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당주님, 당주님! 일어나세요.”
수하의 부름에 무림맹 와룡당의 당주 제갈과가 입가에 흐른 침을 소매로 쓱 하고 닦아내며 눈을 떴다.
“어? 나 안 잤다. 왜? 왜?”
젊은 시절 잘생겼기로 유명했기에 나이가 들고 피로에 찌든 지금도 그 외모가 괜찮은 편이었다.
“소선생이구나. 아침부터 웬일이더냐.”
눈곱을 떼어내고 보니 자신을 깨운 수하는 와룡당의 막내 당원이자 소선생이라 불리는 남궁헌이었다.
“어휴, 밤새 환기를 안 했더니 집무실에서 온통 퀴퀴한 냄새가…….”
남궁헌이 창문을 열자 하늘 높게 솟아오른 태양이 뜨거운 열기를 자랑했다.
“이거 드리려고요. 어제 말씀하신 것들 다 요약했거든요.”
남궁헌이 아직도 잠이 덜 깬 듯한 제갈과에게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아직 밥도 못 먹었는데 아침부터 무슨……, 헉-!”
고개를 숙여 익숙한 자세로 서류를 들추려던 제갈과의 눈이 커졌다.
서류의 앞장에 적힌 문구는 ‘천재지변(天災地變) 보고서’.
보고자는 자신이었고, 이 보고를 들을 대상은 바로 무림맹주 마석동이었다.
“그런데 괜찮으세요? 이제 슬슬 묘시(卯時) 말인데요.”
남궁헌이 괜찮냐는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묘시 말.
어제 마석동이 제갈과에게 찾아오라고 한 시간이었다.
마석동은 수하들이 잘못해도 너그럽게 넘어가는 편이었지만,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것만큼은 엄격했다.
몇 년 전에는 내당주가 약속된 시간을 한참 어긴 벌로 며칠 동안이나 물구나무를 서서 무림맹을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다녀오마-!”
제갈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멋지게 착지해 보였다.
와룡당 업무에 매진하느라 무공 수련에 다소 소홀해진 건 사실이지만, 지금껏 쌓아온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마석동을 찾아가니 다 들으라는 듯 숫자를 세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마석동이 둘에 이어 하나를 외치기 직전.
“맹주님, 저 왔습니다!”
“자네 오늘 운이 좋군.”
제갈과는 간신히 수모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벼운 분위기로 시작된 보고는 내용과 함께 금방 무거워졌다.
“구파일방, 오대세가도 옛말이 되려나.”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화양연화가 공동파를 무너뜨렸다.
거기에 난데없이 중원을 혼란에 빠지게 한 연속된 천재지변.
여기에 모용세가에 이어서 하북팽가와 황보세가가 휘말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그쪽에서는 다른 소식은 없었고?”
“아직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본인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황보세가가 명문의 말석 정도의 위치라면 하북팽가와 모용세가는 오랜 세월 동안 오대세가라는 명성 속에서 큰 존재감을 발휘했다.
“일련의 사건에 대한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하늘의 분노인지 아니면 요사스러운 놈들의 악행인지.
그것도 아니면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필연이라고 착각하게 된 건지.
제갈과 역시 처음 일련의 사건을 확인한 이후, 한 번도 퇴근하지 못하고 일할 만큼 고심하고 있었다.
“아직 흉수의 정체가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으니 그쪽으로는 예상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균형이 완전히 깨지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무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는 말은 알고 있을 정도이다.
그들의 등장과 함께 세대가 신구(新舊)로 나뉘게 되며 신무림의 시대가 열리고 지금까지 이어 져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이제는 팔파일방, 삼대세가. 뭐 이런 말이 나오기도 할 테니.”
제갈과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마석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과정에 놓여 있으니 다가올 결과가 퇴보인지 진보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빈틈을 노리고 행동에 나서지 않겠습니까?”
