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역시 장주는 단박에 알아채셨구려.”
풍전이 종이 쪼가리에 적힌 내용이 마공임을 확신하는 송윤천을 보며 감탄했다.
이름도 붙지 않고 대뜸 본론부터 시작하는 잡다한 설명이 담긴 종이 한 장.
하지만 그 종이에 적힌 내용이 마공이라면 세상에 불러올 파문은 거대할 터였다.
“이건 또 무슨 마공이길래 그러냐. 뭐, 천마가 익힌 마공이라도 되나?”
사뭇 진지해진 풍전과 다르게 질문을 던져오는 월의 반응은 덤덤한 편이었다.
월이라고 해서 마교나 마인, 마공의 존재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지난 세월 마주한 경험이 심심치 않게 있었지만, 그 어떤 마인도 월에게 미치지 못했으니 그다지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을 뿐.
“여기 적힌 것들은 혈마공의 일종이다. 과거 혈교와 혈마가 중원에 준동했을 무렵에 많이 보였지.”
풍전에게 받은 종이에 적힌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본 송윤천이 입을 열었다.
“혈마공이란 무공은 뭔데 그렇게 짧습니까?”
월이 슬쩍 종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보통 무공이란 건 보통 책 한 권 분량을 가득 채우곤 했기 때문이다.
월과 같은 괴력난신처럼 이론을 초월하여 본능적으로 구사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전후 내용은 소실된 것 같고……. 이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무공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반쪽짜리? 아니, 반쪽도 아니지.”
“네 말이 옳다. 이걸 익힌다고 해도 약간의 변화에 그치는 정도에 불과하다. 갖은 수를 써도 대단한 성과를 볼 수는 없을 테고.”
송윤천이 종이를 모두 살펴보고서 풍전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그런데 혈교는 장주님이 직접 처리했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정확히는 당시에 혈교가 신봉하는 흡혈괴마 두 놈 중 하나를 처리했다.”
월이 문득 지난 일을 꺼내 들자 송윤천이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아 주었다.
흡혈괴마는 종족을 가리지 않으며 피를 갈구하던 괴력난신.
“다른 한 녀석은요?”
“한 녀석을 상대하는 사이에 도망쳤더군. 그 도망친 다른 녀석도 교주에게 당했다고 들었다.”
“교주라면……, 아 그 천살성 아닙니까? 초대 혈마라고 불렸던 시절의 천살성. 결국, 장주님 손에 죽었지만.”
월이 과거 송윤천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는지 무릎을 쳤다.
인간에 빙의한 괴력난신 천살성이 괴력난신 흡혈괴마를 죽인 기괴한 일화였기에 월의 기억에도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맞다. 애초에 천살성이 아니라면 사람으로 태어나 흡혈괴마를 죽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지.”
“허……. 그런 일이 있었소?”
의도치 않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된 풍전이 깜짝 놀라서 말을 끊고 물었다.
“그러면 정말 혈교가 믿는 신이 따로 있는 줄 알았나?”
“아마 장주와 사부를 만나지 않았으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생각했을 거요.”
풍전이 알고 있기로 그 대단했던 초대 혈마가 한 은거기인에게 죽임을 당하고, 반격에 나선 중원 무림에 의해 이미 해체된 수준이었던 혈교의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송윤천의 대담함에 감탄하기도 했다.
파고 또 파고들어도 끝을 모르는 존재.
감히 자신이 판단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송윤천이었음을.
“그러면 이 혈마공이라는 건 또 어디서 불쑥 튀어나왔답니까? 어디 시장 바닥에 한 장만 남아서 굴러다녔을 리는 없고.”
월의 예상과 같이 이 종이 역시 앞뒤로 끊어진 문맥으로 보아 분명히 한 권의 무공서에서 찢겨 나왔을 터.
“보나 마나 혈교의 잔재겠지. 그 뒤로는 나도 관심을 껐기에 잘 모르는 일이다.”
“초대 혈마가 죽고 뒤를 이어서 교주가 된 혈마 역시 혈교가 망한 이후 모습을 감추게 되었소. 그러다 뒤늦게 마교에 투신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
풍전이 뒤에 일어난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혈교는 사라졌지만, 이대 혈마는 홀로 살아남아서 마교의 일원이 되었다.
즉, 이 혈마공은 마교에서 흘러나왔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는 말은…….”
그러자 월이 실눈으로 종이를 힐끗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소. 아무래도 마교가 다시 준동하려는 모양이오.”
