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그런데 나는 당신을 찾지 못했어요.”
당연했다.
과거 아이일 적 푸른 눈이 그녀에게 보여주었던 송윤천의 미래와 같이.
그는 수십 년마다 거처를 옮기면서 세상에 그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유유자적 지내왔으니까.
그가 지금과 같이 장원을 벗어나서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고 타인과 인연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디서나 이방인이었어요.”
고향인 서쪽에서도, 낯선 땅인 동쪽에서도 그녀를 바라보는 건 탐욕 혹은 질투,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전부였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면을 착용했고 천마신교에 들어갔어요. 적어도 거기서는 제 외형이 아주 유별나지는 않았거든요.”
굳이 따지자면 신강성은 중원과 이국이 오가는 길목.
그녀가 정착한 뒤로 마침 교역이 발달하며 다양한 인종이 마구 뒤섞여가기도 했다.
푸른빛을 내는 눈동자는 정체 모를 마공으로 둔갑하였다.
사실 더 높은 경지에 올라 마교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가 된 이후에는 가면 뒤에 숨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면을 벗어 던지지 않았다.
“이제는 내 얼굴, 날 부르던 이름과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던 언어도 어색해졌어요.”
그 누구도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고,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단지 가면 뒤에 숨은 정체 모를 고수가 되었다.
그리고 천마신교의 청마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송윤천을 찾으려는 마음 역시 식어버렸다.
……그런 와중에 송윤천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나를 왜 찾았지?”
“내가 당신을 찾은 이유는…….”
막연하게 닥치는 질문에 청마가 떠올렸다.
내가 왜 그랬지?
내 고향, 내 가족을 잃어서?
복수에 실패해서?
그것도 맞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는…….”
왜 송윤천을 찾았나?
그와의 인연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 고민에 빠지다가 깨달았다.
자신은 마녀림의 고립된 삶에서 벗어나 어릴 적 송윤천에게서 보았던 미래와 같은 삶을 살 수 있길 갈망했다.
단조롭게 보이지만 여유가 넘치는, 쫓기는 자가 그토록 동경하는 지루함이 가득한 삶.
“아…….”
가면을 벗어던지고 오랜만에 맞이하는 바람이 얼굴에 살랑거렸다.
청마의 푸른 눈과 송윤천의 검은 눈이 서로를 마주하자.
송윤천을 중심으로 뿌연 안개가 모여들었다.
신비함이 푸른 눈은 이번에 또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 것일까.
* * *
과거 청마가 보았던 송윤천의 미래는 짧은 단편.
그건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송윤천은 언제나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생활했다.
스치듯 마주하는 인연이 있었지만, 그 인연 대부분은 사람.
그리고 사람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으니 금방 지나가 버렸다.
결국, 송윤천의 곁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이는 수하처럼 행동하는 사내 한 명이 전부.
하지만 청마는 언제나 실눈을 뜨고 다니는 사내의 정체가 괴력난신임을 놓치지 않았다.
주변 풍경이 달라지고, 두 사내의 복장도 조금씩 달라졌다.
여기까지는 그녀가 어린 시절 보았던 미래와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어서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 시절의 자신과 같은 두 남매.
거기에 허약해 보이는 중년의 사내.
자신만큼 강해 보이는 곱상하게 늙은 거지.
그들이 하나가 되어 잘 어우러진다.
송윤천은 그 무리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그리고 또 송윤천이 홀로 남는다.
그런데 바로 옆에 송윤천이 또 나타났다.
환상도 아니고 분신도 아니다.
그렇다면 뭘까.
답을 찾고자 했지만, 이번에는 푸른 눈에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
어쩌면 푸른 눈은 자신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려 하는 게 아닐까.
다시 안개가 뭉글뭉글 자라나고 미래가 있었던 자리가 현실로 대체되었다.
그와 동시에 청마의 흐려진 초점이 선명해졌다.
“이번에는 무엇을 보았나?”
송윤천은 상대의 눈에 담긴 신비함이 흐릿해지자 말하지 않아도 청마가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보았음을 눈치챘다.
“……당신이 둘로 나누어졌어요.”
“그게 무슨 뜻이지?”
예상치 못했던 답변에 송윤천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어요.”
마치 길바닥에서 자리를 잡고 푼돈에 사주팔자와 앞날을 봐준다는 이들이 내뱉은 말처럼 제대로 된 뜻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청마의 푸른 눈은 앞으로 언젠가는 닥쳐올 미래를 보여준다.’
해석은 송윤천의 몫이었다.
“앞으로는 어찌할 테지?”
무작정 자신을 찾아왔으나 도와주기를 원한다면 마땅히 그러고자 했다.
청마 역시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과거의 아이라면 몰라도 현재의 청마라면 굳이 송윤천의 도움이 필요치 않았다.
“이제는 잘 모르겠네요.”
송윤천을 만나겠다는 막연한 염원이 이루어졌다.
당연히 오랫동안 소망해왔던 목표를 이뤄냈다고 하여 변하는 건 없었다.
처음 마교의 일원이 되었을 때는 과거의 자신이 떠올라서 진심으로 임했다.
하지만 입장이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녀림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광활한 땅이 모두 마교의 것이었다.
그들이 중원을 노리지만 않는다면, 중원도 딱히 가만히 있는 마교를 노리지 않는다.
중원에 비하면 척박하기만 한 땅이니까.
그러기 때문에 마교가 중원에 대한 욕심만 내려놓는다면 문제가 없었다.
맹목적인 광신도, 복수심을 불태우는 마인.
