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7
17화
“이야~, 오랜만에 크게 한바탕하겠네.”
“그러게. 이게 얼마 만이야.”
“흑룡방이 접수하고서는 처음인 것 같은데? 맞지?”
“일단 생각 없는 놈들은 미리미리 빠지라고. 눈먼 칼에 맞아 뒈지면 억울해서 귀신으로 영영 떠돈다.”
“귀신? 넌 그 나이 먹고 그런 걸 믿냐?”
“그럼 네가 오늘 눈먼 칼 맞고 뒤져 보든지. 있나 없나 직접 확인 좀 해보게. 왜놈들이 그걸 뭐라 하더라? 분신사바?”
천하에 존재하는 어느 기루나 도박장을 가도 정문 앞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는 누군가의 비호를 받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비석을 훼손하는 행위는 자신이 이 사업장을 접수하겠다는 뜻이며 대체로 그 과정에서 어느 한쪽의 굴복 혹은 죽음으로 종결되곤 한다.
그런고로 당최 백야차가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게 나름대로 큰 사고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거, 맞지?”
“고작 두 놈이 월하향을 통째로 먹겠다고? 간도 크네.”
“아니면 주제를 모르고 돌았거나.”
이 장면을 목격한 이들이 조심스럽게 수군대기 시작했다.
“혹여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흑룡방에 변고라도 생겼나? 미치지 않고서야 저렇게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겠지……? 아니면 뒷배가 흑룡방 따위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든든하거나.”
흑룡방주는 죽었고, 방도들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흑룡방을 벗어난 하인과 시비들은 혹여 자신들에게 시선이 쏠릴까 싶어서 능력껏 알아서 무한을 벗어났다.
게다가 평소에 흑룡방은 타인의 접근을 경계했기에 아직 흑룡방의 변고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거 잘만 풀리면 돈이 제법 되겠는데? 그런데 저기 가면 쓴 두 놈 정체가 뭐야? 여기 아는 놈 있나?”
“백야차, 백야차라……, 무한 내에서는 금시초문인데 혹여 인근에서 금싸라기를 노리고 진출한 이들인가?”
“저기 설마 무림맹이 개입한 것은 아니겠지?”
“이 무매몽지한 놈아. 무림맹, 그 고지식해서 체면만 차리는 인간들이 설마 기루에 손을 대겠나?”
“그런데 무매몽지가 아니라 무지몽매(無知蒙昧)가 아닌가……?”
“그래, 네 똥 굵다 이 새끼야. 어? 먹물 좀 먹어서 좋겠다.”
떠들썩한 소음 속에서 기루 주변을 기웃거리던 이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오문으로, 흑점으로, 흑룡방의 눈치를 보던 이인자와 삼인자에게로…….
그리고 한발 늦게 흑룡방이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이 널리 퍼져나갔다.
“흑룡방주가 머리가 터져 죽었다더군. 방도들은 병신이 돼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무한 흑도라는 호굴의 호랑이가 대뜸 사라져 버렸다는 소식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쉽게 호랑이가 되지 못한 호랑이 새끼, 이리, 여우, 토끼, 쥐까지.
많은 흑도 무리가 호굴을 차지하고 호랑이가 되기 위해 월하향에 모여들었다.
대대로 흑도 제일이 월하향을 관리하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월과 곽범은 모여드는 흑도 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자가 물 반 고기 반인 호수 정중앙에 큰 그물을 던진 게로구나!’
월의 의도를 읽은 곽범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모두가 눈독 들이는 미끼를 던져 먹잇감을 손쉽게 일망타진할 기회나 다름없으니 월의 의도는 제대로 적중했다.
실제로 고작 호위무사 두 놈 처 내고 비석을 가볍게 손본 것만으로 다들 모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하필 그 뒤처리를 내가 해야 하냐고요…….’
문제는 바로 각종 세력에 의해 월하향이 포위됐을 무렵.
대뜸 월에게서 날아온 한줄기 전음이었다.
-나는 말이지. 처음부터 하지도 않는 놈보다 중간에 포기하는 놈이 더 싫어.
그러니까 네놈이 끝까지 막아서라. 포기하면 알지?
뭐, 대충 이렇게 해석하면 될 것이다.
