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송윤천과 길달 사이에 끓어오르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갔다.
길달의 시체로 다가간 송윤천이 여전히 꽉 쥐어진 오른손을 건드렸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힘을 주고 있었던 것처럼 잘 펴지지 않았다.
힘을 주니 뒤늦게 조각 난 도깨비방망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는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구나.”
그렇다고 길달의 숙명이 안타깝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얻으려면 그에 따르는 무언가를 대가로 치러야만 한다.
길달에게는 그 대가가 자신의 목숨이었을 뿐이고.
“이건 제자리로 돌려놓도록 하마.”
부서졌다지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거로 생각한 송윤천이 조각난 도깨비방망이를 챙기고 일어섰다.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사이에 끝내셨네요.”
멀찌감치에서 월이 다가왔다.
조금 전, 길달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 허겁지겁 도주한 용완을 월과 척중근이 뒤쫓았다.
“쫓아갔던 놈은?”
그런데 둘은 보이지 않고 혼자 돌아왔기에 물었다.
“그 자식이 양보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월에게 있어서 척중근은 괴팍하고 괜히 미운 존재였다.
덕분에 오랜만에 죽을 뻔했으니까.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스승과 제자의 마지막 자리인데. 착한 내가 비켜줘야지.”
월이 괜히 어깨를 으쓱였다.
몇 년 전이였다면 이런 감정은 느끼지 않았을 테다.
아니면 무시하고 용완을 죽였든가.
하지만 월은 척중근의 부탁을 듣고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서 순순히 물러났다.
계기가 있었다.
송윤천 옆에 붙어있다는 이유로 졸지에 월에게도 제자가 몇 명 생겼다.
그들에게 사부라는 말을 들으면서.
또 사제(師弟) 간의 정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면서.
저 둘은 어떨지 생각하니 씁쓸한 감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가 대충 짐작이 되니까 더 그렇지 뭡니까.”
월도 보는 눈이 있으니 용완이라는 인간이 도깨비방망이의 신력을 받아들였음을 목격했다.
그로 인해 외형이 흡사 도깨비를 닮아가게 변했다는 사실도.
“사인참사검을 벗어날 수 없겠지.”
송윤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월은 저도 모르게 사인참사검이 닿을 뻔했던 가슴팍을 만지작거렸다.
사인검은 삿된 힘을 부정하는 물건.
신력을 받아들인 용완의 최후는 고통 속에서 맞이할 죽음뿐이다.
“에이, 생각만 해도 찝찝하네. 가만히 있기도 뭐하니 저쪽으로 가보렵니다.”
쐐애애-
월이 여전히 비명이 들리는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허공을 한 번 빠르게 그었다.
그러자 몇 장 너머에 몸을 숨긴 채 빈틈을 노리고 있던 살수 몇 명이 가벼운 일격에 몸이 양분되었다.
그리고 또 몇 걸음을 나아가다가 양옆을 사선으로 긋자 잔해 속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나왔다.
“살수라는 놈들이 이게 뭐냐. 이게.”
월이 혀를 찼다.
“거지 녀석도 열심히 하네.”
코를 킁킁거리니 저기 멀리서부터 뇌기가 만들어낸 탄내가 진동했다.
“사부가 돼서 가만히 놀고먹을 수는 없지. 제자 녀석이나 도와줘야겠어.”
풍전이야 도와줘봤자 괜한 짓을 했다고 투덜대기나 할 놈이지만, 그런 반응도 나름대로 재밌으니까.
“마침 저기……. 거지야-!”
용완과 함께 다닌다는 녀석들이 신풍회를 태워버리느라고 정신없이 바쁜 풍전을 향해 합공하려 드는 모습.
한 명이야 거뜬하겠지만, 지금처럼 정신없는 상황에 둘이 넘으면 말이 조금 다르다.
용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저들 역시 도깨비방망이의 신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휘이잉-
“크학-!”
바람과 함께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나간 월이 그중 한 놈의 뒤를 잡고 손톱을 찌르니 관통된 어깨 뒤편에서 피가 하늘로 높이 솟구쳤다.
“어라? 한참 안 보이더니 여기는 왜 온 거요?”
“뭐 인마? 기껏 숨차게 달려와서 죽어가는 목숨을 살려줬더니만.”
“죽어가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다 눈치채고 가까이 오면 지져주려고 준비도 끝난 참이었는데.”
“역시 거지, 네가 주둥이 하나는 천하제일이로다.”
파지지직-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풍전이 양손에 뇌기를 잔뜩 모아서 땅을 거칠게 내려쳤다.