어느 세력이 망하면 누군가는 빈자리를 탐내기 마련.
그리고 천하에는 정파가 차지하는 부분을 탐내는 자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가까이는 사파를 대표하는 철혈성에 중원을 벗어나면 마교를 포함한 새외 무림까지.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남궁세가는 건재해야만 합니다.”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서 단순하게 남궁세가를 감싸고 도는 행위가 아니다.
이미 하북팽가와 황보세가, 모용세가가 당한 상황에서도 무림맹 차원에서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다음은?
누구도 무림맹을 신뢰하지 않으며 함께하지 않으려 들 테다.
“화양연화에 대척할 때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선제 조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무림맹주 마석동을 비롯한 구성(九星)이 화양연화에 맞서기 위해 뭉친 것처럼.
그러나 문제는 그 당시보다 구성의 전력이 약화하였다는 점.
신의와 금강은 여전히 모종의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유수는 하북에서 벌어진 천재지변으로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거기에 태극은 천살성을 막아서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맹호는 하북팽가가 변을 당하면서 행방불명 상태.
사실상 전력의 절반 이상이 나가떨어진 셈이었다.
“속히 결정을 내리셔야만 합니다.”
제갈과도 이런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재촉에 나섰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믿는 구석이 있는지 위급한 상황에서도 마석동은 침착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선발대가 출발했을 테니까.”
그의 시선이 잠시 서쪽으로 향했다가 돌아왔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선발대가 있으니 당연히 그 뒤를 따라서 후발대도 나서야 하는 법.
“자네만 믿고 다녀오도록 하지.”
마석동이 거대한 손바닥으로 제갈과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무림맹 역시 전력을 다할 시간이 도래했다.
마석동은 후발대의 대장으로서 무한을 떠나 서쪽으로 움직였다.
* * *
“장주, 어떻게 가겠소?”
“저기로 쭉 가면 된다.”
풍전의 물음에 송윤천이 손가락 하나를 들더니 남궁세가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서쪽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쪽에 길이 있소? 내가 알기로는 폭이 상당히 넓은 강줄기가…….”
“그냥 건너면 되지 않나. 힘들면 나뭇잎을 밟든 판자를 밟든 하고.”
무한에서 남궁세가로 가는 길은 두 가지였다.
대다수는 강을 따라 배를 타고 이동할 테다.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다지만 바람만 잘 만난다면 대로를 따라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빨랐으니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땅 위로 나 있는 대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중간에 강이나 산이 떡하니 길을 막고 있는 탓에 조금 돌아가는 경향이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높은 산맥을 뚫고 넓은 강에 다리를 낼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송윤천과 월, 풍전, 척중근까지.
넷으로 이루어진 일행은 두 가지 경우에서 벗어나 있었다.
산맥이든 산이든 보이면 그냥 넘었으며, 강 역시 마찬가지.
허공을 날수도, 강물 위를 걸을 수도 있는 송윤천이 그렇게 하자고 하니 따를 수밖에.
단순히 이동하는 것뿐인데 월은 의욕이 뜨겁다 못해 넘쳐흐를 정도였다.
사실 월은 멀리 움직이거나 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인간들의 세상에 스며들기 전에도 본성이 그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월이 지금은 척중근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속도로 미친 듯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척중근은 그런 월을 신경 쓰는 듯, 쓰지 않는 듯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상대가 속도를 내면 자신도 속도를 냈다.
그걸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속도를 더 높일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먼저 늦춰지는 놈이 밀리는 것만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다가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염병……, 이러다가 남궁세가고 뭐고 나부터 돌아가시겠네.”
침묵 속에서 이어지는 경쟁으로 죽어나는 건 뒤쫓아 가는 풍전이었다.
“다 쉬었나?”
풍전이 몇 번 숨을 고르자마자 송윤천의 재촉이 찔러 들어왔다.
“장주, 내가 죽으면 배달통과 함께 묻어 주시구려.”