순간, 왠지 모르게 처참하게 죽어버린 흑룡방주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곽범이 뒤돌아 월을 바라봤다.
그는 비석 옆에 태연하게 올라앉아 어디서 구해온 건지 모를 술병을 불어 재끼고 있었다.
‘저 미친놈이 정말……. 이게 대체 무슨 개뼈다귀 같은 말이야.’
눈앞에 보이는 저놈들의 수가 기백인데 자신 혼자 막아보라니.
사실상 자신보고 싸우다가 죽으라는 말이지 않은가.
‘마음 같아서는 내가 저놈을 그냥…….’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반항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순간순간마다 저 야차 가면 사이로 보이는 시선을 마주하기만 해도 몸이 굳어버릴 지경이었으니까.
곽범은 실눈이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여기서 죽으면 귀신이 되어서라도 저놈을 저주하리라.’
결국, 곽범은 이를 악물고 장정 셋이 지나갈 수 있는 정문을 홀로 막아섰다.
도를 사선으로 휘두르기에는 너무 좁지도 너무 넓지도 않은 너비.
월하향을 둘러싼 놈들도 머리가 있으니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있었다.
오늘 하루가 너무나도 고단했기 때문일까.
이를 악물고 뽑아 든 도(刀)가 어쩐지 평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월하향을 노리고 나선 놈들이 저들끼리 눈치를 보다가 선발대로 한 놈씩 뽑아 곽범에게 보냈다.
어지간한 놈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겁에 질려 버리겠지만, 곽범의 근본은 흑도.
약하게 보이는 순간 죽는 거나 다름없는 세계였다.
‘그래, 쫄면 뒤지는 거야.’
어떻게 나가야 자신에게 유리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푸욱-
“컥! 이, 이 새끼가 비겁하게 급습을.”
“비겁? 어디 무림맹에서 나왔냐? 그리고 저기 뒤에 줄줄이 기다리는 새끼들은 협객분들이시고?”
곽범이 가장 먼저 다가오는 놈에게 달려나가 복부를 관통해 버리며 외쳤다.
“들어와, 다 들어와 이 새끼들아!”
곽범은 한 놈을 제치고는 기세를 드높였다.
흥분으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전신에서 열기가 차오르는 것이 마치 장판파의 장비가 된 것만 같았다.
* * *
촤악-
곽범은 말 그대로 이를 악물고 물러서면 죽을 각오로 다가오는 녀석들을 막아섰다.
‘장판파의 장비는 염병……. 내가 그럴 리가 없지.’
곽범은 바로 조금 전 자신의 근본 없는 자신감을 후회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잊고 있었다.
자신은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장군이 아니다.
자신은 그저 누군가의 주먹질 한 방에 허무하게 죽어 나갈 수 있는 흑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여전히 월이 나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보고 죽을 각오로 하라더니 정말 죽는 꼴을 지켜보는구나.’
후회가 막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수하 놈들처럼 놈팡이같이 살거나 죽을 각오로 수련이라도 할 걸 그랬다.
돌이켜 떠올리면 지금까지 자신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된 거, 몇 놈이라도 더 족치고 간다.’
억울해서라도 이대로는 못 죽는다.
곽범은 여기저기 찔리고 베인 상처에서 피를 철철 흘려대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한 놈? 아니 두 놈인가? 염병, 눈앞이 흐려지네.’
곽범이 뻑뻑해진 눈을 껌뻑거렸지만, 시야는 여전히 흐렸다.
내공을 다 써버려 단전이 텅 비고 그 상태에서 과다출혈이 더해지니 초점이 흔들리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이 새끼들아! 다 들어와!”
곽범은 이를 악물고 고함을 질러대며 허공에 대고 도를 마구 휘두르다가 머지않아서는 저 혼자 힘이 다하여 땅에 머리를 처박고는 실신해버렸다.
“그거참 모자라고 미련하고 약한 놈이로다.”
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월이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혼절한 곽범에게 다가섰다.
‘이놈을 어쩔까.’
약골인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 상상 이상의 약골이었다.
대체 장주님이 왜 이놈을 꼭 집어서 데려온 건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하에 재능있는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뭐, 그래도 일단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개기는 모습이 그리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난 이제 더는 모르겠다. 장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월은 먼저 점혈로 지혈해 대충 수습했다.
