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헌아, 소림사에서 노송(老松)을 찾고 있다고?”
식사를 마친 후 송윤천이 남궁헌에게 물었다.
“네, 장주님. 뭔가 아시나요?”
“글쎄다. 내가 아는 게 맞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구나.”
송윤천은 문득 과거에 잠시 닿았던 인연을 떠올렸다.
‘그 녀석인가.’
벌써 백 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자신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았지만, 상대는 사람.
그동안 한 번도 소식이 들리지 않았기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처럼 잘 지내다가 떠났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노송’이라는 한 단어가 한참이 지나서 흐릿해져 가는 송윤천의 머릿속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어 놓았다.
“저도 그 소림사의 정인이라는 승려분께 들은 건 이게 전부예요. 노송을 찾아달라는 부탁이요.”
소림사가 천하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그조차 무림맹에 미치지는 못하니, 굳이 사람을 보내온 것이다.
대체 어떤 부탁이길래 금강의 제자가 무림맹까지 직접 행차하여 소문을 내어 달라고 했을까?
모두가 궁금해했지만, 정작 부탁을 가져온 소림사의 무승 역시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스승인 금강이 그런 부탁을 했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내가 직접 소림사로 가서 확인하는 게 더 빠르겠구나.”
송윤천이 나서고자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당장에 장원에 머물면서 처리해야 할 일도 없으니 잠시 자리를 비워도 문제는 없지, 싶었다.
거기에 풍전이 손을 번쩍 들고 나섰다.
“장주, 이번에는 소림사에 가려고 하는 거요?”
“그래,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러면 어차피 가는 김에 나도 같이 갑시다. 이러다가 그 땡중이나 나나 둘 중 하나는 얼굴 보기 전에 하직하겠소.”
“원한다면.”
어차피 월은 장원에 남아있겠다고 할 터이니 안될 것도 없었다.
“언제 출발 할거요? 지금 바로?”
“내일 떠나지.”
풍전의 속도에 맞춘다면 소림사가 자리한 승산까지 그리 먼 길도 아닐 터였다.
잠시 외유를 나서는 데 있어서 준비할 게 뭐가 그리 많겠는가.
필요한 게 있다면 가는 길에 알아서 해결하면 되는 일이다.
“이번에는 사저도 같이 가실래요?”
풍전이 옆에 있던 남궁연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마음은 그러고 싶은데,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서.”
송윤천이 남궁연과 남궁헌에게 약간의 조언과 함께 덩그러니 맡겨 놓은 음양일원공에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다.
단지 어디까지 얼마나 왔는지 가늠이 잘 안 될 뿐.
그렇다고 남궁연은 주변에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송윤천이 말했던 것처럼 음양일원공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하면 닿을 것 같기도 한데…….’
그 생각처럼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기도 했으니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
혼자라면 포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주변에서 도와주는 이들이 있고 열심히 하는 이들도 있다.
위에서 끌어주고 아래에서 밀어주니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 있겠나.
남궁연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음양(陰陽)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인지하고 심혈을 기울이니 이제는 마치 손발을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이제 남은 건 이 두 가지의 너무나도 다른 기운을 하나로 만드는 것.
머릿속에서 모든 잡념을 지워낸 남궁연은 무아지경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태극(太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음양이 태극으로 완성되는 순간이 곧 일원(一元).
남궁연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 *
“헉……, 헉.”
“사형, 고생하셨습니다.”
“곽 사제도, 후우-, 고생 많았어.”
장원 한쪽에 마련된 비무대 위.
남궁헌과 곽범이 각자의 무기로 몸을 지탱하며 간신히 서 있었다.
“먼저 목욕하러 가시죠. 저도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응! 고마워 사제.”
남궁헌은 웃는 얼굴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뛰어갔다.
곽범은 장원에서 보내는 게 일상이지만, 남궁헌의 일상은 무림맹 와룡당에 있으니 언제나 먼저 수련을 마치곤 했다.
문제는 곽범에 비하면 수련에 쏟아부을 시간이 한참 적은 남궁헌의 성장 속도였다.
이런 기세라면 몇 년이 지나기도 전에 남궁헌이 곽범을 추월할 터였다.
‘조금 더 열심히 해야 할지도.’
곽범이 몇 년 전부터 손에 박히기 시작한 굳은살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사실 주변에 누군가 있을 때는 괜한 마음에 억지로라도 열심히 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곤 했다.
어린 사저와 사형과 함께 생활하니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과거에는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환경을 탓했다.
자신도 대단한 가문이나 대단한 문파에서 나고 자랐다면 이렇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자신이 열심히 했어야만 했다.
‘왜 난 그렇게 헛된 시간을…….’
고백하건대 장원에서 보낸 몇 년의 시간은 이전의 수십 년 흑도 인생과 비교할 수도 없이 훨씬 보람찼다.
과거를 한탄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며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 건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완벽한 건 아니었다.
‘현재에 충실히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었지만…….’
열심히 살기 시작하면서 곽범이 느낀 건 최고는 되지 못해도 너무 뒤처지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재능이 부족한 탓에 어깨를 나란히 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를 악물고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따라가야만 한다.
곽범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어서 밝게 빛나는 달과 사방을 수놓은 별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저 하늘이 곧 장원이었으며 무림이었고 천하였다.
송윤천과 월, 풍전은 저 달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이미 더없이 빛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둥근 보름달처럼 될 수 있는 이들.
남궁연과 남궁헌은 북두칠성과 같았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빛날 이들.
