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용완이 가진 모든 힘이 사인참사검이 가진 권능에 의해 부정되었다.
모든 감각이 둔해지는 가운데.
바로 앞에서 내뱉는 척중근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매국노(賣國奴) 이용완.”
처음 불러보는 사부의 존함이 어색했다.
“삼한 땅과 그 땅을 수호하는 산지기로서, 한민족을 대신하여 배반자를 처단하겠다.”
“……!”
그 말이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용완은 죽는 그 순간까지 원망을 담은 눈을 부릅뜬 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마지막 숨과 함께 죽어버렸다.
끝까지 반성은 없었다.
그저 악인의 비참한 최후였을 뿐.
퍼억-
시체에서 사인검을 빼어내니 피가 흥건히 튀며 시체는 반동으로 인하여 뒤로 쓰러졌다.
척중근은 허리를 숙여 조각난 도깨비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이게 대체 뭐라고.’
문득 도깨비방망이의 존재 자체에 대한 원망이 들기도 했다.
이것만 아니었다면 백두산은 언제나 평화롭지 않았을까.
……하다가도 도깨비방망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화산이 폭발한다는 생각에 이르러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바로 자리를 떠나려 하다가 멈칫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땅에 떨어져 있는 조각난 하회탈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는 하회탈을 벗어 조각난 면을 다듬어 짜 맞췄다.
백두산을 떠나온 목적은 이루었으니 자신이 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척중근은 용완이 흘린 피가 고여 만들어진 웅덩이로 걸어갔다.
그 가운데에 용완의 시신이 있었다.
“이게 한때 사부였던 이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길달과 같이 악심을 품은 도깨비가 되어버린 용완의 얼굴을 하회탈로 가려주었다.
그의 말처럼 변절자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잠시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척중근이 피로 젖어 든 무릎을 떼고 일어났다.
그리고 들고 있던 사인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려는데 손이 떨리는 탓에 한 번에 들어가지 않았다.
뒤늦게 여러 감정이 한 번에 몰려온 까닭이었다.
“끝인가?”
가까스로 검을 집어넣은 척중근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돌아서니 송윤천이 있었다.
“지켜보고 있었소?”
“그래, 처음부터 지켜봤지. 아, 이것부터 받아라.”
송윤천이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휙 하고 던졌다.
척중근이 받아서 정체를 확인하니 그가 용완의 시신에서 회수한 것과 같은 조각난 도깨비방망이였다.
“길달이 가지고 있던 것이다. 원래 있었던 곳으로 가져다 두어라.”
“알겠소.”
척중근은 두 조각을 천으로 감싸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송윤천이 일부를 부쉈기에 온전치는 않지만, 일단은 주인인 도깨비 백두에게 돌려주는 게 맞았으니.
“그래, 모든 걸 다 끝낸 기분은 어떤가?”
“……나도 잘 모르겠소. 하나 기쁘지 않은 건 확실하오.”
“복수란 게 대체로 그렇더군. 그래서 이 세상에 은원(恩怨)이란 게 돌고 돌기도 하지.”
복수는 반드시 해야만 하지만, 복수한다고 해서 모든 게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그저 상처를 또 다른 상처로 잊을 뿐이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소.”
척중근이 송윤천에게 제 감정을 읍소했다.
지금 이 알 수 없는 감정을 누군가에게 풀어놓지 않는다면 백두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아서였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도 하지. 사람이란 게 그렇다. 평생 바뀌지 않는 게 있고 또 한순간 바뀌는 게 있지.”
적어도 송윤천이 겪은 사람이란 존재는 다 그러했다.
“그렇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게 재밌으면서도 절망적이기도 하고.”
“모두가 그런 거요? 정말 그게 당연한 거요?”
문득 척중근은 자신이 두려워졌다.
자신이 왔던 길과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길은 모두 변절한 스승 용완과 같았다.
그래서 더욱 두려웠다.
