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천하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몇 년 전부터 호북성 무한을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물론, 그전부터도 무한은 살기 좋은 도시였다.
무한 한복판에 무림맹이 떡하니 자리 잡은 마당에 감히 사파나 흑도가 몸부림이나 치겠는가.
해봤자 잠시 꿈틀거리는 게 전부일 터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무림맹이 절대적인 선(善)도 아닐뿐더러 거대한 덩치 탓에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쓰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변화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어느 순간 등장하여 흑도를 깔끔하게 평정한 흑백야차(黑白夜叉) 덕분이었다.
그래도 흑도는 흑도인데 유난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흑백야차가 흑도라는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 게 아니었으니까.
대신에 그들은 흑도에게 넘어가면 안 되는 일종의 선을 만들어 주었다.
흑도는 잡초와도 같아서 한 번 뿌리를 뽑아봤자 같은 자리에 슬금슬금 다시 올라오기 때문이다.
우선 흑도가 보호비 명목으로 양민들을 갈취하는 행위를 상식적인 수준으로 제한했다.
또 흑도를 제외한 대상에게 살인, 폭행, 납치 등의 행위를 금지하며 자신들끼리만 어울리고 자신들끼리만 다투게 했다.
당연히 이런 방침에 흑도 세력의 반발도 많았지만 백야차의 무시무시한 딱밤 앞에서는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백야차는 차츰 등장하지 않았으며 대신에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던 흑야차가 흑도 세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오직 딱밤만으로 흑도를 무릎 꿇린 백야차와 다르게 흑야차는 긴 창을 무기로 사용했다.
또한, 백야차보다 약하기도 해서 종종 반발이 있었지만, 흑야차는 어떻게든 이겨냈다.
그런데 최근에 다른 지역에서 흘러들어왔다는 흑도 무리가 문제를 일으켰다.
사람이 여럿 죽었다는 소식에 흑야차가 홀로 나섰다가 우두머리에게 급습을 당하여 크게 다치고 간신히 도망쳤다고도 했다.
흑도는 여기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백야차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년의 공백이 있다고 하지만, 백야차의 딱밤에 당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무한의 흑도들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 백야차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아-
빠아악-
백야차가 입김을 불어 넣은 뒤 딱밤을 쳐댔다.
“기상.”
“기, 기상-!”
딱밤에 쓰러져 나가 이마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던 자들이 백야차의 목소리에 부리나케 일어났다.
“그 새끼는 어디에 있어?”
“예, 그 새끼라고 하시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몰라? 아, 모르시는구나……. 그래, 정말 모르는 거면 알 때까지 신나게 깨져보자고. 내 손가락이랑 너희 이마 중에서 하나는 깨지겠지.”
하아-
백야차가 손가락을 둥글게 모은 뒤 죽음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제, 제가 아는 것 같습니다!”
빨간 언덕처럼 부어오른 이마를 부여잡고 있던 흑도 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같습니다? 나랑 뭐 장난이라도 해보자, 이거야?”
가면 사이로 쏟아지는 눈빛이 흑도를 찔러 죽일 듯했다.
“아, 아닙니다! 흑야차님을 그렇게 만든 놈들이 어디 있는지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정신이 반짝 든 흑도가 차렷 자세로 떠나가라 외쳤다.
“그래, 너희가 날 엿 먹이려는 게 아니면 누구 한 놈은 당연히 알고 있어야겠지. 뭐해, 어서 거기로 안내하지 않고.”
“옛!”
“걸어?”
“헉! 옛!”
백야차를 안내하던 흑도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겁대가리 없는 놈이려나.’
누군지는 몰라도 제자인 곽범이 당한 만큼은 갚아주겠다고 다짐했다.
‘이왕이면 오래 버틸 수 있게 튼튼한 놈이면 좋겠는데 말이지.’
백야차 월은 뒷짐을 진 채로 흑도의 뒤를 따랐다.
“여, 여깁니다.”
“여기라고?”
안내하던 흑도를 따라오던 월이 멈춰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송윤천이 부순 흑룡방이 있던 그 자리에는 위로 우뚝 솟은 기루가 세워져 있었다.
“옥로루라고 합니다. 일 년 전부터 문을 열고 영업했는데, 얼마 전 밖에서 흘러들어온 놈이 여기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놈이 흑야차를 그렇게 만들었다?”
“예, 예.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그놈은 꼭대기에 있나?”
“그, 아래에 있을 겁니다.”
“아래?”
“이쪽으로 가시지요.”
월이 흑도를 따라 기루 뒤쪽으로 이동했다.
거기에 아래로 뚫린 문이 있었는데 흑도가 딱 멈춰 섰다.
“저기, 저는 여기까지…….”
“왜? 이리로 내려가면 죽기라도 하나?”
