나 그러진 않았어?”
“나 만나고 두 번 폭주했어.”
비밀도 아니고,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던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살아있냐고? 그야, 내가 잠재웠으니까.”
아이나의 턱이 떨어질 것처럼 벌어졌다.
“힘으로 누른 거야?”
“응. 딜리언 씨나 주변 사람들 말로는 나 말고는 아무도 성공 못 했다던데. 너는 못 해?”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가능했다면 내가 이 고생을…….”
“고생? 무슨 고생.”
당황한 아이나가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야. 하여튼 나는 못해. 평생 못할 거야.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해.”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아니야. 난 미래를 봤어. 절대 못해.”
아이나는 몇 번이나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천하의 성녀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한 저주가 내 손에서만 진정되는 이유는 뭘까.
“아이나, 아까 여기에 왜 왔냐고 물었지?”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둠을 죽이려고 왔어. 그걸 제거해야 딜리언 씨의 저주를 풀 수 있거든.”
설마, 내가 직접 움직일 줄은 몰랐는지 놀라던 아이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의 힘이라면 충분할 거야.”
“그럴까?”
“당연하지. 너는 사랑받는 사람이잖아.”
그리 말한 아이나의 시선이 내 머리 위로 향했다.
“나비가, 이렇게 한 사람만을 따르는 건 처음 봐.”
역시, 아이나도 나비가 보이는구나.
그녀의 말대로 나비들은 내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에런 님은 온실에 계실 거야. 이 시간엔 항상 그곳에서 나비들과 시간을 보내시거든.”
“온실은 어디로 가야 해?”
“나도 마침 볼일이 있는데 같이 가자.”
온실 문고리에 손을 올린 아이나가 내 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 두 분은 여기에 못 들어와요.”
“그게 무슨……!”
나는 발끈하는 세라와 카나에를 막아섰다.
“카나에, 세라.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네.”
얌전해진 두 사람의 곁으로 날아간 나단이 손을 흔들었다.
“리아, 나도 잠시 인사를 나누러 다녀오마.”
“누구한테?”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여기에 다 모였거든.”
정말 마음이 급한지 나단이 연신 뒤를 돌아봤다.
“늦었다간 무슨 꼬투리를 잡을지 모르겠구나. 다녀올 테니, 너도 이야기 잘하고 오렴.”
“응, 알았어.”
세라의 어깨에서 날아오를 준비를 하던 나단이 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카나에와 세라에게 물었다.
“너희도 힘들게 서 있지 말고, 함께 가는 건 어떠냐.”
“그것도 좋겠다. 다녀와. 대신전에 볼 게 그렇게 많다더라. 구경하다 와.”
나까지 합세해 종용하자, 두 사람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시간이 되면 모시러 올게요.”
“리아 님, 조심하세요…….”
두 사람은 나단을 따라가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가지 말라고 붙잡아 주길 바라는 눈빛이었으나, 나는 모른 척 손을 크게 흔들었다.
카나에와 세라마저 나단을 따라 자리를 옮기고, 둘만 남은 것을 확인한 아이나가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리아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나를 맞이하는 화사한 얼굴에 나는 눈을 찡그렸다.
안 그래도 빛나던 얼굴 위로, 온실 유리를 통과한 햇빛이 쏟아지자 눈이 시릴 지경이었다.
“……제가 올 줄 알고 계셨군요.”
“네, 리아 님께서 신전에 들어선 순간 알아차렸습니다.”
에런이 손을 가슴께로 들어 올리자 그 위로 나비가 앉아 날갯짓했다.
“이 아이가 알려주었답니다.”
몇몇 나비가 안으로 들어간다 했더니, 에런에게 보고를 하러 간 거였나 보다.
“아이나도 왔군요.”
아이나는 조용히 눈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에 미소 지은 에런이 길을 텄다.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니, 이리로 오시죠.”
나비를 어깨에 가득 실은 에런이 야외 테이블로 우리를 안내했다.
나는 화려하게 꾸며진 온실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을 억지로 참고 정면만 노려보았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러 온 거잖아. 정신 바짝 차려.’
능숙한 손길로 차를 우려내는 에런을 바라보던 그때, 머리 위로 목소리가 들렸다.
“제 말동무가 되어 주러 오신 줄 알았는데, 리아 님 눈빛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군요.”
찻잔을 매만지며 말을 고르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에런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결정하셨군요.”
“맞아요. 담소를 나누려고 온 게 아니에요. 어둠. 그 녀석을 없애는 데 협력할게요.”
결연한 내 표정에 에런의 얼굴이 꽃처럼 피어났다.
내심 내가 거절할까 걱정했던 모양인지, 언뜻 안도가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저도 함께할게요. 제국을 악으로부터 지키는 게 제 사명이니까요.”
아이나까지 합세하자 마음이 든든했다.
신성력으로 1, 2위를 다투는 두 사람이 함께해준다면 두려울 게 없다.
어둠을 제거한다는 공통의 목적이 생긴 우리는 서로가 가진 정보를 교환했다.
“리아 님과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전 서고에서 이걸 발견했습니다.”
그가 내 앞에 내민 것은 아주 오래된 문헌이었다.
“초대 성녀가 남긴 문헌입니다.”
초대 성녀, 그리고 문헌. 이 단어만 들어도 굉장한 정보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선,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어둠은 삿된 저주입니다. 그리고 그 저주의 시작은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책을 펼친 에런이 한 부분을 가리켰다. 고대 언어로 빼곡히 적힌 문헌에 아이나가 슬그머니 몸을 물렸다.
“천 년 전, 북쪽 땅에서 작은 덩어리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역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빌헬름이 그곳입니다.”
읽을 수 없으니 에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나와 달리, 나는 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주먹만 한 이 덩어리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생명체였다.물렁물렁하고, 검은 고무공 같은 ‘그것’은 아주 작고 보잘것없어, 들짐승에게 괴롭힘당하기 일쑤였다.]
‘이게 왜 읽히지……? 처음 보는 문자인데…….’
에런이 읽어주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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