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nster Duke Mistook Me for His Wife RAW novel - Chapter (89)
89화.
* * *
딜리언과 리아가 침실 앞에서 꽁냥거리던 그때, 한바탕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가신들이 한데 모여 입을 열었다.
붉은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늘어트린 여인이 궐련을 씹어대며 물었다.
“공작이 왔다고? 3년간 코빼기도 안 보이던 녀석이?”
그레타 백작가의 가주인 비앙카 그레타가 후, 하고 숨을 뱉자 하얀 연기가 허공에 흩어졌다.
“그래, 약혼자와 함께 왔더군. 아버지와 싸우는 걸 겨우 말렸다.”
로이드 트리시오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드디어 우리 공작께서 혼인하실 생각인가 보군. 그래서 로이드. 어느 지방 귀족이야?”
“평민이다.”
“뭐? 평민?”
얼이 빠진 것도 잠시, 궐련을 입에 문 비앙카가 껄껄거리며 박장대소했다.
“그 딜리언이 평민? 걸작이네.”
“그레타 백작, 체통을 지키게.”
쪽빛 머리를 틀어 올린 여인이 비앙카를 타박했다.
비앙카와 완전히 대비되는 인상을 가진 지젤 유스틴이 천박하다며 눈을 찌푸렸다.
지젤의 타박에 콧방귀를 뀐 비앙카가 그녀를 향해 연기를 내뿜었다.
“지젤, 넌 그래서 재미없어. 네 아들이 너 재미없다고 안 하던?”
“비앙카!”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를 중재한 건, 이번에도 로이드 트리시오였다.
“그만 싸워라.”
누가 시나이즈 사람들 아니랄까 봐.
다들 보통 성격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렉스터 블렌트는 왜 이리 늦어.”
텅 빈 렉스터의 자리를 향해 비앙카가 고개를 까닥이자 지젤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고 답했다.
“아프다더니 참석하지 않을 생각인가 보군.”
“그래?”
팔을 등 뒤로 넘긴 비앙카가 손을 겹쳐 머리를 기댔다.
“그럼 우리는 새로운 안주인이 될 사람이 어떤 자인지 어디 한번 확인해보자고.”
비앙카의 눈이 흥미로 넘실거렸다.
* * *
시나이즈 공작가엔 4대 가신이 있다.
북쪽의 트리시오 후작가.
동쪽의 그레타 백작가.
남쪽의 유스틴 백작가.
서쪽의 블렌트 백작가.
그들은 철저히 자기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우선, 트리시오 후작가.
시나이즈만큼이나 오래된 역사를 가졌으며 공격보단 방어 전술이 뛰어난 곳이다.
철벽처럼 단단한 방어력을 보여주며, 야만족의 침입을 막고 영지를 지켜내는 그들은 시나이즈의 방패라 불렸다.
반대로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다.’라는 전술을 내세우며 최고의 공격력을 보여주는 곳이 있으니.
바로 그레타 백작가다.
트리시오가 시나이즈의 방패라면 그레타는 시나이즈의 검이다.
대대로 여성 가주가 이끌어가는 가문이다.
다음은 유스틴 백작가.
군사 가문이 위의 두 가문과 달리 유스틴 백작가는 시나이즈 영지의 재정을 담당했다.
시나이즈의 운영 자금 대부분이 여기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돈을 보는 눈이 뛰어나, 대대로 가주는 눈이 가장 좋은 자가 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블렌트 백작가.
유스틴과 마찬가지로 재정을 담당했지만, 렉스터가 가주가 된 이후로는 군사 영역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고 한다.
“더 궁금한 게 있나요?”
각 가신들의 특징을 받아 적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할 것 같아요.”
각 가문의 특성을 확인했고, 가주에 대한 짧은 설명도 들었으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적어도 누가 누군지는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저녁 식사 시간에 다 만나게 되는 거예요?”
“부담스러우면 거절해도 됩니다만, 한 번에 보고 치우는 게 편할 겁니다.”
지금이 아니면, 이상한 핑계를 대며 귀찮게 굴 게 뻔하다며, 딜리언이 혀를 찼다.
그 의견엔 나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계약이긴 하나, 나는 예비 공작부인의 위치에 있다.
콧대가 높다느니, 벌써 헛바람이 들었다느니, 이래서 평민은 안 된다느니 별소리를 다 들을 게 눈에 훤했다.
“누가 저 공격하면 딜리언 씨가 다 막아줘야 해요.”
“물론이죠.”
“테르제 님 공격도 확실하게 막아주세요.”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전부 다 치워버리죠.”
“뒤엎지는 말고요.”
집안의 가장 큰 어른과 가신들 앞에서 치워버린다니.
다른 사람이었다면 막무가내처럼 느껴지겠지만 딜리언이라 든든했다.
적이 되면 무섭지만, 아군이 되면 이처럼 든든한 사람이었다.
“준비를 마치면 데리러 오겠습니다.”
딜리언이 나가자, 재빨리 돌아온 세라가 침대 위에 드레스를 늘어놓았다.
“오늘 밤, 리아 님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드리겠어요.”
주먹을 불끈 쥔 세라가 활활 타올랐다.
“세라. 완벽하게, 절대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게. 무시 못 하게! 알겠지?”
“당연하지요, 나단 님!”