“그게 아닙니다. 여기 있는 놈이 사람을 먹어치운다는 소문을 들어서…….”
흑도가 고개를 푹 숙이고 머뭇거렸다.
흑백야차는 흑도라고 하여도 다 죽여대지 않았다.
물론 죽을 짓을 했던 놈들은 죽였지만, 죽을 짓을 하지 않는다면 굳이 죽이지 않았다.
반대로 새로 나타난 신흥 흑도 무리는 소문이 정말 좋지 못했다.
실제로 얼마 전에 무한에 나타난 그놈들이 부린 패악질에 여럿이 죽어 나가기도 했고.
“됐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테니 돌아가라.”
“감사합니다-!”
흑도가 허리를 푹 숙이고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혼자 남은 월이 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 끝에는 철문이 있었는데 그 앞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두 놈이 문지기처럼 문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건 또 뭐냐?”
가뜩이나 커다란 놈들이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니 월이 고개를 높게 쳐들어야 시선을 마주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이 짧은 시비조의 발언에서 월은 이들이 앞서 흑도가 밝힌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놈들이란 사실을 확신했다.
왜냐.
적어도 무한 흑도라면 백야차 가면을 모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킬 생각은 없겠지?”
“뭐? 비켜? 정신 나간 놈이 되지도 않는 요상한 가면을 쓰고. 어디서 주제도 모르고 미쳐 날뛰는…….”
빠악-
“시끄럽다.”
장황하게 입을 놀리던 덩치가 딱밤 한 방에 쓰러져 나갔다.
이상한 침입자가 빈틈을 보였다고 판단한 다른 덩치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손도끼 한 자루를 꺼내, 뒤에서 등을 노렸지만.
퍽-
“둘 다 덩치는 산 만 한데 눈치는 없나 보네.”
그 역시 이마가 움푹 들어가며 쓰러졌다.
둘 다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터.
드드득-
월은 녹이 잔뜩 슬어있는 두꺼운 철문을 열어 재치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문밖에서 들리는 소음을 들었는지 경계의 눈빛을 한 이들이 각자 무기를 손에 쥐고 나타나 월을 포위했다.
* * *
등하불명(燈下不明)
등불 아래는 밝지 않다.
바로 앞에 있는 것도 때로는 잘 모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상황에서 송윤천이나 월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무림맹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 월을 포위하는 놈들의 수만 서른이 넘었다.
그리고 이놈들 모두 조금씩이나마 마기를 슬금슬금 풍겨대고 있었다.
무림맹이 코앞인데 마기를 풍겨대는 놈들이 모여있으니 우스운 꼴이었다.
‘물론 이놈들이 대단한 놈들은 아닌데.’
송윤천에게 전해 듣기로 먼 옛날에는 마공이라 하면 하나같이 마기를 풀풀 피워댔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마공도 변화하여 자연스럽게 마기를 숨기는 방향으로 발전했단다.
“쥐새끼들이 굴을 판 이유가 있었네.”
월은 그나마 곽범이 이놈들과 대치하고도 마공임을 확신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먼저 곽범의 경지가 그렇게 높지 않았고, 마공을 경험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이놈들이 제법 잘 숨기기도 하고.’
지금도 월에게는 마기임이 느껴지지만, 이건 과거 마공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에 나름대로 익숙해져서 가능한 일이었다.
‘거지 녀석에게 전해 듣기로 배에서 수적 행세하던 놈도 형편없다고 했는데.’
자신이 직접 마주한 게 아니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이놈들도 비슷한 수준인 것 같았다.
“무슨 일이냐.”
마인들이 월을 가운데에 두고 포위하는 동시에 저 멀리 어둠을 뚫고 호리호리한 사내가 등장했다.
“웬 가면을 쓴 정신 나간 놈이 혼자 여기로 들어왔습니다.”
월은 그가 우두머리임을 눈치챘다.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놈들이 하나같이 새로 등장한 사내를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놈에게서 마기가 감지되는 않는다는 점.
그렇다면 둘 중 하나였다.
‘아예 마공을 익히지 않았거나, 제대로 익혔거나.’
물론 같이 있는 녀석들이 죄다 마기를 풍겨대니 전자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쯧, 쥐새끼들은 이게 끝인가 보네.”
주변을 쓱 훑은 월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손도 부족하니까 나머지는 그냥 여기서 마음 편하게 죽어라.”
월은 자신을 포위하고 든 무리가 인식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차례대로 딱밤을 갈겼다.
그러자 가장 먼저 맞은 놈을 시작으로 한 명씩 이마가 패이고 피가 흘러나오며 뒤로 쓰러져 나갔다.
털썩-
마지막 한 놈이 쓰러지는 걸 끝으로 순식간에 서른에 가까운 숫자가 유명을 달리했다.
