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안휘성으로 떠나기 전.
진시황릉에서 했던 개고생을 풀어대는 풍전과 월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니까…… 너랑 비슷한 놈 하나를 끼고도 고작 살수 한 명한테 쪽도 못 쓰고 된통 당했다는 거야?”
월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명색이 정파의 정점이라는 작자가 살수 한 명을 어떻게 못 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허, 월 사부가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우리가 상대했던 그 살수가 천하제일 아니 고금제일이라는 소리도 듣는 자요.”
“제일이고 뭐고, 아무튼 살수잖아. 살수가 거기서 거기 아닌가?”
“언젠가 홍일점이 사부를 찾아오는 날이 왔으면 좋겠구려.”
풍전이 여전히 욱신거리는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얼마 전, 진시황릉에서 화양연화가 사실상 해체되면서 자취를 감춰버린 홍일점은 최고의 살수였다.
하지만 홍일점의 경우는 살수로서 잘 풀린 극소수에 불과하다.
실제로 그녀를 제외한다면 악명을 떨치는 살수는 한 명도 없었으니.
대부분 살수는 살행에 몇 번 나서는 게 전부였다.
살행에 실패하여 그 자리에서 지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죽거나.
혹은 신체 어딘가가 망가진 탓에 강제로 은퇴 당하기 때문.
살수를 쉽게 설명하자면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는 직업이었다.
차라리 어느 유명한 가문 혹은 문파 그것도 아니면 상단이든 표국이든.
무력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집단에 소속되는 게 훨씬 편하고 안전했다.
그것도 싫다 여기면 혼자 나와서 낭인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목숨 걸고 사는 살수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몰랐다고 해도 몇 번 살행에 나섰다가 온갖 고생을 다 하고 나면 저절로 알게 되기도 했다.
귀령곡, 유령살문, 독심동, 사신궁, 천살각…….
이러한 추세에 따라 세월이 흘러가며 악명높은 살수 집단 역시 하나둘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어딘가는, 또 누군가는 살수를 필요로 한다.
살수를 찾지 않기에 이 세상은 너무 멀리 와 버렸으니.
이렇듯 살수에 대한 수요가 있으니 누군가는 공급해야만 했다.
여기서 나쁜 짓에 특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윤익교라는 사내가 기막힌 계책을 떠올렸다.
필요로 하지만, 정작 중원에서 살수는 탄압받고 복수하려는 자들이 찾아오니 오래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깥에서 키워서 데려와 중원에서 써먹으면 되는 게 아닌가?
윤익교는 동남해 부근에서 악명높은 왜구를 아비로 두고 태어나, 중원에서 흑도로 자라났다.
어차피 중원에서는 천박한 왜놈이고 왜국에서는 냄새나는 육지 놈 취급받는 신세.
그러니 이러한 일을 벌이는데 어떠한 거리낌도 없었다.
그날로 윤익교는 배를 타고 왜국으로 떠나 신풍회라 명명한 살수 집단을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윤익교가 늙어 죽은 뒤에도 신풍회는 점점 세를 넓혔고, 이제는 명실상부 천하제일의 살수 집단이 되었다.
신풍회가 천하 각지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한 가지.
그들은 수백 년의 역사를 통틀어서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기 때문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의뢰를 받으면 의뢰가 성공할 때까지 살수를 보내고 또 보내서 피가 말려 죽게 만드는 게 신풍회의 방식.
이번에 표적이 된 삼한 땅의 을사나 중원의 남궁세가 역시 피해는 크겠지만, 실패하는 일은 없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푸욱-
잔해 속에 은신했던 살수의 목덜미에 달처럼 새하얗게 빛나는 날카로운 손톱이 박혔다.
“윽-.”
고통에 찬 신음이 제대로 나오기도 전에 숨이 끊어졌다.
잔해에 처박힌 시체 뒤에 월이 있었다.
“신풍회라고 했나…….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네. 끝이 없어.”
월이 손톱을 타고 흐르는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대체 몇 놈이나 있는 건지.”
제대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백 명은 넘게 처리한 것 같은데도 한참 남은 것 같았다.
지금도.
