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강자가 되면 흔히 자신이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존재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강자로 거듭났지만, 말로까지 강자인 경우는 보기 드물다.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없는 줄 알고 날뛰다가 망해버리는 까닭이다.
송윤천 역시 한때는 그러했다.
정확히는 감히 자신의 무력으로 이기지 못할 존재가 없다고.
자신이 소유한 금은보화로 원하는 천하의 만물을 살 수 있으며 권력으로 만인을 자신 앞에 무릎 꿇릴 수 있다고 착각했었다.
힘은 하늘에 닿으며 수명에는 끝이 보이지 않으니 지식과 지혜를 통달하였으며 원하는 모든 소망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그래서 송윤천은 의술에 전념했다.
천하를 널리 이롭게 하려고?
그런 종류의 선한 목적은 아니었다.
오직 불로불사인 자신이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주변 모두를 자신과 같은 불로불사에 가깝게 만든다면 더는 죽음을 갈망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의술에 전념하면서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송윤천의 착각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눈이……, 눈이 보입니다!”
평생 맹인으로 살아온 노인이 치매를 앓으면서 눈을 떴다.
그는 낮이 밝고 밤이 어두우며 태양과 달 그리고 별이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잘 들립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갓난아이의 울음소리, 닭이 아침을 알리는 소리, 주인을 반갑게 맞이하는 개가 헐떡이는 소리 그리고 제 목소리까지…….”
귀가 들리지 않던 이가 치매를 앓으면서 생전 처음으로 소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수백 수천 가지.
사람에게는 송윤천이 알려고 해도 알지 못하는 신비가 가득했다.
거기서 송윤천이 터득한 사실은 두 가지.
하나는 자신이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
다른 하나는 사람의 뇌는 불가해의 영역인 동시에 생각보다 단순할 수도 있다는 것.
‘환각을 보는 자에게 환각을 보여주게 된다면.’
송윤천은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어쩌면 원공이 이렇게 환상 속의 마교를 대상으로 폭주하는 건 그때 남은 한 조각 미련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원공이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보고자 하는 것을 보고, 듣고, 겪는다면 그 환상조차 깨지지 않을까.
그래서 송윤천은 원공에게 환술을 시전했다.
* * *
환술(幻術).
지금이야 무림에서 흔히 사이한 술법이라고 불리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무림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도 전.
평화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으며 피와 죽음이 난무하던 그 시대.
전장에서 사지가 잘려 나간 이들.
혹은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에 몸부림치던 이들에게 잠시나마 평안을 가져다주기 위하여 환술이 생겨났다.
그들이 잔혹한 현실 대신 환상에 젖어 들어 고통을 덜게끔 하려는 목적.
이후에는 다른 영역으로 널리 퍼져 도박꾼의 비장 수가 되기도 했으며 무림이 생기고는 무인들의 술수로 더욱 발전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 송윤천이 원공에게 걸어둔 환술은 어디까지나 그의 치매 증상을 치료 혹은 완화 시키기 위함이었고.
환술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정녕 마교는 물러난 것이오?”
더없이 흥분하여 날뛰던 원공은 사라지고 침착하게 질문을 던져오는 소림의 무승이 자리했다.
“기억해보시게.”
“으윽…….”
기억하라는 말에 원공이 머리를 잡았다.
치매는 그에게서 전후의 기억을 허락하지 않았다.
애초에 기억 자체가 없으니 떠올리려고 애를 써도 떠오르는 게 없을 테다.
“이상하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소. 마치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진 것처럼. 어……?”
온화함을 되찾았던 원공의 표정이 다시 잔뜩 찌푸려지고 있었다.
‘여기까지인가.’
송윤천이 원공의 반응을 보고 환술을 거둬들였다.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던 신묘한 기운 역시 감쪽같이 사라졌다.
‘뒤늦게 나타났지만, 분명히 거부 반응이 있으니.’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을 봤다.
‘예상대로다.’
송윤천은 흡족한 표정이었다.
만약 원공이 아니라 다른 이가 치매에 걸렸다면 환술을 펼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깨져가는 정신이 더 빠른 속도로 깨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윤천이 원공에게 기대했던 바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역근세수경(易筋洗隨經).
먼 옛날 숭산에서 구 년에 걸친 면벽 수련 끝에 마련했으며 현재는 불가를 대표하는 최고의 내공심법이었다.
“네가 후손 한 명을 살렸구나. 이럴 줄 알고 있기라도 했더냐.”
송윤천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스스로 답을 얻은 것만으로 충분했다.
* * *
영생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하여 송윤천이 쫓는 도(道)는 굳이 도교에 국한되지 않았다.
송윤천은 올바른 길이라면 그게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과거 어느 날, 그가 불심이 넓고 깊다는 스님들이 여럿 모여있다는 숭산을 찾았던 이유 역시 그러했다.
현재도 그러했지만, 과거에도 숭산 인근에는 불자들이 많았다.
천재도 있었으며 괴짜도 있었다.
송윤천이 만났던 달마는 그중에서도 유달리 특이한 자였다.
정신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육체적인 깨달음이 더해져야만 진정한 불심(佛心)에 다가설 수 있다나 뭐라나.
“송 형, 내가 말이오. 크흠, 사실 어디 가서 내 자랑을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는 편인데……, 사실은 갈댓잎을 타고 장강을 건너 이곳으로 왔소.”
강가에서 곡차를 즐기던 달마가 비밀인 듯 목소리를 낮췄다.
“그랬나? 축하하네.”
조금은 들떠있는 달마의 속삭임에도 송윤천은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따라준 곡차를 음미할 뿐이었다.
“반응은 그게 끝이오……? 설마 못 믿어서 그러는 거요? 정말 건넜다니까.”