부정적이기만 한 감정이 주변에 가득하니 무공의 경지와는 별개로 그녀의 마음이 좀먹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앞에 있는 송윤천을 보고 떠올렸다.
‘어딘가에는 행복이 있지 않을까.’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환경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행복하냐고?”
행복의 모습은 다양하다.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불행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으니까.
이 추상적인 표현에는 기준이 없다.
송윤천 역시 어느 순간 잊었던 것 같다.
자신이 불행한지, 행복한지.
아니, 잊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삶 속에서 미쳐버릴 테니까.
그저 막연하게 시간을 죽여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어떻지?’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떠올리는 것조차 굉장히 낯설었다.
“굳이 따지자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동안 무언가 대단한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자 근래에 자신이 겪은 불행은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딱히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행복한 것 같다.”
자신이 변해서가 아니라 주변이 조금씩 변했기에 행복해졌다.
“당신이 사는 그곳은 어떤가요?”
“무한은 괜찮은 곳이지.”
환경이 좋은 것인지, 사람이 좋은 것인지는 몰라도 송윤천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요?”
청마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사실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자신 역시 송윤천과 같은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송윤천은 허락이 아닌, 용기를 주었다.
“무한으로 가고 싶다면 따라와라. 안내해줄 사람을 붙여줄 테니까.”
괜히 혼자 다니다가 오해를 사면 귀찮은 일만 생길 터이니.
“그전에 손에 들고 있는 가면은 내려놓고.”
“아…….”
청마라는 별호가 붙기는 했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마교 내부에서 무위를 증명한 게 전부.
이번 정마대전에서도 청마가 전면에 나서서 활약한 건 아니었다.
후방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법 오랜 시간을 전장의 한복판에 있었으니 당연히 가면을 알아보는 자도 많을 것이다.
청마가 손에 쥔 가면을 움켜쥐었다.
일종의 미련이자 집착이었다.
가면을 벗고 살아온 날보다 가면 뒤에 숨어서 살아온 날이 더 길었기 때문.
하지만 가면 뒤에 숨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가면을 쓴 자신은 오로지 마교의 청마였으니까.
“원한다면 도와주마.”
송윤천이 망설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물었다.
가장 좋은 건 자신이 직접 미련을 벗어던지는 것이지만, 그게 힘들다면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미련에서 벗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요.”
그녀는 송윤천의 도움을 거절하고.
빠드득-
오랜 세월 동안 한 몸과 같았던 자신의 가면을 완전히 조각내버리면서 스스로 과거에서 벗어났다.
“이제는 청마라고 부르면 안 되겠지. 무어라 부르면 되나?”
“어…….”
멀리 서쪽에서 가지고 있었던 이름은 길고 복잡하며 양식이 달라 중원에서 누군가에게 소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마교에서는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했고, 어느 날부터인가 청마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본인 역시 이름으로 불리는 게 어색했다.
“마땅한 이름이 없다면 내가 지어주마. 눈이 맑은 연못과 같으니 청연(淸淵)이라는 이름이 어울리겠어. 거기에 서쪽에서 왔으니 서청연.”
송윤천은 당장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여 제안했다.
“서청연……. 뜻이 좋네요. 마음에 들어요.”
그녀는 송윤천이 즉석에서 작명해준 자신의 새로운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듯.
“서청연, 서청연, 서청연, 서청연…….”
서청연이라는 말을 익히기 위해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한때는 마녀림의 아이 그리고 천마신교의 청마.
이제는 푸른 눈이 아름다운 서청연.
“따라와라.”
송윤천은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다가 뒤돌아서 앞장서 걸어갔다.
그러자 뒤에서 약간의 미소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되뇌는 서청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건가요?”
“우선은……, 아마도 반쯤 죽어가고 있을 녀석에게.”
“……?”
서청연은 그게 어디냐는 듯 물었지만, 송윤천은 그저 묵묵히 걸어갔다.
강대하고도 정순하기 그지없는 마기가 전해지는 그곳으로.
주인을 잃은 천마신공이 세상에 남겨둔 마지막 잔재를 회수하기 위해서.
* * *
지난 정마대전에서 교주의 숨통을 끊은 자는 구성의 매화, 진현 진인이었다.
그리고 이번 정마대전 역시 구성의 풍전이 교주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물론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매화에게 죽은 교주는 이번에 등장한 교주와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강했다.
그래서 수십 명이 간신히 감당하다가 운이 좋게 마지막 순간을 매화가 맞이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풍전이 죽인 교주는 이전에 교주가 보인 경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중원에 있어서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전장에 모인 이들만 하더라도 평생 검강은 구경도 하지 못하는 게 현실.
검기만 어렵게 어렵게 뽑아내다가 검을 내려놓는 수준이 대다수였으니까.
그들에게 중요한 건 교주가 죽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게다가 청마는 더는 청마가 아니었으며 혈마, 권마, 염마는 각자를 따르는 수하들과 함께 전장을 이탈했다.
남은 건 오로지 교주 마창엽과 함께하는 광신도뿐.
거기서 교주가 죽었으니 사실상 중원 무림의 승리라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맹주, 이걸 어떻게 하면 좋소? 풍전 대협의 상태가…….”
무림맹주 마석동과 금강, 창천을 비롯한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그들이 둘러싸고 있는 중심에는 마기에 완전히 오염된 풍전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 조금만 더.”
마석동은 마치 누구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를 발견하곤 목을 쭉 빼고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장주-!”
“내가 너무 늦지는 않은 모양이야.”
낯선 색목인 여인과 함께 등장한 사내, 송윤천이 답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