자신 역시 저렇게 마음을 달리 먹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지금 반면교사(反面敎師)를 봤지 않았느냐? 닮고 싶지 않다면 언제나 잊지 않으면 될 테다.”
“그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요.”
“걱정하지 마라. 백두산으로 돌아가면 네가 마땅히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을 녀석이 있지 않더냐.”
송윤천이 누구를 말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산지기와 함께 백두산을 지켜왔던 도깨비 백두가 바로 그였다.
“죽는 그 날까지 마음속에 새겨 두겠소.”
“알았으면 됐으니 이만 떠나거라. 앞길이 구 만 리다.”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지 않소.”
송윤천이 떠나라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주변의 폐허가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연관은 있으니까.
“됐다. 한참 늦은 것 같다만 다른 놈들이 도착한 것 같으니까. 아, 백두 녀석에게 안부 전해주는 거 잊지 말고.”
할 말을 마친 송윤천은 알아서 떠나라는 듯 뒤돌아서며 손을 저었다.
“……고맙소.”
척중근이 뒤에서 고개를 꾸벅 숙이며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여러모로 심신이 지친 상태였지만, 그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그렇게 목적을 달성한 척중근이 떠난 뒤.
남궁세가에 불어닥친 혼란은 조금 더 이어졌다.
* * *
여러 사정이 맞물린 탓에 지난날 남궁세가는 평화로웠다.
그들이 한참 전에 안휘성의 패자로 우뚝 섰던 탓에 감히 도전자가 나오지 않았다.
천하제일가라는 위엄 앞에는 사파나 흑도 그리고 때때로 출몰하는 마인도 작은 소란으로 끝나버렸다.
위치적으로도 외부의 적이 접근하기 힘든 터라 이렇다 할 다툼이 없었다.
남궁세가가 무언가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실전을 경험한 게 현 가주인 남궁철이 태어날 무렵의 정마대전이었으니.
물론 정마대전이나 다른 실전을 수없이 겪고 살아남은 웃어른들은 언제나 경고했다.
“이제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겠지만, 마지막으로 가문의 미래를 책임질 자네들에게 딱 하나만 부탁함세.”
“어르신, 무엇이든 새겨듣겠습니다.”
“남궁세가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야만 하네. 부탁하네.”
남궁겸과 함께 정마대전에 출전했다가 팔과 단전을 잃고 돌아온 한 장로의 조언이었다.
듣는 이들 모두 진중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진실되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들이 직접 겪지 않았으니 진심이 닿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당시 가주였던 창천 남궁겸은 정말 심각할 정도로 우려했었다.
정마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도 무당의 태극, 화산의 매화와 함께 미래의 삼대검성이라며 칭송이 자자했다.
그러나 거기서 안주하지 않고 삼대검성이 아니라 홀로 검성이라는 명성을 얻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정마대전 이후로는 화산의 매화와는 다른 의미로 정말 검에 미친 사람이 되었다.
“여기서 혹시 청해강가, 고신세가, 동운세가, 선우세가, 사천옥가라고 들어봤나? 아무도 모르겠지? 당연하지. 이번에 마교가 싹 쓸어버려서 먼지 한 톨 안 남았거든.”
“우리 남궁세가라고 크게 다를 것 같은가? 안휘성은 천년만년 안전할 것만 같은가?”
천산에서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렇게 예의 바른 이가 흑도 못지않게 입이 거칠어지기도 했다.
차남에게 가주직을 물려주기 전에도 어지간한 건 총관에게 떠넘기기 일쑤였다.
거기에 가주라는 사람이 부인과 삼 형제의 생일 혹은 정말 중요한 행사가 아니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시피 했다.
분명히 성과는 있었다.
하늘에 닿은 재능에 피눈물 나는 노력이 더해졌으니까.
심지어 가주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더했다.
그런데 창천 남궁겸이 경고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야 말았다.
