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모든 악인이 태어날 적부터 사악하지는 않았듯이.
모든 영웅이 태어날 적부터 정의를 추구한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 무림맹주로서 칭송받기 일쑤지만, 이런 마석동에게도 남들 앞에서 밝히기에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다.
어린 시절의 마석동은 소위 말하는 골목대장이었다.
약간의 변명을 곁들이자면, 본인의 의지보다는 주변 환경 탓이 조금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부모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었고, 길가에 버려진 아이가 혼자 살아남기에 이 세상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다행히도 그냥 앓다가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마석동은 어린 시절에도 이미 성인보다 체구가 컸고, 힘 역시 장사였다.
심지어 무식하게 힘만 센 게 아니라 눈치도 빨라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이후 스승의 눈에 띄어 제자가 되었다.
스승의 눈은 틀리지 않았는지, 마석동의 무재(武才)는 금방 만개하였다.
하여 정마대전에서 맹활약하였고 지금의 무림맹주 마석동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남들은 살면서 한 번 경험할까 말까 한 정마대전에 무려 두 번이나 현역으로서 참전하게 되었다.
사실 무림맹을 나올 적에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 역할은…….’
지난날 젊은 날의 자신들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여러 선배처럼.
마석동 역시 자라나는 새싹을 위해서 미련 없이 거름이 되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전장에서 마땅한 적수를 맞이했을 때.
마석동은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긴장? 아니면 흥분? 아니면 둘 다?
이게 어떤 감정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권마(拳魔) 왕호.
오직 일신의 무력만으로 마교의 정점에 오른 사내.
‘그리고 어쩌면 우리와도 같은 편이 될 수도 있었던…….’
권마는 마석동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마석동은 권마를 단번에 알아봤다.
그 옛날 스승 밑에서 죽도록 구르던 시절.
언젠가는 자신과 동시대에 주먹으로 정점에 오를 인물이라고 들었던 자가 바로 권마 왕호였다.
‘사연은 안타깝기는 하다만.’
당시의 왕호는 협객과 같이 자신의 기준에서 악인이라고 생각하면 그게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처단했다.
소위 명문 정파의 자제가 정체를 숨기고 남들 몰래 양민을 마구 학살하다가 그의 손에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피는 피로, 목숨은 목숨으로 갚는 무림의 기준으로는 마땅한 징벌.
하지만 같은 편이 없었기에 무림 공적이 되었다.
그러자 무림의 행태에 분노하며 마교에 합류했다.
늦게나마 권마 왕호에 대한 비화(祕話)를 들으니 그가 저지른 잔혹한 행동에도 공감이 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왕호가 무림 공적이 되어 마교에 투신한 이후.
마석동이 나서서 되돌리기에는 이미 한참 늦어버렸었다.
그리고 이뤄진 마석동과 권마의 첫 대결.
권마는 자신의 위명이 거짓이 아님을 두 주먹으로 증명해 보였다.
사투(私鬪).
그 어떠한 무기도 없이, 둘은 오직 극한으로 단련된 신체만으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권마는 그의 별호처럼 주먹이 주였으나 주먹이 전부는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마석동 역시 참월이라는 별호와 같이 강력한 각법이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고.
몽둥이를 대신하는 주먹은 뼈와 근육, 살을 으깨버린다.
검을 대신하는 손날은 잘 세워진 검보다 능숙하게 상대를 가른다.
갈퀴와 같은 손가락에 잡힌 살은 마치 두부처럼 부드럽게 부스러진다.
그 이외에도 손등, 팔뚝, 팔꿈치, 어깨, 이마, 무릎, 발등, 뒤꿈치…….
과장 없이 그들의 신체 모든 부위가 그 무엇보다 뛰어난 흉기가 되었다.
중원의 왕호가 기존의 무공에 마공이 더해지면서 더 드높은 경지에 올라 권마가 되었듯.
마석동 역시 송윤천과의 비무에서 깨달음을 얻은바.
둘은 겉으로 보기에는 투박하기 그지없으나 자세히 들춰보면 작은 동작 하나에도 의도가 담긴 공방(攻防)을 이어갔다.
