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 그러면 이 노승은 조금 노곤하여 잠시 쉬고 있겠네.”
“진료는 모두 끝났으니 푹 쉬시오.”
송윤천을 처음 방문한 의원이라 생각한 원공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잠들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처럼 심신에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던 시절로 돌아간 원공의 정신이 육체에 영향을 끼친 까닭이다.
“어떻습니까?”
조금 떨어져 있었던 명원이 부리나케 다가와 물었다.
풍전이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던 만큼, 무언가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자라났다.
하지만 송윤천은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자라나는 기대감을 단번에 부숴버렸다.
진맥을 시작으로 면밀하게 살폈으나 뇌와 상단전은 아직은 불가해(不可解)의 영역.
의술의 범위에서도, 무공의 범위에서도 조금은 동떨어져 있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명원의 질문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송윤천이 잠시 연초를 태우며 눈을 감고 고민에 잠겼다.
수많은 경우의 수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고 사라졌다.
“찾아봐야지.”
송윤천이 자신에게 부여된 불로불사라는 천형을 벗어나기 위해 의술에 심혈을 기울인 세월만 수백 년.
언젠가는 불치병과 천형으로만 여겨지던 질병들이 완치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었다.
“그나저나……, 저 녀석만 아픈 건 아니니.”
“시주, 그건 또 무슨 말이시오?”
“너 말이다.”
송윤천의 시선이 명원을 훑었다.
‘잘도 버텼군.’
그 역시 정신과 육체가 지칠 때로 지쳐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나마 불심(佛心)을 통해 여기까지 버텼으리라.
“치매가 천형이라 불리는 이유가 뭔지 알고 있나? 자신이 누군지 조차 잊은 환자 본인보다 주변이 먼저 나가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매는 전염병이 아님에도 한때는 광증(狂症)을 옮기는 전염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시주, 나는 정말 괜찮으니 사숙부터 봐주는…….”
명원은 송윤천의 배려를 극구 거부했다.
평생을 이타적으로 살아왔다.
자신도 지쳤음을 알고 있지만, 그보다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숙이 걱정되었다.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툭-
명원이 제 가슴을 바라보았다.
분명 무언가 살짝 닿는 듯한 촉감이 전해졌는데 이미 송윤천의 손가락은 점혈을 끝내며 멀어지고 있었다.
‘언제?’
지난 세월 전신 구석구석을 가득 메웠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다.
끊어지기 직전에 놓였던 정신 역시 하염없이 흐트러졌다.
눈앞이 흐려지고 힘을 줘도 눈꺼풀이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송윤천이 수혈을 짚으니 반항하거나 피할 틈도 없이 명원이 제자리에 푹 쓰러지고 말았다.
완전히 수마에 빠져든 명원의 얼굴에는 수심(愁心)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 너부터 먼저 쉬어라.”
송윤천은 명원을 적당한 그늘에 눕혀두고 다시 원공의 곁으로 다가섰다.
* * *
명원은 모든 걱정과 근심을 지운 채 유유히 무릉도원을 거닐었다.
그곳에는 신선이 가득했으며 그가 평생 깊은 불심으로 섬기던 이들 역시 그를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는 그에게 칭찬과 함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무릉도원에 열린 천도(天桃)를 따서 손에 올려 주기도 했다.
명원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무릉도원의 복숭아를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어느 순간부터는 몇 개인지도 모르고 그저 손에 들어온 복숭아를 마구 입에 넣어댔다.
그래도 복숭아는 끝이 없었다.
입가는 물론 양손이 복숭아를 씹어 삼키면서 조금씩 흘러나온 과즙으로 흥건히 물들었다.
그와 함께 치매에 걸린 원공 사숙을 홀로 간호하며 쌓인 심신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져갔다.
그러다가 문득 명원은 입으로 가져가려던 복숭아를 내려놓았다.
“중생이여, 왜 그러고 있더냐?”
지혜로서 중생의 어리석음을 구제한다는 대세지보살이 물어오자 명원이 답했다.
“저 혼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네 뜻이 그렇다면.”
“제가 돌아가서도 이곳을 기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나 뵈어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하지 말아라. 너의 짐을 함께 들어줄 이들이 곁에 있을 테니. 그것도 아주 대단한 존재가.”
“명심하겠나이다.”
명원은 그 말에 합장하며 무릉도원에서 멀어져 갔다.
* * *
“이제 일어났구먼.”
개운해진 명원이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몰라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고 전신이 개운해졌다.
“자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니 풍전이 멍석을 피고 그 위에 늘어지게 누워 있었다.
“뭘 그리 맛있게 먹었나? 한참 입맛을 다시고 있던데.”
풍전이 그에게 식수를 내밀며 웃었다.
“내가 그랬나?”
“정말 그랬다니까. 왜? 오랜만에 육즙이 줄줄 흐르는 고기라도 한 입 했어?”
“하하……. 스님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명원은 죽통에 들어있는 식수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꿀꺽 삼키며 웃었다.
분명 굉장히 좋은 꿈을 꾼 것만 같은데 아무런 기억도 없으니 이상할 노릇이었다.
“그나저나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한나절은 푹 잔 것만 같은데.”
평소에는 사숙을 간호한답시고 깊게 잠들지도 못했다.
기껏해야 쪽잠을 자며 하루에 한 시진 정도 눈을 감고 꾸벅이는 게 전부였으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을 보니 몇 시진은 푹 잠들어 있었던 것만도 같은데.’
하지만 명원의 예상은 완전히 빗겨나갔다.
“참나, 한나절은 무슨……. 이 사람아 자네 사흘을 꼬박 잠들어 있었어.”
풍전은 명원의 말에 어림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어댔다.
