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그런 일이 있었군요…….”
더욱 겸손해진 창천 남궁겸이 창궁검(蒼穹劍)으로 향했다.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습니다.”
절기를 계승하였을 때, 물려받은 이 창궁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언젠가부터 남궁세가에는 창궁검이 가보(家寶)로서 전해 내려왔다.
보통 검들은 몇 년이 가지 않아서 수명이 다한다.
세상에서 흔히 명검이라 불리는 검의 수명도 길어봤자 백 년.
그러니까 검을 잡은 무인의 생명이 다할 즈음 명검의 수명 역시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한 자루의 창궁검은 기록된 것만 수백 년을 훌쩍 넘어섰다.
마찬가지로 가문의 절기이자 최고의 검법이라 일컬어지는 제왕검형(帝王劍形) 역시 그러했다.
제왕검형을 한 번이라도 목격하거나 경험한 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건 감히 사람이 만들 수 있는 종류의 무공이 아니라고.
직접 제왕검형을 수련한 이들도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이보다 뛰어난 검법은 천하에 없을 것이라고.
“제가 제왕검형을 처음으로 접할 무렵,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대성하게 된다면 천하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경지에 올라설 것이라고.”
“나도 남궁무에게 비슷한 말을 했었다. 대성한다면 그 어떤 ‘사람’도 이겨낼 수 있다고.”
“선조께서는 자신이 다하지 못한 몫을 후손에게 남겨두신 게로군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녀석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랬을 것 같나?”
송윤천이 밝힌 남궁무 역시 남궁겸의 기억 속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남궁세가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또 창궁검과 제왕검형이 어디서부터 내려왔는지 알게 되니 먹먹한 감정이 가슴 한편에 맴돌았다.
“정의, 의협……. 저를 포함한 지금의 남궁세가에 있어서는 솔직히 생소한 단어입니다.”
선조인 남궁무가 어떤 마음으로 송윤천에게 가르침을 받았는지, 또 후손에게 물려주었는지.
남궁겸이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그는 단순히 홀로 또는 가문이 강해지길 바랐다.
‘제왕검형을 통해 강해짐으로써 무언가를 얻고자 했을 뿐.’
몰랐으면 모른 채로 살았겠지만, 뿌리를 찾았으니 앞으로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뿌리를 부정한다면 줄기도 없으며 이파리도, 열매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법이지.”
과거를 잊은 이들에게는 현재만 있을 뿐.
바탕을 잃었기 때문에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궁세가의 현실을 꼬집는 발언에 남궁겸이 잠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저는 쭉정이였군요.”
남궁겸을 자신을 껍질만 있으며 알맹이가 들어 있지 않은 열매라고 표현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태어날 적부터 주변도 그러했고, 그저 강해지는 게 전부라고 여겼다.
거기에는 어떤 거창한 목적도 이유도 없었다.
강해지고 남궁세가의 위명이 천하제일에 오르고 그 자리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고.
그렇게 해서 과연 무엇이 나아졌던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떠올려보면, 아버님의 유언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제 손을 꼭 잡으시고는 공허하다고 하셨는데…….”
그때는 그 말을 듣고 무공을 대성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그렇다고 내심 짐작만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강해지고 또 강해져도 남은 게 없기에 그렇게 느꼈을 테지.”
“부끄럽지만 저를 포함한 모두가 그랬습니다.”
송윤천도 굳이 이들을 비판하지 않았다.
‘나 역시 한때는 그랬으니까.’
차이가 있다면 이들은 끝을 보기 전에 수명을 다했고 자신은 늙지도 죽지도 않았기 때문에 끝을 보았다는 것뿐.
그러나 끝이 어디든, 공허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한참 전에 정점에 오른 송윤천이 다른 여러 가지를 배우기 위해 나섰기도 했었고.
“만약 마음을 달리 먹을 거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
“정말 그렇겠습니까?”
남궁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또 지금까지 그저 강함만을 목표로 하면서 달려온 남궁세가가 달라질 수 있을까.
변화를 앞두고서 겁이 나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네가 쭉정이라고 했지? 쭉정이도 거름이 될 수 있다.”
거름이라고 해서 대단한 희생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저 올바른 방향이 어디인지 알려주면 누군가는 따를 테니.
“그리고 운이 좋다면 훗날에는 남궁세가에도 제대로 된 열매가 열릴 수도 있겠지.”
