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60
160화
천하(天下)는 하늘 아래 펼쳐진 모든 세상을 의미한다.
중원(中原)은 넓은 들판의 중심,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한다.
송윤천이 나고 자란 이 땅은 언제부터인가 천하 그 자체였으며 세상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송윤천 역시 한때는 다른 이들과 같이 생각했지만, 다른 세상을 경험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넓으며 조금만 벗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곤 했으니.
중원은 단지 현시점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게 전부일 뿐이다.
이는 사람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괴력난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거 송윤천은 괴력난신으로서의 본질을 찾고자 중원을 떠돌았다.
그 과정에서 정말 각양각색의 괴력난신을 만났다.
괴물이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지는 외형과 능력을 갖춘 존재.
이게 정말 괴력난신이 맞는가 하는 의심이 자라나는 존재.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적대심을 품은 존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모든 것을 보듬으며 신화 혹은 전설과 같이 대우받는 존재…….
하지만 송윤천은 여기서도 정답을 찾지 못한 탓에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정답을 찾기 위하여 중원을 벗어나려 했다.
당시만 해도 북쪽은 혹한의 땅에 불과했고 동쪽은 조금만 멀리 나가면 망망대해가 전부라는 인식이 컸다.
그래서 남은 서쪽과 남쪽 중에서 서쪽을 먼저 둘러보려 했다.
서쪽에서도 다양한 존재를 만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맣고 특이한 복장을 하며 어느 지역의 지주로 살아가는 흡혈괴마를.
바다 건너 거대한 섬나라에서는 대단한 술법사를.
그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 바다를 건너 다다른 온통 사막뿐인 땅에서는 신조(神鳥)를.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 사람의 얼굴에 사자의 몸통을 하며 수수께끼를 유독 좋아하는 존재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만남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건 괴력난신인 청안족(靑眼族)이었다.
외모로 본다면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긴 수명과 찬란한 푸른 빛을 내는 눈동자를 제외한다면.
물론 서쪽에서 만나는 모든 이가 눈동자고 머리카락이고 다양한 색을 냈지만, 청안족의 눈은 그중에서도 정말 특별했다.
중원에도 비슷한 이들이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눈동자가 붉은색을 띠고 있다는 사실 정도.
그들은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이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 돌아왔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미신이 붙어, 그들을 납치하여 눈동자를 파거나 산 채로 심장을 끄집어내 그대로 씹어 먹는, 혹은 피를 뽑아 마시는 잔인무도한 일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신의 축복을 받는다나 뭐라나.
신비를 접했으며 신비 그 자체로 거듭난 송윤천의 시선에서 본다면 미개하며 야만적이었으나 이러한 일은 중원에서도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왔다.
청안족 역시 마찬가지.
동쪽이든 서쪽이든 사람은 사람이니 되지도 않는 미신을 믿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하여 그들은 비록 괴력난신이라고는 하지만, 평범한 사람보다 조금 더 특별할 뿐 아주 뛰어나지는 않아서.
수적인 열세를 감당하지는 못하고 깊은 숲속에 숨어지냈다.
그 숲이 바로 마녀림(魔女林).
눈동자가 아름답게 빛나는 여인들이 사는 곳이라 하여 붙은 명칭이었다.
쐐액-
홀로 마녀림을 찾아온 송윤천을 향해서 화살 수백 발이 일시에 날아들었지만.
휘리릭-
송윤천은 가볍게 손을 앞으로 저으며 파초선과 같이 강한 역풍을 만들어 화살을 날려 보냈다.
이제껏 없었던 강자.
그것도 서역인과는 전혀 다른 외모를 한 사내.
살아남기 위하여 외부인을 적대시해왔던 청안족의 부족장이 등장했다.
나이가 들어 허리가 굽어지고 머리가 하얗게 물들었으며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함에도 눈동자만은 바다와 같이 푸르게 빛나는 노파였다.
“청안족이군.”
“맞습니다만……, 그대는 무슨 일로 왔는지요.”
송윤천의 입에서 이 지방에서 쓰이는 언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이 주변만 백 년을 떠돌며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깨우쳤다.
“그대들의 푸른 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
청안족과 마주한 송윤천은 여전히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그 역시 마녀림에는 마녀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뿐이었으니까.
사실 이때까지 그가 살면서 소문으로 접한 신화, 전설, 괴물, 귀신 중 대부분은 헛소리나 망상 따위에 불과했다.
“…….”
그러자 노파는 말없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송윤천을 응시했다.
송윤천은 그게 뭔 짓인가 싶어서 묵묵히 기다려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파의 입이 열렸다.
“그대에게는 너무 많은 과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도 모두 담기지 않을 만큼.”
노파는 송윤천을 바라보면서 몰아닥친 정보의 물결에 두통을 호소했다.
“으윽-.”
“부족장님!”
옆으로 쓰러지려는 찰나, 수행원으로 보이는 젊은 여인이 곁에서 노파를 부축해주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게 과거를 뜻하는 거였나?”
송윤천은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잊고 싶은 과거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잠시 후, 고통에서 벗어난 노파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푸른 눈은 우리가 보고 싶은 것들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희는 단지 푸른 눈에 보이는 것을 전달해줄 뿐이지요.”
“대단하지만, 본인들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능력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그렇지요.”
노파의 설명에 따르면 청안은 매우 변덕스러우며 보고자 하여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하였다.