뇌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탄내와 함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됐소? 이번에는 내가 사부 한 번 살려준 거니 잊지 마시오.”
풍전과 월은 이죽거리며 남궁세가의 생존자들을 도와 신풍회를 처리해 나갔다.
흉수 길달이 죽었지만, 여전히 신풍회의 살수들은 건재했기에.
한편 길달의 시체 앞에 홀로 남게 된 송윤천은 뭘 할까 하다가 방금 월이 걸어왔던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멀리서 지켜보는 정도는 괜찮겠지.’
굳이 방해할 생각은 없었지만, 딱히 할 일도 없고 척중근이 어떻게 하려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과연 그 증오를 어떻게 풀어낼는지.’
그리고 그 증오가 마침표를 찍고 난 뒤에 척중근의 모습은 어떠할지도 궁금했다.
자신과 같이 깊은 절망에 빠져서 허우적댈까.
그것도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까.
‘시작하나.’
용완이라는 놈이 입을 열었다.
이제는 집중할 시간이다.
* * *
“오랜만이구나.”
무거운 침묵 속에서 용완이 입을 열었다.
사실 그리 오랜만에 보는 것도 아니었다.
용완이 백두산을 떠난 게 고작 몇 달도 되지 않았으니까.
고작 그 몇 달 전이라면 척중근은 고개를 꾸벅이면서 뭐라고 짧게나마 입을 열었을 것이다.
성정이 워낙에 무뚝뚝하지만, 스승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
하지만 척중근은 이렇다 할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하회탈 뒤에 숨어서 낯설게 변해버린 용완을 유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척중근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용완이 백두산을, 도깨비 백두를 그리고 하나뿐인 제자인 자신을 배신했을 때부터 안에서는 수많은 질문이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끝없이 반복해왔으니까.
하지만 막상 마주 서게 되자 그 어떤 질문도 소리칠 수 없었다.
어찌나 말이 많은지 틈만 나면 용완과 척중근을 앞에 두고 떠들던 도깨비 백두는 여기 있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자신을 말을 해야만 하는데, 스승을 보니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하여 척중근은 용완과 처음 마주 본 그 모습 그대로 미동도 없이 뚫어지게 쳐다만 봤다.
그 와중에 손에 쥐어진 사인참사검만이 삿된 기운을 앞에 두고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마구 떨려왔다.
마주보는 용완의 시선도 사인참사검으로 향했다.
저 검이 어떤 물건인지, 또 들고 있는 척중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들었다.
얼굴이 찡그려지고 이마에 굵은 핏줄이 돋아났다.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더냐.”
“…….”
“나는 그저……! 그저 내 지나간 세월을 보상받고자 했을 뿐이거늘!”
“…….”
“너는 다를 것 같더냐! 그래, 지금이야 어려서 모를 테지.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일평생을 처박혀서 살다가 숨이 끊어질 무렵 그때도 그 마음이 그대로일 듯싶더냐-!”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리듯 시작한 분통이 점점 커졌다.
그렇게 도깨비방망이가 내어준 신력이 한가득 담긴 용완의 외침은 마치 사자후처럼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나마 가까이에 있던 신풍회의 살수들은 이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고막이 터져버려 그대로 쓰러져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스승은 제자를, 제자는 스승을 바라볼 뿐이다.
뒤늦게 척중근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고작 그것 때문에 배신한 거요?”
“배신? 배신이라고?”
척중근의 말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용완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대화는 계속해서 평행선을 그리며 만나지 못한다.
서로가 알고 있었다.
상대는 무슨 말을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상대를 죽이는 것으로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
―――――――!
한때 자신의 목표였던 도깨비 백두와 같은 신체로 변화한 용완이 길고 두꺼운 다리를 들어 올려 반원을 그렸다.
척중근은 당황하지 않고 검을 옆으로 휘두르며 기습을 상쇄시켜버렸다.
척중근이 검을 제자리로 거두기도 전에 용완의 검 끝이 앞에 나타나 있었다.
이에 척중근이 용완의 팔꿈치를 당기고 손목을 꺾어 검의 궤도를 바꿔 버린다.
매섭게 찔러 들어오는 용완의 검을 위쪽으로 튕겨내며 그대로 그의 목을 관통시킬 생각이었다.
타당-
그러나 검이 맞닿았다.
척중근이 간과한 사실은 변해버린 용완의 무력.
빠드드득-
용완의 검은 위로 튕겨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대한 힘으로 척중근을 눌러버리려 했다.