폐관 수련은 아니었지만, 폐관 수련에 가까웠던 수련을 마치고 오랜만에 연공실을 박차고 나섰다.
하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도깨비방망이가 이뤄낸 지진과 화마.
이 두 가지 재해에 오랜 세월 동안 한자리에서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일순간 정말 어이없게 무너져 버렸다.
하지만 남궁겸은 절망하지 않았다.
‘비록 남궁세가는 무너졌더라도 사람은 남아 있다.’
이런 마음가짐과 함께 남궁겸은 검을 들었다.
감히 남궁세가를 노리는 놈들을 처단하는 게 우선.
콰지지직-
남궁겸이 불러낸 제왕검형이 비열하게 생긴 상대의 다리 한쪽을 가져가 버렸다.
그리고 연이어 달려들어서 급소를 노린다.
균형을 잃은 상대를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중상을 입은 채로도 마지막 순간까지 반항하던 상대가 복부가 갈라져 밖으로 튀어나온 내장을 주워 담으려다가 주저앉았다.
상대는 피로 물든 손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
남궁겸으로서는 처음 접하는 언어인지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표정과 말투로 보아 자신에게 처한 이 비참한 현실을 부정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쌍하다는 감정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당도하기 전까지 이놈을 막아서다가 죽어 나간 남궁세가의 무인이 열댓 명이 넘었으니까.
“그러니 억울한 표정 짓지 말고 그만 죽어라.”
남궁겸이 검을 사선으로 그으며 죽어가던 상대의 목숨줄을 단번에 끊어버렸다.
“크아아아악-!”
사방에 가득한 살수들을 쳐 죽이며 이동하다 보니 익숙한 음성이 귓가에 때려 박혔다.
여전히 사방에는 무기가 부딪치며 비명이 난무했음에도 온갖 소음을 뚫고 들려온 비명.
그건 삼 형제 중에서 가장 약한 막내 남궁열이었다.
일종의 부정(父情).
남궁겸은 시체와 잔해를 짓밟으며 막내아들의 비명이 들린 방향으로 미친 듯이 뛰어나갔다.
여전히 닿기에는 먼 거리.
몸 여기저기에 비수와 암기 따위가 박힌 가운데 굴하지 않고 살수 여럿을 상대하는 남궁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남궁겸이 어떻게 해보기에는 물리적으로 떨어진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그 와중에 뒤에서 살수 셋이 동시에 목을 노렸다.
부득이하게 검이라도 던져 막아보려는데.
남궁열과 살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지더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기습에 나서던 살수 셋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그제야 뒤돌아본 남궁열이 시선을 위로 옮기니 누군가 허공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맹주님-!”
바로 무림맹주 마석동이었다.
가볍게 착지한 마석동이 다리를 뻗었다가 오므리니 살수 몇 놈의 가슴팍이 터져 버리고 머리통과 하체만 동그라니 남은 채 쓰러졌다.
그 사이 남궁겸 역시 헐레벌떡 달려왔다.
“진작 오지 않고.”
“미안하군. 늦었다.”
송윤천 일행을 따라서 후발대로 출발했다만, 다른 대원들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생각보다 늦고 말았다.
“그래도 끝나기 전에는 도착했으니 할 일은 해야지.”
여전히 신풍회의 살수는 넘쳤고, 구해야 하는 이들도 그만큼 많았다.
후발대가 남궁세가 인원을 도와 활약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용완과 함께 허튼 꿈을 꿨던 을사(乙巳) 역시 최후를 맞이했다.
파지지지직-
풍전의 손바닥이 까맣게 타들어 간 시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놈이 마지막인가.”
시체는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풍전이 주변을 둘러보니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는 잠잠해져 있었다.
이는 곧 신풍회의 전멸(全滅).
도깨비 길달과 을사 그리고 신풍회.
망상을 좇아 중원에 발을 내디딘 무리의 최후였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