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아버님, 어머님, 저 왔습…….”
어린 시절.
서당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용완은 인사를 올리려 부모에게 갔다가 함께 있는 어느 노인을 발견했다.
“어르신, 저 아이가 제 셋째 아들놈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부모는 마치 왕을 알현하듯 매우 깍듯하게 노인을 대했다.
“용완아, 멀뚱히 서서 뭣 하고 있느냐? 어서 와서 스승님께 인사 올리지 않고.”
“스승님이요?”
기가 막혔다.
용완에게 스승님이란 존재는 서당의 훈장님이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처음 보는 노인을 스승으로 삼으라니.
“그래, 오늘부터 널 가르쳐 주실 분이다.”
당시에는 너무 어린 탓에 세상을 몰랐다.
장남은 밖에서 벼슬길에 올랐고 차남은 안으로 가문을 지키느라 남은 건 자신뿐이었다는 것을.
아, 하나는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은 부모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용완의 곁으로 다가온 노인이 무릎을 구부려 그와 눈높이를 맞추더니 이렇게 말했다.
“눈이 참으로 맑구나.”
“…….”
“산은 좋아하더냐?”
용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어느새 노인을 따라 집을 떠나게 되었다.
아이의 걸음으로 해가 뜨고 지는 걸 보며 한 달을 쉬지 않고 걸었다.
새롭게 스승이 된 노인은 그를 도와주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주는 사람이었다.
용완이 스승을 따라 도착한 곳은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그리고 정상에 도달하여 드넓은 천지(天池)에서 한 사내를 만날 수 있었다.
“백두 어르신, 이 아이가 제 제자입니다.”
천지를 헤엄치다가 뭍으로 올라온 사내는 덥수룩한 머리털에 엄청난 거구를 자랑했다.
삽살개를 닮은 인상의 거대한 사내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부드럽게 용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 몸의 이름은 백두. 도깨비란다. 앞으로 잘 부탁하마.”
“도, 도깨비요?”
그 말을 듣고서 얼마나 놀랐는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을 정도였다.
용완은 처음에 짓궂은 장난을 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늙은 스승마저 고개를 끄덕이자 정신이 혼란스러워졌다.
“으음……, 너무 갑작스러운가?”
자신을 도깨비라고 소개한 사내가 턱을 긁으며 잠시 고민하다가 허리춤에 매어둔 방망이를 들고 외쳤다.
“바람개비 나와라. 뚝딱-!”
그러자 펑! 하고 연기와 함께 작은 바람개비가 나타났다.
“잘 부탁하는 의미에서 네게 주는 선물이란다.”
백두는 용완의 손에 바람개비를 쥐여주었다.
그날부로 용완은 진심을 바쳐 평생을 백두산 산지기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집에서 부모의 강요로 골방에 처박혀서 글공부나 하는 인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용완은 스승과 도깨비 백두의 가르침을 받으며 심신을 강하게 단련했다.
그리고 그가 아이에서 청년이 되었을 때.
난데없이 도깨비방망이를 훔치러 찾아온 검계(劍契)라는 무리가 있었다.
“부탁하마.”
“부탁이라니요. 저희의 일이지 않습니까.”
도깨비 백두는 선심(善心)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을 죽일 수 없었기에 방망이와 함께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하여 백두산 산지기였던 늙은 스승과 용완이 검계를 막아섰다.
검계를 몰살시켰지만, 늙은 스승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백두산 중턱에는 지금까지 도깨비 백두를 모시며 산지기로 살아갔던 이들의 무덤이 한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용완의 스승 역시 그곳에 묻혔다.
각 무덤에는 용완에게 주었던 것과 같은 바람개비가 휘날리고 있었다.
도깨비 백두는 휘날리는 바람개비 앞에서 슬픔의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날 밤.
슬픔을 잊기 위하여 술을 잔뜩 마신 도깨비 백두는 앞에 용완을 앉혀 두고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용완의 관심이 끌리는 주제는 바로 송윤천이라는 존재였다.
“정말 그런 사람, 아니 그런 존재가 세상에 있습니까?”
“왜, 듣다 보니 허풍 같으냐?”
“…….”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불로불사의 괴력난신으로 거듭난 존재.
본인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지는 않다고 하지만. 그에 가장 가까운 존재.
백두가 설명한 송윤천은 그런 존재였다.
용완은 도깨비 백두를 곁에서 지켜봤기에 그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고 있다.
백두산의 정기 속에서 태어났기에 백두산을 떠날 수 없으며 선심(善心)을 잃지 않기 위하여 살생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도깨비 백두 역시 전지전능하며 불로불사에 가까운 존재였다.
“이 도깨비방망이 역시 송윤천의 도움을 받았기에 지금의 능력과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런 백두가 감히 자신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게 송윤천이라는 존재였다.
“외람된 질문이지만, 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중원 어딘가에서 죽지 못해 살고 있겠지. 왜? 만나고 싶으냐?”
“아닙니다. 그저 신기해서 물었습니다.”
용완은 고개를 돌려 술잔을 들이키며 입을 다물었다.
그날 이후 송윤천을 향한 관심과 호기심은 용완의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졌다.
스승이 자신을 데려와 산지기로 길렀듯이 자신도 마땅한 제자를 찾아서 어엿한 산지기로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백두 어르신, 돌아왔습니다.”
“오냐, 네 제자로 삼을 녀석이더냐?”
“인사드립니다. 척중근이라고 합니다.”
어린 제자는 용완과 다르게 도깨비 백두의 정체를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백두는 어린 게 기특하다며 도깨비방망이로 소환한 바람개비를 선물로 주었다.
다행히 제자는 무럭무럭 잘 자라 어엿한 백두산 산지기로 거듭났다.
