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st Powerful God in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길고 험난한 겨울이 찾아왔다.
북쪽을 제외한다면 겨울이라고 해봤자 그리 길지도 춥지도 않은 게 중원의 대체적인 기후.
그러나 이번 겨울은 유별났다.
기껏해야 발이 빠지는 수준에 불과했던 눈은 사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만큼 높이 쌓였다.
간신히 눈을 치워도 또 그만큼 눈이 쌓였다.
당연히 마차를 움직인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강이 얼어붙어서 배를 움직일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물길 역시 막혀버렸다.
씨를 뿌려야 하는데 땅은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그 위로 눈이 한가득 쌓였다.
고작 겨울이 길어졌을 뿐인데 그로 인해 농업과 상업이 한순간에 망해버렸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겨울이 끝나고 어련히 봄이 오겠거니 하던 이들은 뒤늦게 세상이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가뭄 속에서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올리듯 눈이 멈추기를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겨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어려움을 겪겠지만 이런 때,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건 거지들이다.
십중팔구가 구걸로서 근근이 하루를 살아가는 처지인데 베풀어주는 이들부터가 당장 굶어 죽게 생겼으니 어쩌겠나.
백만 금군과 같이 백만 방도를 자랑하는 개방을 시작으로 무림에도 차츰 비상이 걸리기 시작했다.
풍전은 개방의 태상방주로서 근심과 걱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심적인 고통은 곧 신체로도 나타났고 끝내 변소에서 혈변을 보기까지 했다.
결국, 풍전은 송윤천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꼴에 절대 고수라는 놈이 제 몸 하나 간수 못 하고 쯧…….”
곁에서 노닥거리던 월은 풍전을 보고 혀를 차기도 했다.
“장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듯싶은데 왜 이러는지 알고 있소?”
“가끔 이러곤 했었다.”
송윤천은 처마 밑에서 연초를 피워대며 별일이 아니라는 듯 답했다.
“가끔?”
“그래, 가끔.”
“그 가끔이란 게 내 기준이오?”
“당연히 내 기준으로 가끔이다.”
길어야 수십 년을 살다 가는 게 사람의 인생이다.
풍전이야 축복받은 재능 덕분에 백 년이 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조차도 송윤천의 기준에서는 ‘가끔’에 미치지 않았다.
“지금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불어오지?”
풍전이 송윤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손가락에 침을 묻힌 뒤 쭉 뻗어 올렸다.
“북쪽에서 불어오고 있소.”
“그래, 북풍이지. 그렇다면 북쪽에는 뭐가 있을까?”
“북쪽? 북쪽이라면 만리장성 너머로 사막이나 초원이 전부지 않소?”
“그 너머에는?”
“아…….”
풍전이 송윤천이 던진 질문의 요지를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북쪽 한 참 멀리에는 북해가 있소.”
“정답이다. 새외(塞外)가 있지.”
* * *
새외(塞外)라는 표현은 본디 요새의 바깥 혹은 중원의 북쪽을 나타냈다.
중원의 시선에서 볼 때 가장 큰 적은 언제나 만리장성 너머에 도사리는 초원의 야만족이었던 탓이다.
하나 무림에서는 새외가 가지는 의미가 조금 달랐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보다 큰 개념이었다.
중원 바깥 서쪽 신강에는 마교가, 서장의 사막에는 자칭 광풍(狂風)이라는 마적단이 도사렸다.
운남성에서 조금 더 내려가 남쪽으로는 울창한 밀림 속에서 살아가는 남만(南蠻)이.
동쪽 바다 건너로는 약탈을 업으로 삼는 왜국이.
북쪽으로는 초원에 숨을 죽이고 있는 북원의 잔당이 존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쪽의 초원 너머.
“혹한의 땅, 북해(北海)에는 빙공을 수련한 세력이 존재한다. 너도 알고 있겠지?”
“당연히 알고는 있소.”