과거 협의를 위해 강해지고자 했던 남궁무와 같이.
“남궁무가 실천했던 정의와 의협에 대단히 숭고한 희생이 필요한 건 아니다. 혼자 잘살겠다는 것보다 여럿이서 잘살겠다는 것만 기억하면 그만이지.”
“명심하겠습니다.”
“나답지 않게 쓸데없는 잔소리가 길어졌어.”
할 말을 마친 송윤천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여기서 더 하다가는 그건 듣기 싫은 잔소리에 불과하다.
“우선 마땅한 터부터 찾아봐야겠지.”
도깨비방망이가 일으킨 지진으로 남궁세가의 역사와 함께 그 모든 것을 바치고 있었던 지반이 전부 무너졌다.
“목적지가 어디가 되었든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위에 다시 남궁세가를 세울 수는 없으니 이번에도 송윤천이 직접 나섰다.
사실 풍수지리의 기본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다.
이외에는 그저 듣기에 그럴듯한 말들을 마구 섞어 놓은 것이고.
탁 트여서 답답하지 않으며 물길이 가깝지도 멀지도 않고 햇볕이 잘 드는 그런 장소는 천하에 널리고 널렸다.
“이곳은 어떤가?”
두어 시진 정도 걷다가 멈춰선 송윤천이 뒤따라온 남궁겸에게 물었다.
자신은 그저 옆에서 조언할 뿐이고 결정은 남궁세가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한 번 둘러보겠습니다.”
앞으로 나선 남궁겸이 주변을 살폈다.
살기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딱 그런 장소.
“새로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아 보입니다.”
남궁겸이 그 옛날의 남궁무처럼 미소를 지었다.
전해지지 않겠지만, 말하고 싶었다.
네 후손도 괜찮은 녀석들이라고.
“이왕 나섰으니 조금만 더 도와주마.”
당연히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었기에 쓱 훑어보면 견적이 나왔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한다면 제왕검형을 이렇게도 써먹을 수 있지.”
송윤천이 공터 위로 떠 오른 채로 제왕검형을 소환했다.
그리고 제왕검형으로 터를 깎고 다듬으며 지반을 단단하게 다졌다.
극한의 정신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단순히 적을 공격한다거나 방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
그래도 덕분에 잡부들이 달려든다면 몇 달이 넘게 걸릴 일이 순식간에 끝났다.
“나머지는 너희들의 취향껏 만들어라.”
“예? 괜찮으시다면 더 해주셔도 좋습니다만.”
“내가 아는 방식은 한참 전에 사라졌는데 그래도 괜찮겠나?”
송윤천이 배웠던 시기의 건축 양식은 이미 수백 년도 전에 유행이 끝났다.
괜히 자신이 더 손을 쓰다가는 고지식하다는 말만 나올 테니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서로에게 좋았다.
“……말씀을 들어보니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알아서 하는 게 좋겠군요.”
남궁겸이 송윤천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송윤천과 있으니 자신이 요즘 사람 취급을 받는 것뿐.
가문으로 돌아가면 자신도 뒷방 늙은이 신세이며 증손주들이 하나둘씩 혼인을 하니 마니 하는 마당이다.
며칠 후, 남궁세가의 재건을 돕던 무림맹주 마석동과 그 후발대가 먼저 귀환했다.
그리고 조금 더 시일이 지나서 따로 도울만한 일이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무렵.
“멀리서나마 남궁세가에 천운이 함께하기를 바라마.”
“살펴 가십시오. 그리고 멀리서나마 저희가 앞으로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봐 주십시오.”
송윤천 역시 일행과 함께 안휘성을 떠났다.
“장주님, 척중근 그 녀석은 지금쯤이면 백두산에 도착했으려나요?”
월이 대뜸 한참 먼저 떠나간 척중근의 안부를 물어왔다.
“왜? 인제 와서 보고 싶기라도 한가?”
“하, 그럴 리가요. 다시 붙으면 무조건 내가 이기는데 비겁하게 도망을 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보기보다 치사한 녀석일세.”
월이 절대 아니라는 듯이 발끈했다.
“그래, 그런 셈으로 치자.”
“아, 정말 이긴다니까요.”
“알겠다니까.”
표현은 이래도 월 역시 제자로서 스승의 목숨을 앗아간 척중근을 걱정하는 게 분명했다.