양측의 공격과 방어가 물 흐르듯이 끊이지 않고 연결되면서 피부가 빨갛게, 파랗게, 시꺼멓게 물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권마의 주먹과 마석동의 발이 한 지점에서 만나며 흑백의 빛이 터져나갔고.
수백 수천 번의 공방은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은 조금 이상했다.
이전에는 서로의 공격과 방어가 일치되었다면 지금의 권마는 과한 공격은 자제하며 방어에 집중했다.
‘부상?’
마석동이 거침없이 주먹을 내지르며 움직이는 순간에도 권마의 행동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다.
내상?
그건 아닐 테다.
만약 지난 첫 번째 혈투에서 내상을 입었다면 지금 이렇게 자신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할 테니까.
사소한 내상일 수도 있으나 그로 인해 벌어지는 균열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특히 지금과 같이 동수를 이루는 상대와 마주할 때면.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지만.’
비겁하다는 건 비무대 위에서나 할 수 있는 표현.
전장에서 중요한 건 오직 승리뿐.
하지만 계속해서 방어와 회피에만 집중하는 권마를 상대하면서.
마석동은 자신이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인지했고.
과거 뒷골목에서 여러 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눈치로 권마의 행동이 무엇 때문인지 알아챘다.
‘진심으로 나선 게 아니야.’
언뜻 보기에 권마의 눈과 귀는 자신을 향해 집중되어 있지만, 그의 감각은 다른 곳으로 집중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거지.’
각 세력을 대표하는 절대 고수 간의 혈투인 만큼, 둘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가 장난으로 던진 조약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
자칫하다가는 둘의 사투에서 튕겨 나간 미약한 기운에도 치명상을 입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
마석동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권마를 적당히 몰아붙이면서 감각을 넓게 펼쳤다.
굳이 권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아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오감이 아니더라도 기감으로서 주변의 기운을 살필 수 있었으니.
어느 한쪽에서는 뜨겁게 타오르는 열기와 하늘을 뒤덮듯이 묵직하면서도 날카롭게 선 기운이 전해졌다.
‘염마 그리고 창천.’
다른 한쪽에서는 꺼림칙하기 그지없는 혈기와 이를 제압하려고 드는 불가를 기반으로 한 항마(降魔)의 기운이.
‘혈마 그리고 금강.’
동료들 역시 자신과 비슷하듯 일방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듯했다.
마찬가지로 염마와 혈마는 권마처럼 한 걸음 뒤로 물러날 듯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거리상으로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는.
지금 전장에 발을 디딘 자라면 그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거친 사투.
바로 교주인 마창엽과 풍전의 대결이었다.
최초이자 가장 뛰어난 마공인 천마신공과 가장 강력한 자연지기인 뇌기가 상대를 죽이기 위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이쪽은 전혀 다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청마.
떨어져 있지만,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권마, 혈마, 염마.
이들과 다르게 오직 교주만은 물러날 기세를 보이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풍전을 압박했다.
교주가 전력을 다하는데 그 아래로 교도는 적당히 대치만 한다?
‘배신?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전장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중원 무림에서 저들을 받아줄 리가 없으니까.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추살(追殺) 한다면 모를까.
‘틈을 봐서 와룡당에 전달해야겠어.’
현재 자신의 역할은 책사가 아닌 무인.
머리를 굴리는 것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게 옳았다.
최전선에서는 이보다 더 깊게 고민할 틈은 없었기에 마석동은 딱 거기서 생각을 접었다.
그 시각, 마석동이 놓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실마리는 북쪽에 있었다.
아주 멀리 북쪽에.
* * *
만리장성(萬里長城).
먼 옛날 진시황이 북쪽의 야만족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리기 시작한 이 단단한 방어선은 현재에도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한때 원나라랍시고 중원을 빼앗겼다가 되찾은 지금은 더욱 그러했다.
원나라의 잔당들이 북쪽으로 달아나서 세력을 키우고 다시 중원의 주인이 되고자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니.
