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세상이 혼란해졌지만, 송윤천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잠시 떠나 있던 장원은 그대로였으며 그의 일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식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입이 심심할 틈이 없이 연초를 피워댔다.
타의로 멈춰있는 자신과 다르게 자의로 변해가는 타인의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때로는 대리만족에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견뎌내기도 했다.
어느새 송윤천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곁에 남았다.
우울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차려고 하면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장주, 오늘도 한 수 배우겠소.”
“원한다면 얼마든지.”
무림맹주 마석동의 공손한 인사와 함께 살벌한 비무가 막을 올렸다.
투웅-!
마석동의 정권이 허공을 쳤다.
그간 송윤천을 조르고 또 졸라서 터득해낸 허공답보의 묘리를 응용.
외부에 기를 여럿 형성하고서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퍼버버벙-!
거리가 있음에도 마석동의 내부에서 시작된 기운의 파동이 송윤천에게 전달되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압박.
공격을 감당해야 하는 대상이 송윤천이 아니었다면 당장 자리를 피해야 할 정도로 막대한 힘이 담겨 있었다.
“훌륭하군.”
자신에게는 절대 허락되지 않은 인생 끝자락의 발전에 감탄하여 저도 모르게 짧은 칭찬을 내뱉었다.
하지만 발전은 발전이고, 비무는 비무.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송윤천이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성격은 아니었다.
퉁!
송윤천이 정권을 내질렀다.
보이지 않지만, 그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공격들이 단번에 무력화되었다.
“끝인가?”
“아……. 당장은 여기까지요.”
내놓을 게 있다면 얼마든지 더 선보이라는 듯한 태도.
하지만 마석동은 정말 더 보여줄 게 없었기에 머리를 긁적였다.
마석동의 시선에서는 처절한 사투였으며 송윤천의 시선에서는 아이의 흥에 어울려 주는 무언가.
“조금 더 방법을 모색하다 보면 더 좋은 길이 나타나겠지. 길은 하나가 아니다.”
“다른 방법이라……. 좋소. 충고 고맙소.”
만인이 우러러보는 마석동이었지만, 송윤천의 조언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미 식사도 마쳤으니 비무가 끝나면 떠날 법도 한데, 마석동은 아직 한 말이 남아있다는 듯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시간 끌지 말고 할 말이 있다면 말하고 가라.”
송윤천이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고, 마석동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음……. 장주는 나설 생각이 없소?”
“전혀.”
마석동 개인으로 본다면 송윤천의 입장을 백 번 존중하고 싶었지만, 공적으로는 무림맹의 맹주였다.
그러니 송윤천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욕심이었다.
하지만 송윤천은 단번에 그의 욕심을 거절했다.
“내가 나서게 된다면 어디까지 나서야만 하지? 적당히? 끝까지? 그렇다면 적당히는 어디고 끝은 어디일까.”
그건 아무도 몰랐다.
부탁을 들어주는 송윤천은 물론이며 부탁하는 마석동조차도.
“때로는 나서지 않는 게 균형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음……, 알겠소. 괜한 말을 꺼내서 미안하오.”
“개의치 않아도 좋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어떤 생각이든, 생각은 자유다.
다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사과를 마친 마석동이 고민이 가득한 뒷모습과 함께 무림맹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송윤천은 눈이 펑펑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고초(枯草)로구나.”
중원이라는 생생한 풀이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다.
아직은 죽지 않았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대로 완전히 시들어버릴지.
아니면 기적처럼 되살아날지.
송윤천은 침묵 속에서 지켜보기를 선택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 * *
겨울의 시작과 함께 중원에 본격적인 난세(亂世)가 도래했다.
아니, 정마대전에서 시작된 난(亂)이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살아도 중원에서 살고 죽어도 중원에서 죽겠다는 마인과 북원인이 난세의 시초였다.
