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nster Duke Mistook Me for His Wife RAW novel - Chapter (86)
86화.
나는 멍하니 손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예요……?”
“약혼반지죠.”
그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어, 언제……?”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럴 낌새를 전혀 느끼지 못했으니까.
“준비는 계약서를 쓴 그날부터 했습니다. 물건을 찾아온 건 어제 오후고요.”
“설마, 어제 보석상에 갔던 게……?”
“네. 맞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혼자 질투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부끄러웠다.
나는 홧홧거리는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눈이 시리게 반짝거렸다.
액세서리를 불편해하는 나를 배려한 것인지, 반지에 박힌 다이아의 알은 그리 크지 않았다.
공작부인이 하기엔 소박한 반지였으나,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깔끔하고 편안한 반지는 완벽히 내 취향이었으니까.
딜리언이 얼마나 신경 썼는지 한 번에 와닿았다.
빤히 반지를 바라보던 나는 오차 없이 딱 들어맞는 반지에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사이즈는 어떻게 알았어요?”
“사랑의 힘으로?”
“그것 참 대단하네요.”
조금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대답에 나는 픽 웃었다.
틈만 나면 손가락을 만지더니, 그때 알아낸 것이 분명했다.
“마음에 듭니까.”
“네, 너무 예뻐요.”
필요 없다고 했지만, 막상 받고 보니 마음에 쏙 들었다.
생략하려고 했던 과거의 자신을 혼쭐 내주고 싶을 정도로.
‘약혼한 사이인데 다른 건 몰라도 반지는 있어야지.’
조심스럽게 반지를 매만지던 나는 딜리언의 텅 빈 손을 보고 물었다.
“그런데 제 것만 갖고 온 건 아니죠?”
설마, 철저한 딜리언이 그랬을 리가 없지.
어서 달라는 내 눈빛에 딜리언이 반지 케이스를 열어 내밀었다.
“손 이리 줘요. 제가 끼워줄게요.”
내 약지에 자리한 반지와 똑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제 존재를 뽐냈다.
반지를 집어 든 나는 눈을 찡긋거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제가 명색이 약혼자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딜리언의 커다란 손을 거침없이 잡은 것도 잠시, 반지를 밀어 넣는 손끝이 떨렸다.
‘아, 생각보다 긴장되네.’
남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이라 그런지, 심장이 널뛰었다.
딜리언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놀렸다.
“리아 씨, 간지러워요.”
“……참아요. 저도 긴장된단 말이에요.”
“받는 저보다 더 떨면 어떡합니까.”
“처음인데 그럼 어떡해요.”
반지를 약지 끝까지 밀어 넣은 나는 고개를 들어 딜리언을 흘겼다.
“제가 살면서 반지를 끼워줄 일이 뭐가 있겠어요.”
“제가 처음인 거네요?”
“네, 제 22년을 통틀어서 처음이네요!”
그 새초롬한 눈빛에 딜리언이 좋아 죽겠다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한참을 웃던 딜리언이 나른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런 일로 좋아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활짝 웃는 그 얼굴이 정말로 행복해 보여서,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손끝에서 시작된 간질거림이 손을 타고 올라와, 심장을 두드렸다.
나는 멍하니 딜리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날이 좋아서, 달이 예뻐서, 밤에 피어난 꽃들이 아름다워서.
그들 사이에 둘러싸인 딜리언이 좋아서.
그냥,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아서.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내 반응에 당황한 딜리언이 나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리아 씨, 무슨 일이라도…….”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고, 딜리언 씨, 잠시만 기다려요!”
나는 온실 테이블에 딜리언을 억지로 앉혀두고 힘껏 달렸다.
곧장 방으로 뛰어 올라간 나는 문을 거칠게 밀쳤다.
쾅! 하고 울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나단이 벌떡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습, 습격이다! 리아, 당장 내 뒤로……!”
“진정해. 나야.”
가볍게 대꾸한 나는 재빨리 서랍을 열어 젖혔다. 그러자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붉은 벨벳 상자가 나를 반겼다.
“리아? 이 밤중에 무슨 일이길래,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거야?”
“미안! 급한 일이 있어서. 다시 자. 금방 돌아올게.”
상자를 꺼낸 나는 다급히 나를 부르는 그의 부름에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왜 이리 급하게 뛰고 있는 걸까. 늦는다고 딜리언이 도망치는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서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그에 답했다.
이 마음이 변하기 전에 그에게 선물을 안겨주고 싶다고.
* * *
끼익, 끼익-
리아가 뛰어나가며 거칠게 밀친 온실 문이 삐걱거렸다.
막무가내로 저를 떼어놓는 리아의 행동에 놀랐던 것도 잠시. 딜리언은 문을 보며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힘도 좋다니까.”
리아가 바란 대로 얌전히 자리를 지키던 딜리언은 제 손을 바라보았다.