무릎이 점점 굽혀지며 뒤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힘을 주자 엄지발톱이 중간에서 끊어져 버렸다.
또한, 구부러진 발가락에 신발 앞쪽이 터져버렸다.
그래도 척중근은 이를 악물고 물러나지 않았다.
자신이 쥐고 있는 사인검의 능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휘이이이-
맞닿은 검을 타고 사인검이 가진 능력을 발휘하자 용완이 가진 거친 기운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용완 역시 한때는 사인검의 주인이었으니 그 능력을 알고 자신이 불리함도 알고 있었다.
흐읍-
호흡과 함께 검을 쥔 양팔이 부풀어 오른다.
손목을 위로 살짝 들었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찍었다.
신체의 움직임을 따라서 검이 움직였다.
쿠웅-!
한 번 강하게 힘을 주어 내리치고는 검을 떼고서 뒤로 물러났다.
‘검이…….’
부딪치는 순간 느꼈지만, 이미 검날이 나가기 시작했다.
강도의 차이가 아니라 사인검이 자신의 기운을 흡수하기 때문.
사인검에 대응할수록 불리해지는 건 용완 자신이다.
척중근을 죽이고 떠나는 것밖에 없었다.
반대로 척중근에게는 물러남이 없었다.
살아서 도깨비방망이를 백두산으로 가져다 놓을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만,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은 용완을 척살하는 것뿐.
‘이 목숨을 도외시한다면.’
그 결심에는 의심도 두려움도 없었다.
백두산 산지기로 살아왔으니 끝까지 그렇게 살다 가면 그만이다.
척중근이 무작정 앞으로 달려나갔다.
머리, 심장, 단전 그리고 사인검을 쥐고 있는 오른팔.
이것들만 조심하면 그 무엇을 내줘도 아깝지 않았다.
용완의 검이 달려드는 척중근을 막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오른쪽에서 사선으로 그어지는 검이 척중근이 들어 올린 왼팔에 가로막혔다.
힘을 주어 보지만, 팔을 절반 정도 더 갈라놓을 뿐이다.
반대편에서 사인검이 날아온다.
살고자 하는 의지에 검을 힘껏 그어 내리자 척중근의 팔이 아래로 밀려난다.
팔 하나쯤은 어찌 되어도 괜찮다는 듯 이마로 검날이 절반쯤 박힌 팔을 받치는 동시에 사인검이 용완의 명치 아래를 뚫고 나왔다.
관통된 검을 타고 용완이 흘린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위로 올려 버려서 심장을 노리거나 혹은 아래로 그어서 단전을 노려도 좋다.
사인검은 이미 신력을 흩어버리고 있었으니.
용완도 이 사실을 알기에 남은 손으로 사인검을 뽑아내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척중근을 죽이기 위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파직-
척중근의 팔뚝을 갈라버릴 기세의 검이 부러져 나갔다.
앞서 사인검과 부딪히며 날이 나가고 금이 갔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부러진 검이 팔뚝을 타고 내려와 그 아래로 향했다.
질 수 없다는 듯이 척중근도 사인검을 쥔 손에 힘을 주어 내리그으니 상처가 더욱 커졌다.
동시에 용완의 부러진 검 끝이 척중근의 하회탈의 이마에 닿았다.
쩍- 소리가 나며 하회탈이 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한편은 여전히 얼굴을 가렸지만, 다른 한쪽은 나가떨어졌다.
용완의 시선이 목표로 향했다.
“……!”
그러자 갑자기 용완이 움찔거리며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절반쯤 드러난 척중근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눈동자에 눈물이 맺힌 채로, 그 아래로는 눈물을 흘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어린 척중근은 용완의 제자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힘들다거나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어떤 수련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당연히 해야만 하는 거라는 태도로 그 모든 역경을 감내했다.
그런데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던 제자 녀석이 울고 있었다.
백두산도, 도깨비 백두도 모조리 지워버렸다고 여겼다.
아무런 미련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후회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깨달았다.
딱 하나.
후회가 남아 있었다.
그건 바로 하나뿐인 제자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급격한 감정의 변화로 인해, 닥쳐오는 무기력함에 전신의 힘이 빠져나간다.
빈틈 혹은 방심 혹은 기회.
척중근은 사인검을 압박하던 힘이 약해짐을 감지했다.
이에 손목을 위로 꺾으며 용완의 몸을 관통한 사인검을 뒤로 뺏다가 다시 밀어 넣었다.
푹-
망설임은 없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