남에게 전혀 관심 없는 척해도 조금만 엮이면 자기 일처럼 걱정하곤 했으니 말이다.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텐데.’
송윤천이 문득 백두산이 있을 방향을 한 번 바라봤다.
* * *
과거, 백두산 인근의 마을 사람들은 백두산에 귀신이 살고 있다고, 다른 세상이라고도 표현했다.
초입까지만 해도 별다를 게 없는데 조금만 들어가면 온갖 맹수가 넘쳐나며 기후는 또 얼마나 지랄 맞은 지.
분명 산 아래는 햇볕이 쨍쨍한 한여름인데 중턱부터는 한겨울이 따로 없다.
마찬가지로 아래는 겨울인데 위는 푹푹 찌는 여름일 때도 있고.
폭우에, 태풍에, 우박과 폭설은 백두산에 심심치 않게 찾아왔다.
그런데 도깨비 백두와 함께 도깨비방망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런 말이 쏙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호랑이, 늑대, 곰을 비롯한 갖은 맹수는 여전히 위험했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안전한 편에 속했다.
문제는 얼마 전부터 옛날의 괴담과 같이 백두산이 미쳐 돌아가기 시작한 까닭이다.
이 모든 기현상이 도깨비방망이의 부재(不在)로 인해 발생했음을 누구도 몰랐다.
단, 당사자인 도깨비 백두와 떠났다가 돌아온 척중근을 제외하고는.
그러나 이러한 지랄 맞은 기현상도 척중근이 돌아오자 거의 다 멎어 들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품에 가지고 있는 파손된 도깨비방망이 때문이었지만.’
척중근은 곧장 정상으로 향했다.
도깨비 백두는 대부분 천지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척중근이 백두산을 떠나던 날에도 도깨비 백두는 배신감을 추스르며 천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두님-!”
정상에 도달한 척중근은 천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큰 목소리로 백두를 찾았지만,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에……, 설마?’
척중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중턱 부근으로 내려갔다.
비룡폭포와 조금 떨어진 맞은편의 양지바른 평지.
지난날 산지기로서 임무를 마치고 자연으로 돌아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도깨비 백두가 직접 마련한 공간이었다.
“백두님?”
그런데 백두는 이상하게도 묘지에서 조금 떨어진 그늘에서 등을 돌린 채로 척중근을 맞이했다.
“돌아왔구나. 무사했으니 다행이다.”
“도깨비방망이는 여기 있습니다.”
척중근은 품에 가지고 있던 천으로 감싸진 물건을 건네주었다.
“송구합니다. 송윤천이라는 분의 도움을 받았지만 제가 모자란 탓에 방망이가…….”
“송 선생이 도와주었구나. 무슨 일이 있었든 네 잘못이 아니다. 고생 많았다.”
백두는 척중근의 말을 끊고 조각난 방망이를 어루만졌다.
부서진 건 아쉽지만, 이것만 해도 어디겠는가.
“괜찮으시겠습니까?”
척중근이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
“그래, 일부가 파괴되었으니 완전하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임시방편으로 당장 쓸 정도는 된다.”
백두 역시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도깨비방망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기에.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말거라. 백두산의 지고한 정기를 받아 탄생하였고 내가 아직 건재하니.”
백두산과 도깨비 백두 그리고 백두산의 정기를 머금고 탄생한 도깨비방망이는 상호보완적인 관계.
그러니 자신이 나고 자란 땅을 버린 길달과 다르게 시간과 정성을 쏟아붓는다면 언젠가는 새로운 도깨비방망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녀석은?”
“제가 목숨을 거뒀습니다.”
그게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 수 있었다.
“그랬구나……. 바보 같은 녀석.”
백두가 고개를 올려서 오랜만에 맑아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용완을 향한 숨길 수 없는 애증(愛憎)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먼저 올라가마.”
백두가 떠난 그늘.
거기에는 아주 낮은 무덤 위에 꽂힌 바람개비가 바람을 타고 돌아가고 있었다.
바람개비는 찢기고 부러지고 조각난 것을 다시 억지로 붙여 만들었는지, 참으로 볼품이 없었다.
척중근에게도 익숙한 바람개비.
그 정체는 바로 용완이 백두산을 떠나기 전 제 손으로 부숴버렸던 바람개비였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