그 사이.
용완은 청년과 중년을 지나쳐 자신을 백두산으로 데려왔던 시절의 스승과 같은 노인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 날.
큰형님과 작은형님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백두 어르신.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네 제자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다녀오너라.”
노인이 되어버린 용완은 여전히 청년의 모습을 한 도깨비 백두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작별 인사를 건네고 하산했다.
그리고 장례를 모두 마치고서 백두산으로 되돌아가는 길.
누군가 용완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데 상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산지기로서 도깨비 백두를 평생에 걸쳐 모셔온 용완에게는 더없이 익숙한 기운을 가진 존재는 분명 도깨비였다.
그는 자신을 옛 설화에 등장했던 바로 그 길달이라고 소개했다.
단, 백두와 생김새가 같지는 않았다.
뿔이 없는 백두와 다르게 이마 위쪽에 흉측한 두 개의 뿔이 자라나 있었다.
뿔의 유무는 곧 선심(善心)을 가진 도깨비와 악심(惡心)을 가진 도깨비의 차이.
“그래서 내 앞에 나타난 용건이 뭐요? 어서 밝히시오.”
“내게 백두 녀석의 도깨비방망이를 가져다준다면 자네가 원하는 바를 이뤄주도록 하지. 그게 무엇이든지 말일세.”
“……할 말은 그게 끝이오?”
“물론일세. 안심하고 그 날카로운 검은 집어넣어도 좋아 보이는데.”
“물러나시오. 그 제안은 못 들은 걸로 하겠소.”
“좋네. 어디까지나 자네의 의지가 중요한 일이니, 강요하지는 않겠네. 단, 언제라도 마음이 바뀐다면 백두산 인근 객잔에서 내 수하를 찾아오게나.”
“택근이라 하오.”
길달의 뒤를 지키던 이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용완은 듣기 싫다는 듯 대답도 없이 그들을 지나쳐 백두산을 올랐다.
“어르신, 다녀왔습니다.”
“오냐, 그런데 오늘따라 얼굴이 왜 이리 어둡더냐? 무슨 근심이라도 생겼느냐?”
“아닙니다. 장례를 치른 탓에 심신에 피로가 쌓인 모양입니다.”
“얼른 가서 쉬어라.”
돌아와 백두에게 인사를 마친 용완은 곧장 중턱으로 향했다.
백여 개의 봉분이 나란히 자리한 가운데 같은 수의 바람개비가 산바람에 빙글빙글 돌았다.
용완은 그중에서 유일하게 인연이 닿은 스승의 무덤 앞에 섰다.
‘언젠가는 나 역시 이곳에 묻히겠지.’
지금은 스승의 무덤이 끝자락이나 얼마 후면 그 옆에 새롭게 자신의 무덤이 만들어지리라.
용완이 스승의 무덤 위에서 돌아가는 바람개비 앞에 무릎을 꿇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죽고 싶지 않습니다.”
백두산이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며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다.
다른 건 정말 필요하지 않았다.
산지기로서 민족의 영산을 지키며 나아가서 이 삼한 땅의 평화를 이어나가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도깨비 길달의 유혹을 떠올린 용완은 자신의 주름 가득한 손등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나이가 들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젊은 시절, 스승이 세상을 떠난 날 만취한 백두가 떠들던 송윤천이라는 존재가 떠올랐다.
“전지전능하며 불로불사한 존재.”
자신 역시 그렇게 거듭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자라났다.
‘만약 내가 도깨비방망이로 송윤천이라는 존재를 흡수하고 그 힘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자신 역시 송유천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한낱 인간에게서 벗어나 자신도 괴력난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천하를 쥐락펴락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자라나기 시작한 노욕(老慾)이라는 추잡한 불꽃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여 더 타버릴 구석이 남지 않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용완은 처음으로 백두산에 올랐던 그 날, 백두가 쥐여주었던 바람개비를 꺼내어 부스러트리고 자리를 떠났다.
용완이 떠난 뒤, 스승의 무덤 위에 꽂힌 채로 쉴 새 없이 돌아가던 바람개비가 미동도 없이 멈춰버렸다.
마치 제자의 어리석은 결정을 안타까워하듯.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걱정하며 슬퍼하듯.
백두와 제자 척중근 몰래 하산한 용완은 길달의 수하인 택근을 찾아가 길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몇 년.
백두가 빈틈을 보일 때까지 웅크려 있다가 길달과 함께 기습을 가하여 도깨비방망이를 빼앗아 중원으로 도주해버렸다.
멍하니 있으면 예상치 못한 배신에 절망한 도깨비 백두와 원망이 가득한 하나뿐인 제자 척중근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기에 용완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는 건 손에 쥐어진 도깨비방망이와 송윤천뿐이었다.
……그렇게 용완을 비롯한 을사의 다섯 명이 송윤천을 찾기 위해 마구 활개 치며 중원을 어지럽혀 나가고 있을 무렵.
밤안개가 자욱하게 껴 한 치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산동성의 어느 바닷가.
수십 척의 선단(船團)이 등장하더니 살수의 복장을 한 무리가 땅에 발을 내디뎠다.
수가 많음에도 작은 소음조차 나지 않는 가운데.
“신풍회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깨비방망이를 찾아오너라.”
마지막으로 하선한 존재의 입에서 서슬 퍼런 왜국의 언어로 명령이 하달되었다.
덥수룩한 머리에 거대한 체구.
그리고 두 개의 흉측한 뿔이 달린 존재.
도깨비 길달이 그를 따르는 살수 집단 신풍회와 함께 중원에 당도했다.
그러는 사이.
산동성과 하남성의 경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천재지변에 관한 소식이 비둘기의 다리에 묶여 무림맹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