풍전이 겪은 새외 무림도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북해와 중원 사이에 이렇다 할 접점이 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새외무림으로서의 북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정도가 전부였다.
“북해에도 당연히 무공과 무인이 존재한다.”
새외무림이라는 표현이 있듯, 세상 그 어디에나 방식이 조금씩 다를 뿐 근원은 흡사한 무공이 존재했다.
“과거 북해를 지배한 자가 혹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거대한 바위와 깨지지 않는 얼음으로 거대한 성을 지었다.”
“그게 북해빙궁이라는 거요?”
“맞다. 그들이 그렇게 이름 붙였지. 현판에 자신들의 언어로 그렇게 적어 두었고.”
물론,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일지는 송윤천도 장담할 수 없었다.
현판이 북해의 한파 속에서 버티기에는 워낙 오래된 일이었으니까.
“중원이 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접점이 적은 북해빙궁을 적대시하는지는 알고 있나?”
“부끄럽지만, 잘 알지는 못하고……. 과거에 북해빙궁이 중원을 침략했다는 것만 들어서 기억하는 정도요.”
풍전이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마지막으로 북해빙궁이 중원에 모습을 드러낸 게 이삼백 년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정마대전과 같이 수십 년에 한 번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도 아니었거니와 풍전이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일.
세월 속에서 자연스럽게 잊혔으니 정보가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내 기억 속의 북해빙궁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송윤천은 아니었다.
그가 불로불사의 지루한 삶을 보내는 동안 여러 차례 북해빙궁이 중원에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첫 번째로 북해빙궁은 북풍 속에서 혹한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딱 지금처럼 말이오?”
“그렇지. 지금처럼.”
“두 번째로는 그들의 목적이 기타 새외무림과는 조금 달랐다.”
풍요로운 중원을 약탈하거나 완전히 빼앗아버리거나.
대부분의 새외무림은 중원이 가진 것을 탐내거나 더 나아가서 주인이 되고자 했었다.
하지만 북해빙궁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북해빙궁은 최대한 살생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침략자의 태도라고 보기에는 수상했다.
“혹시 광신도는 아니오? 마교처럼 말이오.”
“그들이 무슨 불교나 도교를 숭배하는 것도 아니다. 북해에는 딱히 종교라고 부를 법한 게 존재하지 않았거든.”
“그렇다면 뭐요?”
“그들은 중원의 무인을 납치했고. 내가 알기로는 북해빙궁이 납치해간 이들은 다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납치라면……, 중원인을 노예로 삼거나 팔아넘기거나 이런다는 말이오?”
풍전이 분노했다.
새외무림이 중원에 등장하면 흔히 일어나는 일.
그렇다면 북해빙궁은 단지 서장의 마적단이나 동남해의 왜구와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틀렸다.”
하지만 송윤천은 단박에 풍전의 추측을 부정했다.
“빙정(氷精)이라고 들어 봤나?”
“그게 실존하는 거요?”
송윤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빙정이 허구의 존재가 아님을 밝혔다.
빙정이란 혹한의 땅에 존재하는 보물로 흔히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중원에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그 실체를 목격한 자도 없었다.
하지만 빙정이라는 존재 자체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
“세상에 유일무이하게 오로지 단 하나의 빙정만이 존재한다. 빙정은 끝없이 강해지는 북해의 신물이지.”
“그런데 빙정이 북해빙궁이나 지금 중원에 벌어지는 이상 기후와는 무슨 상관이길래 그렇소?”
“내가 옛날에 빙정이라는 존재를 처음 들었을 적에는 천년빙정이라고 불렸었다. 그보다 한참 전에는 백년빙정이라고도 했다더군.”
천년(千年)이란 막연하게 오랜 세월을 뜻하기도 한다.
“문제는 빙정이 자연스레 강해지면서 주변에 흘러나오는 한기 역시 강해진다는 건데, 이 한기가 북해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라 때로는 지금처럼 북해 너머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했었지.”