그게 아니고서는 혈마공의 등장이 설명되지 않았다.
정마대전 이후 단 한 번도 중원에 등장하지 않았던 물건의 등장.
“산 넘어 산이구먼.”
풍전의 시선이 마교가 도사리고 있는 서쪽 너머로 향했다.
마교의 준동.
송윤천이나 월은 그러려니 하지만, 중원 무림에 있어서는 청천벽력(靑天霹靂)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이 혈마공인지 뭔지 가지고 있던 녀석은 어디에 있나?”
“죽였소. 하지만 살려뒀어도 다를 건 없을 거요. 보니까 이제 막 어설프게 마공을 익힌 수준인데 주화입마 직전이었소.”
멍청하게 이 종이에 적힌 게 뭔지도 모르고 옳다구나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익혔으리라.
당장에는 힘이 넘쳐나니 좋아했을 테고.
조금 전 풍전이 목격한 모습이 그로 인한 부작용의 결과였다.
“석동이가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먼저 돌아갔는데, 이걸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풍전도 풍전이지만, 마석동은 무림 맹주이니 짊어진 무게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그들의 숙명이니 외면할 수도 없다.
셋은 희생자가 나와 숙연해진 배를 타고 며칠이 더 지나 무한에 당도했다.
“괜찮다면 나는 무림맹에 들렸다가 돌아가겠소.”
“편할 대로.”
“거지야, 있다가 보자.”
풍전은 마공의 등장을 알리기 위해서 먼저 무림맹으로 돌아간 마석동을 찾아갔다.
“가시죠.”
송윤천과 월은 곧바로 장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대문을 열고 두리번거렸는데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남궁헌이야 무림맹으로 출근하여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이라고 해도 남궁연이나 곽범은 한창 땀 흘려가며 수련에 열중하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장원이 텅 빈 이유가 금방 밝혀졌다.
“한성객잔 맞은편 의원에 있다는데요?”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월이 손에 들린 쪽지를 보고 말했다.
“의원?”
쪽지를 보니 자주 보았던 남궁연의 글씨체.
다친 사람이 쪽지까지 남기지는 못할 테니 필시 남궁헌이나 곽범이 다쳤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자.”
송윤천과 월이 돌아오는 길 여유 있던 걸음과 다르게 날아가듯 의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의원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붕대를 칭칭 감고 의식도 없이 누워 있는 곽범을 볼 수 있었다.
“연아.”
“장주님, 사부.”
곽범을 간호하고 있던 남궁연이 도착한 둘을 보고 일어서서 힘없는 미소로 반겨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아니다.”
송윤천이 말을 하다 말고 다가가 곽범부터 살폈다.
호흡이 희미했으며 얼굴은 검게 물들었고 팔다리는 부러졌다.
특히 왼쪽 옆구리 부근에 남은 자상이 심각한 상태.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갔으면 척추가 끊어졌을 정도였다.
“장주님.”
남궁연이 뒤에서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송윤천을 찾았다.
“이제 괜찮아질 게다.”
송윤천은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남궁연을 위로해주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송윤천은 작은 단약 한 알을 들고 있었다.
“삼백 년 묵은 지렁이와 이백 년 묵은 해삼의 내단으로 만든 물건이다. 재생력에는 이만한 게 없지.”
지렁이와 해삼 모두 뛰어난 재생력을 가진 생물.
세월이 흘러 미물에서 영물의 경지에 들어섰으니 내단에도 그만한 재생력을 함유하고 있음은 당연했다.
불로불사의 송윤천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창고 구석에 보관하고 있던 참이었다.
“다행히 쓰임새가 있구나.”
송윤천이 단약을 잘게 부순 뒤 의식이 없는 곽범의 입을 살짝 벌리고 단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턱과 목의 혈도를 자극하자.
콰드드드득-
곽범으로부터 듣기 싫은 소리와 불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전신을 감싸고 있었던 하얀 붕대가 흘러나온 노폐물에 젖어 들어가 조금씩 갈색으로 물들었다.
그 아래로 찢어진 근육과 조각난 뼈가 붙기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송윤천의 인도에 따라서 곽범의 단전에 남아 있던 기운들이 전신 혈도를 타고 돌기 시작했다.
‘몸은 되었고.’
송윤천이 자리를 옮겨 양손을 곽범의 관자놀이 부근에 대며 집중했다.
미세한 혈도를 타고 멈춰있던 기운들이 머리로 움직였다.