푹-
살수 다섯이 사방을 점하고 하나는 위에서 뛰어내리며 월의 급소를 찔러 들어온다.
“느리다니까. 거북이도 너희보다는 빠르겠다.”
월이 그 자리에서 오른발을 축으로 하여 한 바퀴 회전한다.
회전력이 더해진 날카로운 초승달 형태의 강기가 사방을 찢어버렸다.
무너지고 타버린 잔해가 다시 여러 번 부서진다.
파박-
그에 앞서 마구 끊어진 살수들의 신체가 사방으로 장식됐다.
주변을 정리한 월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굳이 살수를 찾아 나설 필요는 없었다.
사방에 널린 게 살수였으며 놈들 역시 자신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난 상태였으니까.
금방 살수 몇십 명이 또 월아탈백조 아래에서 사라져갔다.
그 어떤 살수보다 신속하고 은밀하며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오는 존재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강대한 기운이 느껴져서 하늘을 바라보니 송윤천이 만들어낸 거대한 제왕검형이 눈에 들어왔다.
“장주님이 혼자 알아서 다 끝내시려나?”
저 거대한 검 형상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월도 잘 알고 있다.
“아직도 남아있나.”
월이 정수리 부근을 만지작대니 몇백 년 전에 남겨진 흉터가 드러났다.
운남성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세상을 어지럽히다가 지금처럼 송윤천의 제왕검형에 둘로 쪼개질 뻔했었다.
“자고로 사람이든 괴력난신이든 사과를 할 줄 알아야 장수하는 법이지.”
그때 힘의 차이를 느끼고 잔뜩 겁먹은 뒤, 송윤천 앞에 무릎 꿇고 눈물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조아리지 않았다면?
월은 이미 어딘가에 박제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름이 길달이라고 했나. 저 도깨비 녀석은 어쩌려나?”
이미 한 번 송윤천에게 된통 당하고 바다 건너로 도망갔다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돌아온 놈이다.
월이 아는 송윤천에게 두 번의 기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빨리 끝냈으면 좋겠네.”
주변에 시체가 널려 있다.
남궁세가 혹은 살수들.
그러나 아쉽게도, 이건 그들의 사정이며 운명이다.
자신은 그저 송윤천을 도와서 길달과 그 일당을 처리하면 그만일 뿐.
송윤천의 제왕검형을 목격한 월이 저쪽은 슬슬 끝나겠다는 생각에, 자신도 조금은 서두르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어라?”
그런데 송윤천이 있는 방향에서 누군가 허겁지겁 도주하는 게 아닌가.
“네가 그 길달이냐? 어떻게 죽지도 않고 도망쳤대. 발이 좀 빠른 편이냐?”
놓칠 수 없으니 잽싸게 달려나간 월이 앞길을 가로막고 물었다.
길달인지 물어본 이유가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에 거대한 체구.
마지막으로 이마에 자라난 뿔까지.
전형적인 악심(惡心)을 품은 도깨비의 특징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의 질문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귀찮게 구는 놈을 죽일지, 아니면 무시하고 다른 쪽으로 갈지를 고민하는 듯 눈동자를 사방으로 굴려댈 뿐.
“어르신이 말씀하시는데 무시해? 버르장머리가 없네.”
약간의 짜증이 담긴 월아탈백조가 더욱 길고 날카롭게 자라났다.
그 순간, 누군가 둘 사이를 막아섰다.
등을 지고 있다가 고개를 뒤로 돌리니 하회탈이 드러났다.
척중근이었다.
“넌 또 뭐야? 인제 와서 배신이라도 하겠다. 이거냐?”
여전히 척중근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은 월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어쩌면 지금 척중근이 쥐고 있는 사인참사검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 검이 괴력난신인 자신을 거부하고 있음을 알았으니까.
그런데 어째서인지.
처음 장원에 나타난 이후로 줄곧 고개가 뻣뻣했던 척중근이 월에게 부탁했다.
“부디 내가 상대하게 해주시오.”
“……이놈이 누구길래?”
“용완. 한때 내 사부였던 그 자요.”
답하는 척중근의 목소리에는 슬픔과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담겨 있었다.
과거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월이기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해라.”