풍전은 더는 움직일 수 없다는 듯 아예 땅바닥 위에 대자를 그리며 누웠다.
“잠시 쉬었다가 가지.”
결국, 지켜보던 송윤천이 휴식을 선언했다.
그러자 월과 척중근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멈춰서더니 가쁜 숨을 골랐다.
잠시 후, 호흡이 부족해서 창백해졌던 풍전의 안색이 되돌아왔다.
“장주, 그런데 그……, 도깨비방망이를 노리는 대상이 도깨비 길달이라고 하였소?”
풍전은 안정을 되찾자마자 즉시 궁금한 사항을 물어왔다.
그의 입에서 ‘도깨비’라는 존재가 거론되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이미 용도 보았는데 도깨비가 대수라고.’
게다가 송윤천과 함께 있으니 세상 무서울 게 없기도 했다.
“맞다. 놈이 제 수하를 통해서 시켰든지 했는데 배반당하자 직접 나선 게 아닐까 싶군.”
“길달이라는 놈은 원래 방망이가 없는 거요? 아니면 제 것도 챙기고 하나 더 챙기려는 못된 심보요?”
풍전이 송윤천에게 전해 듣기로, 도깨비방망이라는 보물은 단순하게 소원을 이뤄주는 게 아니었다.
더 정확히는 자연지기를 비롯한 힘을 흡수해 저장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저장된 힘을 다른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 신묘함이 담긴 물건.
그런 만큼 방망이가 한 자루 더 있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싶어서 호기심에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길달 역시 도깨비이니 당연히 방망이를 가지고 있었다.”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없다는 말이오? 어디에 팔아먹기라도 했소?”
“과거에 내가 길달을 중원에서 쫓아내면서 녀석의 방망이를 빼앗아 부숴버렸다.”
자신의 방망이가 산산이 조각나는 장면을 눈앞에서 바라보던 길달의 모습은 여전히 잊히지 않았다.
“……역시 대단하시구려.”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다. 괜히 앞에서 거슬리게 하길래 잠시 나섰을 뿐이지.”
“아무렴, 당연히 그러시겠지.”
송윤천의 기준은 언제 생각해도 드높아서 풍전으로서는 감히 닿을 수도 없는 영역의 무언가였다.
“그런데 그 손바닥에 들고 있는 건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거요? 대체 그게 뭐길래?”
풍전은 자신과 대화를 하면서도 손바닥 위에 올려진 무언가를 요리조리 만져보는 송윤천을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다.
“궁금한가?”
“알면 슬쩍 말해주시오.”
“용은 실제로 봤으니 당연히 알겠지.”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하오. 내가 언제 죽을지는 몰라도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거요.”
“그렇다면 그 용이라는 존재의 약점도 알고 있는가?”
“하, 참. 두말하면 잔소리지. 당연히 역린(逆鱗)……! 잠깐만. 그러면 설마 혈화백의 시신에서 발견한 그 비늘이?”
“그래, 이게 바로 용의 역린이다. 그 거대한 체구에서 딱 한 장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보물이지.”
“그, 그렇구려.”
풍전은 심히 놀란 듯 대답을 하면서도 주춤거리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저번에 분명히 개방은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 뭐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일부러 용의 분노를 살 수는 없는 게 아니겠소. 아이고, 저리 좀 치우시오.”
송윤천이 눈앞에서 비늘을 흔들어 보이자 풍전이 기겁하며 손을 저었다.
용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면 천하 그 어디라도 반드시 쫓아가서 태워 죽인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이건 그런 용도가 아니니 안심하거라.”
그러자 송윤천이 되었다는 듯 용의 역린을 품에 쏙하고 집어넣었다.
진심으로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역린은 그런 용도가 전혀 아니었다.
‘그래, 이를테면 최악의 상황에 어울리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지.’
단지, 이 용의 역린을 사용할 일이 끝까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