잠시 후, 송윤천의 말처럼 곽범의 눈이 천천히 뜨이기 시작했다.
“곽 사제!”
남궁연은 마친 자신이 다친 것처럼 눈물을 찔끔 흘리며 늙은 사제를 반겨주었다.
“사, 사저.”
“사제, 괜찮아?”
“그, 그럼요.”
여전히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곽범은 힘을 주고 입꼬리를 바짝 끌어당겨 미소로 답해주었다.
“헤헤, 끄, 끄떡없습니다.”
아주 살짝 움직였음에도 죽을 듯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곽범은 아무렇지 않은 척 견뎌냈다.
그래도 어린 사저가 우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는 자신이 좀 아픈 게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쳇.”
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월이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져서 뒤돌아 코를 쓱 닦았다.
철저히 남이었으며 남보다도 못한 관계에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엄연히 가족이 되어버렸다.
* * *
천하에 그 어떤 고수나 부자 혹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황제까지.
그 누구라도 탐낼 단약의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중상을 입고서 시름시름 죽어가던 상태의 곽범이 고작 한나절 만에 두 발로 걸어서 의원을 나왔다.
물론, 부상이 심각했기 때문에 곧바로 옛날과도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줄 터였다.
“사제, 괜찮지? 그렇게 안 불편하지?”
“사저, 정말 감사한데요. 저는 정말 괜찮거든요. 여기부터는 제가 걸어갈 테니까 이만 내려주시면…….”
장원까지 돌아가는 길은 한참 멀었기 때문에 남궁연이 곽범을 등에 업었다.
그녀가 이미 곽범의 경지를 뛰어넘은 지 오래이기에 힘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됐어.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곽범이 극구 사양했지만, 자신이 꼭 그러고 싶다니 옆에서 말릴 수가 있겠는가.
“다 왔다-! 사제, 당분간은 푹 쉬어. 나머지는 내가 다 할게.”
결국, 곽범은 남궁연에게 업힌 채 장원에 도착했다.
남궁연은 곽범을 방에 몰아넣었다.
주변에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괜찮다고는 했지만, 괜찮을 리가 만무했다.
늙은 사제가 잠든 모습을 확인한 남궁연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곽범의 전용 빗자루를 찾아들고서 장원 이곳저곳을 쓸고 다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풍전이 남궁헌과 함께 장원으로 돌아왔는데 남궁헌은 화가 잔뜩 난 표정이다.
“장주님, 사부님! 오랜만에 봬요.”
“그래, 잘 지냈……, 던 것 같지는 않고. 헌이 너는 알고 있구나.”
상황이 갑작스러운 터라 정신이 없어서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은 곽범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곽 사제가 흑도 쪽을 한 번 살핀다고 혼자 야차 가면을 쓰고 나갔거든요. 그런데 얼마 안 돼 헌이로부터 사제가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또, 남궁연도 따로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어제 무림맹 무사 한 분이 순찰을 나갔다가 초주검 상태인 걸 발견했대요. 저는 야차 가면이 옆에 쪼개져 있다고 해서 그 말을 듣자마자 곽 사제인 걸 알았고요.”
말을 마친 남궁헌이 숨을 골랐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고?”
“네, 어느 구석에서 사제 혼자 발견됐대요. 그 무사분이 한성 객잔 단골이라서 오며 가며 종종 곽 사제랑 안면을 텄던 모양이더라고요.”
“곽범에게 천운이 따랐구나.”
송윤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죽어가는 사람은 무시하고 가는 게 일종의 관행인 세상에서 천만다행이었다.
아마 그 무림맹 무사 역시 처음에는 시체나 한번 슬쩍 뒤져보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잘만 하면 짭짤한 부수입이 되는 일이니 말이다.
“본인이 알고 있을 테니까 기다리죠.”
결국, 남궁연과 남궁헌에게 알아낸 정보가 없었기에 곽범이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곽범은 열 시진을 꼬박 죽은 듯이 잠들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곽범의 입에서 나온 말은…….
“처음 보는 놈한테 당했습니다. 정신이 나간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가까이 있으면 찝찝한 기운을 풍기기도 했습니다. 아, 상체에 검붉은 핏줄이 굵게 일어나 있었습니다.”
송윤천과 월, 풍전이 시선을 마주하더니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도 마공, 저기서도 마공.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
“제가 나가서 한 번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감히 제자를 건드렸다는 놈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월이 장원을 나섰다.
쓰러진 흑야차를 대신하는 원조 야차, 백야차의 출격이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