“그건 너무 촌스러워 보여. 푸른색 드레스를 가져오거라.”
“어쩜 눈썰미도 좋으셔, 제가 바라던 게 딱 그거예요!”
열성적으로 드레스를 고르는 둘 사이에 끼인 나는 조용히 가방에서 귀마개를 꺼내 귀에 꽂았다.
* * *
수다로 시끌벅적하던 식당은 내 등장으로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장내에 적막이 맴돌았다.
각각 다른 색의 눈동자들이 예리하게 나를 훑었다.
우리에 갇힌 원숭이가 된 기분에 눈가가 움찔거렸다.
‘이래서 빨리 오려고 했는데.’
하필 내가 마지막 등장이라니. 세라와 나단의 열띤 토론에 시간이 지체돼버렸다.
‘신기한 건 알겠는데,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주지?’
끝없이 이어지는 탐색전을 끊어내기로 한 나는 테르제와 세 명의 가신들을 향해 격식을 갖춰 인사했다.
“리아 델리스입니다. 모두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내 인사에 테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선을 돌려버렸다.
자칫 민망해질 상황을 잘 마무리한 건 후작이었다.
“로이드 트리시오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뒤이어 붉은 머리카락을 사자 갈기처럼 늘어트린 여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비앙카 그레타예요. 잘 지내봐요.”
친근한 인사에 얼떨떨하게 손을 맞잡자 엄청난 악력이 내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굳은살이 있네? 생활 굳은살보단 무기를 다뤄본 것 같은데, 뭐죠?”
“그게…….”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그레타 백작의 옆에서 날 선 말이 날아왔다.
“장차 시나이즈의 안주인이 될 여인의 손에 흉과 굳은살이라니. 쯧.”
매섭게 날아든 면박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살벌하다, 살벌해.’
쪽빛 머리카락을 빈틈없이 꽉 당겨 틀어 묶은 머리가 그녀의 성정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못마땅하다는 눈빛을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지젤 유스틴이에요.”
그게 다였다.
유스틴 가문의 수장은 절대 입에 발린 소리를 하지 않았다.
네가 인사를 했으니, 나도 인사를 한다. 그뿐이었다.
“앉거라.”
테르제의 말에 착석하자 기다렸다는 듯, 요리가 상을 채우기 시작했다.
기가 눌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진수성찬에 나는 소심하게 요리를 삼켰다.
‘미친, 맛있어…….’
이런 상황이 오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다던데, 개소리 아니야?
아니면 내가 무심한 거야? 그도 아니면 너무 맛있어서 긴장감까지 눌러버린 걸까?
내 열렬한 팬인 주방장에겐 미안하지만, 공작성 음식의 레벨이 더 높았다.
‘이 레시피, 얻고 싶어.’
주방에 몰래 숨어들어 훔치고 싶은 맛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천상의 맛에 흐물흐물 녹아버린 내 입가를 본 딜리언이 나지막이 물었다.
“맛있어요?”
포크를 입에 문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줄까요?”
“딜리언 씨 먹어요. 이거 진짜 맛있어요. 완전 딜리언 씨 취향이에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맛이 딜리언이 딱 좋아할 맛이었다.
소곤소곤.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이자, 딜리언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렸다.
“그럼 꼭 먹어야겠네요.”
응응, 고개를 끄덕이는데 옆에서 쨍그랑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리자 테르제가 귀신이라도 본 얼굴로 딜리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뭘 본 거지…….”
비앙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눈을 비볐다.
로이드와 지젤은 체통을 지키느라 티를 내진 않았지만,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만 쳐다보고 식사나 하시죠.”
“하, 하하하! 진짜네. 그래, 이래야 재밌지.”
비앙카는 나와 딜리언을 번갈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생긴 것만큼이나 호탕하고 거침이 없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을 뿐, 내가 평민이라는 사실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비앙카. 그만 웃고 먹거라. 델리스 양께 실례다.”
트리시오 후작은 이 중에서 가장 내게 호의적인 사람이었다.
평민이라고 무시하기는커녕, 나를 완벽히 예비 공작부인으로 대해주었다.
신사적인 태도와 해리스와 닮은 얼굴 때문에 묘하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지젤은…….
“식사 예절이 엉망이군요.”
깐깐함 그 자체였다. 마치 선생님 같은 날카로운 지적과 싸늘한 눈빛에 괜히 기가 죽었다.
“자세 갖고 너무 그러지 마. 그것 좀 틀린다고 어디 죽냐?”
“토 달지 말고, 비앙카. 너도 자세 똑바로 해라.”
저를 향해 쏟아지는 잔소리에 비앙카가 질색을 하며 허리를 폈다.
‘아, 저런 타입이 제일 불편한데.’
차라리 테르제를 상대하는 게 낫지. 하나하나 트집을 잡으며 가르치려 드는 쪽은 영 불편했다.
“시나이즈의 안주인이라면 예법만큼은 확실히 알아야지요. 어르신의 탄신일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제가 가르치겠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거절하면 안 되겠지? 부담감에 침을 삼키던 그때였다.
“아직 혼인도 올리지 않았는데, 과한 참견이군.”
최전선으로 달려온 딜리언이 내 앞을 막아섰다.
“예법이 그리도 중요하면, 옆에 있는 그레타 백작에게 알려주는 게 좋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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