기껏 털어놓은 비밀에도 청자인 송윤천의 반응이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인지 달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참나, 거기서 잘 지켜보시오.”
달마가 주변에 가득한 갈댓잎 한 장을 강물 위에 띄우고서 그 위에 살포시 올라섰다.
표정이 조금 굳어있는 모습을 보니 달마에게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싶었다.
하기야 자신을 쫓는 병사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위기의 순간 집중력을 발휘하여 처음 해 보고 이번이 두 번째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습이 어찌 되었든 간에 성공은 성공.
“송 형, 어떻소! 이래도 내 말을 믿지 못하겠소? 허허, 내가 곡차에 조금 취하기는 했어도 불심은 여전히 드높다오. 일위도강(一葦渡江)이라고 들어는 보셨나 모르겠네?”
달마는 송윤천에게 자랑하기 위해 몸을 반대쪽으로 돌려서 그를 찾았으나.
“송 형……?”
그는 강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소변이라도 누러 갔나 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자신보다 더 멀리 가서 강물 한가운데에 멀쩡히 서 있는 게 아니던가.
“어, 어떻게 했소?”
“무엇을 말인가?”
송윤천을 뒷짐을 지고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내, 내가 술에 조금 취했나…….”
달마는 다시 한번 눈을 비비고 그의 발밑을 살폈다.
자신처럼 갈댓잎 위에 서 있는 것도 아니며 물을 밟고 서 있는 것도 아녔다.
송윤천은 지금 허공 위를 걷고 있었다.
“신선? 생불? 그런 거요?”
“그 둘이었다면 여기 이렇게 두 발 딛고 서 있을 리가 있겠나.”
송윤천은 허공을 걸어와 다시 달마를 지나쳐 강가로 내려왔다.
“그건 대체 어찌한 것이오?”
달마는 정신과 육신의 깨달음 모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류였기에 여러 질문이 날아왔다.
나름 괜찮은 대답들이 날아왔지만, 사실 달마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이었다.
오래 살면 되며,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괴력난신으로 거듭난다면 가능하다는 게 어찌 조언이 될 수 있겠나.
“정리가 필요할 것 같소.”
달마는 이날의 충격을 깨달음으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면벽 수련에 들어갔다.
“이 무공의 명칭은 역근세수경(易筋洗隨經)이라 정했소. 그날 송 형의 조언을, 중생을 기준으로 하여 실천해보고자 정리해 보았소. 들어 보시오.”
몇 년에 걸친 면벽 수련을 마치고 다시 송윤천 앞에 나타난 달마는 그에게 자신이 만든 내공심법이 어떠한지 평을 듣고자 했다.
“목적이 뭐라고?”
“심신의 개선(改善)이오.”
달마 역시 마음과 같아서는 송윤천과 같이 오랜 세월에 걸친 수련을 통해 심신의 깨달음에 닿고 싶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범인에게는 그와 같이 무한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늘려가기보다는 그릇된 심신을 추스르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보았소.”
“네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충분할까?”
“가고자 한다면.”
달마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누군가는 자신이 갔던 길을 따라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훗날 지켜보도록 하지.”
달마가 열반에 들던 날.
송윤천이 눈을 감은 달마를 보며 말했다.
달마는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
송윤천은 달마의 진전을 계승한 원공이 그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틀에 한 번.
때로는 사나흘에 한 번.
원공은 폭주했고, 송윤천은 그때마다 옆에서 환술을 시전했다.
거기에 달마가 송윤천을 보고 만들어 후세에 남겼으며 원공의 심신에 깊게 새겨진 역근세수경이 조금씩 감응하기 시작했다.
* * *
“이 친구야, 진정하고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
“자네라면 저걸 보고도 진정이 되겠나?”
명원은 곁에 있는 풍전이 말리지 않았다면 당장 송윤천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어떻게 원공 사숙에게 환술을 걸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원공의 치매를 치료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의원이 방문했고, 또 무수히 많은 치료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가장 기상천외했던 치료법으로는 두개골을 가르고 직접 뇌를 살펴보겠다는 방법을 꼽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치료법은 의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데에서 그치고 말았다.
“성공했소? 부작용은?”
“제가 알기로 아직 성공한 사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부작용은 여러 가지인데, 대부분 즉사하여 부작용이 올 확률은 높지 않았습니다.”
듣고 있었던 명원이 사색이 되어 의원을 소림사에서 쫓아내었다.
그리고 이제는 환술로 치료를 하겠다니.
하지만 명원의 강한 의심조차 조금씩 믿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치매 자체를 치료하지는 못하지만, 원공의 무차별적인 폭력 증세가 조금씩 완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궁금하여 송윤천에게 물었더니 역근세수경의 장점을 활용했다는 싱거운 답만이 돌아올 뿐.
명원 역시 역근세수경의 계승자로서 송윤천의 대답을 듣고 고민해봤지만,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무작정 지켜만 보고 있었다.
혹여나 최악의 상황이 닥쳐오면 그가 직접 나서서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소림사를 침범했던 마인들은 이미 죽었으며 정마대전은 이미 종결되었다.”
송윤천은 수십 번 넘게 같은 상황에서 같은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 원공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졌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소. 내가 누구인지조차도. 그저 마교를 막아서야만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울려대고 있었소.”
마침내 원공이 먼저 대화를 청해왔다.
송윤천의 환술이 낙서로 마구 더럽혀진 종이를 치워낸 것이다.
“하나씩 차분히 설명하지.”
“하나씩……, 좋소.”
그리고 바로 아래에 드러나지 않고 있었던, 작은 점 하나 찍혀있지 않은 백지(白紙)를 들춰냈다.
이제는 원공이라는 백지를 채울 차례였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