“사흘……?”
깜짝 놀란 명원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 사숙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그 사이에 혹여 원공 사숙이 사고라도 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휩싸인 까닭이었다.
“저기 어디 구경이나 다녀오신다던데, 장주가 같이 갔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나.”
풍전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 저기 오는구만.”
자리를 털고 일어난 풍전이 눈을 찡그리고 한참 아래를 보았다.
명원 역시 그를 따라 바라보니 멀리서 잔뜩 신이 난 표정의 원공이 송윤천과 함께 돌아오고 있었다.
‘사숙…….’
명원은 무언가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사숙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기뻐서 그러한지.
아니면 자신이 부족한 탓에 지금까지 사숙이 괴로웠던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 * *
명원이 꿈속에서 무릉도원을 방문하는 동안.
원공은 총 네 번에 걸쳐서 각기 다른 시절의 원공이 되었다.
그중에서 한 번은 또 환상 속의 마교를 찾아다니며 송윤천을 죽이려 들기도 했다.
남은 세 차례에 걸친 원공은 비교적 얌전히 새롭게 등장한 말동무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지냈다.
대화의 주제는 보통 소림사였는데 그중에서도 명원에 대한 대화가 가장 많았다.
“스승님이나 사형들이 모두 너무 잘 대해주시는데요. 사실 또래가 없어서 조금 그랬거든요.”
원공은 한참 막내였다.
스승은 물론이며 그의 제자들과 원공의 나이 차이가 수십 년.
막내로서 배려는 받되 동등한 위치에서 어울릴 수는 없는 관계였다.
“제 사질 중에 명원이라고 있어요. 정말 착하기도 하고, 또 엄청 대단하거든요.”
원공 사숙은 명원에게 있어서 은혜를 갚아야 하는 대상이며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마찬가지로 명원 사질은 원공에게 소림사에서 외로움을 잊으며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운 인물이었다.
“그랬구나.”
송윤천은 길게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대화는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도 있지만, 그저 상대의 말을 차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어린 날로 돌아간 원공은 남들에게 못다 했었던 말을 그에게 풀어 놓았다.
“스승님이 그러셨는데 제가 재능이 뛰어나대요. 그래서 열심히 하면 머지않아서 스승님처럼 될 수도 있을 거래요.”
어쩌면 이건 원공이 노송이라고 기억하는 송윤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일 수도 있었다.
본명도 알지 못하고 멀리 떠나가 만나지도 못하지만, 노송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그가 살려준 인생을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저도 누군가에게는 노송이 되고 싶어요.”
송윤천과 함께 절벽 아래 선 원공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꾸벅거리다가 잠들었다.
나들이에 들떠서 이리저리 쏘아 다니다가 제법 지친 모양이었다.
송윤천은 깊게 잠든 원공을 안아 들고 뛰어올라 절벽 위에 올라섰다.
“일어났나?”
“오셨소?”
명원이 곁으로 달려와 원공부터 살폈다.
“사숙께서는 어떠시오? 차도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떠올린 게 있기는 하지.”
“그, 그게 무엇이오?”
“녀석에게 맺힌 한(恨)을 풀어준다면 조금은 잠잠해지지 않을까 싶은데.”
송윤천은 헤어나올 수 없는 굴레에 깊이 빠져들어 간 상태의 원공을 수렁에서 홀로 빠져나오게 만들고 싶었다.
“다만,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이니 기다려야겠지.”
“확실한 일이오?”
명원이 걱정을 가득 담아서 물었다.
“그것이 싫다면,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 두 가지 더 있다. 하나는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
그러니까 명원이 이대로 옆에 붙어 있는 것도 조만간 한계에 이르면 결국 제정신이 아닌 원공을 죽여야만 한다는 뜻과 같았다.
쉽게 말하면 현상 유지와 함께 정해진 비참한 미래를 기다리는 것.
“두 번째는 육신을 제한하며 정신만을 살려두는 것.”
간단하게는 일종의 독을 쓴다거나 사지를 억압한다거나.
독한 결심만 서게 된다면 굳이 송윤천이 나설 필요도 없다.
명원 홀로도 그 정도는 충분했으니까.
원공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 않는 게 힘들 뿐.
부상 혹은 그 이상을 고려하면 명원이 혼자 원공을 제압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
명원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음에도 답하지 못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은 원공을 내버려 둘 수도, 손을 쓸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기다리지.”
송윤천의 말에도 명원은 입을 열지 못했다.
송윤천이 가져온 한 줄기 희망을 향한 암묵적인 동의였다.
다시 이틀이 지나고, 송윤천이 기다리던 때가 당도했다.
“마교다-! 마교가! 마교가 소림사를-!”
원공이 있지도 않은 마교를 찾아대며 발작을 시작했다.
웅혼한 내력을 사방으로 발출하며 그의 별호인 천수(千手)와 같이 자신에게만 보이는 사방의 마인을 죽여댔다.
그때, 명원과 풍전을 멀리 물린 뒤에 원공과 마주 보고 서 있던 송윤천의 눈이 하얗게 물들었다.
환술 혹은 섭혼술이라 불리며 사이한 무공이나 마공이라 취급받는 종류의 것.
상대를 현혹하는 무공.
평상시의 원공이라면 항마의 기질이 있는 소림사의 심법이 제대로 작용하여 잘 먹히지 않을 테지만…….
“마교는 이미 물러났다.”
“마교가 물러났다고……?”
“그래, 소림사는 물론 그대의 사질인 명원이 활약했으며 정마대전은 정파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송윤천의 말에 환상 속의 마교를 막기 위해 미쳐 날뛰던 원공의 움직임이 멈췄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