하지만 만리장성은 사람이 만들었으며 완성된 이후로도 사람이 관리하고 있으니, 구멍이 있기 마련.
금은보화가 있어도 절대 하지 못하는 게 있다고?
그건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부족하기 때문이다.
돈에는 귀천이 없다.
똥 묻은 돈도 돈이고 피부가 창백하거나 새까만 색목인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도 똑같은 돈이다.
이건 금군에게도 마찬가지.
평소에는 황명을 받아 죽여 마땅한 마인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 역시도 똑같은 돈이었다.
“난 못 봤소.”
마인에게서 두툼한 전낭을 받은 금군은 눈을 감았고.
“나 역시 아무도 만나지 않았소.”
마인 역시 그렇게 말하며 만리장성의 개구멍을 통해서 사막을 지나 초원에 도달했다.
그리고 초원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거대한 천막.
그곳에서 절대자로서의 위엄을 보이는 존재와 마주했다.
대명에 의해 몰락한 왕조의 정통 후예, 초원의 주인.
철목진은 낯선 복장과 낯선 외모를 한 마인이 정중하게 건넨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래서 네가 누구라고? 천마인지 교주인지 뭐 그놈이 보냈다고 했나?”
철목진은 두루마리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내용을 살피며 물었다.
“……내가 모시고 있는 분께서는 혈마라고 하오.”
눈동자가 계속해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하니 문맹이 아닐 터.
분명히 어떤 내용이 적혀있는지 또 누가 보냈는지 알고 있음에도 날아오는 상대의 도발에 마인은 한 번 화를 참아내며 답했다.
“아, 아. 그래. 그랬지. 혈마.”
상대가 누구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듯한 태도.
듣는 입장에서는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
“전서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있겠소?”
마인이 이를 악물었다.
“이런 중대한 사안에 바로 답을 내놓기는 곤란하지 않겠나?”
“그렇다면…….”
“하루만 말미를 준다면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하여 답을 주지.”
한눈에 봐도 문사보다는 무사에 어울리는 외형의 철목진이 마치 간신처럼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
“……좋소. 그렇다면 내일 이 시간까지 답변을 기다리겠소.”
서로가 아쉬운 처지라고는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부탁하는 쪽이 조금 더 아쉬운 상황.
마인은 수하의 안내에 따라 외딴 천막으로 이동하여 감금되었다.
전령으로서 방문했다지만, 괜히 수작질을 부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의견을 모아야 하겠으니 다들 모이도록.”
그렇게 혈마가 전령을 보낸 이후, 초원의 왕이나 다름없는 철목진의 주도 아래에 대회의가 소집되었다.
“의제는 중원 침략? 정벌? 징벌? 단죄? 뭐든 어울리니 그쯤으로 해두지.”
중요 인물 모두가 빠짐없이 모인 자리.
철목진은 전서에 적힌 내용을 밝혔다.
“마교에서 현황을 밝히면서 우리 측에 거래를 제안하더군.”
“부탁이 아니라 거래입니까?”
“그래, 정확히 거래라고 적혀있더구나.”
“주제도 모르고……, 찢어 죽일 놈들이로군요.”
“그렇지. 아무튼, 내용은 이렇다. 지금 자신들과 손을 잡고 장성을 넘어온다면 우리에게 강북을 주고 자신들은 강남을 지배할 것이라고.”
“강북이라면, 어느 강을 말하는 것입니까? 장강입니까, 아니면 황하입니까.”
황하는 위로, 장강은 아래로 흐르니 황하를 기준으로 하면 먹을게 적어지고, 장강을 기준으로 하면 먹을 게 압도적으로 늘어난다.
“전서에는 황하라고 적혀있더군.”
“날로 먹겠다는 말이로군요.”
수하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손을 잡자더니, 실상을 따져보니 고기 방패로 써먹으면서 보상은 짰으니까.
“하지만 그건 차후에 생각해도 될 일이지. 우리 초원의 형제들을 중원에서는 야만족이나 무식한 문맹으로 생각해서 이런 소리를 지껄인 걸 테니.”
철목진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