매끈한 반지가 제 존재를 과시했다.
딜리언은 리아와 자신을 엮는 증표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내가 이런 상징적인 물건에 집착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딜리언에게 반지가 갖는 의미는 하나뿐이었다.
오로지 리아를 제 옆에 붙잡아 두기 위한 물건. 리아가 제 여자라는 증표, 그뿐이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같은 반지를 끼고, 손을 맞잡고 있는 일이 이리도 행복할 줄은, 딜리언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역시 하길 잘했어.”
딜리언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리아가 문을 박차고 들이닥칠 때까지.
“저 돌아왔어요!”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전력으로 달린 리아가 숨을 헐떡였다.
가쁜 숨을 간신히 억누른 리아는 선물을 등 뒤로 숨긴 채, 딜리언의 앞에 섰다.
“뭐 두고 왔어요?”
허리 뒤로 숨은 리아의 손을 수상쩍게 여긴 딜리언이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 몸짓에 화들짝 놀란 리아가 몸을 비틀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들킬 수는 없지.
“……네. 아주 중요한 거요.”
숨을 크게 들이쉬며 호흡을 가다듬은 리아는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상자를 딜리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얼떨결에 선물을 받아든 그의 눈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선물이에요.”
“…….”
“생일 축하해요.”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딜리언의 얼굴에 놀란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신에게도 전해지는 그 감정에 리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무슨 말이라도 더 해주고 싶어.’
말재주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리아에게 그런 훌륭한 재주는 없었다.
그러니까, 그냥 그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하자.
“태어나줘서 고마워요.”
리아는 딜리언을 향해 활짝 웃었다.
“제가 제일 빨랐죠?”
“……네.”
꿈에서 깨어난 듯, 간신히 대답한 딜리언이 상자의 뚜껑에 손을 올렸다.
눈앞에서 선물이 공개될 생각을 하자, 갑자기 불안해진 리아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왜 내가 더 긴장되는지 모르겠네.’
혹시라도 딜리언이 실망할까 봐 걱정된 리아는 다급히 그의 기대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단한 물건은 아니고,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좋은 걸로…….”
“리아 씨가 주는 선물은 그게 무엇이든 제게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래, 그녀가 무엇을 주든 간에 딜리언에겐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아니, 선물이 없어도 상관없다. 다정한 그 축하만으로도 딜리언은 세상을 가진 것처럼 기뻤다.
‘탄생을 축하해준 사람이 있었던가.’
그가 태어나던 날, 산실에선 행복한 웃음 대신 비명이 들렸다고 했다.
‘생일을 축하받은 적이 있었던가.’
케이크에 초가 늘어날수록 부모의 한숨도 함께 늘어났다.
‘제 일처럼 기뻐해 준 사람이 있던가.’
부모의 죽음 이후, 누구도 그의 생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저, 최측근들만 조용히 고개를 숙일 뿐.
부모조차 외면한 그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준 사람은 리아가 처음이었다. 그녀뿐이었다.
딜리언은 사랑스러운 얼굴을 눈에 각인시킬 것처럼,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그 뜨거운 시선에 리아가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네요.”
작은 입술이 오물거리며 투덜거렸다.
딜리언은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힘껏 누르고, 애써 담담히 말했다.
“사실이니까요.”
리아가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선물로 가져왔더라도 딜리언은 그것을 가보로 간직했을 거다.
“못 믿으시겠어요?”
“열어보세요…….”
그런 눈을 하고 있는데, 못 믿을 리가. 진지한 그 눈빛에 리아는 천천히 손을 물렸다.
그리고 마침내, 선물이 공개됐다.
“딜리언 씨 눈이랑 닮아서 루비로 정했는데, 마음에 들어요?”
“……제 눈이랑 닮아서, 말입니까.”
자신의 눈 색과 닮아서 루비로 골랐다니. 온종일, 어쩌면 며칠 동안 제 생각만 했을 리아를 떠올리자 가슴이 뻐근해졌다.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쑥스럽게 웃는 다정한 그 얼굴에 딜리언은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리아를 잡아먹을 것 같은 아찔한 충동이 들었다.
“왜, 왜요. 마음에 안 들어요?”
그 반응을 엉뚱하게 해석한 리아가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딜리언은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중얼거렸다.
“리아 씨 잘못입니다.”
“네? 제가 뭘 잘못했다고…….”
당황하던 리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알았어요. 다시 교환해올 테니까…….”
시무룩이 어깨를 늘어트린 그때였다. 입술에 뜨겁고 말캉거리는 감촉이 닿았다.
이전에도 느껴본 적 있는 그 뜨거움에 리아가 얼어붙었다.
“사람을 이렇게 설레게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죠.”
“무, 무슨.”
딜리언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을 보며 한 번 더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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