“아, 축하한다. 너는 조금 더 살아 있겠어.”
월이 유일하게 목숨줄이 붙어있는 우두머리를 보며 웃었다.
“……?”
영문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온 뜬금없는 말에 우두머리가 본능적으로 검을 잡기 위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월의 움직임이 그보다 훨씬 더 빨랐다.
‘쯧.’
월도 마음 같아서는 그냥 이 자리에서 모두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장원을 박차고 나설 무렵에 송윤천이 가장 강해 보이는 놈 하나 정도는 살려오라고 당부했었으니 꾹 참았다.
“너는 나랑 같이 가자고.”
월은 어느새 우두머리에게 접근하여 이마 위에 중지를 올린 상태.
빠악-
우드득-
중지가 튕기는 동시에 놈의 머리가 뒤로 튕겨 나갔다가 돌아왔다.
월은 다른 시신들을 남겨둔 채 기절한 우두머리의 한쪽 발목을 잡아끌며 장원으로 돌아갔다.
“그놈인가?”
“예, 그런데 이놈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장원에 도착한 월이 이렇게 물으니 송윤천이 답했다.
“놈이 마공을 익혔는지부터 확실하게 확인해야지. 그러니 일단 그놈 머리통부터 까봐라.”
“예? 목을 자르라고요? 여기서 하면 피가 많이 튈 텐데요.”
“그게 아니라, 머리카락 말이다. 머리카락. 이렇게.”
무작정 죽일 생각만 가득한 월이 답답했는지 송윤천이 직접 나섰다.
기절한 놈에게 다가간 송윤천이 정수리 부근을 꽉 쥐고 당겼더니.
부욱-
새 둥지처럼 정수리 가운데가 텅 비어 있으며, 정수리 부근이 시체와 같은 거무죽죽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송윤천의 손에는 주먹 정도 되는 넓이의 가발이 들려졌다.
“마기가 뇌수까지 치닫는다는 표현이 있다.”
송윤천은 자신이 왜 데려오라고 했는지 그리고 이런 행동은 왜 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도 들어는 봤습니다. 마공을 익히면 그런 부작용이 있다고 하던데요.”
월도 딱히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무인들보다 모를 뿐이지,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래, 그런데 이 말은 ‘제대로 된’ 마공의 부작용에만 해당한다.”
“돌아오는 길에 배에서 만난 그런 마공 같지도 않은 어설픈 녀석이 아니라 제대로 된 마공 말이지요?”
“정확하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이 나온 겁니까?”
월은 정말 몰라서 물었다.
마인을 상대해본 경험은 많지만, 굳이 죽인 놈들의 머리에 가발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전낭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말았지.
“보통의 무공과 다르게 마공은 역행(逆行)을 근본으로 한다. 자연스럽게 기의 순환을 방해하지.”
“아, 머리로 흐르는 기가 막히게 되면…….”
“이렇게 피부는 죽어 검게 물들고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지. 물론 이것도 제대로 된 마공의 경지가 일정 이상 올라선 후부터지만.”
“역시 장주가 정확하게 알고 있소. 요즘에는 중원에 마공이 등장하지 않았기에 아는 이가 없다시피 한데.”
송윤천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풍전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윤천보다야 못하다지만, 풍전 역시 이쪽으로는 빠삭한 편이었다.
“실제로 천하를 통틀어서 가발이 가장 많이 팔리는 지역이 바로 신강성이라고 하오.”
신강성은 천마신교를 비롯해서 온갖 마인과 마공이 판을 쳤다.
“그러면 마공의 경지가 높아지면 탈모도 심해집니까?”
“보통 마두나 대마두라고 하는 놈들은 백이면 백 대머리다. 죄다 가발을 뒤집어쓰고 있지.”
적어도 과거에 송윤천이 경험한 바로는 그러했다.
“아무튼, 이놈은 진짜 마인이라는 말이네요?”
“그렇지.”
신체에 마공을 수련했다는 증거가 이렇게 뚜렷하게 남아 있는데 감히 어떻게 부정할 수가 있을까.
“장주, 이놈은 내가 무림맹에 전달해도 되겠소? 뒤처리도 확실하게 책임지도록 하겠소.”
“마음대로.”
오랜만에 마주한 제대로 된 마인의 등장에 자못 심각해진 풍전이 부탁하자, 송윤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과 마교는 양립할 수 없으니 이놈도 지독한 고문 속에서 고통에 시달리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었다.
그렇게 마인을 넘겨주고 며칠.
이제는 곽범도 제법 회복하여 다시 빗자루를 들 정도가 되었을 무렵.
며칠 동안 장원을 비우고 무림맹에 머물던 풍전이 달갑지 않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