월은 알아서 하라는 듯 뒤돌아섰다.
굳이 저 용완이라는 흉측한 놈이 아니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넘치도록 많았으니까.
앞서서 듣기로는 저놈 말고 비슷한 녀석이 넷이나 더 있다고 하니, 그놈들을 찾아보면 될듯했다.
“……고맙소.”
척중근은 뒤돌아서 떠나는 월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용완을 향하여 사인참사검을 겨눴다.
둘 사이에 이렇다 할 대화는 없었다.
지금 와서 용완이 내뱉는 말은 모두 변명에 불과하다.
하회탈 아래에 완전히 가려져 있기에 지금 척중근의 표정이 어떤지는 누구도 모른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단지 과거 고려의 무신이라 불렸던 척준경과 같이 삼한 땅을 위해 움직일 뿐이었다.
삿된 모든 기운을 거부하는 사인검의 끝이 용완의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용완 역시 호락호락하게 죽어줄 수 없다는 듯 검면으로 앞을 막아섰다.
째애애앵-!
그런데 검이 맞부딪치는 소음이 일어나다가 더 큰 소음에 먹혀들어 갔다.
이에 척중근과 용완의 귀도 먹먹해졌다.
――――!
길달의 반항이 폐허로 변해버린 남궁세가의 한복판에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모든 반항은 송윤천 앞에서 무용지물로 돌아가 버렸다.
반항은 거칠었지만, 송윤천이라는 벽은 그보다 더 두텁고 높았다.
기운이 다한 도깨비 길달을 기다리는 건 거스를 수 없는 무력함이었다.
* * *
천살성은 여의주로 인해 자신이 죽음을 거스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천살성이 죽음을 인지하고 다시 공포를 느낀 건 자신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였다.
송윤천은 오래전 자신이 무슨 수를 써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 깨달았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렇듯 이 둘은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사람이든 괴력난신이든.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
단지 그 죽음이 빨리 찾아오느냐, 천천히 찾아오느냐의 차이일 뿐.
그렇기에 괴력난신, 도깨비 길달 역시 죽음을 두려워했다.
사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
더 오랜 세월 동안, 더 뛰어난 능력으로 누릴 수 있는 게 많으니 말이다.
길달 역시 앞서 죽음을 맞이한 도깨비를 지켜보며 살고 싶다는 욕망에 더욱 충실해졌다.
다만 죽음에서 멀어진 탓에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살고 싶다.’
생존을 향한 갈망.
오직 그 간절한 바람만이 길달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세상을 가지고 싶고 지배하고 싶다는 욕망조차도 희미해졌다.
죽고 싶지 않다는 욕망 앞에서는 그 모두가 부질없었다.
송윤천이 길달의 운명을 결정짓듯이 제왕검형을 겨눴다.
“殺す!(죽인다-!)”
마치 발작이라도 하듯 사방을 둘러싼 신풍회가 저들의 말을 외쳐대며 송윤천을 죽이려 들었지만, 풍전이 막아섰다.
파지직-
항룡십팔장에 뇌기가 담기니 적중당한 살수에게서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죽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살려다오. 돌아간다면 다시는 바다를 건너오지 않으마.”
길달은 다시 한번 무릎을 꿇고 빌었다.
부러진 한쪽 뿔이 앞에 떨어져 나갔다.
오래전 중원에서 쫓겨날 때 한 번.
그리고 지금 다시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중간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길달은 바짝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 앞에는 여전히 송윤천의 검이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중원을 떠날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나?”
“……?”
머리를 굴려봤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히 시재불가실(時哉弗可失)이라 하였지.”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니 기회를 놓치지 말라.
“이번이 몇 번째인 것 같나?”
“두…….”
푸욱-
위에서 아래로 쇄도한 제왕검형이 길달의 가슴을 관통하며 땅에 꽂혀나갔다.
“그래, 두 번은 없다.”
길달의 숨이 끊어지며 제왕검형 역시 희미해져 갔다.
도깨비 길달의 오랜 운명이 이 자리에서 맺어졌다.
이제 남은 건 도깨비를 따랐던 무리와 도깨비를 질투했던 무리였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