그들은 곧 마적, 도적, 수적, 산적이 되어 중원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백만 금군과 정파에 짓눌려 그나마 얌전히 지내던 중원의 골칫덩이들도 이때다 싶었는지 차츰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황제는 침묵했다.
그때야 모두가 깨달았다.
지금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기라는 사실을.
결국, 정파는 금군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하여 종횡무진으로 움직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중원은 너무나도 넓었으며 악인은 죽여도 죽여도 줄어들지 않았다.
“화산의 매화 대협께서 마적 수백을 홀로 베어내셨다지. 주변 눈밭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고도 하고.”
“소림의 금강께서도 무승들과 함께 나서서 하남을 주유하고 계신다더군. 계도행(啓導行)이라고 들었네.”
“안휘에서 창천 대협의 제왕검형이 등장하면 다들 도망치기 바쁘다던데.”
난세 속에서 모두에게 조금씩 잊혀가던 영웅은 다시금 살아있는 전설이 되기도 했고.
“그래도 우리 호북, 그것도 여기 무한에서 신성(新星)이 등장하지 않았나.”
“남궁연 소저가 대단하기는 하지. 그 어린 나이에 어찌 그러는지.”
“개화(開花)라는 별호가 붙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만화(滿花)라고 불릴 정도니까.”
누군가 새로운 영웅으로 우뚝 서기도 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구석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영웅이 있기도 했다.
시작은 무한 뒷골목이었다.
“못 보던 놈들이 어디서 기어들어 왔을까?”
눈처럼 새하얀 야차 가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저기……,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졌습니다.”
무리 중 한 명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늘을 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날개라도 달렸다는 말인가?
“네 모가지도 뚝 하고 떨어지고 싶어서 하는 말이냐?”
차악-
익숙하다는 듯 말과 검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저, 정말입니다.”
하나같이 눈동자에 살기가 그득한 무리가 불청객의 등장에 당황했다.
“뭐가 됐든지 정상은 아니라는 말이네.”
뺏고 죽이고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는 쪽이었으니 가면이 가진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별것 없거나, 너무 특별하거나.
대부분은 전자였지만……, 이번에는 아쉽게도 후자였다.
“넌 뭐……!”
따악!
호기롭게 먼저 나서던 놈이 딱밤 한 발에 이마가 깨지고 무너져 내렸다.
“질문은 내가 먼저 했는데. 순서를 안 지키네.”
야차 가면이 홀로 무리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별것 아닌 움직임에 뒤에 선 이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남의 목숨은 소중한지 몰라도 제 목숨은 무엇보다 아끼기에.
강자 앞에서는 바짝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고 약자 앞에서는 피를 보는 게 이런 무리의 평범한 습성이었다.
야차 가면이 한 걸음 다가서면 상대는 두세 걸음을 물러섰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가장 뒤에서 물러나던 이의 비명이 거리 곳곳에 울려 퍼졌다.
푸욱-
“꺽-.”
등 뒤에서 폐를 관통당했으니 비명조차 튀어나오다가 마는 정도에 불과했다.
몸을 관통했다가 빠져나온 창과 함께 피를 흩뿌리며 쓰러져 나갔다.
하얀 눈 위를 붉게 물들이며 전신이 움찔거리다가 잠잠해졌다.
하얀 야차에 이은 검은 야차의 등장에 무리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검은 야차의 손에 들린 길쭉한 창은 그리 넓지 않은 거리의 끝과 끝 어디에도 닿을 듯 매섭게 빛났다.
반대로 무기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하얀 야차.
굳이 어느 한쪽을 고르자면 날붙이보다는 맨주먹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동료랍시고 어울려 다니던 놈들이 여럿 죽어 나간다면 누군가는 그 틈을 타서 살아나갈 수 있겠지 싶었고.
“저기 저 하얀 새끼만 죽이면 돼.”
“혼자서는 덤비지 말고.”
비슷한 인생과 비슷한 경험, 비슷한 습성이 모여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불나방이 따로 없네. 따로 없어.”