수백 년에 한 번.
그때마다 중원에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혹한이 찾아오곤 했었다.
“멀리 떨어진 중원이 이 정도라면 북해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그들이 그나마 생존할 수 있는 건 기존에도 혹한 속에서 살아가며 버티기 위해 빙공을 수련했기 때문.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빙정을 다스리고자 했다.”
“잠시만, 그렇다면 설마…….”
“그래, 납치된 자들은 모두 무인이었지.”
한기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열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열기를 가진 존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겠지.”
중원 무림에 존재하는 대부분 무인이 쌓은 내공이 곧 열기와 같았다.
그리고 수십 년에 달하는 열기를 다시 수십 혹은 수백 정도 모으면 빙정이 가진 한기를 다스리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자세한 사정을 듣고 나니 구역질이 나는구려.”
자신이나 친지가 당한 일이 아님에도 지독한 살기를 품은 풍전이 표정을 잔뜩 찡그렸다.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 같은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니.
풍전을 비롯한 중원인의 시선에서 보기에는 야만 그 자체나 다름이 없었다.
‘나름대로 열려 있지만, 그래도 중원인의 시선이구나.’
송윤천은 굳이 어느 편에 서서 다른 한쪽을 비판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생존의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니까.
당장 중원에서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혹은 가지기 위해 타인을 죽이는 게 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 굴레를 완전히 끊어버릴 수는 없겠소?”
금방 화를 가라앉힌 풍전이 물어왔다.
자신에게는 그 어떠한 피해도 없을 것이고, 잠시만 참고 지나가면 죽을 때까지 겪지 않을 일.
그럼에도 누군가는 분명히 피해를 볼 것이기에.
“장주가 빙정을 파괴하거나 봉인한다면 될 일이 아니겠소?”
풍전이 가진 의문은 당연했다.
과거에는 송윤천도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자신을 감당할 존재가 그리 많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을 즈음, 직접 북해로 향하기도 했었다.
“빙정은 북해에서도 북쪽 끝자락에 있는 대설산에 존재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빙정을 수호하는 자를 이길 수 없더군.”
송윤천의 자세한 설명에 풍전은 그가 시도는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음을 짐작했다.
“장주가 그리 말할 정도라니 놀랍군. 그럼 지금도 그렇소?”
“지금은…….”
송윤천이 잠시 말을 멈추고 새로 연초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곧이어 연기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한 차례의 도전에 불과했지만, 벽을 느꼈다.
나름대로 가진 힘에 자신이 있었음에도.
‘물론 지금은 더 강해졌지만.’
송윤천이 발전할 동안 상대라고 가만히 있었을까?
물론 빙정의 수호자가 지금까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건재한지 약해졌는지 혹은 더 강해졌는지.
어떤 것도 알 수 없었지만, 과거보다는 승산이 있다고 여겼다.
“장주님 정말 가시려는 표정이네요.”
옆에서 듣고만 앉아있던 월이 확신으로 가득 차기 시작한 송윤천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자신이 과거에 듣기로도 빙정과 얽혀서 좋은 결과를 이뤄낸 자가 없었던 까닭이다.
“저렇게 절실히 바라고 있는데 한 번 시도는 해봐도 좋겠어.”
이렇게 장원에 박혀서 가만히 앉아있어도 송윤천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 테지만, 풍전을 보니 마음이 조금 약해졌다.
‘이래서 함부로 정을 주지 않는 거였는데.’
한때나마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했던 풍전을 위해서 이렇게 움직이게 되니 정이란 참으로 무서운 감정이었다.
“일단은 북쪽으로 움직이지.”
“바로 북해로 가는 거요?”
“아니, 우선은 길잡이부터 만나야지.”
마침 북해빙궁이 중원으로 직접 당도했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잘 다녀오마.”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떠날 준비를 마친 송윤천은 장원을 나섰다.
자신의 안위가 아닌, 세상에 약간의 평온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천하제일 괴력난신