단지 살다 보면 이렇게 가끔 제멋대로 평소에 보지 못한 것들을 보여줄 뿐.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가?”
부족장 주변에 모습을 숨긴 채 대기 중인 인기척이 백여 명.
“부탁하지.”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송윤천을 푸른 눈으로 응시했지만, 누구도 송윤천이 알고자 하는 것들을 보지 못했다.
딱, 한 명.
작은 여아를 빼고는.
“죽고 싶어요……?”
여아는 아직 다 자라지도 못했기에 눈 역시 덜 푸르고 말도 서툴렀지만, 자신이 본 것들을 송윤천에게 말해주었다.
“그래. 진심으로.”
송윤천의 내심을 목격한 여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향을 떠나 이렇게 숲속에서 힘들게 숨어지내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든 죽고 싶다니.
배부른 소리였다.
송윤천 역시 그런 상대의 생각을 알았지만,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다.
당사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더냐?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보이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솔직하게 말해다오.”
송윤천은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가 자신을 더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아이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와서 송윤천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계속 어딘가를 돌아다녀요. 이곳과는 주변 풍경이 달라요. 사람들도 달라요. 검은 머리. 처음 듣는 언어, 옷, 집…….”
아이는 끝내 송윤천의 죽음을 목격하지 못했다.
미래를 보기는 했지만 따지자면 이것 역시 단지 가까운 미래에 불과했다.
“고맙다.”
송윤천은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청안족으로부터 끝까지 원하는 대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배려해주었으니 보답을 하고자 며칠 정도 숲에 머물렀다.
가장 가까운 도시로 나가서 가지고 있는 황금을 털어 필요한 물품 등을 구매하여 가져다주고, 주변의 위험을 제거해주기도 했다.
이로써 서쪽에서 모든 용건을 마친 송윤천이 마침내 멀리 동쪽으로 돌아가는 날.
청안족이 모두 모여서 떠나는 이방인을 배웅했다.
“고마웠네.”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한 번 더 방문하시지요.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그때는 누군가는 그대가 원하는 것들을 볼 수 있을지.”
노파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송윤천에게 작은 희망을 주었다.
“그리하지.”
송윤천은 언젠가 있을 재회를 약속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들이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송윤천이 다시 마녀림을 방문했을 때.
이미 푸른 눈을 간절히 원하는 자들과 저주하는 자들에게 일족이 토벌당하고 불태워졌기 때문이다.
송윤천은 청안족을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하고 아쉬움과 함께 귀환했다.
“그런데 청안족을 여기에서 이렇게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대로시군요.”
가면 아래에서 여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천천히 가면이 벗겨졌다.
중원에서는 색목인(色目人) 혹은 벽안(碧眼) 이라고도 불리는 이들과 같은 외모.
서역에서는 흔히 보이는 하얀 피부와 금발.
그리고 바다를 담은 듯이 빛나는 신비한 푸른 눈동자.
“그 옛날 마녀림에서 보았던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구나.”
과거에 송윤천의 가까운 미래를 보았던 그 소녀가 바로 청마였다.
“그쪽도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네요.”
“그래, 그리고 네가 봤던 미래처럼 여전히 죽지 못하고 살아있지. 그런데 네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조금 긴 사연이 있었어요.”
드러난 자신의 얼굴이 어색한 듯.
청마는 계속해서 손에 들고 있는 가면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있는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천외천의 경지에 닿은 송윤천이 어렵사리 마녀림을 찾아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마녀림은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된 채 살아왔다.
그렇기에 평생 푸른 눈만 가득했던 세상에서 살아온 여아에게 송윤천의 등장은 큰 충격이었다.
함께한 시간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아이가 소녀가 되었을 무렵에도 송윤천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탐욕스러운 자들이 우연히 마녀림에서 푸른 눈을 발견했고 지옥이 도래했다.
나무와 수풀이 무성한 숲에는 불길이 높게 드리웠고, 사방에서 날카로운 창칼이 닥쳐왔다.
탐욕스러운 자들이 산 채로 청안족의 두 눈을 파내고,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병에 담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펄떡거리는 심장을 씹어먹을 때.
오직 소녀만이 무사히 마녀림을 탈출했다.
소녀는 살아남기 위해 눈을 꾹 감고 맹인 흉내를 내며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게 있음을 깨달았다.
중원에서 흔히 말하는 자연지기였으며 이를 내공으로 받아들여서 강해진 사람들도 보였다.
아니, 어쩌면 소녀가 보고자 한 게 아니라 푸른 눈이 보여주었을 것이다.
소녀가 죽는다면 곱게 죽지는 못할 터.
그렇다면 두 눈 역시 멀쩡할 리는 없을 테니.
대단한 존재는 아니지만, 본질은 괴력난신이기에 조금은 뛰어난 재능과 조금 더 긴 수명.
거기에 특별한 눈이 더해졌다.
소녀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강해졌고, 마녀림의 복수에 나섰다.
하지만 절대 강자가 아니기에 개인으로서 무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푸른 눈은 송윤천을 보여주었다.
‘분명히 동쪽에서 왔다고 했었지…….’
기억을 더듬은 소녀는 송윤천이 떠나간 방향을 향해서 무작정 동쪽으로 향했다.
그 여정은 너무나도 멀고 험난했지만, 소녀는 마침내 천하 혹은 중원이라 불리는 땅에 도달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존재, 송윤천을 찾아 나섰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