백야차를 자처한 월은 한숨을 푹 내쉬며 움직였다.
손톱을 바짝 세울 필요도 없는 녀석투성이였으니 여유가 넘쳤다.
대부분은 앞에서 닥쳐오는 월의 딱밤에, 남은 몇몇은 뒤에서 찔러오는 창끝에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단 한 명.
눈치 하나로 여기까지 오게 된 누군가는 난전 속에서 개구멍을 통해 도주했다.
“허억-, 허억-.”
무한에는 무림맹이 전부가 아니다.
무한에는 알려지지 않은 괴물이 여럿 도사리고 있다.
앞서 무한으로 향했던 놈들은 죄다 죽어 나갔다.
그게 아니면 살아있어도 제발 죽기를 바라고 있거나.
남들이 만류할 때 들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 닥쳤다.
괴소문 따위가 아니었다.
‘어디로…….’
달아나려 발을 멈추지 않는 도중에도 머리를 굴리고 또 굴리며 살길을 모색하는 와중.
저 앞에서 웬 여인 둘이서 철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런 행운이.’
한 명은 죽이고 한 명은 칼침 한 방만 놓은 뒤 살린 채로 인질로 잡아서 도주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인질이야 무한에서 무사히 벗어나고 죽이거나 노예로 팔아넘기면 그만이었다.
타다다다닥-
힘이 빠져가기 시작한 다리에 희망이 담기며 바닥을 힘차게 박차기 시작.
금방 여인들의 곁에 도달했다.
‘색목인……?’
한 명은 색목인, 한 명은 중원인.
순간 당황했지만, 행동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나마 작은 게 움직이기 편하지.’
그런 생각으로 더 큰 색목인을 향해 검이 튀어 나갔지만.
스악-
그 전에 조금 더 작은 여인이 꺼낸 검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어?’
검날이 보기 좋게 빛나고 있었다.
드르륵-
기를 잔뜩 머금은 검은 마주친 검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파괴하더니.
푸욱-!
부드럽게 아래로 내려가 그대로 단전이 있을 하복부를 파고 들어갔다.
검이 빠져나오고 생긴 구멍에서 단전에 뭉쳐 있었던 내공이 꿀렁꿀렁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 사저!”
그 뒤로 가면을 벗어던진 곽범이 부리나케 달려와 등장했다.
“여기 있어 사제. 조심해야지.”
남궁연이 다 죽어가는 시체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곽범을 나무랐다.
“……죄송합니다.”
서청연이 아니었고 남궁연이 아니었다면, 누군가는 죽었을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사부인 월의 탓도 있지만, 곽범은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월은 곽범을 믿고 가만히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저녁을 먹기에는 한참 늦은 시간이다.
장원에도 먹거리는 넘쳐나는데 왜 굳이 철가방을 들고나왔을까.
“장주님이 조만간 북쪽으로 떠나신다고 하셔서.”
“장주님이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송윤천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런데 북쪽이라뇨?”
곽범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물었다.
최근 월과 함께 흑백야차로 활약하면서 불청객들을 하나둘 정리한답시고 송윤천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탓이다.
“글쎄, 나도 북쪽이라고만 들었어.”
남궁연이 자기도 궁금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
수긍한 곽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말해도 되는 일이라면 말해줄 것이니 재촉할 건 아니었다.
“으으……, 바람이 차네요. 빨리 들어가시죠.”
북쪽에서 차디찬 바람이 거칠게 불어왔다.
언제나 겨울을 추웠지만, 이번 겨울은 유독 혹독했다.
‘조금만 있으면 끝나고 봄이 오겠지.’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겨울은 생각보다 더 길어졌고, 기다리던 봄 대신 다른 무언가가 중원을 찾아왔다.
“북해빙궁이 모습을 드러냈소.”
최근 중원을 어지럽히고 있는 북방의 야만족.
그들보다 더 먼 북쪽에 도사리는 위험이 중원을 향해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하제일 괴력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