그리고 기절한 곽범을 발로 툭툭 차 뒤로 굴려 보내고는 앞으로 나섰다.
곽범이 처리한 놈들을 제외해도 족히 삼사백은 넘는 흑도 무리가 탐욕에 젖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대충 짐작이 되었다.
아마도 곽범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약해빠졌기에 자신도 그러리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입에서 제발 죽여달라는 말이 나오게 해주마.’
대개 사람이란 듣는 것보다 보는 게, 보는 것보다는 직접 경험하는 게 확실하게 와닿는 법이다.
하아-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말아 올린 월이 습관처럼 입김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는.
빠아악-!
선두에서 달려들던 놈에게 아주 강력한 딱밤 한 방을 선사해 주었다.
빠바박!
그리고 놈이 쓰러진 사이 빠르게 움직이며 뒤에 이어오던 열댓 놈 역시 같은 꼴로 만들어 버렸다.
“자, 다음.”
하아-
이마가 붉게 부어오른 채 쓰러진 놈들 사이에서 월이 딱밤에 입김을 불어 넣었다.
* * *
세월이 흐름에 따른 망각(忘却)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너무나도 강렬한 기억은 그것이 좋든 싫든 간에 쉽게 잊히지 않는다.
때로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지금 막 일어난 것처럼 선명하게 남아있기도 한다.
아마도 훗날 월이 죽음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딱밤일 것이다.
먼 옛날, 백야차로서 악명이 자자했을 때.
송윤천이 그의 앞에 당도해서 이렇게 말했다.
“천지 분간 못하고 날뛰는 꼴이 제천대성이 따로 없구나.”
송윤천은 마치 손오공을 타이르는 삼장법사처럼 월을 훈계하고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긴고아(緊箍兒)라도 쓰고 싶으나 내 손에 없으니 안타깝구나.”
“단단히 미친놈이로구나.”
빠악-
송윤천은 대신이라는 듯 욕을 내뱉는 월에게 담담하게 딱밤을 선사했다.
문제는 이게 한두 번도 아니었으며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빠악-! 빠악-! 빡!
십오 년.
송윤천은 무려 십오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월을 따라다니며 죽지는 않으나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이마를 때려댔다.
물론 월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목숨 걸고 반항도 해보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도 해봤다.
반성하는 척도 해보고 동서남북에 바다 건너까지 도망도 쳐봤지만, 말 그대로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
결국, 월은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고개를 숙인 후에야 딱밤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신기한 게, 죽을 만큼 싫었던 기억이 이제는 한 줄기 추억이란 말이지. 이래서 시간보다 무서운 게 없다고 하나? 뭐, 두 번 다시 겪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신이었으니까 십오 년이나 이 악물고 버틴 거지 이놈들은 어림도 없었다.
“혼자 도망치면 네 동료가 섭섭하지.”
“그……, 뭔가 오해가 있으신가 봅니다. 저놈들은 내 동료가 아닙니다. 저는 그러니 이만 물러나겠습니…….”
빠악!
“대혀어업!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살려만 주신다면 앞으로 월하향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습니다요!”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죽는다. 그리고 관대하게 이쪽으로 오줌 쌀 자유는 보장해주마.”
빠아악!
혼란한 틈을 타 몰래 도망치려던 놈이 뒷덜미가 잡힌 채 끌려와, 딱밤 한 방에 거품을 물고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러면 곤란해. 이제 시작인데 말이지.”
목표는 육체가 무너지는 것을 넘어 이놈들의 정신을 완벽하게 굴복시키는 수준이었다.
그 어떤 허튼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월은 자신에게 반항하고 달려드는 놈이나 겁에 질려 빨갛게 부어오른 이마를 부여잡고 도망치는 놈이나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딱밤을 때려댔다.
죽을 만큼 아프게. 죽는 것보다 무섭게. 그러나 죽지는 않게.
그래서 멀쩡히 살아남아 죽는 그 날까지 이 고통이 뼈저리게 각인되어 잊히지 않게.
이것이 바로 송윤천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른바 딱밤의 미학이었다.
“흐흐흐…….”
비록 가면에 가려져 있었으나 분명 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미치광이 그 자체였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