그리고 곽범 자신은…….
문득 두려움이 몰려왔다.
자신도 저런 별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아 보이는군.”
“자, 장주님.”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와 코를 자극하는 익숙한 냄새에 돌아보니 송윤천이 연초를 태우고 있었다.
“여기는 무슨 일로……?”
곽범이 장원에서 머문 이후로 송윤천이 수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 한번 궁금하여 월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가만히 누워서 숨만 쉬고 있어도 강해지는 양반이라고만 했었다.
그런 송윤천이 왜 굳이 이쪽으로 왔을까.
“산책이다. 밤 산책.”
“아……. 그러셨군요.”
사실 송윤천과 곽범은 평소에 대화를 자주 나누거나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곽범은 사부를 자청한 월이나 사형제인 남매, 풍전과 지내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월은 사부랍시고 허구한 날 약골이라고 놀려댔지만, 그게 다 애정이 담긴 표현임을 곽범도 잘 알고 있었다.
사형제들은 장원에서 가장 약한 자신을 사제 혹은 사형이라며 잘 챙겨주었다.
물론 송윤천 역시 가끔은 곁으로 다가와서 그에게 창에 대한 것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
기억하기로 그가 송윤천과 둘이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시피 했다.
곽범이 입을 열지 말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송윤천은 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지금껏 송윤천이 만난 이들 모두가 천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천재는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수재, 범재, 둔재는 수없이 많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곽범은 그 셋 중에서 어디쯤 있을까.
‘굳이 따지자면 범재?’
분명히 천재는 아니었다.
옆에 떡하니 남궁연이 있으니.
마찬가지로 둔재도 아니었다.
관심을 기울였다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옆에 두고 몇 년을 지켜보니 조금은 느리지만 따라올 건 다 따라오고 있었으니까.
“장주님, 재능이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곽범은 고민 끝에 힘들게 입을 열었다.
질문하기가 어렵고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질문에 대한 송윤천의 답이 절망적이었을 때.
자신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서, 혹은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할 것만 같아서였다.
“포기하고 싶나?”
답 대신에 질문이 돌아왔다.
“…….”
거기에 곽범은 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도 모르겠다.
포기하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옛날에 내가 산삼을 캐겠다고 약초꾼 노릇을 하며 돌아다닐 때였다. 분명히 험한 산길이었는데 삼십 년이 지나, 똑같은 길을 보니 산이 사라졌더군. 한 번 맞춰봐라. 네가 생각하기에는 누가 그랬을 것 같나?”
“……당연히 무림의 고수가 아니겠습니까?”
무공의 경지가 하늘에 닿으면 한 번의 손짓에 드높은 산이 두 쪽 나며 바다가 갈라진다고 한다.
송윤천 역시 못할 건 아니라고 했으니 당연히 곽범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궁금하여 누가 그런 일은 했는지 찾아봤다. 알고 보니 산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삼 형제가 했다더군. 무공이 뭔지도 모르고 평생 농사만 짓던 이들이 말이지.”
그 정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디서도 볼법한 힘없고 평범한 인생을 사는 이들이었다.
“왜,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을 했답니까?”
곽범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그냥 사는 것도 힘든 마당에 왜 굳이 그런 일을 했을까?
“산길이 워낙에 험하여 제 가족과 훗날 자손들이 다니기 편하게 하려고 했다더군. 평생에 걸쳐서 말이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몇백 년이 더 지나서 또 같은 길을 지나갔었다. 대로가 깔리고 도시가 되었더군. 사람들은 거기에 산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당연히 지금처럼 큰 길이 나 있을 나 있었겠거니 생각하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도전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역사가 될 수 있다.
“재능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도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도전하느냐 않느냐는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이며 자유다.”
송윤천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 다 타들어 간 연초를 끄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늦은 밤 홀로 남은 곽범은 다시 창을 쥐었다.
송윤천의 말처럼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도전해서 실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재능이 있든 없든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었다.
곽범은 계속해서 도전하기로 다짐했다.
가장 크고 밝은 달이나 별이 되지 않아도 좋았다.
굳이 이름이 붙어서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별이 되지 못해도 좋았다.
이름이 없고 더 밝게 빛나지 않는다고 해서 별이 아닌 건 아니었다.
별은 그 자체로 별이었으니까.
휘익-
곽범이 별이 되고자 하는 마음과 함께 창을 찔렀다.
허공을 찢는 창끝이 이름도 없이 작게 빛나는 별에 닿았다.
* * *
다음 날, 곽범은 평소보다 더 밝은 얼굴로 일어나서 평소처럼 빗자루를 들고 장원 이곳저곳을 쓸고 다녔다.
방을 나선 송윤천은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작은 미소를 지었다.
“장주, 준비는 다 마치셨소?”
“이대로 가면 되겠지. 너는?”
“거지가 뭐 이것저것 많이 챙길 게 있겠소.”
잠시 후, 떠날 준비를 마친 풍전이 송윤천의 옆에 섰다.
“잘 지키고 있거라.”
“그럼요. 설마 그사이에 별일 있겠습니까?”
송윤천이 배웅 나온 월에게 부탁했다.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 월이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출발하지.”
이제는 자연스럽게 풍전이 앞서 달려 나갔고 송윤천이 그 뒤를 따랐다.
천하에 그 어떤 명마보다 빠른 둘이 움직이니 숭산도 그리 멀지는 않았다.
무림을 떠나서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 소림사가 둘을 반겨주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